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멀어진 사람

이십대 초반에는 잠 안자고 하룻밤에 영화 세 편을 본 적도 있습니다. 영상을 건너다니며 연애하는 기분이었죠. 그럴 때는 제가 영화제 심사위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주제들이 서로 끌어안고 뒹구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영화가 다루는 소재들에 체하는 느낌이라 한 달에 두어 편이나 간신히 볼까, 영화와 소원해졌습니다. 외국 영화의 경우 비내리는 듯한 자막이 뜨는 것은 특히 보기 싫고요.

독립영화하는 친구가 무슨 이유인지는 말 안하고 3년 간 만든 필름들을 한번에 다 봐달라며 오랜만에 연락해왔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 이제 내게 영화란 눅진해진 알사탕, 초겨울에 내리는 첫눈 입자, 잊혀진 음악의 마지막 한 소절, 인물만 좋은 남자의 프로필, 9월에 누래진 나뭇잎, 김빠진 탄산수.... 같은 거라고. 무엇보다 그렇게 귀중한 것에 대해 견해를 제시할 만한 감성이나 체력이 안 되는 상태라고.

그렇게 서운한 답을 했는데, 그가 흐흐 웃더니 "너도 이제 살아낸 시간만큼 시한폭탄의 문제와 직면하고 있는 거구나. 무명이나 익명으로 살려고 하니 더 힘든 거야. 세상의 유혹에도 한번 넘어가봐."
상투어법에서 벗어난 그런 충고를 받는 기분은 묘합니다. 생활인으로 부패하지 않고 자신의 근원적인 힘을 유지하며 사는 사람들은 참 강하면서 날렵하기도 해요. 그런데 세상의 숲 한쪽에서 그런 이들을 지켜보는 것도 저는 그다지 싫지 않거든요. 

결정적인 순간에는 제가 그들의 보증인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혼동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결단입니다. 묵묵히 바라보거나 기다리거나.....

    • 저도 영화 쪽 일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지만 영화 갈수록 안 봐요.

      그리고 미국 영화 편식성 심한 건 언어때문에요. 영국 드라마,영화는 사람들이 고상하다고 고급지다고 생각하는 억양이 싫어요. 저는 고급진 것에 알레르기 체질인 듯.대신 이탈리아 어,스페인 어 쪼금 알아들으니까 그 쪽 영화에도 관심이 쫌 생깁니다.


      저 한 때 알던 사람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던 사람이었는데 자기 능력 생각 안 하고 아무 일이나 벌이더라고요. 그 여자를 박애적 아마추어리즘이라는 ngo의 한계를 떠올렸지요.




      https://youtu.be/sPb_AwujT-Q




      비 오는 날 아름다운 영상

      • 우리 모두 각자의 관심과 재능과 노력으로 '나는 허깨비가 아니야'라고 존재증명하며 사는 거니까요. 스포츠를 좋아하시는 것 보면 낙천주의자일 것 같은데 의외네요. ㅎ

        • 움직임을 보는 게 좋아서일까요? 김현이 발레는 여자 허벅지를 가장 예술적인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다라고 쓴 것처럼. 로베르 브레송은 노트에 "움직임을 보면 행복해진다: 말, 운동선수,새" 이렇게 썼더군요.



          어제 새벽 몰도바 리그의 쉐리프란 듣보잡 팀이 레알 마드리드 홈에서 레알을 격파했습니다. 경기 후 쉐리프 주장은 이게 축구다라고 했죠. 언더독의 승리가 실현되는 게 스포츠기는 하죠.

    • 저도 현재는 영화를 잘 안봐요. 20대땐 외토리라 영화보러 같이 갈 사람이 없었고


      어쩌다 영화 두편을 극장에서 연달아 본적이 있는데 막 어지럽고 비유하신대로 영화 장면들이 서로 끌어안고 뒹구는 것 같은 느낌이 저는 불쾌했어요. 


      영화에 흥미가 있어야 듀나게시판을 더 즐길 수 있을텐데 아쉽긴 합니다.

