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goes on

# 고통스럽더라도 고통스런 포-즈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나 시간이 있습니다. 포-즈란 본질적으로 '멈춤'이죠. 그러니까 고통스런 포-즈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건 힘들어도 멈출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고통을 포함한 어떤 감각, 어떤 정서, 어떤 사유가 포-즈화되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가 있어요. 바로 병원에 누워 팔에 주삿바늘을 꽂고 있을 때입니다.  

얽힌 실타래 같은 일들을 수습하느라 내내 허덕거리다가 어젠 출근도 못하고 기절해 있었습니다. (물만 마셔도 토했는데 나중엔 위액도 안 올라왔...  - - ) 결국 병원에 실려가 링거맞으며 누워 있던 중에 든 생각인데, 육신을 괴롭히는 것도 내가 나의 고유한 '모-드'를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포즈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건강과 병을 구분할 수 있을까?'라는 싯구를 읽은 적이 있어요. 건강과 병이 구분되지 않는 거라면  삶과 나도 구분되지 않는 것 아닌가? 건강에 대해 아이러니컬한 역할을 하는 병이란 것도 있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을 뻗어나가게 한 시였죠. 

일년에 몇 번 고요한 병실에 누워 팔에 주사 바늘을 꽂고 있노라면, 날 것 그대로의 시간에 눌려 마음이 흠칫 한 걸음 물러서는 걸 느낍니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느끼면서 마음 어느 구석에도 진지한 겨룸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요. 그럴 때 듣는 시간의 기차소리는 춥고 불안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현란한 기억이 맹목적으로 포-즈의 집을 짓곤 해요. 동시에 이 포- 즈는 거짓이 아니라고 판단할 만큼의 삶에 대한 긍정이 아직 저에게 남아 있다는 느낌이 선명해지고요.

# 정맥혈관을 찾기 힘든 타입이라, 링거 한번 맞으려면 손등부터 팔목까지 여기저기 찔림을 당하곤 합니다. 알기로는 요즘은 초음파 유도로 정맥주사를 놓게 됐다던데, 어제 제가 간 병원은 옛방식을 고수하는 곳이라 오른팔이 붉고 푸른 멍으로 알록달록하네요.  (피부야, 꼭 이렇게 티를 내야만 했냐?)

고흐의 그림 중에 <프로방스의 추수>라는 남프랑스 배경의 그림이 있습니다. 사람의 피부처럼 보이는 대지를 그려냈기에 이 그림은 전문가들이 표면 연구로 삼고 있어요. 이 대지 그림으로 피부를 새롭게 성찰하는 연구가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피부란 사고의 대상으로 삼기가 힘든 부분이죠. 춤에서 안무 동작으로 종종 표출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고 잡기 힘든 주제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 피부라는 이 접경 지역을 들여다보고 생각해보고 심지어 만져보는 일은 의식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팔에 주삿바늘이 낸 꼬락서니를 보니 확실히 그렇다는 느낌입니다.

고흐의 그 그림을 통해서 피부를 다시 생각해본 시절이 있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의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 속에서 대지가 익어가는 것, 작물이 수확되고 그 수확되는 작품들이 펼쳐지고 다시 갈무리되는 정경이 한꺼번에 대지에 마치 그려지듯 묘사된 그 그림을 통해서요.  대지가 익어간다는 것을 작물들이 풍경 속에서 여과없이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그 익어가는 시간이야말로 피부의 시간이구나 깨닫고 공감했습니다.
 
피부의 시간이란 익어가는 시간이며, 늙어가는 시간입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피부에 주름이 잡히는 시간인 동시에 그 시간이 복수화되는 것을 인정하는 각성인 거고요. 복수화된 시간 속에서 나이들어가고 익어간다는 것. 인간적 풍경 속에서 대지는 대지 그 자체의 법칙을 준엄하게 관철시키던 버릇을 잠시 유보하고 마치 피부를 가르쳐 주려는 듯이 다소 인간의 음성으로 말하는 듯합니다.  고흐에게 허락된 그 시간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풍요로움을 저도 알고 느껴보고 싶어요. 

자기 피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는 건 보통의 행위는 아닙니다. 피부의 고차원을 꿰뚫어 보려는 것은 삶의 아득한 시간들을 겪는 것과 분리할 수 없는 거죠. 피부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농부일 수밖에 없다는 필요조건을 재확인시켜준달까요.  그 대지 위에 펼쳐지는 복수화된 시간들을 한꺼번에 꿰뚫어보기 쉽지 않습니다.
피부의 고차적인 결들의 배치, 결들의 무늬를 어떻게 간파할 수 있을까요?  그런 눈을 갖고 싶습니다. 그런 안목을 갖고 싶어요. 그런 눈을 갖고 펼쳐가는 행위들이 제 삶을 구성했으면 싶습니다. 고흐가 저 대지의, 저 바깥의 삶을, 자연의 삶을 뿌리치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눈을 하나 획득하는 일이라고 보여줬듯이, 저 자신에게 농부의 눈을 요청해도 되는 건지 자신은 없지만....

