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갈등, 상처를 접하며

# 팀의 막내 동료가 문자로 난데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모로코 출장 가셨을 때 모로코 사막에 뜨는 달을 보셨나요?" (언제 적 얘기를.... - -)
- 아니, 사막에는 못 갔지.  마라케시 시장에서 사막의 지평선 위에서 솟구쳐 있을 법한 달의 영적인 에너지 흐름을 느끼고 감응해보긴 했어.
"모로코의 하늘은 궁창이라 지상의 것이 더 특별하게 얼비칠 것 같아요. 언제 꼭 선배와 같이 모로코 가보고 싶어요."
문자를 읽고나니, 구입한 지 일주일 째인데 서문만 읽고 책상 위에 둔 루돌프 슈타이더의 ' 고차세계의 인식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 조카가 <햄릿>의 문장들에 관해 질문해대서 진땀 흘리고 있는 중입니다.
십여년 전 T.V에서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영화 <햄릿>을 본 적이 있어요.  햄릿이 자기 의식의 서성거림과 반박자를 놓치고 마는 행동에 대한 사유가  독백으로 흘러나오는 게 인상깊었습니다. 무엇보다 햄릿이라는 인물 유형과 유약해 보이는 로렌스 올리비에 표정이 자못  잘 어울렸다는 느낌이 있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집에 있는 여런 판본의 희곡 <햄릿>을 가져와서 이리저리 펼쳐봤을 정도였죠.

와중에 영화에서 제가 놀란 장면은  살해당하도록 사주된 햄릿이 살아돌아와서 무덤 파는 인부들과 대화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인부들이 놀랍도록 명징하게 죽음의 의미를 묘파해주었기 때문이에요. 거기에는 it만이 가능한 물성의 어떤 형태가 확고하고 놓여 있었습니다. 햄릿 역시 죽음을 관념화하고 있다는 것이 이 장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고요.

사실 그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말은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보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죠. '존재'의 동사 be는 비존재의 존재인 유령의 출현 때문에 햄릿에게 기묘한 사유의 길로, 동시에 복수의 길로 접어들게 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시간의 오솔길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햄릿은 시령자[視靈者]이기 때문입니다. 시령자란 유령을 보는 사람이죠.  유령을 접한 자는 유령이 거처하는 세계의 시간에 물들게 되기 마련입니다.  햄릿이 선왕의 유령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서면서 던지는 유명한 대사 "Time is out of joint / 시간이 대문이라면, 그 질러진 빗장이 벗겨졌다"가 증명하고 있 듯이요.  

자, 그런데 이런 제 느낌을 일곱살 아이에게  어떻게 풀어서 전달해줘야 혼란을 덜 주면서 재미를 안겨줄 수 있을까요.  - -

# 며칠만에 들어와보니, 그간 듀게에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나보군요. 떠난 분, 서로에게 저항하고 있는 분들의 글을 읽노라니 나에겐 커뮤니티 활동에서 저런 주의력, 집중력, 몰입도가 없는 거구나 싶습니다. -_-
게시물들을 읽노라니 횔덜린의 <가니메드>라는 시의 '모두들 각자 자기 방식으로 피어난다' 라는 시구가 떠올랐어요. 하지만 '봄'하면 역시 오규원의 이 시죠.  같이 읽어보아요~

- 봄 /오규원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 집 개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롭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 꽃 피고,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 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든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 베르너 헤어조크가 사막에서 쥐에게 귀를 물어뜯기고 개안을 했다기에 제기랄 사막에 가야하나, 그랬었죠.


      ----------


      리처드 버튼의 <햄릿>을 귀로만 들었는데 그렇게 들으면 사실은 영어를 잘 모르면서도 비극이 아니라 희극처럼 느껴져요. 일부러 그랬을까 모르겠어요.

      • 아니, 광인과 천재라는 파격의 평을 듣는 감독의 언설에 솔깃하셨다니요. 위험하지 말입니다아~ 


        저는 '텐 미니츠 트럼펫 Ten Minutes Older: The Trumpet'에서의 그의 십분 짜리 사색적인 영상이 제일 인상깊게 남아 있어요.


        뭐랄까, '고요하고 평안하게 쉬기에는 자신의 정신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한 구절이 잘 구현된 것 같아서요.


        리차드의 '햄릿'은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를 촬영한 영상으로 봤습니다. 로렌스보다 감정 표현이 자유로웠으나, 셰익스피어 작품만큼은 로렌스 표현에 마음이 더 기울어요. 




