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바낭] 신정원의 최근작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을 봤습니다

 - 한 시간 오십분이 조금 안 되는 짧은 영화입니다. 장르는 코믹 SF 스릴러 겸 액션 정도... 스포일러 없게 적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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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근 카메라 뚜껑이 덮여 있...)



 - 시작이 좀 거창합니다. 먼 우주에서 무슨 운석인지 유성인지 같은 게 지구로 날아오는 게 보이고, 그게 한국의 무슨 개천 같은 데에 쿵 하고 떨어지는데... 번쩍! 하고 나서 보니 왠 몸매 좋은 남자가 알몸으로 서 있네요. 그리고 그걸 보며 흐뭇해하는 동네 여성들의 표정을 보여주다가...

 알콩달콩 신혼의 달콤함에 젖어 사는 이정현이 있습니다. 남편은 돈 잘 벌고 상냥하고 스윗한 로맨틱 가이 김성오구요. 남편 하는 짓이 너무 예뻐서 고등학교 동창회 나가서도 엄청 자랑하고 그래요. 그런데 그런 이정현을 질투한 듯한 동창 하나가 툭 던진 한 마디에 불행이 시작되죠. '그런 남자들은 다 바람둥이더라?'

 사실 그 동창 탓은 아니지만 암튼 하필 그날 이정현은 남편에게서 수상한 점을 동시에 여럿 발견해 버리구요. 이걸 어떡하나... 고민하다 결국 찾아간 곳은 흥신소. 그리고 뭔가 좀 멍청하고 느끼해보이지만 맡은 일엔 엄청 성실하고 정직했던 우리 흥신소 대표 양동근씨는 남편에 대해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전해줍니다. 하루에 여자를 대여섯명씩 후리고 다니는 건 기본이고 혼자서 독한 술을 40병이 넘게 마시고도 멀쩡하며 결정적으로 주유소에 가서... 음. 여기서부턴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 신정원 감독의 전작들을 생각해보면 금방 짐작이 가능한 영화다... 라고들 많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전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요. 이 양반 예전 영화들을 하나도 안 봤거든요. 참고로 신정원은 시실리2km, 차우, 점쟁이들을 만든 사람이고 이게 최신작이죠. 

 그래서 이 영화만 놓고 말한다면 대략 이런 느낌입니다. 코미디에 장기가 있는 사람인데, 요즘 창작자들은 촌스럽다고 여겨서 잘 하지 않는 옛날 한국 영화 스타일의 개그를 해요. 말하자면 흔한 소재나 상황을 갖고 매우 한국적인 배경과 한국적인 캐릭터들을 이용해서 한국적인 드립을 치는 거죠. 그리고 배우들의 개인기 같은 걸 적극적으로 활용하구요. 

 그러다보니 조금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도 들고, 촌스럽고 유치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와 동시에 결국 웃깁니다. 네, 웃겨요. 그리고 촌스러움과 유치함은 의외로 그렇게 크게 안 느껴져서 감상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옛날 사람이긴 한데 웃기는 옛날 사람인 거죠. 



 - 장항준과 함께 썼다는 각본은 사실 그렇게 칭찬받을만한 물건은 아닙니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두고 보면 진짜 별 거 없거든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설정인 '서로 의심하며 죽이려 드는 부부'의 이야기에다 외계인 설정을 집어 넣고 디테일 측면에선 드립들을 거하게 풀어 넣은 거죠. 문제점들이 쉽게 눈에 띕니다. 예를 들어 외계인을 추적하는 그 '조직'은 너무 사족이에요. 어쨌거나 우당탕탕 멈춤 없이 잘 흘러가는 이야기 중간중간에 튀어나와서 흐름을 끊어먹구요. 그나마 보는 동안에는 이야기의 해결을 위해 어떻게든 필요한 존재 아니었나... 싶었지만 영화 끝장면 보고 쿠키까지 보고 나면 굳이 갸들이 안 나와도 별 상관 없었을 것 같거든요. 그런 놈들이 자꾸 튀어나와서 분량을 잡아 먹고 주인공들이 담당해야할 클라이맥스의 액션 지분까지 가져가버리니... 


 암튼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중요한 건 이 영화의 드립들이 그 올드함과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잘 먹힌다는 겁니다. 상황들 자체는 웃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정도의 상황들인데 그걸 배우들이 잘 살리구요, 또 감독이 만들어낸 호흡과 리듬감 같은 측면이 좋아서 결과적으로 웃겨요. 이미 한 얘기지만 그냥 감독이 잘 웃기는 사람일 것 같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남들 다 아는 얘기도 희한하게 재밌게 잘 하는 사람. 이 영화의 느낌이 그렇습니다.


