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아주 짧은 한 순간이나 말 한마디로 인생이 달라지는 그런 경험.
꼭 타임슬립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더라도 그런 경험들은 우리의 삶 도처에 도사리고 있죠.

예전에 다니던 소위 대기업 어쩌고 직장의 회식 자리에서,
당시 창업주의 동생의 딸이면서 길 가다 누구나 한번씩 돌아보게 되는 용모의 언니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나요. 별 뜻 없이 주고 받는 회식용 토픽에서 누군가 살짝 무리수를 던졌는데. 개그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죠. 어 방귀냄새 난다! 뭐야 뭐야 아무 냄새 안 나는데? 너 개코냐 누룽지 냄새겠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갑자기 그 언니가 우아아앙 정말 아기같이 서럽게 우는 거예요. 나 안 꼈어요!!! 이러면서.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말이죠. 아무도 니가 꼇지 안 했는데. 정말 아기 같이 엉엉 울더라고요. 나 아녜요!! 나 방귀 안 꼈어요!! 서너번 외치면서 계속 우는 그 언니를 앞에 두고 나머지 사람들이 우왕좌왕 각자의 방법대로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애쓰던 기억이 나요. 어어 그래 너 아냐 우리 김대리가 많이 힘들구나 아 왜 갑자기 울고 그래 언니 어디 아파여? 한 사람의 통곡으로 모두가 우렁차게 합심하던 어느 연말 회식 자리.

이후로 제가 그 나인투파이브 물신 숭배의 세계를 결국 버티지 못해 관두고 난 뒤 종종 소식을 전해주던 귀여운 친구가 말하길, 그날 그 언니가 파혼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파혼당한 이유가 약혼자의 외도로 인한 거였다고.. 그런데 그날 회식 자리에서 그 언니를 가장 적극적으로 위로하던 한 남자. 그리고 나 방귀 안 꼈어를 만들어냈던 바로 그 남자. “어 방귀냄새 난다”고 외쳤던 그 남자와 결혼 날짜가 잡혔다며 청첩장이 왔었어요.

잘 살겠죠.
잘 살기를.

구수한 둥굴레차 냄새를 맡으면서 난 왜 이 일화를 떠올린 건지....
따뜻한 차 한잔이 소중하네요.
한파속에서 듀게분들 모두 무사하시기를.
    • 앞으로 둥굴레차 못마시겠는데요...?(...) 농담이고 좋은 에피소드 감사합니다
    • 약혼자의 외도로 인한 파혼인데 당한다는 수동태가 왠지 더 그분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게 되네요.


      물론 창업주 동생의 딸이자 누구나 돌아보게되는 용모의 그분에게 하늘이 또다시 행운을 던져준건가 뭐 그런생각도 들고요 ㅋ

    • 저는 그런자리에서 사람들이 저한테 주목하는게 싫어서,


      아싸였던 저에게 다들 내키지않는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이 싫어서 방귀를 뀌었음에도


      침묵을 지키고 조용히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옆에 사람들도 제가 방귀뀌었음을 알았어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가만히 있더군요.


      그 예쁜 언니라는 분 지금은 행복하시길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8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0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8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3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