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사람

사람 변하는 거 쉽지 않다고 하죠.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뭐 그런 말도 있고요. 특히나 부부 관계에 있어 인생 선배들이 주로 하는 조언에 상대방이 변하기를 기대하지 말라. 같은 내용이 많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백가지를 해주는 것보다 상대방이 싫어하는데 난 좋아하는 (또는 아무것도 아닌) 그 한 가지를 고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임을 세월이 흐를수록 더 절실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음 그런데 드물게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 사람을 아는 주변인들도 조금의 예상을 하지 않았던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정말 ‘다른 사람’이 돼버리는 경우요. 사소하게는 입맛 같은 것들도 그렇고. 음악이나 영화 같은 취향의 영역도 좀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요즘 제가 자주 주변에서 듣는 말은 “니가 아이돌을 좋아할 줄 몰랐다”입니다... 쿨럭. 그래서 떠오른 기억들이 있는데요.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니가 아이돌을 좋아할 줄 몰랐다 소리를 듣다가 떠오른 게 아니라, 최근 불거진 신천지 사태로 인해 떠오른 것 같기도 하네요.

제 이십대를 관통하며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있었어요. 어린 나이에 이미 업계에서 상당히 인정을 받고 작품 활동을 하던 사람이었죠. 사람이 어찌나 총명하고 고상한지 그 언니랑 같이 있음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았어요. 목소리도 신비로울 만큼 좋아서 은은하고 낭랑하게 퍼지는 그 목소리의 여운에 취하는 기분이었죠. 차분하고 어여쁜 자태도 정말 좋았는데..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피우고 하루 종일 담배를 펴도 신기하게 좋은 냄새가 났어요. 아기 얼굴처럼 말갛고 흰 피부에 쌍꺼풀이 없이 큰 눈. 오뚝한 코. 적당한 길이의 살짝 얇은듯한 입술,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는 또 어찌나 영롱한지.

그 언니가 얘기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기만 해도 제 마음에는 일종의 감동이라든지 설렘 같은 것이 늘 서렸어요. 어쩐지 애틋한 기분도 들었고.. 그 언니가 저를 부르던 애칭이 있었는데 “**아...” 하면서 살짝 말끝이 잦아드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물끄러미 그 언니를 바라보곤 했죠. 재능 있고 고상한데다 아리따운 젋은 예술가. 누구보다 순수했고 성실했던 사람. 그런데 그 언니가 성실하게 종교에 입문하더군요. 개신교이긴 한데 굉장히 공격적으로 포교 활동을 하는 교회였어요. 우리의 대화는 기승전우리교회안올래로 바뀌었고.... 그걸 계속 견딜 수 없었던 저는 마음의 소파 같은 한 사람을 보내야만 했죠. 신천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교회도 성령을 받은 목사를 섬기는 교회였어요. 그 목사가 기도를 하고 손을 대면 아픈 사람도 낫는다는.

저는 지금도 정말 모르겠어요. 그 언니가 왜 그런 종교에 빠졌는지. 소위 힙스터라고 불리는 무리 중에서도 순도 200%짜리 힙스터 영혼인 사람이었는데 말예요. 그러면서 한편으론 회의론자이기도 해서 종교나 샤머니즘에 무척 냉소적이었거든요. 심지어 몇몇 작가들이 협업한 프로젝트에서 동료 작가가 개신교인이란 이유로 트러블이 나기도 했었던 그 언니가.... 왜.


그 이유를 그 언니가 직접 얘기를 해줬는데, 그녀는 프랑스 시골 마을로 여행을 가서 두 달 정도 살다 온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심심해서’ 성경을 읽었다고 하더군요. 그 언니는 어릴 적부터 굉장한 다독가였어요. 그런데 그 성경을 읽다가 그만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신의 계시요. 한국으로 돌아가서 사역하라는. 저는 사실 이 부분은 믿었어요. 그 언니가 뭐 그런 걸로 사기를 치겠나요. 정말 목소리를 들었으니 들었다고 했겠죠.

암튼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 언니를 저는 점점 감당할 수가 없었고, 이제는 어느 곳에서 어떻게 쓰러지든, 무엇에 슬프고 무엇에 기쁘든. 아무런 소식도 모르는 익명이 돼버렸네요. 한때는 서로를 소울메이트라 부르던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에게 익명 1이 되다니. 이 언니의 “**아..” 하면서 저를 부르는 그 목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그리고 그 언니가 진심으로 저를 안타까워했거든요. 너도 거기서 그러고 있으면 안 되는 앤데.... 영적 허기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어.. 왜 주님을 만나지 못하니.. 하면서 대성통곡을 하며 슬퍼하기도 했죠.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저를 보면 가슴이 찢어질 거 같다고 괴로워했어요.