        (누룽지 끓이고 있는데, 이렇게 8분이 침넘어갈 정도로 기다려지다니... 넘어갔네요, 넘어갔어~ ㅋ)



        • 리처드 버튼의 햄릿이면 존 길거드가 버튼을 감독한 건가요? 그 과정이 책으로도 나왔죠. 사후 공개된 버튼 일기 일부를 읽으면 굉장히 시무룩하고 불평불만 많아 보이더군요. 말론은 말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알랭 들롱은 키가 아주 크지 않다 등등.술 들어가면  추했다고 하는데 이건 윌리엄 홀든도 비슷했나 봅니다.


          어느 책에서 버튼이 단역일 때도 눈에 띄웠다,웨일스 인의 피에 흐르는 고결함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 고결함 비슷한 걸 느꼈던 게 티모시 달튼이었습니다.


          저는 The time is out of joint. O cursèd spite, / That ever I was born to set it right!" 이 부분 자주 생각합니다. 라캉이 오필리어를 O Phallus라고 해석한 글도 읽었죠


          올리비에에 비하면 케네스 브라나의 햄릿은 혈기왕성했죠. 그 배우 특유의 조증과 울증을 오가는 연기.아, 로젠크레츠와 길더스턴은 죽었다 이거 봐야 하는데 유튜브에서 올려져 있는 거 보고도 계속 미루고 있어요. 요릭의 해골 장면은 꿈에도 나온 적 있어요.

          • 음? 길구드가 감독한 햄릿이 있나요? 제가 본 리처드의 햄릿은 연극무대를 영상으로 기록한 이것이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Xu3jGvttlLs



            • https://www.amazon.com/Gielgud-Directs-Richard-Burton-Hamlet/dp/B0006BQEMQ








              BackgroundEdit

              The production took place because of a lighthearted agreement between Richard Burton and Peter O'Toolewhile they were filming Becket. O’Toole decreed that they should each play Hamlet afterwards under the direction of John Gielgud and Laurence Olivier in either London or New York City, with a coin toss deciding who would be assigned which director and which city. O’Toole won London and Olivier in the toss, with Burton being assigned Gielgud and New York. O’Toole kept his part of the agreement, appearing as Hamlet under Olivier's direction in the premiere production of the Royal National Theatre later that year, and Burton approached producer Alexander H. Cohen and Gielgud about mounting a New York production.[1]




              https://en.m.wikipedia.org/wiki/Richard_Burton%27s_Hamlet

      • 아니 한단계 더 높여서 설명하길 권하시다니요. 으흑~ 
        사람은 아는 만큼 보죠. 그리고 딱 그만큼만 생각하는 거고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인간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서로 '딱 그만큼만 생각하는' 수준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는 거에요.
        오래 전, 동생들에게 뭘 설명해줄 때 깨달았던 거지만 설명해보므로써 제가 배우는 게 있어요.  비록  딱 그만큼밖에 생각하지 못했으나, 그걸 언어로 '너'에게 들려주는 과정에서 '딱 그만큼'의 한계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물론 실제로 넘어서려면  새롭게 이해하려는 서로 간의 노력이 필요하죠.  안 그러면 정말로 '딱 그만큼만'에서 멈추게 돼요. 

    • 유명한 화가가 모로코 여행을 짧게나마 다녀온후 그의 그림의 색채가 밝아졌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도대체 모로코의 색이란 무엇인가 궁금합니다.

      • https://www.google.com/search?q=matisse+morocco&client=ms-android-skt-kr&prmd=inv&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jTgpC8mpvvAhVaA4gKHQGIBiIQ_AUoAXoECAQQAQ&biw=360&bih=520


        마티스 아닐까요?




        저는 모로코하면 모로코식 치킨 요리만 생각나죠

        • 마티스의 색감에 가깝긴 해요. 


          모로코 치킨요리는 유명한데 저는 안 먹었어요. 동행했던 동료가 아직도 그 향신료 진한 맛을 그리워한답니다. 

          • 저는 모로코도 아니고 더블린에서 먹어서 향신료가 그닥 진하지 않았나 봐요
      • 모로코는 색의 나라예요. 모든 색들이 아찔하게 난무하고 있는데, 그 중 블루와 스칼렛 빛깔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어요.
        • restricted

          마티스의 이카루스 좋아하실 듯

    • +햄릿이 시령자視靈者라는 사실은 칸트에 비춰서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청년 칸트는 당시 유럽 전체를 선험적인 시공간의 개방을 선풍적인 지적 붐으로 몰고왔던 스베덴베리에게 큰 호감을 갖고 있었죠. 그는 스베덴베리에게 여러 통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순수이성비판>의 시간과 공간의 구도를 선취한 것으로 평가받는 스베덴베리에게  인사도 하고 그가 자신에게 준 영향과 존경도 전할 겸해서요. 그러나 스베덴베리는 답장하지 않으므로써 그를 절망케 했다고 합니다. 너무 스케줄이 바빴던 건지,  칸트라는 청년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만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 -

