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

일주일 째 사경을 헤매는 느낌으로 끙끙 앓았습니다. 어디가 고장난 건지 알 수 없는 녹다운이었어요. 보스에게만 출근불가를 알렸을 뿐 차마 가족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침대에 파묻혀 제 목소리로 신음소리만  제 귀에 전하며 견뎠어요.
어제부터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돌아왔는데, 오늘도 출근하지 못한 것에 죄의식을 갖고 있었더니 아니, '부처님 오신날' 공휴일이군요. - -:

서양에는 부활절, 성령강림절, 예수승천일, 성체축일, 크리스마스 같은 종교적 기념일이 많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면 학생들은 2주 간 방학하고, 예수승천일이나 성체축일은 학교에 가지 않아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3주 간  방학이고요. 그렇게 사회 전체가 종교적 기념일들과 맞물려 돌아갑니다. 비록 현대 사회가 종교적인 과거를 벗어난지 오래이지만, 사회의 시간 감각과 종교적 기념일들은 여전히 일치합니다.
저 같은 이교도의 시간 감각으로도 종교적 기념일들에 적응하면서 역사 속에서 어떤 일치가 발휘하는 힘을 느낄 정도이니까요. 

이러한 삶의 습관은 Feiertag이라는 단어에 담겨 있는데, 휴일을 뜻하는 독일어 명사입니다. 이 말은 기념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Feier와 날을 뜻하는 Tag로 구성돼 있어요. 영어의 holiday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의미이고, 우리가 흔히 쓰는 기념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석가탄신일은 불교계가 크리스마스에 항의하여 생겨난 휴일이죠. 다르게 해석하자면 불교의 역사는 그토록 장대한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교 사회가 길게 유지되었던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 공휴일에 대한 의식은 발전해 본 적이 없지 않나요? 한국의 전통적인 절기란 모두 농업사회의 시간 감각을 따르고 있는데, 그런 시간 감각에 종교적 공휴일이 파고들어가지 못했다는 건 직시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은 기독교의 종교적 이념이 당시 이교도의 시간감각에 따른 절기들에 적응한 결과이고, 유럽 사회의 종교적 기념일들은 기독교적인 기념일이면서도 동시에 이면에는 그들의 시간감각에 맞는 절기들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느 종교이든 이런 식으로 토착화하여 한국인의 본래적인 시간 감각과 일치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제가 잘 모르고 있는 건지요?

덧: 저는 한낱 물질이 아닌 생명체이니까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보고자 또 이런 낙서를 해봅니다.
 
    • 고생이 많으시네요 식생활과 체력관리에 더 힘쓰길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 담배피기가 좀 벅차 일어나면 윗동네로 한바퀴 돌고 몸을 건들거려 심장운동을 하고있어요 얼른 하고 담배필 욕심으로 시작한거죠 저절로 살기 마련 같기도 하고 아직 생의 총기가 남아 그러려니 합니다 남은 그냥 줄서 기다리는게 본성인데 난 왜 줄을 서야하나 한참 생각하고 서니 참 성악설의 표본이라 아니할수 없네요 그래도 잘 살기
      • 이십대에는 보름 동안 곡기 끊은 채 하루에 커피 서너 잔만 마시고도 한라산 등반도 하고 안나푸르나 트래킹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잘 챙겨 먹고 몸 간수에 제법 공을 들이고 있는데도 자주 시름시름 저무는 날들이 있어요. 살아갈 날들을 짐작하노라면 아쿠나~ 저절로 한숨이....

        • 내말이 그말이에요 다 어디님 같이 프로체력은 아니겠지만 그리고 나이 들면 그만큼 세포가 늙어져 시름시름 하기도
    • 별별 성인의 날이 많더군요. 카바니가 나폴리에 있던 시절 무슨 성인의 날에 카바니가 골 넣었다고 기사가 났죠.


      주말에는 비,평일에는 해 이렇게 오락가락한데 입에 맞는 거 잘 챙겨 드시기 바랍니다. 칼슘이나 종합비타민이라도요.
      • 의학도 남동생1이 하루에 꼭 챙겨 먹어야 한다며 들이밀어 놓은 약품들이 다섯가지에요. 근데 그것도 몸 상태가 웬만해야 넘어가지 물도 못 마시는 상태에서는 꿈속의 궁전~ (징그럽죠? ㅎ)

    • 옛날 옛적 어떤 교수님의 주장에 따르면 한반도의 메인 종교는 그냥 무속 신앙이었다고... 불교고 유교고 간에 결국 지배층 취미였을 뿐이고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백성들의 대부분은 동네 무당 말곤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더라구요. 얼마나 정확한 분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맞다면 유럽쪽과의 차이가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쪽 나라들은 종교가 대체로 되게 중앙집권적이었잖아요.

