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와 자본주의

결국 모든 것은 자본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어제 잠깐 했습니다. 어제 지인과 맛있는 칵테일을 마시다가 건강권은 사실 질병권이라는 개념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들었거든요. 건강하면 좋고, 건강해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건강이라는 이상적 상태를 지향하면서 사실 아픈 상태를 배척하고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나눴습니다. 건강할 수 있는 권리는 역으로 아플 수 있는 권리에 소홀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의 몸은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고 건강권을 추구한다고 해서 바로바로 건강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사람의 신체는 소모품으로서 평균적 기능과 항상성이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고 인간을 건강케 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가 흘러가야 하는 것일까요.


현 사회에서 건강권을 추구하는 방식은 개개인의 소비에 집중되어있습니다. 건강하면 좋다! 건강해야 오래 잘 산다! 그러니까 너네들 알아서 각종 비타민과 크릴 새우와 천연과일 어쩌구와 각종 의료 서비스와... 실질적으로 건강권을 보장해주지는 않되 그것이 개인적 의무로서 부과되는 형식이죠. 이를 가장 확연하게 증명하는 단어가 "자기관리"일 것입니다. 자기 신체의 주인이 자기 신체의 유지보수에 가장 힘써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되 이제는 그것이 하나의 사회적 미덕이자 타인이 간섭할 수 있는 무엇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건강하면 좋은데 그걸 자기가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이미 건강에 대한 복지를 무책임하게 놔둔다는 뜻이 아닐까요. 건강하지 않은 상태의 학생 노동자 개개인은 어떤 식으로 사회가 책임지나요? 그것은 모조리 자기관리의 실패가 됩니다. 


이 때의 건강은 자산으로서의 상태에 더 가까워보입니다. 있다와 없다로 구분해보면 저 사람에게는 건강한 몸이 있고, 나에게는 건강한 몸이 없고, 하는 식의 자본처럼 취급됩니다. 그런데 사회는 개개인의 자본을 책임질 의무도 역량도 없잖아요? 물론 한국은 국가적 의료보험이라는 희귀한 형태의 폭탄 돌리기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기는 하지만 건강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결국 개개인의 부담이 됩니다. 그러니까 국가는 개개인의 신체라는 자본을 파산상태에 이르는 건 막을 수 있지만 그것을 건강이라는 상태로 불리는 것까지는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 건강권의 개념도 결국 개개인의 자본 싸움으로 흘러갑니다. 건강한 몸을 타고난 사람, 어떻게든 시간과 돈을 투자해 건강한 몸이라는 자본을 불린 사람, 매일 건강의 부채에 시달려도 내일 건강과 일년 후의 건강을 끌어와서 꾸역꾸역 파산을 막는 사람... 대한민국 국민의 1/3은 암환자라는 진부한 보험회사 캐치프레이즈가 떠오르네요. 흙수저 흙수저 하지만 그 수저가 금이냐 은이냐 하는 것은 신체의 영역만큼 직결되는 부분은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건강권은 역설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탈락되는 경쟁 시스템을 만들어냅니다. 사회가 건강을 추구할 수록 아플 기회를 박타라고 "약한 몸"이라는 패배자의 라인을 그으면서 탈락자가 생기지 않도록 계속 건강을 끌어올리는 적자생존을 기획하게 되는 거죠. 모든 복지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경쟁이라는 체제를 거치지 않고도 균등한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해주는 게 본령이지 않을까요. 아프면 쉬어도 되고, 병가라는 말이 따로 없어지고, 아픈 사람을 수근거리면서 동정하는 대신 그것을 다른 상태나 보완해주는 방식을 마련하려하는 방식의 질병권을 더 고민해보면 어떨지.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복지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지 강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겠죠. 


결국 장애 혹은 여성이라는 개념과 다 두루두루 얽혀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그리고 사이비 종교와도 관련있죠. 거기서도 젊고 건강한 남녀의 노동력과 성을 취하지 노약자 장애인은 기피하죠.
    • 공감해요.사실 이런 생각을 못했는데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조금 읽으면서 느꼈죠.

      "질병은 죄가 없었다. 몇 년간 응시한 끝에 비로소 얻게 된 결론이다. 내가 상처 입은 것은 질병 때문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 때문이었다. 아픈 몸이 되고서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건강 중심사회임을 알게 되었다. 질병이 내 몸의 일부일 수 있음을 인정하자 세상이 다르게 읽혔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장애인들을 배제 하듯이, 건강 중심사회는 아픈 몸들을 배제하고 있었다. 아픈 놈들을 자책감에 나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중략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도, 반드시 건강을 되찾으라는 말도 불편하게 들기 시작했다. 나를 염려해주는 상대의 진심을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내가 과도하게 예민한 거라고 수없이 자책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상대방도 나도 잘못이 없음을 이제는 안다. 그는 건강 중심성을 탈피 하면서도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낼 적정한 말을 알지 못했던 것이고, 나는 건강은 잃었지만 삶의 모든 것을 잃은 건 아니라는 믿음이자 진실을 지키고 싶었던 것 뿐이다.

      중략

      질병은 개인의 몸에서 발생하는 사건이지만, 더 가난하고 더 차별 받을수록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수많은 통계가 말해 준다. 이런 통계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다. 그럼에도 동시에 누군가 폐암에 걸렸다고 하면 담배를 많이 피우는 나쁜 습관이 문제였다고 비난한다. 위암에 걸렸다고 하면 짜게 먹고 빠르게 먹는 습관 때문이었다고 책망한다. 가난할수록 그리고 삶이 제한적일수록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방식이 많지 않아서 담배에 의존하게 되는 현실은 갑자기 사라진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도 정작 일하다 보면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해서 빠르게 먹고 그러다 보니 짜게 먹기 된다는 현실 또한 사라진다. 이런 사회적 조건들은 삭제된 채 오로지 개인의 생활습관만 지적된다.

      중략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된 노동을 반복해도 결코 아프지 않은 무한히 노동 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자연이 생명체에 부여한 생로병사를 낙인이나 차별 없이 겪을 수 있는 몸, 잘 아플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ㅡ에필로그 중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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