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기안

저는 이제 이런 논쟁을 하는게 좀 쓸모가 없는 것 같아요. 늘 단순하고 투박한 관념만을 이야기하는 사람 vs 비평적, 사회적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의 구도가 벌어집니다. 그러다보니 전자가 늘 주장만 한다면 후자는 그 전자를 설득하기 위해 쎄빠지게 긴 글을 구구절절 쓰는 양상이 되풀이됩니다. 중요한 건 맥락과 디테일입니다. 자유! 를 외치는 분들은 늘 비평적, 정치적 맥락을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은 채 그냥 참고 받아들이라고만 하는 것 같습니다.

복확왕의 퇴출 논란에는 일단 작품을 즐기는 이용자의 연령, 그 작품이 게재되는 매체, 해당 장르의 작품들이 보이는 표현 수위 정도의 맥락이 거론되어야 할 것입니다. 듀게에 있는 분들 대다수는 검열에 반대할 거에요. 문제는 검열을 찬성한다는 입장 곡해가 아니라, 각 매체에는 일정 기준을 가지고 규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거의 전연령이 이용가능한 네이버라는 매체에서, 성적인 묘사는 최대한 간접적으로 나오리라 기대되는 공영방송 수준의 매체에서, "여자가 성접대를 해서 입사했다ㅋ"의 묘사가 과연 무조건적으로 게재되어야하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안의 작품에서 문제시되는 지점은 어떤 묘사 자체보다도 그 묘사가 가리키는 대상과 그 묘사에 담긴 "ㅋ"의 지점입니다. 그는 그냥 농담을 하고 싶을 뿐인데, 그 농담이 비열하고 차별적 성격을 띄고 있어서 네이버라는 국민적 매체에 실리기에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분들에게는 그런 반문을 좀 하고 싶죠. 네이버 웹툰에 일본 상업지 수준의 작품들을 허용해도 되냐고요. 뭐 이런 인질극에 모든 기준을 포기할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대체 왜 일본만화의 욱일기 논란이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모욕 논란이나 우익 논란은 왜 일어나냐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게 있다면 누가 뭘 해도 꼬운 티 내면 안되고 다 얌전히 참고 견뎌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작품의 어떤 표현이 수용되는데는 그 한계치가 있고 분명한 선이 있습니다. 왜 그 선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두루뭉실한 표현의 자유만 이야기하는 걸까요. 가치관과 가치관이 충돌하는 게 맥락 아닙니까...

지금 기안은 자기 작품에서 봉지은이란 캐릭터로 그런 농담을 한 겁니다. "여자들은 성상납하고 회사에 들어가기도 하잖아?ㅋ" 그걸 네이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여자들"이라고 명시해서 말을 한 거에요. 만약 봉지은이 (이름 진짜....) 정말 가상의, 특정한 캐릭터라면 그가 이상하고 현실적으로 괴리되어있으며 그게 일반 여성들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르다는 표현이 있었어야하지만... 기안이 언제 그런 묘사를 하는 작가였던가요. 그저 다른 남자들이 일반적으로 품고 있을 편견을 농담조로 툭툭 던지면서 세상 원래 그런거잖아 하고 자조하는 게 전부인 작가죠.

그게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에게는 좀 묻고 싶어집니다. 본인의 오프라인에서도 잘 모르는 여자들에게 "어떤 여자들은 성상납하고 회사에 들어가잖아?ㅋ"라고 대화를 나누시나요? 강용석이 국회의원 시절에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여성 대학생에게 아나운서 되려면 성상납도 해야 된다고 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게 꽤나 떠들썩했던 일 아니었던가요. 그런 대화가 네이버 같은 대형매체에서 아무 의도 없이 노출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여성에게 성상납을 받는 사회가 그냥 농담거리이거나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소재인가요?

표현의 자유라는 게 아무데서나, 아무한테, 아무렇게 말을 해도 된다는 무제한의 관용은 아닐 것입니다. 작품이라는 픽션세계가 현실이랑 별도로 분리된 진공세계라서 어떤 표현이든 다 재미나 농담으로 수용되는 것고 아닐 것입니다. 작품은 창작자가 수용자에게 던지는 또 다른 언어입니다.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넌 어때? 그 언어는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말해지는 장소에 따라, 듣는 사람에 따라 당연히 자유의 정도와 비판적 반응도 다릅니다.

네이버 웹툰은 아주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편적 언어를 말하는 곳입니다. 그 언어는 공적인 매체로서 욕설도 제한을 둘 만큼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다수의 이용자들에게 어떤 여자가 성상납을 한다는 내용을 킬킬대면서 말하는 게 과연 허용되어야 하는지, 그것이 비판과 분노의 의도가 아니라 그저 농담거리로 소수자를 비아냥거리는 게 괜찮을지 좀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저는 이제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의 길고 세세한 주장을 좀 듣고 싶습니다. 그저 무조건적으로 모든 비판을 금지하자는 건 아닐 테니까요. 어떤 작품들은 비판이 가능하고, 어떤 작품들은 비판으로 부족해서 퇴출까지도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맥락없이 무조건적인 옹호가 아니라, 왜 여자가 성상납한다는 비열한 농담이 네이버 웹툰이라는 매체에서, 여자들이 직장 내 권력형 성폭력을 당하고 무고범으로 몰리는 현실에서 어떻게 유효할 수 있는지, 작품이 여성을 바라보는 태도가 일베랑 얼마나 닮아있고 그것이 공적 매체에서 허용될 수 있어야 하는지, 그런 걸 좀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아무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유만 주구장창 외치면서 마스크 쓰기를 반대하는 미국사람 같은 주장보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그 명확한 이유를 좀 듣고 싶습니다. 이것은 단지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소수자 차별에 관한 문제입니다.
    • 래리 플린트 같은 인간도 허슬러를 발매할 표현의 자유가 있듯이, 독자들도 허슬러와 래리 플린트를 비판할 표현의 자유는 있는 것인데 한쪽만 인정하고 다른 한쪽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문제죠.
    • 비판은 자유이고 퇴출요구는 파쇼적 겁박입니다
      • 저는 이런 주장들이 무의미하다는 겁니다. 방송인들이 무슨 발언을 해도 허용해야한다거나 표현의 자유를 무조건 보장해야한다는 합의는 없잖아요? 이를테면 김구라는 과거 위안부 할머니 비하 표현으로 방송에서 퇴출당했었습니다. 장동민도 여혐 발언으로 거의 퇴출됐었구요. 그러니까 저희는 지금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소수자나 약자를 함부로 비하하는 발언을 할 때 방송사에서는 충분히 퇴출시킬 수 있다고요.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 이전에 하지 말아야 할 말에 대한 금기가 협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여자들은 성상납해서 회사 들어가잖아ㅋ"란 말을 자기 만화에 대놓고 그린 방송인이 공영방송에 나오는 게 과연 적합한지 그 맥락을 곁들여주셔야죠.


