'마틴 에덴'을 봤습니다.

1. 스포일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Martin Eden, 2019

0b7c2928ff654338b9e3713a8d5d0d5b15659712

포스터가 아주 오래된 영화 느낌인데 배경이 되는 시간은 멀게는 50년대에서 가깝게 70년대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지나가는 차, tv를 보면요.

누나 집에 얹혀 사는 마틴은 선원이면서 여가엔 나폴리의 흔한 잘생긴 건달류의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중산층 가족과 인연을 맺습니다. 그 집에서 문화적 충격인지 사랑인지 아마도 구분이 안 되었을 것 같은데, 여튼 그 딸과 사랑하게 되고요. 전형적인 이야기죠. 개츠비와 데이지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광고를 극중 대사인 '당신처럼 말하고 싶고 당신처럼 생각하고 싶다.'를 이용한다든지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펜 하나로 세상과 맞선..' 이런 식으로 하던데 사랑은 작가로서의 삶을 깨달아가는 계기일 뿐 개츠비처럼 데이지에 모든 가치를 때려 넣어 인생 목적이 되어 달리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딱 중반에 글이 드디어 잡지에 실리고 살림살이 희망의 빛이 점점 번지는 과정에서 애인과는 관계가 망가집니다. 처음엔 당신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싶었겠지만 자기 위치와 자아를 찾아 나가며 함께 공유할 지점을 잃게 됩니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조롱과 무시와 자신의 무지와 싸우며 드디어 작가가 되었는데 영화 후반부 성공한 주인공은 매우 이탈리아스러운 넓은 저택에서 고급스런 옷을 입고 이는 거뭇거뭇 썩은 채 자신을 방치하고 절망해 있습니다. 

이 인물을 괴롭히는 것은 글을 쓸수록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식을 쌓고 사상과 교양이 드높아질수록 현재 작가인 자신과 원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유리된다고 느낍니다. '작가'라는 존재가 가지는 모순인 것 같습니다. 언어를 파고들수록 그 언어로 대변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삶과 멀어져 가는 것이요. 작가로 성공할수록 자기자신의 모습과도 멀어지니 무엇으로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


작가의 출신 계층이나 부모의 소득 정도에 대한 통계가 있을까요? 제가 어릴 때부터 알고 좋아했던 세계문학 작가들 대부분이 부모가 전문직인 중산층이거나 본인들은 대부분 고학력자가 많았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학벌이 신통찮은 경우에는 그것이 특기사항이 되기도 하고요. 이 영화에서 작가가 되기 위해서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능력들이 있고 그걸 갖추기 위해선 우선 학업을 마쳐야 한다고 애인이 조언합니다. 마틴이 학교 다니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가족들이 모른척 하겠느냐고 말합니다. 

작가가 되는 과정이 그 누구에게든 자연스럽고 순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출신으로서 그 목표를 이루려면 심한 고생과 결의가 따르고 심한 고생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왜곡시키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후원해 줄 사람이 없는 이가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되기 위해 치루어야 할 노력과 시간이라는 문제. 그런 사람이 고생 고생하고 작가가 되었다 해도 생계가 해결되는가의 문제. 그리고 마틴 에덴처럼 성공해서 생계 해결도 했지만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마는 문제.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는데 요즘은 양상이 과거와는 좀 달라졌을까요?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감독이 좋아한다는 무정부주의자 실존인물 필름을 시작으로 해서 인물이 쓰는 작품 내용이나 회상이나 머릿속 이미지들이 흑백화면으로 이어져 제시되는 점입니다. 오래된 이탈리아의 자료화면들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대사없는 자료필름들이 영화에 고전적인 품위를 부여합니다. 

잭 런던의 동명의 자전적인 소설이 있다고 합니다. 

해안에 앉아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인물의 표정이 참 편안해 보였습니다.

f9cd8f1b139a07fb9e9b2cdda3ee402420986040



2. 왓챠에 '웨스트 월드'라는 세 시즌짜리 sf 가 있던데 달릴만 할까요? 오프닝이 아주 멋지던데요.




    • 관심 가던 영화인데 리뷰 감사해요. 영화로 만들기에 쉽지 않은 주제인 듯한데 설득력 있게 잘 풀어간 작품인 듯 하네요. 조만간 봐야겠습니다.
      •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그림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글렌 포드 주연으로 한 번 영화화되긴 했죠.

      <웨스트월드>1시즌은 최고,2부터 내리막. 율 브리너 나온 영화도 그 전에 있었죠.
      • 그럼 1시즌만 봐볼까 싶네요.ㅎ



    • 본다하면서 아직, 보려고요
      • 봉준호 감독이 많이 호평을 했던데 전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언제 봐 보시길.

    • 옛날 락밴드들 중에도 비슷한 아이러니에 빠진 경우들 많았죠. 차고에서 쿵짝거리며 블루컬러의 분노! 지배자들 갑부들 껒여버려!! 로 성공하고는 본인들이 갑부가 되어서... 그렇다고 성공하지 말라고 할 순 없고 답이 안 나오는 문제(?)죠. 힙합하는 분들처럼 아예 그걸 '스웩'이라고 승화시켜 버리든가 아님 돈을 아주 많이 번 후에 창작을 끊는가... 실제로는 걍 울분 가득 시절 작품들 갖고 계속 열심히 벌어서 더더욱 출발점과 멀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요. ㅋㅋ
      • 성공한 작가로 살면서도 대사 중에 '인생이 역겹고 너무 힘들어서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고 하며 끝까지 이 인물은 괴로움을 놓지 못하더군요.


        무엇을 기반으로 쓰는 작가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부분은 너무 큰 성공은 독인 모양입니다. 

    • 부자가 된뒤에도 계속 작품을 내놓는걸 보면 신기합니다. 예술적 감성은 헝그리 정신에서 나오는거 아닌가 연극도 예술이긴 하죠

      • 가난해야 된다는 건 아닌데 자기 예술의 기반에 따라서 큰 부자가 되어 버리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작자의 부유함과 상관없는 소재나 소비층을 가진 경우가 오히려 더 많지 않을까 합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4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6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1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1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7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0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3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7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6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3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