      • 이 댓글을 읽노라니, 문득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이 떠오르네요. 강렬한 이미지와 구성 능력 그리고 사변적 깊이 면에서, 작가 개인의 정서적 군더더기가 떨어져 나간 작품이라는 점에서 종교에 대한 최고의 소설로 읽었습니다. 

    • 과거 우리 민족에겐 특정 종교의 원인이 되는 인물이 탄생한 날을 기념한다는 인식 자체가 자연스러울 정도로 생활에 깊이 들어온 기성종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리 전파나 정기적인 예배에 나가는 식의 서양 '국교'의 의미로 통할 정도의 종교는요.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인 것이 좀 우스꽝스러워요. 아니 왜? 국교가 없는 나라에서? 미군정일 때 정해졌지 싶은데(일본은 성탄절, 석탄절 다 안 쉬죠. 대신 천황 관련 휴일은 있는 듯) 이게 이승만(기독교인이죠?) 정권에서 이어받은 것이고 통금이 있던 시절을 지나며 그저 감사한 이유불문 젊은이들의 최고 명절이 되었어요. 



      • 서양중세사 그림들을 보면, 종교에 대한 인식은 곧 죽음에 대한 인식이었던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회화적 연구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그렸으니까요.  죽음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없으면 불가능한 그림들인데, 한국화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새삼스런 깨달음. - -

        템플스테이를 더러 하는 편인데,  스님들을 보노라면 재미있는 삶의 자세가 하나 있습니다. 자가용을 타는 모습이에요. 한번은 이유를 여쭤봤더니 답하시더군요.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느 과격한 기독교 신도가 공격을 해왔노라고. 전직 운동선수이기도 해서 힘이 센 스님도 못 견딜 정도로 과격하게 공격받았던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더군요.

        그래서 스님은 결국 승용차를 타고 다니기로 했다고 해요. 그게 '안전'하기 때문에. (먼산)
        저는 종교다원론자이니까 종교가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이지만 않다면 공존가능하고, 수도인의 여러 삶의 모습도 수긍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예전만큼 길가다가 스님들을 자주 못 보는 것이지... 요즘 신교도들 수준 보면 '안전' 문제라는 것이 공연한 걱정도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스님들이나 수녀님들은 백화점, 지하철이나 길에서 아주 가끔은 마주치는데 로만칼라하신 분들(신부님)을 거리에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네요. 물론 그분들은 외출할 때 복장이 자유로우니 티가 안 나겠죠만 대중교통을 절대 이용 안 하실 거라는데 한 표.  


          아, 오늘은 몸 상태가 좀 좋아지셨길.

    •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방내외 안위제 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 샤카모니의 도래일에 이런 고생을... 신체적으로 겪은 번뇌가 부디 해탈에 일조했기를 바랍니다!!


      어디로갈까님의 글을 읽으니 석가는 '어디'가 아니라 '갈까'에 집중했던 종교인이 아니었나 문득 생각이 드는군요...
      • 졸음은 격렬하게 쏟아지는데 잠은 못자는 기현상이 계속돼서 어리둥절합니다.


        "석가는 '어디'가 아니라 '갈까'에 집중했던 종교인"이라는 이 댓글에 석가가 연서를 받은 듯 흐뭇 미소를 지으실 듯. 

    • - 혼잣말
      몸이 괴로운 와중에 외면했던 소설들과 엉뚱한 역사서를 읽고 있다. 지독한 지루함과 다투고 밥 안 먹고 음악은 듣는다. 밤하늘에서 화성을 찾아보고, 내 인생과 전혀 상관 없을 공부를 해봐야지 불끈 결심한다. 기계적이기는 하나 이런 마음의 체계를 느낄 때마다 적잖이 재미있다.
      분열된 삶에 대한 즐거움. 기억하기. 기억에 휩쓸리기. 하늘/구름 올려다 보기. 이런 쓰잘데기없는 생각하기. 리플리 씨로 살아가기. 재능은 없지만 꿈없이 자면서 꿈꾸기. 사랑없이 생각하며 입구 찾아 헤매기. (못 찾아도 상관 없음.)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기.  내년을 꿈꾸기.  생각나는 대로 괴발개발 이렇게 써보기.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 이게 어느 노래 가사인지 모르겠는데 의식 한쪽에 있다.)
    • 분열되어 떨어지고 기억하기 눈 아파져 하늘구름 멀리서 보기 쓰잘데없어 나찾기 부평초로 살기 주특기 살려 꿈안꾸기 일부러 안나가기 시간과 친구맺어 내년도 작년도 건너뛰며 살기,그럴땐 저런 확실한 노래 없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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