      • 어떤 분야의 종사자든 대중의 눈흘김에 대한 책임을 떠안을 이유도 필요도 없죠. 그걸 감당할 수 았는 이들이 그 작업을 해내고 있는 거니까요.  우린 그들도 나름의 고통을 감내하며 해내는 작업인 거라는 것만 고려하면 되겠죠.
    • 영화 며칠 걸려 봅니다 사라지는건 그냥둬야죠 하나도 안아쉽게.


      친구의 말대로 세상이 유혹하면 난 당연히 넘어가죠 익명으로 살려고 진짜 하지 않았고.


      하하 살아온 시간 만큼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건 맞아요.

      • 세상에 발표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유행 속에 함몰돼 휩쓸리는 것보다는 자신의 취향대로 외롭거나 괴롭게 사는 게 더 바람직한 것 같아요. -_-

        • 결국은 원한거 같이 진행되어 이제 머물고 있는데가 집일까 다른델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하하
    • 저도 영화와 좀 소원해지기도 합니다. 그 속됨이 너무 가시적이기도 하고 눈과 귀로 와닿는 진실이란 게 역으로 그 거짓됨을 더 상기시키기도 하고... 영화 속에 몰입해있는 제 자신을 오히려 번쩍 현실로 돌아오게 하면서 보잘 것 없는 리얼리티 속의 저를 더 아프게 대면시키기도 합니다. 




      독립영화를 하시는 친구 분은 그 업계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버티면서 카메라 속에 어떤 진실을 담고 싶어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어디로갈까님의 우정이 카메라와 그 친구분의 거리 안에서 작게나마 화학작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도 듭니다.

      • 호랑이와 곰에게 쑥과 마늘 한 줌씩만 먹으며 동굴 속에서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한 게 실현되는 세상이라서 가상의 세계로 넘어가 현실을 고발하는 의미로 그 작업에 의미를 두는 거라고 말했어요. 
        자신이 느끼는 괴로움을 따라서 걷는 게 영상작업인 거라더군요. 그가 의대생이었다가 자퇴하고 영화계에 들어선 건  아직 세상의 비밀~ 
    • 아아~ 낯선 이들에게서 메일 2통 받았는데 잘난 척 그만하라는 내용이었어요. 내가 뭘? 


      이제 저도 듀게 떠나야 하는 이유를 명받은 건가요? ㅋ

      • 하하 그냥 참지 뭘 메일을 보내고 그럴까

        • 뭐라고요? 제 글의 성향이 참아야될 부분이 있다고 그들과 공감하시는 거에용? 


          공개게시판에는 제가 얼마나 침착을 가장하며 감정을 누르고 낙서질 하고 있는 건데요.  흥칫뿡


          근데 제 메일 주소가 공개되는 건 어떤 시스템에 의해서인가요. 어리둥절~

          • 아니 그사람 한테 하는 얘기죠 내가 말을 참 못하긴 한데.


            여기 쪽지 보내기가 아니고? 


            관심가진 사람이 힘 써서 찾아봤나보죠

          • 가입하실 때 증명용으로 쓰신 메일은 메일 보내기 기능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근데 쪽지도 아니고 메일로 그런 내용을 보낸다니 음험하기 그지 없네요. 참....

            • 아하~ 그런 거군요. 갑자기 두 분에게 저런 메일을 받으니 이 게시판에 난리날 글 한번 써볼까하는 역심이 들었어요. 


              모든 온라인 게시판에서 핫한 건 정치소견인데,  저는 그런 의견은 동문 게시판에나 쓰지 듀게는 나름 청정지역으로 보호하며 순둥 조신한 낙서만 하고 있거든요. 근데 저런 메일을 받으니 당혹스러우면서도 니 성향대로 함 발설해보라는 자극질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hehe 



              • 저는 가짜뉴스,혐오 조장 이런 댓글도 받아 봤죠. 저한테 그렇게 쓰면서 상처받지 말라는 말까지 ㅋ ㅋ

                메일 보내는 것 보니 듀게에서의 아이디가 알려지는 건 싫었나 보군요




                메일 내용도 공개해 버리지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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