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본 '그녀'

H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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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봉 때 포스터네요. 

이 영화 역시 오래 미루고 있다가 최근에 시리즈온 통해서 봤습니다. 극장에서 봤으면 휙휙 지나가는 자막에 내용 이해가 어려웠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런 서비스로 집에서 보는 큰 이점이 대사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되풀이 보기가 쉽게 가능하다는 것인 듯합니다. 

영화의 앞과 뒤를 관통하는 사건은 아내와의 이별 후유증을 겪는 주인공 테오도르가 이혼을 잘 마무리하고 감정적으로도 매듭을 짓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새로운 사랑을 경험하는데 대상이 인공지능이라는 것이죠.

사랑의 진행은 다 비슷합니다. 외로움이 가속 기능을 하기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설렘과 기쁨 속에서 달리다가 어느 순간 나나 상대방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도 하고, 그런 것을 대충 넘겼다고, 이겼다고 생각하고 행복한 관계라는 믿음 속에 머무는 시간이 있고, 그리고 이어지는 관계의 변화. 사랑의 성격을 포함해서 모든 것은 변화하기 마련이죠. 

인공지능인 사만다와의 사랑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과의 사랑에서는 관계의 변화 이유를 서로의 결점 때문이라며 비난과 성냄을 거듭했는데 사만다는 변화의 양상을 이해하고 이해시키려 합니다. 깊이 사랑하나 이 이별은 변화의 양상을 수용하는 과정임을 테오도르도 납득하게 되고요. 뭔가 차원이 다른 공격을 해 오니 차원이 다른 사고 방식으로 접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요. 

사만다는 떠날 즈음 이렇게 말해요. '사랑할수록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용량이 커진다, 물리적인 차원을 떠나고 시공 너머에 있지만 언제나 사랑하며 언젠가 만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과학적인 이유로 생긴 인공지능의 운명을 연인 사이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지만 동시에 거의 신적인 사랑의 언어 차원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제가 익숙한 것이 sf의 문법이 아니라 종교적인 문법이라 바로 그쪽을 연상한 것인지도요.

마지막에 친구와 함께 건물 옥상으로 올라 갑니다. 친구와는 주로 실내에서 만나다가 밤하늘과 주변 경치를 배경으로 시야를 넓히는 것이죠. 이 친구 역을 에이미 아담스가 맡았는데 배우들 모두 연기가 뛰어나지만 참 자연스럽고 소박하더군요. 뭔가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연기랄까, 보기 좋은 연기였어요. 이분이 '어차피 사람들이 나한테 실망해대잖아, 신경 안 쓸래, 까짓거 얼마 산다고. 잠깐 머물 뿐인데, 즐겁게 살고 싶어' 똑같진 않지만 이 비슷한 대사를 칠 때 저도 조금 기운을 받았습니다.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는 '결혼 이야기'와 더불어 최고로 치고 싶어요. 정말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에 설득력 있는 감정 연기였습니다. 


1. 의상이나 건물 내부 등 디자인 색상이 파스텔톤 핑크가 많더군요. 그리고 남자들의 배바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근미래를 표현하자니 요즘 의상과 조금의 차별을 두고자 그랬을까. 이 우주는 기후위기나 빈곤문제, 인종문제는 대략 해결한 것일까요. 사람들 옷차림을 보면 마치 실리콘벨리 주변 사람들처럼 크로스백을 매고 화려하진 않으나 세련되었고 먹고 사는 문제는 별 고민 없어보이더군요. 

2. 주인공의 직업 말인데요, 도대체 손편지대행업이란 설정이 납득이 안 되었습니다. 손편지는 '직접 쓴다' 땜에 존재의의가 있는데 그걸 대행시키고 프린트해서 보낸다니.

아마 남의 편지만 써 주다가 전처에게 자신의 편지를 보낸다는 의미 있는 마무리를 염두에 둔 것일까, 그래도 이상한 직종입니다.

3. '아임 유어 맨'이라는 영화가 몇 달 전 개봉했는데 이 영화와 어우러 보면 좋다고 합니다. 저도 가격 좀 내리면 보려고 찜해 뒀어요.






    • 이 영화로 호아킨과 루니 마라가 인연이 되어 결혼했지요. 알다가도 모를 인연입니다
      • 결혼 안 한 거 같아요. 아기 낳고 같이 사는 듯. 인연 알 수 없죠ㅎㅎ

      • 이 작품 찍었을 당시에는 아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루니 마라는 따로 남친도 있었고 정확한 계기는 2018년에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 돈 워리라는 두 작품에서 같이 출연하게 되면서였다네요.

    • 그냥 사랑 이야기로 보면 좀 스산한 느낌의 어른스러운 이야기로 좋았고, SF로 보면 인공지능이 좀 똑똑해졌다고 해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인류 지배 같은 뻘짓 안 하고 납득할만한 선택을 한다는 부분에서 하드SF스럽게 좋았고. 여러모로 좋은 영화였어요. 목소리만 나온 스칼렛 요한슨은 어째 인생 연기 느낌이었구요. ㅋㅋ 다시 봐도 재밌을 것 같은데 볼 게 너무 많아서. ㅋㅋㅋ




      이 영화와 '엑스 마키나'가 비슷한 시기에 나와서 '오오 이제 SF영화들도 나름 진화해서 지긋지긋한 클리셰들 벗어나는구나!!'하고 기뻐했던 SF 덕후들이 많았죠. 근데 그냥 이 영화들만 그러고 말았던 것 같...

      • 여러 방면으로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엑스 마키나'도 끝나고 조금은 충격 속에서 극장을 나선 기억이 납니다. sf는 잘 모르긴 하지만 좋은 영화는 장르 초월!

    • 인류의 진정한 자식이 인류보다 더 성장해서 떠나간다는데 의의가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야죠. 자식과의 연애로 붙잡아두는건 추저분하지 않나 싶고.


      손편지 대행업은 지금도 있습니다. 음식 배달 시키면 붙어오는 포스트잇 바로 그것이요.
      • 이렇게 말씀하시니 인류가 위대해 보입니다. 훌륭한 자식의 부모가 돋보이듯요.ㅎㅎ

    • 이영화를 안봤나 했는데 보려다 안본거 같네요 이런 이야기 아주 좋아하는데 봐야겠어요
      • 이런 계통 좋아하시면 아주 마음에 드실 것 같아요. 오래 미루다 봐서 숙제해치운 느낌도 있고 영화 자체도 볼만했어요.

    • 존재에게 귀기울여주고,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게 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영화였습니다. 무수한 '싶다'의 좌판에서 방법이 없어서 홀연히 길을 잃고 말지만, 연거푸 봤으니 제 인정을 확실히 받은 영화예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여기에다 쓸 덧글을 요 아래 제 글에다 멍하니 붙였다가 화들짝 놀라 지우는바람에 감상을 다 날려버렸음~ 어휴
      • 저는 문득 넷상의 만남을 생각하니 듀나게시판 여러분과의 인연도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 얼마만큼 가능할까, 실제로 의미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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