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그냥

곧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을 곁눈으로 흘깃거리며 맥주 한 캔을 땄습니다. 몇달 만에 접하는 알콜이에요. 이 시원함이 위 안에서 밤샘 작업의 고단함을 달래줄 거라는 기대는 없으나 세포들의 미세한 휘청거림은 흡족합니다.
(뻘덧: 형부가 결혼 전 우리집에서 첨 일박했던 날,  아침에 제가 눈 비비며 일어나더니 물 대신 맥주 한 캔을 원샷하는 꼴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던 게 생각나네요.  그보다 아버지가  더 잘 '히야시'된 맥주로 바꿔주며 오구오구~ 내 새끼 시원하지? 라는 모습을 보고 숨멎 했었다고. - -)

몇달 만에 제 아파트로 돌아오니 까마귀들의 까악대는 외침이  도드라져 들려요. 베란다 창을 열면 흰 깃털과 검은 깃털이 엉터리로 디자인된 새들이 이차선 도로 위까지 낮게 날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비의 비릿한 냄새를 맡은 저 최종 진화물이 지구의 이상 기류를 느끼는 중인 걸까요? 지구의 개체들이 서로 접속헤 만드는 '연합환경'에 대해 골똘해지느라  또 맥주 한 캔을 땁니다.  
까악~ 대는 새소리를 들으며 인간이 새의 감각을 알 수는 없는 거구나 라는 안타까움에 잠겨 있습니다. 당연한 거겠죠. 같은 종인 타인의 감각도 잘 읽지 못하는데 다른 종의 감각을 어떻게 읽어내겠어요.

여긴 김포공항 근처라 (지금은 무뎌진) 뱅기가 나는 소리가 친숙한 곳이에요. 방금 전, 우웅~ 하는 비행소음에 까마귀와 이름 모를 새들이 감각의 촉을 날카롭게 세우고 까아악~ 조잘조잘 응답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인간인 저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불가능한 감각이라 환경에 반응하는 저 선율이 놀랍고 신기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새들에게  휘파람을 불거나 주술을 걸어보거나 찬탄의 한숨을 내쉬는 것 정도인데, 뭐 다 부질없는 짓이죠. 저로서는 불가능한 감각이 내는 환경적 선율이 부러울 뿐입니다. 
아서 클라크였나요? 인간의 의식은 우주의 초의식으로 점프하기 위해 준비된 전능한 작인의 옵션이라고 주장했던 이가. (곰곰)

'생명은 '연합환경' 속에서 새의 감각으로 저 하늘을 하늘답게 풀어놓는다'는 게 과학자들의 논리지만, 우주의 논리는 불완전한 인간에게 의식이라는 성가신 부대현상-  마치 양자도약처럼 치명적인 이동을 위한 플랫폼-  이 있다는 걸 여러 모습으로 암시해주는 것 같습니다. 
의식을 깨뜨리기 위해 전두엽도 공격하고 뇌량도 절단해왔던 해부학 영상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아무튼 의식이란 것이 왜 포스트휴먼에서,  아니 포스트휴먼에 이르러야 하는가 라는 중요한 질문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 오구오구 내새끼 할머니가 그러는데 아버지도 그러시네요 의식이야 다른 동물들과 같겠지만 인간은 언어의 습득으로 뇌가 한가하지 않을 뿐인데 소멸 후 의식을 남기는 문명이 있을거라는 생각도
      • 실제로 입밖에 내놓는 말이 아니라 눈빛이 그런 거예요. 오구오구 내 새끼~ 소위 말하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 


        몇달 본가에서 지내는 동안 부모님 두 분이 밤낮 없이 제가 눈감고 있을 때마다 조용히 다가와 제 코에다 검지 손가락을 대고 제대로 숨쉬고 있는 건지 확인하곤 하셨어요. 강심장이라 그순간을 모르쇠로 넘기긴 했지만 역으로 얼마나 맘 아프고 뼈가 동강나는 느낌이었는지... 

    • 혼잣말.


      시간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음악을 들을 때나 술을 마실 때 이런 느낌이 또렷해지는데,  그 둘이 윤활유 역할을 절묘하게 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 느낌에 잠겨 정신의 촉수를 낮추고 미세한 맛들을 촙촙 맛 본 하루였다.  내가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식 중 하나다. 그렇게 조직해 소비해버리는 시간도 뜻있다.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의미있는 무엇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순전히 내게만 의미 있는 것, 남들에게까지는 의미 없는 생각/느낌/판단 같은 것. 


      독신자가 좋은 점은 알콜이 던져주는 대로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지금 살아 있다는 것만 만끽하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막 써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몇달 만에 허투루마투루 하루를 소비하고 나니 음...  뭐?

    • 영원히 혼자 떠도는 길은 쉴 곳도 많아 특권적 입니다 도착할 곳은 없으나 자유의 길이니까요 로드 스튜어트는 sailing 에서 그대 곁으로 가 자유를 얻는 항해라 노래했으나 실은 목적지가 없어야 진정한 자유죠 어디님은 자유인 입니다 좀 힘들긴 해요
    • 오구오구 내새끼 꿀떨어지는 눈빛- 상상만으로도 부럽습니다.


      타자에게 그런 눈빛을 퍼주고있는 중인데 점점 내안의 꿀이 바닥나는 걸 느낍니다.



      • 화양연화의 시절을 지나시는 중인가 봅니다. 그시절이 원래 기쁨의 크기만큼 갈등과 불안과 고단함도 큰 법입니다. (도 통한 도사 같죠? ㅋ)


        후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은혜로운 시간이니 갈피갈피 만끽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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