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상담

아버지와 바둑을 두는 중인데,  후배가 전화로 다급하게 연애상담을 했습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노라니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구절 '사랑은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가 떠오르더군요. 
쓸모없을지라도 , 아무 이익이 없을지라도 관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게 연애입니다. 독일어로 아마추어를 'Liebhaber'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연인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것 아닐까요. 사랑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은 '아마추어'. -_-

연애는 변증법을 모릅니다. 연애는 상대를 ‘지양’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변증법도 연애의 삼각관계를 모릅니다. 한 이성을 두고 두 사람이 동물이되어 각축하지만, 그 가운데 희미하게 점선으로 이상한 공감 같은 게 생겨야 비로소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거기에는 변증법적 상향에 대한 강박이 없습니다. 쩜 쩜 쩜으로 이어지는 점선의 공감에는 그저 시간이 스치듯 지나갈 뿐입니다.

연애의 장점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가는 시간 - 벡터Vector화된 시간 -  어떤 사물에 묻어 있거나 어떤 장소에서 추억되는 형태의 시간으로 환기되는 점인 것 같습니다.
' 그/그녀와 이곳에서 맛있는 걸 먹었는데 라거나, 그/그녀가 사준 물건이라거나 라는 식으로 모조리 벡터화는 시간(라투르)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무엇인가에 의탁하여 매개화될 때, 시간은 변증법의 구속을 받기 마련이죠.

연애 없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요, 저요! ㅋㅎ)  그냥 시간이 스치듯 지나가는, 일종의 삼마지의 시간이긴 하지만요.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서 '삼마발제'라는 용어를 들었습니다.  삼마지, 삼매로서 “자기 마음으로 마음을 들여다 본다” 라는, 조금은, 아니 꽤나 많이 이성적이면서 반성적인 내부시각이 깃들어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찾아오는 정신이랄까요. 
하지만 사후에 오는 것이라도, 아 그때 그랬지 라고 한참 뒤늦게 깨닫는 한이 있어도, 시간 자체가 흐르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 연애에 빠진 사람은 자유인이 아닙니다 속박에 사는 사람이지요 물에 사랑하는연인이나 부부나 그리고 가족이 빠지면 누굴 먼저 건질까 늙은 부모는 예외로 하고 거의 누구부터 먼저 건집니다 왜 그럴까요 복잡한 욕망 때문이죠 그래서 어디로님 잘하시는거에요
      • 백두명의 애인이 있었으나 (그 이후론 숫자를 세지 않았...) 그 관계가 너무 좁게 느껴지고 작은 봉지 속에 갇히는 느낌이어서 안 하고 말게 되었을 뿐이에요.  - -  잘하고 있다기 보다 뭐시랄까 자신에게 맞게 가고 있는 거겠죠.

        • 그냥 해본 말이죠 잘하긴 뭐,오욕칠정은 하나 같이 너무 귀한것들이죠 잘살아보세~근데 시가 복잡하군요
          • 오호~ 그냥 해보는 말도 하시는군요? ㅋ 오욕칠정은 귀하다기보다 필요하고 흔한 것이겠죠. 암튼 처음으로 가,영님에게 삐죽거려봄. 

            • 그냥 이라니 이게 한국말인가 참
              • 참 예쁘기도 합니다 라고 썼는데 그림이 들어가니 안올라가는군요
        • 가벼히 / 서정주

          애인이여
          너를 맞날 약속을 인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눈이나 좀 팔고 놀다 가기로 한다.
          너 대신
          무슨 풀잎사귀나 하나
          가벼히 생각하면서
          너와 나 사이
          절깐을 짓더래도
          가벼히 한눈파는
          풀잎사귀 절이나 하나 지어 놓고 가려한다

          • 내경험과 조금만 비슷하지만 조조의 계륵과 같은 경우가 있었어요 상대도 역시 같은 생각이었죠
    • 어디로갈까님이 연애상담을 게시판에 쓰다니!!!! 그러면서 신나게(?)들어왔는데 후배 연애상담이었군요.