그녀가 들은 신의 목소리를 따라 잘 살고 있겠죠. 부디 아프지 말고 건강하길.
밥은 안 먹어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생명수와도 같은 사람인데, 물감이랑 캔버스 살 돈은 넉넉하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 아멘... 하느님이 설마 내버려뒀을까요(저도 무교입니다.)

      • 마지막으로 만난 날. 제가 빌려줬던 코트를 입고 나와서 "**아.. 나 이거 줘." 라며 싱긋 웃던 얼굴이 눈에 선하네요. 가진 돈 다 헌금하고 거의 빈털털이로 다니고 있었는데. 부디 주님께서 그 언니를 잘 보살펴 주셨길...
    •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느꼈을 때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면... 참 안타깝네요.   

      • 프랑스를 가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사진도 진짜 잘 찍어서 그 언니가 찍은 사진과 그린 그림으로 책을 만들기로 기획까지 다 마친 상태였는데..... 오늘따라 참 그립네요. 밤새도록 작업실에서 함께 듣던 음악들, 물감 냄새. 연필 냄새... 그녀의 미소와 목소리..
    • 교회로 입문한 분들 가운데 예수의 음성이나 환영을 봤다는 경험담을 말씀하시는 경우가 제 주변에도 많아요.  
      이게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긴 합니다. 정신병리학적인 무언가인지 아님 신내림의 다른 형태인지 혹은 진짜 영성적인 무언가인지 말이죠. 

      • 그러게요... 태어나 한번도 환청 환시를 경험한 적이 없는지라. 심지어 가위도 안 눌리는 인물.. 들었으니 들었다하고 봤으니 봤다 할텐데 말예요. 사실 지금 알고 지내는 어떤 지인도 종종 '그것'을 봅니다.....신이라 불리거나 악령이라 불리는 그것.
    • 속으로 너무 외롭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요 아주 혼자인 사람은 살아가며 스스로 주체가 되지만 오히려 사회적으로 똑똑한 사람이 자신을 대신해 줄 누굴 찾는 의존성 인격장애를 겪게되기도 한다고.

      • 흔히 '똘끼'라고 부를만한 독선이 없으면서도 작품은 굉장히 독창적이어서 더 좋아했었어요. 오히려 저보다 더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좋아했고.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진행하는 것도 좋아했던 사람이었죠... 속으로 너무 외로워서 늘 사람들과 함께 하려 했던 걸까요.. 이후로 그 언니가 자신이 그렇게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음악 작업을 도모한 이유가 다 영적 허기 때문이라고 정의를 내리긴 했었죠.
    • 이건 글쓴분이 달라진 게 아니라 아이돌이 달라진 거겠죠. 행사시장이나 다른 수익창출 창구가 사라진 지금 마켓에 적응하고 살아남은 아이돌은 최소한 해외진출에 성공한 급이거나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구축한 아티스트로 업그레이드 된 문화상품이니까요.

      • 아이돌 수준 높아졌다는데 소심히 공감..
      • 사실 아이돌 좋야하는 게 방탄 한팀뿐이라 어디 가서 명함 내밀기 좀 그렇긴 한데, 케이팝 아이돌의 상향성은 (특히 보컬과 퍼포먼스를 겸비한 라이브가 가능한 아이돌) 계속해서 갱신되는 중인 것 같아요.
    • 자라면서 성격이 여러번 변하고 반복되고 하죠,,,


      아마도 성격이 변하는 것은 사회성이 생기면서 변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은밀한 생님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은 생활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생겼거나 나름 업그레이드 되면서 


      생겨난 변화일수도 있을 거에요.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라는 그 변화는 좀 다른 거겠죠.


      종교적 어떤 개인의 체험이 정신과에서 답을 주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데이타가 많다면 어떤 통계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정말 외로웠을때에(혹은 극한의 상황에 있을때에), 주님이 찾아왔을지, 주님을 찾았었는지...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납치되어서 죽음이 앞에 있을때에 예수가 옆에 있어서 붙잡고 기도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 가장 놀라운 순간은 자기 스스로 '내가 이럴 줄 몰랐다!!' 하게 되는 때인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아득해지는 기분. 반면 의도적으로 변하기 위해서(주로 단점 극복) 노력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사실 이게 뭔가.... 유년기의 지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굴렁쇠 같습니다.


        종교적 체험, 영적 체험, 어떤 사건으로 인한 환청. 환시. 그냥 불현듯 나타나는 환청과 환시. 인간의 의식이란 알면 알수록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죠.