        Songno님이 저에게 해야될 말은 원론적인 말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자세한 맥락과 비판에 대한 본인의 비판입니다. 지금 저희는 영화검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샘 오취리의 블랙페이스 비판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의적인 주장이 아니라요.
        • 김구라와 장동민은 방송에서 자기 의견을 말했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겁니다. 작품 속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자신들이 꺼낸 리얼리티라고요. 공영방송에 나온 작가가 그리는 캐릭터는 모두 공공의 인물이고, 작가 그 자체가 되는 겁니까? 모르실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하게 매번 코인을 타시네요
    • 표현의 자유가 그렇게 좋으면 비판의 자유도 인정해야죠.

    • 표현까지는 좋은데 남들이 그걸보고 따라하는 게 문제입니다.

    • 미소지니가 COVID-19만큼 전파력이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스크를 쓰는 일은 귀찮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 논지와 별개로 '봉지은'은 작가의  대학후배인 실존 인물을 그대로 가져온 거더라구요(이름까지). 나혼자 산다에 기안 화실에서 같이 일하기도 하는 모습이 나왔었습니다. 

      •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작가라면 어느 정도 이름을 바꿔서 캐릭터를 만들었을 것 같아요. 작품 내에서의 함의가 있으니까...
      • 그래서 기안이 더 더러운 작자인 겁니다. 그런 이름의 실존인물을 만화내의 여혐적 맥락에 이용하고선, '무슨생각한거임? 실제 이름인데 낄낄' 이런 사고방식이겠죠. 그래놓고 해당 캐릭터의 별명은 봉지래요. 정말 더러운 놈입니다.
    • 기안84 논란의 쟁점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외설의 사회적 승인'입니다.
      비판자들의 문제의식은 누군가의 '빻은 사상'이나 그 공표에서 비롯된게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영향력과 보상이 과도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거니까요.

      겨자가 스포츠 신문에 연재한 숱한 만화가들 중에서 하필 박인권을 언급한 이유는 그의 만화들이 공중파 드라마로까지 제작되었기 때문이고, 웹툰 작가들 중에서 기안84를 비판하게 된 것도 그가 네이버라는 거대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중파에 출연하는 셀럽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른 창작물들과의 비교로 쉽게 알 수 있는데, 신문 연재 만화나 웹툰이라는 장르에서 박인권이나 기안84 그리고 그들의 '작품'보다 '빻은' 무엇들은 발에 채이도록 널려있음에도 크게 문제시 되지 않거든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거나, 알더라도 하위문화로 용인해왔죠. 도시가 상수도만이 아니라 하수도 또한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회는 외설의 수요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공급을 허용한 겁니다. (성적 외설의 금지로 인해 이 수요가 도착적인 방식으로, 하위문화 컨텐츠부터 김어준이나 전광훈에 이르기까지, 충족되고 있다는게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제 관점입니다만 이는 별론이겠고.)

      현재의 상황은 인프라가 손상되면서 도시의 하수가 상수에 혼입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겁니다. 지금까지는 외설이 사회의 주류에서 분리, 은폐됨으로써 제한된 유해성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이제 경계가 위협받는다는 인식이 발생하면서 그 유해성을 재평가하게 된거죠.

      왜 이제와서? 쪽이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라 보지만.. 으음..
      • 네 그렇다면 지금 기안에 대한 비판은 하수를 하수도로 내려보내는 일종의 자정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 기안의 무지가 표현에 반영된 것이겠지요...


      헨리밀러도 생각나고 나보코프도 생각나고....


      성을 대하는 이야기의 분자와 분모의 공간이 점점 쪼그라들다가 외면당할까요???


      현실을 일부를 재현하는것....그런데 그 현실이 상상이고 또 그것이 불편하면.....


      불편함이 검열의 기준일까요?

    • 소비자 불매운동은 기업의 영업활동을 방해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 비약이 심하신 건 애저녁애 알았지만 매번 기대 이상이네요. 칼럼도 아니고 논평도 아니고, 하다못해 sns 바낭도 아닙니다. 수년 간 연재한, 가상의 인간군상들이 서로의 인과관계를 안고 사는 또 하나의 세계죠. 당연히 만화를 봤을리는 만무하시겠고, 본인 취향이 아닐 테니 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 취향도 아닙니다)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핍진성이 떨어진다면 그 자체로 비판하면 되는 겁니다. 듀나님도 그 저명한 멘데이트를 비판할 때 각본가의 밥줄을 끊으라고 주장하진 않으셨어요.


      그러고 보면 님도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이란 걸 해보셨을 테니 이번 기회에 1화부터 정주행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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