      연애 안해도 혼자서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중이라서 시간을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네요.



      • 제목 낚시를 제대로 한 거군요. ㅎ


        이 시 같이 읽어보아요~




        애인은 고기를 사고/  이민하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나풀나풀 스웨터를 벗는다 애인은 고기를 사고 상추를 사고 깻잎을 사고 나는 원피스를 벗고 코르셋을 벗고 피어오르는 솜털들을 벗고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닦고 있던 거울에 매달려 낮잠을 잔다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검은 페인트로 정원수를 칠하고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심이 까만 연필을 밤새 깎는다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흑연 가루에 목이 메어 눈에서 구름을 뚝뚝 흘린다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배꼽을 어루만지고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붉은 신호등을 어깨에 매달고 달려간다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산부인과에 다녀오고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손목의 피를 풀어 욕조에 잠긴다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구급차에 실려 가고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의사를 사랑하고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자궁을 꿰매고 애인은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고기를 사고 나는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구두를 닦고 애인은 스무 해째 고기를 사고 나는 애인이 있는 정육점을 지나 스무 해째 엘리베이터를 타고 훨훨훨 공중으로 하관되고 애인은 정육점에 배달된 나의 엘리베이터를 끄르고




        • 이거 애인이랑 잘 안되어서 자살시도+ 낙태했다는 얘기입니까? 


          시는 그냥 느껴야하는데 자꾸 분석하게 되는군요

    •  그렇게 서사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시인의 특이점은 애인이라는 관계를 통해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거에요. 
      처음 접했을 때, 여성인 '나'와 남성인 '타자'를 다루는 방식이 피터 그리너웨이의 기괴한 영화들을 떠오르게 했답니다. '나'는 추방의 대상이자 동시에 추방의 주체임을 조작해서 쓰는 점에서요. 그래서 거부감을 느꼈으나 시집을 다 읽다 못해 기억해두기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 시인에게 '나'는 그다지 중요한 가치를 갖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상대인 남자가 '나'보다 더 나은 가치를 갖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애인의 항상적인 태도 "고기를 사고"에 비하자면 '나'의 행위는 삶과 죽음을 오가며 좀더 다채롭습니다. 

    • - 혼잣말
      아버지가 장고바둑을 두시는지라 편하게 후배와 긴 통화를 하게된 거였다. 거의 듣기만 하고 별 말 안한 것 같은데 통화 내용을 짐작하셨는지 바둑알을 턱 놓으며 한마디 하시기를 " 연애를 지루해하는 너에게 연애상담하는 그 친구도 딱하다~"
      삐죽 입내밀고 넘겼으나, 자고 일어나 생각하니 그건 한나 아렌트의 책 제목에서 따온 말이구나 싶다. 노동과 작업과 행위를 구별한 책,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에서 아렌트가 마르크스를 인용하고 비판한 부분 말이다.

      아렌트는 정치철학자이지만, 글을 읽노라면 문헌학 전통에서 자랐음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독일 철학의 전통이 훈고학적인 편이라 옛것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했을 것이다. 특히 <인간의 조건>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여러 정치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인용되고 있다. 어휘 분석에 관련한 인용도 가끔 나온다. 
      아렌트에게 이론이란 단어의 뜻을 새기는 공부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비타 콘템플라티바라는 라틴어는 그리스어 비오스 테오레티코스의 번역어라는 것. 여기서 테오레티코스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 theory의 어원이기도 한데, 우리가 아는 이론이 아니라 '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렌트의 글은 촘촘하고 빽빽해서 기록해가며 읽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노트를 사용해야만 하는 독서, 눈과 머리로만은 읽을 수 없는 글이 그립다.

      • 아렌트 같이 사는 사람들 참 부럽기도 하고 어디로님 한테도 부럽고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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