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저리와의 카톡12 (체홉의 세계관)

머저리> 어, 누나 이번 주초부터 체홉을 정독하고 있는 중이거든.
머저리누나>그래서?
머저리> 그는 이념형 작가가 아니었네. 해학 유머리스트로 만족한 것 같지도 않고 리얼리티를 무시하지도 않았네.
머저리누나> 음.  그의 세계관엔 상충하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봐. 생존과 불행이라는 개념.
머저리> (경청)
머저리누나> 인간은 행복하게 설계된 존재가 아니므로 불행은 공기와도 같다는 것. (그의 시대는 더 그랬겠지.)
머저리누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기어이 살아남는다는 것. 그는 그  경이로움에 대해 썼다고 봐.

머저리> 흠. 불행한 사람들은 연대하지 않잖아? 그런데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연대의 방법을 아는 것 같던데?
머저리누나> 그렇다고 그 연대가 변혁을 가져오진 않았지. 연대의 노선이 혁명의 노선을 대체한 것은 아니란 걸 보여줬어.
머저리누나> 여론이 사라진 시대엔 혁명의 노선도 들어설 수 없다는 것.
머저리> 아이고 어렵다.

머저리누나> 하지만 그는 약자 생존의 법칙을 잘 그려냈다고 봐. 자연의 법칙 중 가장 훌륭한 건 약자 생존의 법칙인 거고.
머저리> 2021년의 우리도 아직 그 지점 어딘가에 있는걸까?
머저리누나> 아마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런저런  삶의 바깥으로 걸어나가 조명해보는 게 문학/예술의 사회적 역할인데 그걸 잘한 작가인거고.
머저리> 자기에게 주어진 판을  최선을 다해 살폈다는 느낌은 강해.
머저리누나> ㅎㅎ 등장인물들이 그 판을 깨는 아주 조용하고도 래디컬한 행위들을 보여주기도 했어. 더 읽어봐.
머저리> 쳇! 

머저리> 누나랑 까똑할 때면 육지 응석받이가 먼 바다에 나가 냉정한 어머니와 만나는 기분을 느끼는 거 알아?
머저리누나> 뭐 대양의 리듬을 느낀다는 고백으로 알아 들을게.
머저리> 어리광이 통하지 않는 냉정한 자연은 멀미를 유발하기 마련이야. 흥~

덧: 우리의 삶은 육지라는 확고한 바닥을 딛고 있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존재... 라는 말을 덧붙이려는 찰나 메롱~ 하고 사라져버렸.... 
누나란 존재는 동생에게 대체 무엇일까요.  -_- 
    • 사람의 마음이 참 휙휙 바뀌죠..그래서 강아지를 더 좋아하게 된거 같아요. 거의 변함이 없으니까요

      • 가끔 부담스럽거나 벅찰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의 작동, 마음의 예술을 보여주는 건 동물보다는 인간인 것 같아요. 막내는 나름 저에게 어리광을 피워대는 거고요. ㅎ


    • '마음'이라니, 마음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오래 전 종림 스님의 매체 인터뷰를 발췌해놓은 게 생각나서  뒤적뒤적~ 

      종림/  지금 불교에서 마음 마음 그러는데, 나는 그런 식의 마음은 없다고 생각해. 
      종림/  없으니까 없지, 왜는. 나는 오히려 갈등을 찾았지. 괴롭잖아 뭔가 얽혀서…. 그걸 해소하기를 원한 거지. 마음, 도(道)가 아니라.
      종림/그럼, 다양성을 인정해 주면 되지. 그리고 최소한으로 추구할 수 있는 선을 그어주는 것. 그래서 나는 불교에서 공을 설명하는 것이 여기 공집합에 딱 떨어진다고 여겨.  백 개를 더해도 그래 봤자 0이라. 0이지만 하나야.

      종림/ 그런데 우린 개인적인 욕망은 절제해야 하고, 불교에서도 욕망을 없앤다 하잖아. 하나, 실제 그 욕망을 살아나게끔 하는 게 바로 '공’이야. 욕망을 없애면 안돼. 없애는 건 아니야. 
      돌멩이는 욕망이 없어. 그렇다고 해서 그게 우리가 보는 가장 좋은 깨달은 상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욕망은 살려줘야 돼. 돈을 위해서 또 남을 위해서 남의 일을 해주는 것, 

      보통 우리 삶이 그렇게 돌아가잖아. 그 속에서도 ‘아니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겠어’ 그리고 뚝딱거릴 거야. 
      근데 그건 또 실제 돈이 안되지. 그런데, 다른 누가 보고는 ‘어 재밌네’ 그럴 수 있단 말야. 그놈은 지 재미로 하는데 다른 사람이 좋아서 돈 주고 사고, 그럼 또 세상이 바뀌는 거라. 
      그런 욕망,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그거지 뭐. 그러니 대가를 안 바라고 남한테 피해도 안 주고 내가 하고 싶은 일, 거기서 살판이 생기는 거고.