# 링거 맞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시 한 편이 불현듯 떠올라 코끝이 시큰거렸습니다. 

- 자화상 37년  / 김광섭

장미를 얻었다가
장미를 잃은 해

저기서 포성이 나고
여기서 방울이 돈다

힘도 아니요 절망도 아닌 것이
나의 하늘을 덮던 날

나는 하품하는
추근한 산호였다

아침에 나간 청춘이
저녁에 청춘을 잃고 돌아올 줄은 믿지 못한 일이었다

의사는 칼슘을 권했고
동무는 술을 따랐다
드디어 우수를 노래하여
익사 이전의 감정을 얻었다

초라한 붓을 들어 흰 조희에
니힐의 꽃을 담뿍 그렸다





      • 제가 어머니 자궁 속에서부터 그렇게 안 먹는 생명체였대요. 4남매 중 저를 품은 임부였을 때 어머니가 가장 못 먹어서 가시처럼 마르셨다더군요. 솔직히 잘 안 먹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이에요. (술은 잘 마셔요. hehe)   

        할아버지가 애가 타서 하시던 충고를 기억합니다. "너무 마르거나 병약하면 너의 밖에 대해 생각할 수가 없다. 니가 자신을 넘어서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 먹는다는 건 너 자신을 유지하며 초월의 행위, 넘어섬의 행위를 가능케 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음식이 도무지 안 먹혀요. 친구들 지적에 의하면 저는 먹는 게 아니라 먹는 척 시늉만하는 거라더군요. 이게 제가 식사자리를 겁내는 이유입니다. 
        재밌는 건 제가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잘한다는 사실이에요. 험험. 해마다 제 김치 마니아인 언니 친구 다섯 분 댁에 김장을 해서 보냈는데 올해는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파김치와 동치미나마 담궈볼까 싶은 생각이 슬핏 스치기는 하지만...... 
        (NOW에서 확! 마~ 가 전달돼서 소심히 고개를 숙였....ㅋ)
        • 건강해야 한다는 조부님의 말씀 참 좋습니다 무작정 조금 더 먹이려는 부모의 맘과 함께 소중하네요 니가 있어야 남이 있게 하지 난 먹는게 한정적이라 단정은 못하지만 남 먹는거 다 비슷하게 만들수 있는데 단 오직 단 감치는 못담가요 김치에 버무리는 양념은 왜 안파는거야 이해를 못하겠음
        • 안먹으면 위가 움직거리질 않으니 배가 당연 안고프지 뭘 먹으면 위가 활동을 시작해 더 먹고 싶어져요 알맞게 챙겨드세요 자신의 몸을 챙기는 자신의 몸이 있으니 알아서 먹는게 좋은점도 많고 한데 너무 안먹으면 백프로 안좋습니다
          • 누룽지 끓여서 먹었어요. (요즘 마트에 다양하게 잘 나와 있음.)


            죽이나 스프는 안 넘어가더니 뜨겁고 구수해서인지 넘어가네요. 쌀은 산성식품이지만 누룽지는 굽는 과정의 열분해 작용으로 약알카리성 식품이 된다는군요. 숙취 해소와 간기능 강화에도 좋다니 오늘 한끼 누룽지 어떠세요?



    • 추워 활동하기가 싫어지면 어제까지 좋았으면서 사는게 안좋네 하는 마음이 생겨요 그래서 겨울이야기로 감이 와 좋네요 건강과 병의 구분은 각자의 눈과 마음이겠고 그것도몰라 하겠지만 겨울의 생각으로 좋아요,전엔 팔에 힘줘봐요 했는데 팔이 늙어 그냥 알아서 잘할듯
      • 뜬금없이 이 시가 생각났어요.




        편지5 /이성복




        늘 멀리 있어 자주 뵙지 못하는 아쉬움 남습니다. 간혹 지금 헤매는 길이 잘못 든 길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고요 그러나 모든 것이 아득하게 있어 급한 마음엔 한 가닥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이젠 되도록 편지 안 드리겠습니다 눈 없는 겨울 어린 나무 곁에서 가쁜 숨소리를 받으며

        • 그래요 모든게 아득하게 있어 위안을 합니다
    • 임플란트도 해 넣고, 어서 건강 회복하세요.
      일하다 신경 써서 이 빠졌다는 사람 문재인 다음 두 번째 봅니다.
      고흐가 눈을 얻었으면 갈까님도 얻겠죠. 이런 노래도 있잖아요~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 킬리만자로의 표범 중에서 -

      자화상 37년 검색해 보니 아래 시구가 빠졌네요.

      드디어 憂愁를 노래하여
      溺死 이전의 感情을 얻었다

      초라한 붓을 들어 흰 종이에
      니힐의 꽃을 담뿍 그렸다

      일부러 그러셨나..
      니힐의 꽃이라..에혀~
      • 허! 포스팅 후 틀린 맞춤법 두어 개 수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지워졌나봐요. (확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부러 뺄 리가 있나요. 마지막 연을 빼버리면 장미에서 허무까지 확장되는, 잃어버린 청춘을 위로하는 이 시의 은유가 환기되지 못하는 건데요.
        한국근대사에서 제가 제일 가엾게 느끼는 청춘은 45년 '도둑같이 뜻밖에 찾아온 해방' 후, 남북으로 분단되기까지 격변의 2년을 겪은 젊은이들이에요. 미국과 소련이 그들의 사회 체제를 이식하여 자국에게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하려고 벌인 살벌한 암투에 휘말렸던 청춘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그시대 청춘의 슬픔과 절망이 확 느껴져서 가슴이 뻐근했습니다. 

        치과 치료는 당분간 이대로 버텨보려고요. (정말 깨끗하게 쏙 빠졌어요. - -)
        보통 치과를 기피하는 이유가 짐작되는 통증과 만만찮은 치료비 때문인 것 같던데 제 경우는 좀 달라요. 저는 의느님 얼굴 바로 아래에서 입을 딱 벌리고 무력하게 누워있는 그 자세가 너무 민망스러워서.... ㅋㅎ 천천히 여성 의느님을 수소문해보든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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