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온라인 수업 첫 날 단상

 - 미리 알아두셔야할 것. 현재 시행되고 있는 초중고 온라인 개학에 있어서 수업 방식은 '사실상' 그냥 교사 재량입니다. 그냥 시간 맞춰 EBS 컨텐츠 틀어줘도 됩니다. 그냥 기간 정해놓고 그 기간 안에 EBS 무슨 강의 몇 번부터 몇 번까지 들어라~ 해도 별 문제 없습니다. 물론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진행해도 됩니다. 교사들이 직접 영상을 제작해서 틀어줘도 됩니다. 그냥 다 됩니다(...)

 근데 제가 있는 곳은 학교장의 고집으로 전교사가 '줌'을 통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고 있죠. 뭐 그렇습니다.



 - 1교시. 첫 시간입니다. 담임 교사들 같은 경우에는 준비 기간 동안 매일매일 학생들과 줌으로 조종례하고 전달사항 전하고 하면서 연습을 해둬서 익숙한 상태인데 저는 올해 담임이 아니라서요. 프로그램 설정과 작동법은 다 알고 수업 준비는 해놨지만 좀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교실로 갑니다. 게다가 애들도 담임이랑 대화하는 게 아닌 그냥 교과 수업 참여는 처음이니까요.


 일단 애들이 다 들어오는데 15분이 걸렸습니다(...) 1교시라 자는 놈도 있었고 처음이다 보니 비번을 몰라 못 들어오는 놈도 있었고 뭐 다양했습니다. 교실에 비치된 비상연락망으로 안 들어온 학생들에게 전화를 하고 난리를 쳐서 결국 다 입장을 시켜 놓고 나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그런데 '소리가 심하게 끊겨서 안들린다'는 애들이 있습니다. 확인해보니 1/3정도가 그렇다네요. 이러쿵저러쿵 해보다가 결국 해결책을 찾았습니다만. 그게 뭐냐면 학생들 마이크를 다 비활성화 시켜 버리는 겁니다. 30명이 내는 조그만 소음들이 모여 제 노트북에서 크고도 복잡한 소리가 되면서 제 목소리가 잘 전달 안 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 같네요.

 그래서 비활성화로 문제는 해결했는데, 그러고 나니 혼자서 아무 소리 없는 애들을 상대로 떠들고 액션(?)을 하는 게 심히 정신 나간 사람 같습니다. 혼자 수업하고 드립 치고 리액션까지 자연스럽게 하고 노는 EBS 강사들이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제 좀 뭘 해볼까... 했더니 그때부턴 또 자꾸 제 접속이 끊어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문제가 아니라 걍 제 노트북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정확히는 이게 제 개인 노트북(이라고 적고 '서피스 프로'라고 부르는)인데. 유선 랜포트가 없어서 usb 허브로 연결을 하는데... 학교에서 쓰는 랜선이랑 제 usb 허브가 뭔가 미묘하게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접속 끊김과 재접속을 반복하다가 심신이 지친 상태로 첫 시간은 끝.



 - 첫 시간이 끝난 후 컴퓨터 기자재 관리하는 분에게 찾아가 무선 공유기를 빌렸습니다. 이러면 이제 접속이 안 끊기겠지!!! 그러고 다음 수업.

 오. 역시 전 훌륭한 교사였어요. 안 끊기고 잘 됩니다. 심지어 애들 말로는 마이크 안 꺼도 목소리 잘 들린대요. 그래서 신나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한 시간 종료.



 - 쉬는 시간에 교무실 전화가 울립니다. 학부모에요. 자기 딸이 수업 접속했는데 비번을 모른다고. 몇 학년 몇 반인지 물어보고 우다다다 3층까지 달려가서 비번을 물어보고 다시 우다다다 내려와서 비번을 알려드립니다.

 이걸 오늘 세 번 했습니다. ㅋㅋㅋ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경험하셨겠죠.



 - 그리고 들어간 다음 수업.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들리는 하울링(?) 같은 소리. 모두에게 들려서 다들 괴로워합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그룹을 나눠서 차례로 마이크를 비활성화 시켜봤으나 정확한 범인이 안 나와요. 결국 다시 모두 마이크 끄고 혼자서 중얼중얼...;



 - 방금 전에 그 하울링의 범인을 찾았습니다. 그 반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하다 보니 두 놈이 같은 방에 앉아서 라랄랄라 수업을 듣고 있었다네요. 갸들 마이크를 꺼버렸더니 조용해졌더랍니다. 아까 제가 시켜봤을 땐 아마 그 둘이 말을 안 들었던 듯(...)

 그런데 잠시 후에 그 담임에게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담임이 자기들을 범인으로 지목해서 애들이 상처받고 울고 있다고 화를 내시네요. 아 네.........



 - 투덜투덜 적어놨지만 의외로(?) 놀랍게도(??) 오늘 학생들 출석, 참가율은 아주 높았습니다. 저희 학년의 경우엔 한 명도 빠진 애가 없었구요. 또 마이크를 켜놓고 진행하는 상태에선 크게 딴짓하거나 그런 경우도 없었구요. 대체로 열심히 들으려고 애쓰고 따라오려고 노력을 해서 놀라웠네요. 지난 주에 시작한 3학년 교사들 같은 경우엔 벌써 적응 돼서 그럭저럭 할만 하다고들 하구요.

 다만 1:30으로 진행하는 화상 수업이라 학생들에게 골고루 신경 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잘 듣고 있겠거니...' 하고 혼자 쑈를 하게 되는 전개가. ㅋㅋ 그리고 활동 같은 걸 시키면서 하려면 지금 이런 환경과 장비, 조건으로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고 교사들 중 이런 부분 연구하는 분들이 샘플을 보여주지만 그건 밥 아저씨가 그림 그리는 거랑 비슷한 거라서요.