        "의식은 셀 수 없이 많은 창고로 놀랍게 치장되어 있고 광활한 방들이 겹겹으로 들어차 있는 후미진 곳이다” -아우구스티누스.
    • 예수 목소리를 듣거나 성스러운 이미지를 보는거나..


      신내림 받고 무당 되는거나..


      뭐 비슷비슷한 거겠죠 본인에게는 소명이나 운명이겠고.. 객관적으로 보면 환청환시.. 뭐 생각보다는 흔하니까요..ㅎㅎ

      • 그것을 보는 자와 못 보는 자의 사고 체계 자체가 다를 것 같긴 해요.
    • 개인적인 경험을 적자면, 전 제가 이렇게 꾸미는 걸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10대 때는 옷과 화장품 살 돈으로 책 샀거든요. 그 땐 화장품 질이 안좋기도 했고... 당시 패션도 헤어도 공감이 안가서..(당시엔 뭐 유행하면 그것만 다들 입었음) 요즘 시대가 미적으로 제 정서에 맞네요. 젊음이 지나기 전에 마음에 드는 시대에 산다는 건 행운인 거 같아요.
      • 맞아요. 요즘 화장품도 그렇고 패션템도 그렇고 정말 전반적으로 다양해지고 좋아졌죠.

        예전에 국산 화장품 립스틱이나 파우더를 쓴단 건, 곧 어머니들 낯빛으로 변신한단 뜻이었는데 말예요. 요즘 트렌드가 또 뉴트로가 대세라서 옷장 어딘가 숨어있던 어릴 때 패션템을 꺼내도 은근 신나는 구석이 있어요.
    • 지인도 환청에 시달린적 있었는데 신기한 우연들이 일어났대요. 뭐 자길 욕하는 환청이 유독 들린 매장이 4군데 있었는데 4군데 다 망하더라던가... 무당같은 사람 입장에선 그건 신내림이라 하겠지만 약먹으니 그런 시절은 사라졌다던.
      • 발목에인어님의 지인분도 내림굿을 받아야하는 신병이라며 몰고갔음 무당이 됐을지도 모르겠네요. 예지몽을 꾸고 그게 정확히 맞는 사람도 본 적 있는데 그것도 신기하긴 해요...
    • 비슷한 사례로 김승옥이 있죠. 김승옥도 당대의 힙스터에서 빠지면 섭한 사람인데 이런 힙스터가 어쩌다 기독교에 귀의하게 됐는가 보면 이 양반도 영적 체험이 계기가 됐더군요. 영적 체험, 믿습니다. 그게 병리학적 현상이든 뭐든 중요치 않구요. 저도 영적 체험까지는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됐다 보기 힘든 체험을 해봤거든요. 또, 불교를 믿는데요('교리'에 이성적으로 동의한다는 의미. 이를테면 맑시스트 비슷한 거죠) 불교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전법을 강제하지 않는단 겁니다. 종교체험, 좋아요. 근데 자기만의 협소한 체험이 뭐라고 그걸 가지고 모르는 상대방이 불쌍하네 뭐네 울며불며 난리랍니까....흠. 

      • 그러게요. 뇌졸증으로 말도 못하게 됐던데 펜대신 붓을 들게 되다니.. 주님의 뜻으로. 그런데 무진기행도 상당히 영적인 뉘앙스가 강한 작품이긴 해요. 무진기행 =의식기행 같은. 안개속의 무진을 둥둥 떠다니는 분위기가 어쩐지 마음을 유랑하는 것만 같았죠.


        저도 아주 가끔 조용한 법당에 가만히 앉아 있다 오기도 하는데. 여름날의 법당 마루바닥 느낌이 참 좋죠. 매끄럽고 서늘한데 약간 따뜻한 느낌.
    • 조현병이죠. 남이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느끼는 환각, 사실이 아닌 것을 확신을 갖고 믿는 망상. 대표적으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경우죠. 이런 조현병 환자들은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않게 볼 수 있어요. 도파민이나 새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때문에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들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입니다. 토론하고 설득한다고 증상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초기 발견해서 약물 치료하는 방법 외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 조현병 환자들에겐 원래부터 봐왔던 그것이라 오히려 강자의 스탠스를 취하게 됐던 버드박스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 넘나 해맑.. ㅋㅋㅋㅋㅋ
    • 아이돌 이야기에 이어 종교 이야기를 하시는 게 재미있네요. 아이돌이라는 말이 본래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면요. 그리고 그 의미에서 벗어나 생각해 봐도 둘 다 비이성적으로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세돌의 저 표정...광신도의 환희에 견줄 수 있을까요? 재미있게 봤어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7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9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8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7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3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