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동물/ 바위

1. 인간은 '동물'입니다. 교통사고 이후 몸의 이런저런 통증에 시달리노라니, 호모 사피엔스니 만물의 영장이니 하는 고상한 지칭에서 떠나 '나는 동물이다' 라는 자각이 또렷해졌어요.
인류는 '지식의 시대'였던 근대까지의 이유기와 성장기를 지나 '생각의 시대'라는 현대를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문명/문화적 생활을 유지하면서 자기가 동물임은 망각하고 살죠. 대부분의 삶이 배우고 생각하고 창작하는 지적/정신적 행위에 집중돼 있으니까요.

움직이기 힘든 몇달을 보내며 몸을 단련시킬 수 없다 보니, 근육이 점점 느슨해지면서 지적인 작업의 집중력과 기억력도 떨어지는 걸 실감 중입니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몸을 잘 단련시켜줘야 두뇌도 삐걱이지 않고 작동한다는 것,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격언이 몸에 방점이 찍힌 진리가 아님을 절감해요. 
요즘 '걷기'로 운동을 시작하고 있는데, 삼십 분만 걸어도 숨소리가 귀에 공명될 정도로 호흡이 가빠집니다.  그래도 누워지내다가 직립해서 여러 동작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이죠. 특정 부위만 움직이며 그것에만 집중해서 살아가는 패티시스트는 면했으니까요. 

2. 많은 시인들이 바위의 존재형식에 대해 노래해왔습니다. 침묵과 단단함의 표상이기 때문일 테죠.
生의 오류에 타격을 입어 보지 않은 사람은 바위의 삶을 꿈꾸지 않을 것 같아요. 아니 아예 바위의 존재를 의식할 필요조차 없는 거겠죠.

언젠가 설악산 겨울 등반 중에, 눈 그친 하늘 아래에서 가마득한 적막으로 빛나는 바위를 본 적이 있습니다. 
푸른 듯 잿빛 기운이 돌던 정면. 그 우툴두툴한 표면을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더니 바위의 크기는 알 길이 없고, 말 문을 닫고 사는 저의 나날이 확연히 느껴지더군요. 그리하여 침묵하는 바위의 슬픔은 저의 위안이 되고, 오랜 세월 단단한 바위의 승리는 저의 슬픔이 되었습니다.

바위는 하나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바위 스스로는 그런 자세마저도 자각하지 않는 것이죠. 그런 승리, 그런 슬픔을 생각하면 때때로 기쁘고 때때로 아득합니다. 그러나 뭐 바위는 바위, 저는 단단함에 금이 가기 시작한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간직할 추억도 있고 지킬 비밀도 있고 정신과 의지를 깨우고 있으니 not bad. 

    • 아프고 낫으니 열심히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인간이 원래 먹이감 잡으러 하루종일 어슬렁거리게 만들어졌네요 무심한 바위 부럽죠 나랑 안바꾸지만 난 돌아다녀야해서' 어쨌든 한세상 not bad 입니다 good도 아니고 그럼 뭐냐 별 둘 ㅡ평점
      • so so 보다는 낫죠. 그래도 쓰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acceptable에서 excellent 까지 스텍트럼이 넓은 표현이니 평점은 0.5 정도 올리는 걸로~  견딜만 하면 좋은 것이죠. 스코트랜드 인들은 네바드 ne bad로 발음히던데 이쪽이 맘에 들지만 한국에선 써먹기 적당치 않아서. - - 

    • I am a rock
      I am an island

      • 이 가사를 들을 때마다 자동으로 황동규의 시 중 "바위 위에 신발 한 켤레"라는 행이 떠올라요. 


        바위의 꿈은 섬이죠. 단 꿈을 꿀 수 있다면.



        • 시인은 어렵게 살아야 2 / 황동규

          이백(李白)은 꿈속에서 고향땅 밟다가
          채석강가에 신발을 벗어놓고
          달빛 되어 물 속으로 사라지고
          백여 년 뒤 최치원(崔致遠)은 세상 온갖 구석 떠돌다
          가야산 홍류동, 타오르는 단풍 속으로 증발했다.
          바위 위에 신발 한 켤레.

          호머도 굴원도 떠돌이 시인,
          신발 성한 날 어디 있었으랴?
          그들이 귀찮은 신발 벗어놓은 곳.
          삶의 맨발에 뛰는
          환한 실핏줄!

    • 이렇게 좋은 글이 있는 이 곳을 떠날 수 없지요.
      • 뜨끔/부끄해서 본문을 읽어보다가 '지식의 시대'로 써야 할 걸 '지적인 시대'로 쓴 걸 발견하고 수정했습니다. 개운해요. :)

    • 부동이라는 깨달음은 부자유라는 벌을 받을 때 비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디로갈까님이 너무 많이 깨닫기보다 움직임에서 다른 깨달음들을 휘발시키며 보다 건강해지시길 바랍니다. 역설적으로 쾌유를 바라게 되네요.
      • 흠. 벅찬 과제를 제시하시네요. 에피파니epiphany를 느끼기만 해도 대단한 거지만,  새롭게 따갑게 절실하게 느낀 후 serendipity를 경험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항상 마음 언저리에 있습니다.  근데 그건 노력에 더해 운도 따라야 가능한 것 아닌가요. 아무튼 제가 애매모호한 상태를 (시적 세계는 제외) 견디기 어려워하는 성향이니 영 불가능하지는 않을런지도... (일단 큰소리 쳐봄. )
    • 한겨울 설악산 울산바위가 생각나네요. 허리를 펴면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데 발밑은 미끄럽고, 바위 끝에서 날 위태롭게 지탱해주던 공포의 철계단은 얼음장보다 더 차가웠죠. 기억은 참 신기한 것이 다신 그쪽으로가지않으리라 다짐하고 발끊은지 어언 25년이 넘었는데 요즘엔 울산바위가 잘 있는지 궁금하더라구요.
      • 울산바위 코스를 끊게 된, 그 다짐을 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하지만 안 갈쳐주시겠죠. (혼자 쌈 싸먹는 어법 - -)


        계조암에서 울산바위까지 오르는 그 1 킬로미터의 산행 풍경은 요즘 최고의 아름다움을 구가하고 있다고 해요.  근데 예전보다 산행객이 줄었다네요. 거기 사는 토실토실 다람쥐와 이맘 때 예쁘게 피는 수수꽃 다리 꽃이 문자로 알려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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