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예쁜 시인 4

(아시는 분은 아시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실 여덟살바기 조카와의 카톡)

"밤에 무지개가 뜨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왜 밤하늘에는 무지개가 안 떠요?"
- 태양이 없으면 무지개도 없는 거란다.
" 그렇다면 자연의 이치가 잘못된 거네요."
- 예쁜 해석이다. 근데 햇빛이 없으면 색이 드러날 수 없는 거야. 한국어는 햇빛과 더불어 색깔도 빛으로 쓰고 있으니 합리적인 표기라는 걸 이참에 알아두렴.

"eemo, 이모~"
- why, 왜?
"햇빛과 무지개가 결혼하면 햇지개라는 미남 아들과 무지빛이라는 예쁜 딸을 낳을 것 같아요.
-으음 그럴지도...
"알아보니 무지개는 라틴어로  Iris입니다. 라틴어 공부 욜심히 하고 있나요?"
- 열심히는 아니고 꾸준히 하고 있어.
" 꾸준히... 그건 최고의 자세입니다."
- 내가 좋아하는 꽃이 붓꽃인데 영어명이 Iris야.

"공부할 게 너무 많아요. 공부 뒤에는 또 공부할 게 있어요."
- 그 많은 걸 피하지 않고 배워야 겨우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돼?
" 네 "

덧: 카톡이 끝난 후 조금 전 아이가 보낸 시.

- 밤이지만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일곱색이 하늘에서
밝고 맑게 빛난다
밤은 아무말도 안 하지만
내 마음에는 신기하게
안개가 피어오른다

덧2: 제가 시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아이가 가르쳐주는 듯합니다. -_- 

    • 이 글을 읽는 제 마음에도 무지개가 뜨네요 ㅎㅎ
    • 도발적인 상상력이 너무 이쁘네요.




      "밤은 아무말도 안 하지만"


      이 뉘앙스 어떡하죠.. 



    • 하이고야...


      오로라를 떠올린 저는 망한 어른일까요.
    • 조카와 통화하거나 sns에 올린 어떤 글을 읽을 때, 아름다움의 근원을 아는 아이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곤 해요.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 시인인 거죠. - -:


      얼굴을 본 지 어언 2년이 지났네요. 런던을 떠나올 때, 항용 어른들이 하는 영혼 1도 없이 '이모랑 같이 서울갑시다~'라는 빈 말을 던졌었죠. 고개를 살짝 떨군 채 한 손으로 벽을 척 짚더니 한숨을 포옥 쉬더라고요.  일 분쯤 후, 결연히 말하기를,  "이모, 제가 여기서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서 지금은 서울에 같이 갈 수 없어요." 


      ㅋㅋ





    • - 혼잣말
      언젠가 dpf가 물었다. 21세기의 한국 대표 시인은 누구누구냐고.
      그때 세 분 정도의 이름이 떠올랐으나 답하지 않았다. 다분히 하이-테크놀로지화된 근미래의 세상을 의식한 침묵이었다.
      한 분은 영화감독으로 자릴 굳혔고, 한 분은 여전히 울퉁불퉁한 근육의 감수성을 뽐내고 있고 한 분의 근황은 모르겠다.
      세 분 다 후속 시집이 나오지 않아서일까. 그들의 시를 읽을수록 시간 속에서 감가상각되는 느낌이 있다. 가치불멸의 시는 문명의 더께가 덕지덕지 앉지 않은 시대의 감정과 반항과 몸의 느낌이 있는 시 아닌가.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라질 줄 알면서도 문명의 한가운데로 빛의 기사처럼 돌진해가는 모든 시인의 모습은 처절해서 아름답다.
    • 하 여덜살 아이가 격세지감이네요, 그래도 역시 이모가 더 똑똑하지 더 나이 많아도 모르는 평범을 이해할수 있게 됐으니
      • 가영님 반가워요. 기다렸어요. 잘 지내시죠?

      • welcom back~


        제 경우 마음 다치는 일을 겪고 나면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곤 하더라고요. 마음/ 몸 다 무사히 복구되기를... 


        • 고마와요,여러 개인적 요인으로 틀림없이 그리 된다고 생각해요 복구없이 쭉 잘 살았으니 역시 괜찮죠
    • 조카님 시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저희 아이들 머릿속에 종일 무슨 생각들이 떠다니는지 종종 궁금해서 빤히 그 반짝이는 눈들을 (빙구 미소 자동 장착된 상태로) 들여다보곤 하는데 방금 글 읽으며 그 상태였네요. :)
      • 겪어본 바,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자기의 뛰어난 점, 잘하는 것에 대해 으스대지도 자랑하지도 않더라고요.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듯해요. 저는 아이들에게서 가장 부러운 점이 그 몰입력이에요. 99%의 어른들이 잃어버리고도 모르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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