      종림/ 각자 비우면 돼, 세상은 공집합이야, 그 안에서 서로 인정해야지. 서로의 관계를 선이 아닌 점이라고 생각해봐, 그럼 여유가 보여.

    • 우리 오누이는 있는지 없는지 해서 대화가 자연스러워 아주 부럽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불교는 혼자 잘살다 가려는 느낌도 있지만 힘들게 잘사는 법을 실천해 보여주는거죠
      • '혼자 잘살다 가려는 느낌도 있지만 힘들게 잘사는 법을 실천해 보여주는'이란 통찰에서 종림스님이 결단하셨습니다. "가.영 그만 하산하시게~"

        • 크크크 어디님 최고야 언제 만나면 못만나지만 뭐 사면 다 내가 내겠어요
          • 아니 다시 생각하니 스님이 넌 손볼수가 없는 업이니 하산해서 너대로 살다가라 그런
    •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던 안톤 체홉의 작품이 귀여운 여인이었는데, 그 때 썼던 감상기를 살짝 훑어보면 체호프가 (머저리님의 표현을 빌리면) 해학 유머니스트라고 생각했나봐요.


      존재가 아닌 사랑이라는 관념을 사랑하는 사랑하는 여인, 현실을 보지 못하고("못"을 써야할까요. "않"을 써야할까요?) 관념에 빠진 사람(혹은 철학자, 혹은 작가)들을 보여줬으니까요.




      올해 초에 저도 안톤 체호프를 읽었어요. 이번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었고, 학교 선배가 앨리스 먼로를 재밌게 읽었다고 해서 안톤 체홉을 추천해주고 함께 읽었죠.


      그때 나왔던 얘기가 단편소설가의 주제 의식이나 세계관이었는데 (발자크, 카버, 먼로, 그리고 헤밍웨이 등), 안톤 체호프는 관념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기보단 당대 역사적, 정치적 흐름을 들었고, 보았고 그러한 현실성에 기반하여 글을 썼으리라고 생각해요.  특히 농민과 지식인이 함께 나오는 단편 등에서 체호프의 시선은 지식인들의 공허한 말에 신물이 난 것 같다면서..ㅋㅋ 동정이라는 감정으로 비롯된 운동은 동정 받는 사람과 동정하는 사람이 서로를 다른 위치 선상에 있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을테고, 추측컨대 체호프는 아래에서부터 위로부터의 혁명을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말하는 고대 그리스 비극 개념과 비교되는 체호프의 비극/희극, 그리고 영웅적 주인공 등등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는데 정리가 잘 안되네요. 올해 독서 계획에 니체를 넣어야 겠어요.



      • 아, 요즘도 체홉을 읽고 니체를 염두에 두는 이들이 있구나 싶어 미소가 사르르 번지.... (어릴 때 제가 뭔 책을 잡기만 하면 울 할부지가 이러셨음. ㅎ)

        1. 음. 안 하는 건 실행의지가 없는 거고, 못하는 건 실행능력이 없는 건데, 체홉이 묘사한 인물들은 반반으로 나뉘어져 있죠. (굿답! ㅋ)

        2. 체홉의 작품은 비극성과 비극의 형식이 분리돼 있다는 게 특이점이자 뛰어난 점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체홉을 읽던 시절 집중해서 말러를 들었는데 그 조합이 준 파급력이 대단했습니다.

        3. '아래에서부터 위로의 혁명'을 그렸다기 보다 어떤 이유로든 기회를 놓친 사람들, 그럼에도 열정과 순수한 영혼과 도덕적 고귀함과 자기희생의 의지가 가득한 사람들을 보여줬죠.

        4. 니체를 <비극의 탄생>으로 접했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이어가며 읽었어요. 십대 시절이었는데 그 생소하고 멋진 자극이 저를 담박에 열병에 사로잡히게 만들었죠. 
        근데 그의 글은 바람조차 찢어버리는 창 같은 면이 있어서 조심히 읽을 필요가 있어요. 그의 텍스트는 감각과 새로운 감각의 합성들이 숨가쁘게 일어나는 언어의 용광로라서 보통의 독법으로 읽는 건 위험해요. 어릴 때 뭣 모르고 그냥 문학으로 상대할 게 아니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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