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다짐/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정인 아가


# 2021년이 시작됐습니다. 작년 한 해가 지구인으로 (covid -19) 직장인으로(정책과의 불협화음) 개인으로(작지 않았던 교통사고) 벅찬 일 년이었던 터라,  무심히 넘어가곤 했던 새해의 숫자 앞에서 이런저런 기원을 하게 됩니다.
시간이란 무엇일까요? 보르헤스가 말년에 이런 말을 했었죠.  " 살아보니 가장 본질적인 큰 수수께끼는 시간이다."
저는 '시간은 신이다 '라고 정의내리곤 하는데,  시간- 인간- 세계가 풀 수 없는 아름다운 수수께끼로 맞물려 엄정한 판관으로 작용한다는 그의 규정에도 동의합니다. 
아마도 보르헤스는 사막의 지평선에 기초한 '알레프' 같은 유대 신비주의에 몰두했던 터라 이런 사고를 하게 된 것 같아요. 동아시아의 시간관 - 열흘 붉은 꽃은 없고 달도 차면 기운다 - 가 파동 중심었던 것과는 날카롭게 대조되죠. 

시간은 가만히 음미할수록 심심 극미묘합니다.  시인 이상은 이것을 깊이 속의 깊음 - 시간 속에 시간을 피우는- 거라고 통찰했죠. 극미묘- 지극히 미묘하다는 것은 (시간이) 꽃피는 법이 수직적 깊이뿐만 아니라 수평적 운하 연결처럼 내통하는 방식도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저와 인연이 닿아던  사람들 모두가 각자 우물을 팠고,  그 마음의 우물들끼리 깊이의 세계에서 운하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꽃을 보는 법’을 서로 제안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 지난 시간의  '가늠'과 '그냥'의 느낌을 배경으로 올 한해 '또'와 '다시'의 시간성이 구축되겠죠.  무작위로 하늘에서 쏟아지거나 누가 던져주는 꽃이 아닌 저 자신이 '화화'돼 꽃피우는 실천이 있는 한 해이기를 바라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Flourishing Life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타인들에게 Life flourish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는 2021년이기를....... 

- <보르헤스의 말> 중에서
비밀의 섬
내가 잠에서 깰 때
그건 여름날의 더딘 땅거미처럼 왔어요
나는 그저 타고난 대로의 나를 나타내지요
군중은 환상
그러나 나는 꿈을 더 선호해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시간은 본질적인 수수께끼
나는 늘 낙원을 도서관으로 생각했어요
악몽, 꿈의 호랑이
나는 항상 거울을 두려워했어요

# 어제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정인 아가 사연으로 인터넷이 요동치고 있길래 다시보기로 봤습니다.  아아...... 
두어번 끊어가며 보다가 결국 새해 첫눈물을 쏟았는데,  불현듯 나이지리아 출신 노벨문학상 작가 월레 소잉카의 시 '오군'이 떠오르더군요. 잔혹하고 변덕스러운 강도 면에서 비슷해서일까요.

아프리카에서 선진문명을 일군 요루바족의 신은 밤의 얼굴과 낮의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죠.  소잉카는 그런 신성화가 현재 신격화되어버린 '자본'의 두 얼굴로 연루돼 있는 시대라며 이 시를 썼다고 해요. 
지고지순한 모든 선한 행위의 내부에 대입해보도록 각성을 촉구하는 시라서 구글링해봤습니다. 전 세계가 '오군'화 돼버리지 않게 우리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든 막아봐야하지 않을까요. 

- 오군 / 월레 소잉카

오군은 오른쪽에서 죽이고 오른쪽에서 파괴한다.
오군은 왼쪽에서 죽이고 왼쪽에서 파괴한다.
오군은 집에서 갑자기 죽이고 들판에서 갑자기 죽인다.
오군은 그가 갖고 노는 쇠막대기로 아이들을 죽인다.
오군은 조용히 죽인다.

오군은 도둑을 죽이고 훔친 물건의 주인을 죽인다.
오군은 노예의 주인을 죽이고, 노예는 달아난다.
오군은 서른 명의 전당포 주인을 죽이고 그의 돈, 재산, 아이들은 사라진다.
오군은 집의 주인을 죽이고 난로를 그의 피로 색칠 한다.

오군은 아이가 숲 속으로 달아날 때까지 쫓아가는 죽음이다.
오군은 양쪽으로 찌르는 바늘이다.
오군은 물을 갖고 있지만 피로 씻는다.
오군의 아내는 팀팀 방석과 같다.
그녀는 두 사람이 그녀 위에 눕는 것을 싫어한다.

