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돌봄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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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집에 가서 조카랑 놀아주고 왔습니다. 처음 보니 조카가 무척 귀엽더군요. 아이들의 뽀송뽀송함은 아직 인간의 사진기술이 담아내기에 역부족인가 봅니다. 아기의 볼은 만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말랑말랑함이 있습니다. 계속 뽁뽁 찌르고 쓰다듬고 놀았습니다. 아기가 아직 어려서 아주 가끔 우에우에 하는 소리 내는 거 말고는 달리 의사소통도 할 줄 몰라요. 저, 저희 부모님 이렇게 난생 처음 보는 거인들이 자기를 보면서 마구 얼굴을 만져대니 귀찮았을지도 모릅니다.


귀여운 감정은 금새 지나갔습니다. 이 아기를 달래고 챙기기 위해 제 동생이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데 보고 있는 제가 다 피곤해졌으니까요. 모유 수유하랴, 수유 다하면 안고 도닥여줘, 그 와중에 아기가 게워내면 그거 닦아줘, 그리고 새 턱받이 갈아줘, 기저귀 갈아줘, 적당히 놀아주고 재울 시간 됐으면 자장가 불러줘, 그리고 거실에 있는 티비로 캠 연결해서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 끊임없이 감시... 


저보고 좀 안아달라고 하는데도 이게 은근히 노동이더군요. 은근히란 말을 쓸 필요가 없을려나요. 약 6kg의 아기를 한팔로 안고 계속 들고 있으니 힘이 부쳤습니다. 거기다가 들고 있는 게 상자나 그냥 짐덩이면 상관없는데, 살아 움직이는 아기라서 더욱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아기가 아직 목근육이 발달이 안되어있어서 뒷목을 부조건 받치고 있어야 하는 게 여간 불편(?)하더군요. 거기다가 이 아기가 저한테 안겨있는 게 편한 상태인지 어쩐지 모르니까 동생한테 수시로 체크를... 안겨있는 채로 수시로 아둥바둥대는데 혹시 불편해서 그러는건가 싶어서 몇번이나 긴장했습니다. 물론 동생은 원래 그래~ 라면서 태연하게...


지금 자란 성인들은 모두 이렇게 타인의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요구하면서 자랐다는 게 좀 사회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든 인간은 약자이고 어른이자 부모인 강자로부터의 끝없는 이해와 포용과 돌봄을 받으면서 하나의 사회적 개체로 자라나는 거겠죠. 하나의 사회는 수천 수만의 약자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사회는 사회적 약자와 그 약자가 죽지 않게끔 하는 상대적 강자들의 나눔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닌지. 사회가 반드시 혈육관계의 부모 노릇을 할 책무는 없습니다만 약육강식 약자도태 같은 룰을 따르는 건 더더욱 안되겠죠. 약자를 외면하는 순간 사회는 거의 망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약자인 시절을 거쳐 사회적 존재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알아서 강자가 되고, 그 강자가 되지 못한 존재를 외면하는 사회는 단순한 야만이나 야생의 생태계가 아니라 사회 본연의 법칙을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알아서 크거나 강해지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조카를 보면서 제가 얼떨결에 가지고 있는 신체적, 사회적 성인으로서의 지위를 좀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동이 과연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생률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한쪽이 지는 부담은 많이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 다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아돌봄이나 노인돌봄이나 돌봄 노동이 제일 천대받고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쵸 이게 정말로 대표적인 약자돌봄을 약자로 착취하는 현상이고... 

      • 귀엽죠 ㅋㅋ 하지만 곁에 있으면 긴장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 소니님과 닮았나요? 글 열며 깜놀했습니다. 요즘은 주변에 아기들 잘 안 보이는데 눈이 호강하네요.




      남성들도 힘들지만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여성들에게는 아이 낳고 기르기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변화를 겪어야 하는 힘든 일입니다. 우울감도 생기고, 저도 참 힘들었어요. 이 힘듦이 사회 속의 자신이나 남녀 관계를 보는 데 영향도 줬고요.




