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청 꾸청 꾸청

좀전에 파리에서 유학 중인 친구가 메일을 보냈는데, 안부 인사 뒤에 제가 중딩시절 천리안 영화 게시판에 쓴 걸 기억한다며 꾸청의 싯구를 적어놨더군요.   
'어둔 밤은 내게 검은 눈동자를 주었으나 나는 오히려 그것으로 세상의 빛을 찾는다'
<한 시대 사람> 중의 한구절인데, 아아 제가 꾸청을 까맣게 잊고 있었군요. (어떻게 이럴 수가~)

제가 꾸청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그가 서른일곱살에 난데없이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살해버린 사연을 적은 소설 <잉얼>을 읽으면서였습니다. 광기의 언어란 게 뭔지 확실하게 알려주었죠. 그 후 그의 시들을 접했는데, 그의 시는 해와 달과 별과 바다가 있는 하나의 풍경이더군요. 생명의 불씨들과 오염되지 않은 바람과 그것들이 흔드는 깃발들과 삶에 대한 경건한 예의가 있었어요.
시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전 존재를 밀고나가는 작업이라는 하이데거의 주장이 맞다는 걸 꾸청의 고뇌와 꿈과 언어에 대한 사랑을 보면서 느꼈는데,  그걸 천리안 시절 모 게시판에 쓰면서 난생처음 연서를 받아봤지 뭡니까.  ㅋㅎ

구름처럼 애매한 환상을 갖게 하고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하다가 안개로 변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꾸청이 제게 남긴 인상이 그렇습니다.  <顾城别恋>라고 꾸청의 사랑과 이별을 영화한 작품이 있어요. 찾아보면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볼 수 있을 거에요. 

덧: 기억나는 그의 시 한구절
- 우린  매순간 새로운 사람이고
각자 양귀비꽃처럼  예쁘고 깨끗하다
자신을 믿지 마라
남도 믿지 마라
    • 연서 ㅎㅎㅎㅎ


      서신을 주고 받으셨군요

      • 그시절엔 은밀한 중간 과정없이 그냥 게시판에다 감정들을 표현했어요. 문제는 제가 중딩이라는 걸 삼십대 중반 아저씨에게 고백할 수 없었다는 거죠.  - - 제가 온라인에서 만나본 중 가장 명석한 두뇌를 가진 분이에요. 무대예술 평론을 하시는데 대중의 관심이 적은 분야이어선지 참 안 뜨시네요. 아까비~ 

    • 윈도98시절 보다 한참 앞이네요 욕심꾸러기 철학자네요 꾸청에 대한 인상 인상이 깊네요 믿고 응
    • 센세이션함 + 례술의 분위기로 '잉얼'이 화제였었죠. 


      요즘 같으면 출판도 안 되었지 싶어요. 


      헤어지자 한다고 아내를 살해한 찌질하고 에고에 찬 또 하나의 의존형 남성이었습니다.



    • 매순간 새로운 사람이죠. 단 한명의 예외 없이. 
      하지만 어느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구절도 있어요
      -지금 이 기분때문에 모든 걸 망칠 수 없어. 


      누구 노랜지는 모르겠지만. 꾸청보다 더 깊은 울림이...... ㅜㅜ;;

      비극적 인물은 대부분 그 비극을 안고 태어나죠. 자나 깨나 조심하는 중입니다. 

    • - 새 책장을 구입한 터라 책 정리가 뒤죽박죽인 상태에서 간신히 찾아낸 꾸청의 시집. 그가 시집 뒷부분에 적어 놓은 토로 몇 줄.




      # 새 일자리를 찾은 누나가 방금 나에게 시 몇 편을 전해주며 말했다.


      "읽어보렴. 너의 <이름 없는 작은 꽃들>과 비슷한 시를 쓰는 사람이 있구나."




      조용한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 시들을 읽었다. 내겐 낯선 시들이었다. 다 읽고 나서 한참 어리둥절한 채 자리에 붙박혀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마른 나뭇가지와 아무 소리 없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믿기 위해, 나 자신과 나의 습관에 의해 매장되어버린 진실과 아름다움을 새겨보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내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의 시집 <이름없는 작은 꽃들>위에 두껍게 앉아 있는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 그리고 이 시 부분 책장이 반으로 접혀있네요.




      - 멈과 가까움


      나는 


      잠시 나를 보고


      잠시 구름을 본다 




      내가 나를 볼 때는  아주 멀고


      내가 너를 볼 때는 아주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 광기의 불꽃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거기에 기름을 부어 자신 마저 태워버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죠. 




      어쩌면 인생의 진리는 그 순간의 화염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심약해서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강물 따라 떠가는 낙엽처럼 살고 싶어요. 

      • 그의 광기에 방법이 들어 있는 건지  그의 방법에 광기가 들어 있는 건지 구분할 수 없는 거라고, 그렇게  천재와 괴짜를 구분하기 어려운 거라고 저에게 가르쳐준 게 셜록홈즈라는 캐릭터였어요. 
        좀더 자라서는 광기는 미쳤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래의 자기 상태를 잃어버린 압도된 상태라고 토마스 만이 <베니스의 죽음>에서 설명해줬고요. - -

        • 제가 비슷하게 아내 살해라는 이유로 관심가졌던 철학자가 알튀세르

          • 그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ENS)에서 길러낸(?) 제자들 중에 자크 데리다,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발리바르 등 프랑스 철학계를 이끈 대가들이 많은 거 보면 알튀세르라는 이름도 철학계에선 뜨거운 이름일 수밖에 없죠.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이 추세로 떠오르면서부터는 잊혀진 감이 없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한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이데올로기론을 파고들었던 분들 중에 알튀세르 숭배자가 많던데 혹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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