 근데 역설적으로... 그렇다보니 제가 이 영화를 재밌게 봤다는 게 이게 그만큼 괜찮은 완성도의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게 됩니다. 문장이 쓸 데 없이 괴상하게 꼬였죠? 이 영화를 보고 난 제 머릿속이 딱 그렇습니다. 재밌게 봤는데 칭찬을 열심히는 못 하겠고 남에게 추천은 절대 안 하고 싶네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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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3인방... 이긴 한데, 어라. 이거 밤장면인데 뒷배경에 낮이 보이네요. ㅋㅋㅋㅋ 실제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촬영장 스틸샷이라 그런가 봅니다.)



 - 이게 작년 가을이라는 무시무시한 시즌에 개봉해서 예정대로 폭망하고 vod로 넘어간 걸로 아는데, 좀 아쉽기도 합니다. 

 왜냐면 이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요즘 그래도 잘 먹히는 설정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이야기거든요. 단순하게 요약하면 결국 본모습 숨기고 여자들 꼬셔서 죽이고 다니는 남자들에게 평범한(?) 여자들이 뭉쳐서 반격하고 혼내주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여기에서 그 '여자들'이 상당히 매력적이거든요. 우왕좌왕 늘 당황한 상태로 실수 만발이지만 그래도 정이 가고 귀여워요. 다 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 그 양반들도 절대 좋은 사람들이 아닌데, 보는 동안엔 그런 생각은 안 듭니다. ㅋㅋ 배우들 연기가 좋고 합이 잘 맞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충분했네요.


 그리고 사실 남자 배우들도 잘 했습니다. 김성오의 재수 없고 한심하면서도 사악한 캐릭터 연기도 괜찮았구요. 특히 양동근의 활약이 상당했습니다. 어찌보면 그냥 캐스팅의 승리라고도 볼 수 있는데... 양동근 아닌 다른 배우가 했음 진짜 뻣뻣하고 어색했을 대사들이 양동근이 읊으니 그냥 자연스러운 캐릭터의 성격처럼 보이는 마법이. ㅋㅋㅋ



 -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일단 저는 이 영화를 추천하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그렇게 딱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습니다. ㅋㅋㅋㅋ

 웰메이드와는 거리가 멀고, 또 감독의 개그 취향과 코드가 맞지 않으면 제가 위에서 장점처럼 언급한 부분들에 전혀 동의하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구요.

 하지만 뭐랄까... 이미 강산 변화가 두 턴이나 지나간 이 시점에서 대세를 차지하고 있는 21세기식 유머들과는 다른, 20세기 한국식 유머가 종종 그리워지는 분들이라면 아마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처럼 이정현, 서영희 같은 배우들이 좀 '재밌는' 역할을 많이 보여줬음 하는 분들 역시 한 번 보실만 하겠구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유머 감각이 매우 표준적이라고 느끼시는 분. 촌스러움이나 유치함에 알러지가 있으신 분들 같은 경우엔 피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 서영희의 캐릭터를 보고 있노라니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생각이 나더군요. 그게 벌써 11년 전입니다 여러분!!!



 ++ 도대체 김성오 캐릭터는 어떻게 그런 재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뭐 이런 설정을 따지면 안 되는 영화이긴 합니다만. ㅋㅋㅋ 따지고 들자면 애초에 이정현이랑 결혼을 해야할 이유도 없었죠. 까지 적는 와중에 갑자기 뭔가 떠오르네요. 보험금 덕(&때문)이었나!



 +++ 쿠키는 사실 많이 별로였습니다. 극중에서 이해가 안 되던 몇 장면을 납득시켜주긴 하는데, 이야기의 감흥을 많이 까먹더라구요.



 ++++ 수원에 실제로 있는 한약방(한의원 말고!)에서 찍은 장면이 잠시 나옵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있는 공영 주차장 장면도 나오구요. 다 제게 익숙한 곳이라 되게 반가웠습니다... 라는 촌스러운 이야기. ㅋㅋㅋㅋ

 


 +++++ 워낙 폭망에다가 관심 밖 영화였어서 그런지 영화 속 장면 짤을 많이 찾기 어려운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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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이 맘에 들어서 그냥 올려 봅니다. 촬영장 분위기가 괜찮았나 보네요.

    •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맛갈나네요.


      저도 이 영화 재밌게 봤습니다.


      재밌게 보고, 이런 말 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B급 영화를 표방한다고 해도 이렇게 허술해도 되나 싶었어요.^^


      로이배티님이 언급하셨던 추적하는 조직(?) 없이 그 분량을 다른 것들로 어떻게 잘 살렸으면,


      시실리2Km수준은 되었을 것 같아요.. 


      그 조직때문에 어릴적에 보았던 어린이 SF드라마 수준이 되었어요...