      그리하여, 칸트는 화가 나서 햄릿처럼 서성거렸다고 해요. 그러고 그는 마침내 이 무례한 명사를 대담하게 다루는 논문을 발표하고야 맙니다. 바로 <형이상학자의 눈에 비춰 본 시령자의 눈>이라는  초기 작품이에요. 
      몇년 전까지 이 작품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칸트는 후기의 저작 <형이상학 강의>에서 스베덴베리를 언급하는 등 그가 줄곧 다뤄온 현상계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비트겐슈타인)는 충고를 넘어서는 예지계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3대 비판에 머문 사람이 아니었던 거죠.

      아무튼 <형이상학자의 눈에 비춰 본 시령자의 눈>이라는 논문을 읽어 본 이의 2차 논문을 읽어보노라니, 칸트가 마치 햄릿에게 둘도 없는 친구 호레이쇼처럼 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습니다.
      청년 칸트는 이미 완숙한 시기로 접어드는 사상가 스베덴베리의 무심함에 화가 났고 상처를 입었지만, 그 사상가의 세계 속을 거닐며 비판할 것은 비판했어요. 그런데 그 비판의 칼날이 사상의 속살을 베면 벨수록 뭐랄까, 일종의 전도된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나친 미움은 뒤집어진 사랑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내비치긴 하더군요. 
      그것을 '이성'이라고 해도 좋겠죠. 바로 시령자 햄릿 이전에 시령 행위를 당했던 이성주의자 호레이쇼의 경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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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을 많이 봤는데 이게 올리비에가 감독한 햄릿 사진이었군요. 둘이 사이는 안 좋았다고 ㅋ

    • 사실은 어디로갈까님에게 맞춰보려고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 헤어조크나 리처드 버튼을 들먹였습니다만, 그러므로 저는 지금 누룽지 이야기가 제일 좋네요. ㅎㅎㅎ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민망하네요 진짜

    • 토마스 드 퀸시가 맥베스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살인을 저지른 두 남녀가 자신들은 비인간적인 영역에 있었음을 환기시키는 효과가있다고 쓴 걸 낮에 읽었는데 어디로갈까 님은 요릭의 해골이 죽음의 물성을 햄릿에게 깨닫게 해 줬다고 쓰셨군요
      • 실은 저번 '망각의 미덕'이란 글에서 '익명'이란 개념을 쓸 때,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이미지가 이 햄릿 영화의 해골바가지 이미지들이었어요. 사실 셰익스피어 희곡엔 잔혹극장이 내재해 있죠. 오죽하면 브레히트가 오필리아를 두고 이런 유물론의 미니멀리즘 시를 썼겠습니까.




        - <익사한 소녀> 의 마지막 연 /브레히트 




        그녀의 창백한 몸통이 물 속에서 썩었을 때


        (매우 천천히) 일어난 일이지만, 하느님은 서서히 잊어버렸다.


        처음에는 그녀의 얼굴을, 다음에는 손을, 그리고 맨 마지막에야


        비로소 그녀의 머리카락을.


        그 뒤에 그녀는 많은 짐승의 시체가 가라앉은 강물 속에서


        썩은 시체가 되었다.



        • 468px-Hébert_Ofelia.jpg




          제가 좋아하는 Hebert의 오필리아


          밀레이의 그 유명한 오필리아도 그렇고 부패한 오필리아를 그린 사람은 드문 것 같네요

    • 항상 어디로갈까님은 마음의 평정심이 글에서 느껴지는건 정말 마음이 평안하셔서인지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글을 쓰실 수 있어서인지 궁금해져요. 시를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이 부럽습니다. 한없이 부러워요.

      • 언젠가도 제 글에서 평정심을 느끼노라 말씀하셨죠. 과연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소풍 나온 기분으로 삶을 살고 있어서 그렇게 비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히 사랑이든 명예든 어떤 성취에도 별 관심이 없어요. 내일 당장 삶이 끝나도 마음에 걸리는 것 없도록 사는 편입니다. 친구가 표현하기를 도둑이 들어와 다 가져가든 말든 문 안 잠그고 사는 삶의 모습이라고... ㅎ

    • 첨부된 시를 읽고 시원하게 웃었네요.

      • 기억하고 있는 줄 몰랐던 시구가 적절한 순간에 의식의 수면으로 뙇 떠오르면 적잖이 짜릿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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