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파도소리에

 

 

 

제가 아주 어릴 때 들었던 노래가 있어요.

어릴 때, 아주 어릴 때, 일곱 살인지 여덟 살인지, 학교엘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어쩌면 열 살이나 열한 살일 수도 있고,

제가 붙잡고 있는 그 기억을 제외한 다른 모든 기억은 시간의 순서가 끊어진 채 다만 흐릿할 뿐이죠.

 

누군가 노래를 불러줬어요.

밤이었는지 낮이었는지 그런 것도 기억나지 않고,

그곳이 집이었는지 집이 아니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밤이었던 것 같아요. 주위가 어두웠거든요.

어쩌면 간밤의 꿈이나 눈을 감고 있을 때 잠시 떠오른 영상처럼 그 기억을 담고 있는 제 머릿속의 어둠 때문인지도 모르죠.

노래를 불렀던 사람이 남자였다는 것은 알아요.

남자였고, 어쩌면 그 사람은 제가 아는 나이 많은 형이거나 이른 아침 신설동 버스정류장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빌려 달라던 사람, 사람 많은 신촌 거리를 걷다가 어깨를 부딪힌 여자, 대구 제일극장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오늘 산 옷이 잘 어울리는지 물어본 남자처럼 잠시 제 앞에 나타났다 영원히 사라져 버린 그런 사람일 수도 있죠.

 

기억이 아주 흐릿해요.

누워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누워 있었고 그 사람은 노래를 불렀죠.

잘 모르겠어요, 제가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어요.

누워 있었다고, 어둠 속에 누워 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리고 노랫소리가 들렸다고, 하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죠.

 

그때의 기억을 좀 더 자세히 떠올리려 집중을 해보기도 했어요.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 노래를 들었던 순간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어요.

하지만 기억을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그때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고 그저 고등학교 때 교생 실습을 나와서 김현식의 '사랑했어요'를 불렀던 남자 교생이나 열살 무렵 방학 동안 딱 한 달 다녔던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 누가 불렀는지도 모르고 그저 제목이 '모모'라는 것만 아는 노래, 날개 위에 산을 얹고 날아가는 비행기 그림을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모는 철부지' 하고 그 노래를 따라부르며 걸었던 그런 기억만 떠오르는 거예요.

 

집이었는지 집이 아니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방이었는지 다른 어떤 곳이었는지 누워 있었는지 주위가 어두웠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는데

어떤 남자가, 그 남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노래를 불러주던 순간만 기억에 남아 있어요.

 

밀려오는 그 파도소리에 밤잠을 깨우고 돌아누웠나

 

그렇게 딱 한 번 들은 노래였는데도 그 노래는 참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 남아 있었단 말이죠.

제목도 가사도 아무 것도 몰랐어요,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밀려오는 그 파도소리에' 그 부분뿐이었으니까요.

 

불을 끄고 누워 잠들기 전이면 가끔 그 노래가 떠올랐죠.

밀려오는 그 파도소리에...

그 노랫가락은 정말 어둠 속에 누워서 듣는 파도소리처럼 머릿속의 해변에서 천천히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어요.

잊혀지지도 않았어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그 노랫가락은 잊혀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오래 잊혀지지 않는 노래라니...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노래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인지 금상인지 아무튼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노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이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얘긴데, 그냥 어릴 때 누군가가 불러주는 어떤 노래를 들었다는 얘기뿐인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있어요, 물론 저한테만 있는 느낌이죠, 설명할 수 없어요, 그걸 전달할 수 없어요.

어릴 때, 아주 어릴 때 누군가가 이 노래를 불러줬단 말이죠.

저는 지금도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가끔 그 노랫가락을 들어요, 어둠 속에서 퍼져나가는 파도소리를 들어요, 그런데 돌아눕는다는 노랫말, 저는 왜 꼭 그 부분에서 기분이 이상해지는지 모르겠어요.

 

유튜브에는 참 별게 다 있단 말이에요. 저도 며칠 전에야 이 동영상을 봤어요.

처음 봤죠, 사실 전 이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들은 적도 별로 없어요.

재미있더라구요, 그때의 영상이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저때는 대학생이 참 어른스러웠어요. 이상하죠? 지금 대학생은 애들 같은데.

 

문득 잠을 깨고 돌아누워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듣는 사람...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 부산대학교니까 바다 얘기를 소재로 했으리라고 건조하게 생각해왔던 저와는 다르게 감수성이 풍부하셨군요. 비교되어서 살짝 부끄럽기도 하네요.

      이 노래도 기억나고요 제가 좋아했던 곡이 생각나네요.
      이 곡요.




      뭐 대학가요제 초창기때는 주옥같은 노래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거야 당시 감수성이 들끓는 청소년기였으니..
    • 아 저도 국딩때 이 노래 좋아해서 집에서 불렀죠.이거랑 젊은연인들,내가 등 .집에 낡은 대학가요제 카세트가 있어서.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감회가 새롭네요.정말 아우라가 다르죠.
    • 저도 이 노래 들으면 마음이 이상하게 아득해져요.
    • mockingbird / 주소 복사해서 봤어요. 저도 좋아하는 노랜데 이것도 영상을 본 건 처음이네요. 대학가요제에서 나온 명곡이 참 많네요.
    • 차가운달/ 정말 고마와요 인터넷이 생기고 부터 이 노래 찾다가 몇번은 포기하고 했었죠. 이 노래 제 어린시절의 기억을 온통 지배한 노래에요. 지금도 시기하고 고마와요. 어떻게 이런 노래가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 차가운 달/간신히 고쳐서 다시 링크걸었습니다.;

      덕분에 당시 즐겨듣던 곡들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네요.
      지금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 오리저널을 비롯해서 여러 버전으로 듣고 있어요. 한동안 제 노래방 애창곡이었던.
      서영은같은 후배 가수들이 부른 버전도 좋네요.
      그것까지 링크걸면 주객 전도, 제 게시물처럼 되버리기 때문에 자제하렵니다.
      이 게시물 올려주셔서 저도 감사해요. 애잔!하게 7080시간을 즐기고 있어요.
    •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저도 이 노래를 들으면 현실을 떠나서 먼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을 가지곤 합니다.
      조금 다른 분위기지만 '홍민'씨 노래들도 비현실적인 감정들을 제공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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