 뭐 저도 곧 적응 하겠죠. 애들도 적응할 거구요.

 하지만 얼른 오프라인 개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ㅋㅋㅋㅋ


    • 아는 사람 중에 고1하고 고 3이 있는데 어땠으려나 싶네요.
      • 아 그런데 요새 줌의 평가가 이젠 까이고 있더군요. 보안이나 이용자 문제 때문에...
      • 고등학교는 오히려 더 편안한 마음으로 EBS 컨텐츠 감상(?)을 과제식으로 내주는 경우가 많다고 듣고 있습니다.


        입시가 최우선인지라 수업보다 입시 준비에 방점을 찍어도 교사들이 날로 먹는다는 비난은 거의 안 나오니까 서로 좋습니... (쿨럭;)

    • 코로나19 이후 뉴노멀에 온라인 원격수업의 활성화도 손꼽히던데.... (....)

      • 대한민국 학교의 첫 번째 기능은 수업이 아니라 탁아(...)라서 그건 좀 어려울 듯 합니다. ㅋㅋㅋ

    • 그 어떤 후기글보다 너무 재밌어욬ㅋㅋㅋㅋ

      연재를 부탁드립니다(?)
      • 생각보다 애들과 교사들이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아서 시리즈가 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ㅋㅋ

    • 오 여러 방법중에 가장 빡세보이는 경우네요. 선생님이 동영상 강의를 촬영해서 보거나 이비에스 활용하는 수업 방식이 많더라구요. 애들도 들어서 알겠죠 자기 쌤들이 고생하고 계시다는 걸ㅎㅎ 애들 넘 예쁘네요. 쌤들 고생 많으십니다.

      근데 애들 울었다는 거 보고 육성으로 터지네요. 어이구야 소리가 나오면서도 귀여움ㅋㅋ
      • 솔직히 빡세기만 하고 실질적 효과는 모르겠습니다. 소리 뚝뚝 끊기고 화면 작아서 상호작용도 힘든데 이런 거면 '지식 전달' 차원에선 차라리 EBS 컨텐츠나 사전 녹화 영상 시청이 훨씬 나을 것 같거든요. 다만 말씀대로 '아 이 학교 선생들 애 쓰네'라는 정도의 전시 효과 같은 건 있겠죠. ㅋㅋ


        애들은 귀여울 수도 있지만 전화해서 성질내시는 학부모님은 귀엽지 않았습니다... ㅠㅜ

    • 초등과 중등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는데 아침에 집에서 직장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아침이 제일 바쁜데 ㅜ ㅜ 


      아이가 e-학습터로 수업하려니 학교 홈페이지로 들어가게되고 로긴을 해야하는데 아이디와 비번이 뭐냐고..


      얘야 엄마 지금 바쁘니 수업 잠깐 듣지말아라


      그사이 알고지내는 같은 반 아이 학부모한테서 연락이 와서 아무개 왜 수업 안들어왔냐고 학교 홈피 접속은 무시해도 된다고하더군요.


      그래서 오른손으로 직장 일하면서 왼손으로 집에 전화해서 수업들으라고 했습니다.


      점점 나아지겠죠. 


      로이배티님은 좋은 선생님이신 것 같아요.

      • 담임 교사들 아침에 출석(?) 확인하는 것도 빡세요. 채찬님이 당하신 그런 일을 해야 하는데 애들 출석 확인 시간은 9시 정각이고 1교시 수업이 있을 경우 15분 안에 다 출석을 시켜야 하니... ㅋㅋ 안 그래도 딱 그 말씀들 하시더라구요. 학부모들이 출근할 시간이라 연락을 잘 못 받으신다고. 에브리바디 다 같이 고생 시즌입니다. 




        음... 그거야 뭐 제가 글 적을 때 나름 긍정적인 모습만 골라서 적기 때문에... 하하하하;;



    • 울긴 왜울어.... 고등학생 아닌가요? 엄마가 그런걸로 전화하면 X팔릴 것 같은데.. 현장감 넘치는 후기 잘 봤습니다. 고생 많으시네요.
      • 중학교이고 1학년이라 사실상 초딩이에요. ㅋㅋㅋ 


        뭐 이 시국에 평소보다 고생 안 하는 직종은 없겠죠. 잘릴 걱정 없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 중1이면 인정. 애기네요. 

    • 고생 많으시네요, 아무래도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쓰시면 하울링 문제는 줄어들지 않을까 싶네요.
      • 그게 본문에서 말한 두 학생이 나란히 앉아 각자 폰으로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발생시켰던 하울링이었던 것 같아요.


        아예 학생들이 모두 헤드셋을 착용하면 굉장히 좋아질 것 같은데, 하루 종일 그러고 있으라고 하기엔 불편도 불편이고 집에 헤드셋이 없는 애도 많겠고... 그렇네요. ㅠㅜ

        • 앗!... 로이배티님만 쓰면 될 지 알았더니, 모두가 모두에게 쌍방향이라 해결이 힘들군요. 모든 학생들은 무리겠죠 ㅠ

    • 오프개학은 언제쯤 가능하려나요? 한 두달뒤?
    • 큰 애 학교는 일반고임에도 선생님들이 녹화해서 올려주고 계시는데요

      Ebs보다 친근감(좀더 사적인 멘트가능. 라떼는 말이야...)있고 일방향이지만 선생님들하고 친숙해졌어요 개중에는 담임쌤인 경우도 있으니 고생이 헛되지는 않은 거 같아요


      그래도 학교가고 싶대요 제 평생 애들 입에서 학교가고 싶다는 얘기가 나오는 시절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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