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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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녹는 것일까. 어쩌면 그 표현은 아름다움을 희망하는 우리의 잔인한 무관심일지도 모른다. 형체의 부분부분이 증발되어, 어떤 소음도 부산물도 없이, 하늘로 사라져버리는 그 존재론적인 실종의 광경은 곱디 곱다. 단단했던 얼음에서 부드러운 물로. 힘이 빠지고 조금 더 편안해지는 것 같은 이 변화의 과정이 정말로 맞는지 의심해본다. 얼음이었던 것은 고요하게 물이라는 시체가 되는가. 조각이었을 때의 그 미세한 광경 속에 얼음이 내지르는 비명은 감춰져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눈은 부숴진다. 물이 되면서 얼음이었던 부분이 떨어져나가면 그 빈자리는 온전했던 지난 형태를 암시한다. 가장 바깥에서부터 천천히 물이 되어 흐르고 매끈해지겠지만 그것은 단지 탄력을 잃은 물의 주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냉기를 잃어가며 생긴 물이 표면부터 얼음을 문질러 깎아낸 자국이다. 그 힘이 아무리 지긋해도 결국 눌리고 떼여저나간다면 그것은 파괴가 분명하다. 가끔은 세계 앞에서 쓸데없이 거대한 우리가 그 변화를 무디게 포착하고 감상에 젖을 뿐이다. 얼음은 축소되지 않는다. 온기라는 끌과 정이 아주 작은 부위에서부터 보이지 않게 쳐내려서 투명한 피를 흘리게 만든다.

개미의 시체는 그냥 자국이지만 고양이의 시체는 비로서 죽음을 신호로 보낸다. 눈의 사망은 덩어리로 있어야 알아볼 수 있다. 눈송이는 깜짝할 새에 소멸하지만 얼음이라는 단위가 붙을 정도의 덩치가 있으면 비로서 파괴가 관측된다. 북극의 얼음들은 그냥 녹는 게 아니라 분해되어 사방에 흩어져있다. 쪼개지고 갈라진 것들이 겪었을 진통이 그 조각조각에 새겨져있다. 셰계의 변화는 늘 부숴져버리는 것과 사라져버리는 것 두가지밖에는 없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커다랗고 선명하게 존재해야 한다. 그저 입자로 존재하고 간신히 결정을 이루는 규모로는 모든 것이 생략된 채 제멋대로 승천할 뿐이다.

빠른 속도의 시간 속에서 모든 눈은 "어느새" 사라져있다. 그것은 단지 깨끗하고 단단하게 있을 때만이 기억된다. 얼어붙은 강으로 기억되던 그 눈들은 어찌되었을까. 세계의 표면에서 단단히 가장자리를 이루고 있던 이들은 깨지고 갈라지고 녹아서 없어진다. 수면 아래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눈이었던 기억과 수면 위에서 고체를 이루고 있던 기억마저 모두 잊혀지고 하나의 물이 될 것이다. 온화한 빛과 성실한 시간 아래 강과 세계는 제 모습을 찾는다. 눈은 그저 기억 속에서만 다정하게 기다려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금이 가고 바스라지면서 파괴될 것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혹은 아름다움만 떠올리며 잊혀진 채. 세계는 언제나 존재한다. 부숴지는 것은 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니까.

    • 이 글 제 맘에 쏙 들었습니다. 와 글솜씨가... 

      • 헉 감사합니다 ㅋㅋ 다시 읽어보니 너무 문장이 길어서 좀 잘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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