오군은 많은 가운을 갖고 있다.
그는 그것 모두를 거지들에게 준다.
그는 하나를 누른 도요새에게 주며, 누른 도요새는 그것을 인디고로 물들인다.
그는 하나를 뻐꾸기에게 주며, 뻐꾸기는 그것을 콩나무로 물들인다.
그는 하나를 해오라기에게 주며, 해오라기는 그것을 하얗게 물들인다.

오군은 결코 빻은 얌이 아니다.
당신은 손으로 그를 반죽해서 당신이 만족할 때까지 그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군은 당신이 모자 속에 던져넣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모자를 쓰고 그와 함께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군은 그의 적들을 뿔뿔이 흩어버린다.
나비들은 치이타가 배설하는 곳에 도착하면
사방으로 뿔뿔히 흩어진다.
오군의 얼굴에서 나는 빛은 쳐다보기가 쉽지 않다.

오군, 내가 당신 눈의 빨간 빛을 쳐다보지 않도록 하라.
오군은 그의 머리에 코끼리를 제물로 바친다.
철의 주인, 전사들의 우두머리,
오군, 약탈자들의 위대한 추장.
오군은 피투성이의 모자를 쓴다.

오군은 사 백 명의 아내와 천 사 백 명의 자녀를 갖고 있다.
오군, 숲을 쓸어버리는 불.
오군의 웃음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오군은 이 백 개의 지렁이를 먹으며 토하지 않는다.
오군은 칠 백 팔 십 년 후에도 계속 질문을 하는 미친 오리샤이다.

내가 대답을 할 수 있건 없건 간에,
오군 제발 나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말라.
사자는 아무도 그의 새끼와 노는 것을 허락치 않는다.
오군은 그의 아이가 처벌받는 것을 허락치 않는다.

오군, 나를 거절하지 말라!
실을 만드는 여인이 물레를 거절하는 법이 있는가?
물감을 들이는 여인이 천을 거절하는 법이 있는가?
보는 눈이 빛을 거절하는 법이 있는가?
오군, 나를 거절하지 말라!
오군은 그의 숭배자들을 필요로 한다.

    • 다사다난 하셨던 한해가 갔습니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아니 놀지는 아니 다시 보고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어쩌면 이제 수직적 관념에 빠질땐데 수평으로 날개짓 하려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노력해아죠 상당히 울렁이게 하는 오군입니다, 정인 아가야 부디 잘가요,
      • 그.알이 조명해준 정인이의 짧고 처참했던 뒤늦은 서사가 작지 않은 충격을 우리 사회에 던진 듯싶어요. 목소리조차 갖지 못한  아이들이 학대받는 현장으로 어른들의 관심 함성이 더, 더, 더 울려퍼지기를 바랍니다.
        삶의 모든 노선이 이미 등에 지도처럼 펼쳐 있는 소외된 아이들의 참담한 현장소식을 접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돼요. 새해엔 복받기 보다 복 많이 짓도록 우리 애써보아요~ 

    • - 혼잣말
      루쉰의 유명한 탄식, "시대를 알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그의 시대에 적합했던 말이 아니라 현 시대에 적합한 말이다. 루쉰은 계몽과 사회적 변혁을 꿈꿨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한 시대였다. 지금은? 도무지 시대를 알 수 없는 시대다. 
      그런데도 언밸런스하게 말들은 이전 시대의 말들을 척척 차용해서 쓰고 있으니, 더욱 더 알 수가 없다. 겉은 멀쩡한 것 같지만 속은 다 물렁물렁해진 느낌이다. 말들의 뼈들이 모두 물러져 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런지.

      이런 식으로 시대를 알 수 없는 시대의 공회전에 휘둘리며, 짐짓 모른 척 외면하면서, 내 인생의 시간을 다 보낼 것인가. 그게 잘 될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방금 자판 위에 뭐가 후두둑 떨어지길래 봤더니 코피였다. 십여 년만에 보니 신기하고 반갑더라. - -  이 나이에 역부족을 느낀다는 건 서글프다. 나아가고자 하는 힘이 부족하면 하다못해 꾀라도 남아 있는 건지.  궁금하다.

      • 내가 보긴 어디로님은 요리조리 피하지 않고 잊지 않고 버리지 않게 잘 습득된 분이라 상당히 강합니다 신체적으로도 강해야죠 뭐 잘 챙겨드시고 몸에 알맞은 운동 꼭 하세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14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53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60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90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5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6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6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53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9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3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30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41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72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8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91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