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고 그런 시간을 지나며 2

1. 휴가를 음악만 들으며 지내다가, 시들해서 새로 나온 책들을 알라딘에서 훑어 봤습니다.
허,  C.G.융의 <자연의 해석과 정신>이 재출간되어 있네요. 절판 기간이 길어서 번번이 헌책방 사냥을 하면서 품을 팔았던 책이거든요.
표지도 깔끔하게 디자인돼 있어 구매 욕구의 유혹이 저절로 입니다. 사실 이 책은 뛰어난 현대의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싶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여기까지 쓰노라니 몇년 전까지 제 곁에 있었던,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해줬던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대부도 레지던스에 짱박혀 지내는, 제가 살면서 만나본 중 가장 똑똑한 친구입니다.
며칠 전에 통화하며 필요한 것 있으면 뭐든 말하라고, 돈밖에 없으니 니가 필요한 것 있으면 다 사줄거라고 흰소리 했더니 너 보다 더 부자/권력자가  짱짱하게 써포트해주고 있노라 자랑질하더라고요.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지인들 나열하는 면면 보니 이 친구 전생에 세상구한 게 맞는 듯. ㅎ

2. 머리 아팠던 문제 하나가 오늘 풀렸습니다. 근데  쉽게 풀리니까 기쁘기는 하나 상대 탓 했던 마음이 무안해지네요. 어느 문제든 내가 풀어야 할 문제라는 걸 알면. 결국 가장 쉽게 풀 수 있는 건데. 말이죠.
일체유심조라는 걸 별로 믿지 않지만  슥 마음이 풀리며 그와 동시에 일이 풀리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좀 그렇습니다. 세상만사가 그렇게 흘러가기로 정해진 문제인 걸로 미루며 사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은 거잖아요.  - -

3. 런던 조카가 "이모는 스타일리스트예요" 라는 어이없는 평가를 뜬금없이 문자로 척 보내왔어요. "내가? 왜?"라고 반문하니 "스타일리스트니까요." 라는 시큰둥한 답글만 보내네요.
"그런 답이나 하려면 뭐하려 용기를 내서 그런 의견을 표하지? " 라고 물으니 현재까지 묵묵부답 중. (일곱살 사춘기 시작일까요. ㅋ)

4. 추위가 풀리면서 새들이 다시 제 집 베란다 창에 날이들기 시작했어요. 오늘은 딱따구리와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내는 새가 날아 왔는데 재잘거리는 소음과 응가 때문에 또 아랫집에 피해를 드릴까봐 조마스럽긴 한데 듣기는 기분이 좋은 소리입니다.  
    • 아,  제주도 친구와 통화한 내용을 적었는데 안 올라갔네요. = =
      - 어떻게 지내?
      " 책 한권 계약해서 쓰는 중이야. 시간을 많이 낭비한 기분이 들어서 집중하고 있는데 오히려 진전이 느리네. 너 휴가라며? 놀러와서 도와줄래?"
      - 남의 작업에 초칠 일 있니? 혼자 잘해봐~ 
      " 넌 오바할 줄 모르는 게 단점이야. 왜 그리 감정을 표현할 줄 몰라?"
      - 그게... 상대에게 힘 들이는 방법을 내가 모르긴 해.. 어쩔 수 없지 뭐.  미안하지도 않고. 

    • 오 옷입기 코칭좀 받아보고 싶어요!

      • 제 옷차림이 단정하기는 하나,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지인들 코웃음을 흔히 받곤해요.  - -


        조카의 스타일리쉬하다는 언급은 아마도 제가 삶의 형식을 정하고 그 틀 안에 갇혀있다는 걸 느끼고 지적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아이들 감각이 매워서 정신이 번쩍 눈떠지는 지적질을 받을 때가 잦아요. ㅋ

    •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병이 깊으면 다시 알아채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해 이게 병이라서 잘 안되는군요
      • 감정은 나르시시즘 적 구조라 동요되지 않기 어렵죠. 


        저는 제 감정을 대부분 눈처럼 날리는 꽃잎파리 보듯 지켜보고 있어요. 

    • 예쁜 글 잘 봤습니다. 어디로갈까님의 글이 늘 평화로운 것은 그 감정이란 걸 글에 담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네요

      • 글에 감정이 안 담길리가 있나요. 사납고 날카롭게 담지 않을려고 조심할 뿐이죠.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으로서, 질퍽거리고 살더라도 건조하지는 말자는 다짐은 합니다. - -









    • 저도 일만 아니라면 통영 매몰도같은 섬에 한동안 짱박혀 지내보고 싶네요. 섬이란 바다에 둘러싸여 있지만 고요하고 너무 좋더군요
      • 그것이... 집 없애고 레지던스 생활하니까 삶의 검열기계에서 벗어난 기분이라더군요. 자연화되어 있는 세계에서 사는 느낌이라고... 


        거창하게 전해주는 소감들이 있는데, 언제 함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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