      아기와 노인 돌봄에 대한 무관심(각자 알아서 하겠지,라는)과 그 노동에 적합한 가치를 매겨주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무관심을 잘 보여 주는 단면 같습니다.

      • ㅋㅋ 아기 사진은 거의 안올라오긴 하죠 보람차네요

        오늘 동생이랑 그런 이야기 많이 했습니다 모성신화가 얼마나 뿌리깊이 박혀있는지 자기도 애낳고 느꼈다고 하더군요 괜히 죄책감 느꼈다고...


        아마 돌봄노동도 그래서 후려쳐지는 것 같아요
        • 맞아요, 자녀 포함 가정사에 아버지들에겐 적당한 무관심이 미덕이고 어머니들에겐 절대적인 관심이 미덕이고 의무로 분위기 조성되어 왔습니다.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소홀한 정황이 있으면 무한 비판감입니다.

    • 아가 귀엽습니다 ^^

    • 그래도 어쨌든 안고 재울만한 힘은 되네! 라고 방심하고 객기 부리다간 손목 다 나가서 영원히 시원찮아지고 그러죠.


      제 얘깁니다. ㅋㅋㅋㅋ

      • 제 동생도 손목 나갔답니다 벌써...ㅠㅠ
    • 육아와 가사노동이 실제적 체험으로 다가온 건 조카가 태어나면서부터였죠. 진짜 종일 올케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갓난아기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엄마를 위해 심지어는 제가 따라 다니면서 기저귀를 버려줘야 할 판이었어요.(화장실도 애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못가는 상황이었으니) 가사노동이라는 것도 그래요. 집에 있으면 종일 무엇인가 끊임없이 일이 쏟아집니다. 이건 뭐랄까, 안하면 눈에 확 띄지만 한다고 해도 그냥 집이 정리 정돈되는 정도? 뭔가 생산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 육아와 함께 가장 중요한 노동임에도 노동시장에서 유의미한 경제활동으로 보이질 않죠. 안 보이는 노동현장인 겁니다.


      언젠가 친구들과 작금의 남녀갈등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그럼 대체 해결책이 뭐냐?는 결론 부분에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집에서 엄마들이 아들 교육 잘해야지. 지금부터라도 아들들한테 가사노동 시켜버릇 해야해. 최소한 지 방 청소나 지가 입은 옷 제대로 빨아서 말리는 법 그리고 젤 중요한 기본적인 요리법까지 해서 최소한 성인남자가 엄마가 밥 안 차려준다고 밥 안먹는 바람에 엄마가 다 큰 아들 매끼마다 밥차려주는 스트레스에서는 벗어나야하죠.(중년여성들 커뮤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얘기가 대학생 아들 밥 매끼마다 차려주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는 얘기니)
      • 그렇죠... 저도 잠깐 해보니까 이 노동의 강도와 양이 몸에 와닿았습니다...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무 후지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냥 엄마를 존중해야한다 가사노동도 힘들다 이런 수준의 동정이 아니라, 정식 교육을 통해서 가사노동도 엄밀히 노동이고 아주 필수적이고 고된 일이라는 걸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네요 육아 포함해서...
      • 그것조차 ‘부모’가 아닌 ‘엄마’가 아들교육을 잘 시켜야한다는 귀결이니.. 씁쓸하네요. 

        • 일단 현재 한국의 중년 남자들 중에 가사노동을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본인부터 안하는 사람이 태반일텐데…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을 인정해야죠. 지금의 중년세대까지는 '전업주부' 라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지금의 2030 여성 대부분은 결혼을 한다 해도 그 중 전업주부로 살 수 있는 비율이 몇이나 되겠어요. 정말로 2030 남자들이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다면 당장 뭘 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가르침을 줘야합니다. 우선은 그들을 길러내는 가정에서부터 말입니다.

        • 그런데 말씀을 듣고 보니 학교에서도 '가정/가사'교육을 강화해서 가사노동과 육아의 중요성을 사회적 분위기로 만들어 나가는 게 젤 상책인 것 같습니다. 인간이 생존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노동현장인데 너무도들 인식을 못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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