      • 근데 전 또 스토리는 그렇게 허술한 와중에 기본적인 연출력은 꽤 괜찮은 감독 같다고 느꼈어요. 스릴 필요한 장면 같은 부분들 보면 잘 하더라구요. ㅋㅋ

    • 재미있게 본 게 부끄러운....영화들이 있지요. ㅋㅋ 배우들은 재미있게 작업했을 것 같아요 ㅎㅎ
      • 사실 전 부끄럽진 않습니다! ㅋㅋ 당당하게 재밌게 봤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남들이 좋아할 것 같진 않달까...


        이래뵈도 듀나님이 별 셋을 주신 영화라구요!!! ㅋㅋㅋㅋ

    • 친구들에게 농담을 하면 반도 듣고 화를 내거나 자버려요. 메모지에 받아 적은 성심껏 들려줘도 다들 귀나 파고 있고.



      나도 모르는코미디계 북한 되었답니다. 연애만은 그러지 말라면서 연애계 북한이라 선포하고. 옆에다 사람도 붙여주더라구요. 빌었는데


      같은 사람이 영활 보면 유머성장에 지대한 도움을 받을 있을까요? (조금만 달라지고 싶다)



       

      • 아니 이 댓글은 재밌는데요. 그냥 친구분들이랑 코드가 안 맞으시는 게 아닌지. ㅋㅋ



        그리고 진지하게 말씀드리자면 2021년에 이 영화식 드립을 치면 열 중 여덟 이상은 썰렁하다고 그럴 겁니다. 도움은 안 될 거에요 아마...
    • 캐릭터를 어떻게 그렸을지 궁금하군요. b급은 좋은데 과장된 캐릭터에서 나오는 유모어라면 좀 질색이어서요. 요즘 한창 유튭에 빠져사는 중인데요, 피식대학 한사랑산악회 보다보니 코미디언들 연기가 장난이 아님요. 영화의 미래는 어뜨케 될것인가 하는 거창한 생각까지 하게 되네요.
      • 설정이 설정이다 보니 캐릭터들 모두 과장되어 있는 건 맞는데, 그래도 여자 삼인방은 그 와중에 나름 캐릭터가 괜찮은 편입니다. 코미디적 허용(?)의 한계치 안에 있어요. 반면에 남자들은 뭐, 애초에 맡은 역할이 얄팍하다 보니 그냥 과장된 캐리커쳐로 끝나죠. 나이 오십 언저리의 아저씨 둘이서 쓴 각본인데 좀 특이하네... 라고 생각했습니다. ㅋㅋ



        이제 ott를 포기하고 유튜브로 가시는 중인 것 같네요. ㅠㅜ 옛날에 사람들이 그런 얘기 했던 게 기억나요. 코미디언들이 오히려 그냥 배우(?)들보다 기본기 훈련이 잘 돼 있어서 능력 있는 코미디언들은 정극 연기 시켜도 어지간히 잘 한다고.
        • 왓챠도 보구있긴 해요 ㅎㅎ 전에도 개콘의 김대희, 김준호 보면서 연기 잘 한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이 개그맨들은... ㄷㄷㄷ 대본 구성에 연기까지 너무 좋네요. 같은 개그맨이 각각의 컨텐츠에서 서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힙니다. 거기다 10분 이상을 원테이크로 연기. 폰 하나 들고 영상을 만들고 소비하는 개인 미디어 시대에 카메라 앵글로도 코미디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이런 거야말로 새로운 B급 코미디구나 싶기도 해요. 이 사람들 김병욱 이후의 시트콤을 만들고 있더라구요..

          • '김병욱 이후의 시트콤'이라고 하시니 꼭 한 번 보라는 강력한 권고로 느껴집니다...... ㅋㅋㅋ 제가 옛날 김병욱 시트콤 참 그리워하는 사람인데요.

    • 몸매 좋은 남자... 알몸.. 흐뭇해하는 동네 여성..  공감이 안되면서 뭔가 제 3자적 관점에서 영화를 볼 수 있을것 같아요.


      애들 쫓아내고 한번 봐야겠네요 ^^

      • 큰 기대는 하지 말고 보세요. 정상적인 의미에서의 '기대'를 하고 보면 안 되는 영화입니다. ㅋㅋㅋ

    • [차우]도 진짜 괴상하게 웃기는 영화였는데 이 영화 분위기도 대략 짐작이 가고 나중에 볼 거 없다 싶으면 볼 생각이 드네요. ㅋㅋㅋ 그리고 이 영화가 취향에 맞으셨으면 [차우]도 보시길 추천합니다. 넷플릭스에 있더군요.

      • 네 안 그래도 그거라도 한 번 볼까? 하고 있던 중이네요. 정유미도 나오구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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