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실밥, 투표 거부와 무임승차

1.[이러한 의제들에서 어떤 정치적 의사를 지닌 자를 대변하느냐는 권력구도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잖습니까. 어떤 정당이 권력을 얻느냐에 따라 파생되는 정치적 효과, 형성되는 의사결정의 방식, 법률이 달라지며, 공정과 정의의 침해수준이 달라진다는 것 역시 명백하고요. 다른 사람들 역시 모든 선택지가 만족스럽지는 않은 상황에서 타협적으로 그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특정 정당을 선택하여, 자신의 시간과 기회비용을 들여 투표에 나서는데, 투표를 하지 않는 건 타인의 투표행위로 인해 얻어질 사회적 이익에 무임승차를 하겠다는 뜻이라 부당한 것 아닌가요.]

2.[권리 측면에서, 사회적 이익 측면에서 이런 개선점들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투표하지 않는 행위, 각자도생 사회이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러한 태도로 기여할 수 있는 바도 없죠. 정치적 의사결정을 통한 사회공정과 정의의 개선에 투표로 기여하지 않으면서 그 정치적 의사결정의 이익을 누리는 행위를 무임승차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3.[유권자들의 서로 다른 선호가 존재하고 이 선호가 투표에 반영되는 한에서만, 후보와 정당들은 유권자가 선호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당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죠. 따라서 탈락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무임승차하는 것과는 다르며, 오히려 공적 이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기여하는 행위죠.]

4.[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행위를 무임승차로 규정하는 건 이 문제와 관련된 논문에서 연구자가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 겁니다. 공적 이익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한 논거였고요. "그러나 무임승차하는 국민이 많아지면 국가가 지탱될 수 없기 때문에 국가는 자신의 존립을위하여 권력을 바탕으로 국민의 의무로 부과할 수 있다. 다른 많은 사회적 공공재(public goods) 에서 집합적 행위의 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를 국가가 개입하여 풀어나가듯이 투표행위에 개입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이준한, 의무투표제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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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인용한 댓글들 사이에서 유권자의 투표행위가 [그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특정 정당을 선택]하는 것으로부터 [공적 이익의 실현]으로 비약하고 있네요. [그들의 의지]가 [공적 이익]을 지향한다 볼 근거는 희박한데 반해, 반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죠.
투표 행위가 [사회공정과 정의의 개선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 역시 마찬가지. 선거를 통해 집권한 나치의 유명한 사례도 있지만, 한국의 역대 선거 투표율과 그 결과를 보더라도 양자 사이엔 별 관계가 없어요.
더 가까운 예로는 선거철이 되면 흔하게 볼 수 있던 흰소리들, '부모님 여행 보내드린다/렸다'를 들 수 있겠군요. 저런 농담(?)을 주워섬기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 부모 세대의 투표가 공적 이익에 반한다 판단하는 거겠죠.

전반적으로 유권자들의 소양(...)과 다수에 의한 결정을 신뢰하시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다수의 판단이 꼭 옳은 것도, 그들의 지지가 선출된 권력에 정당성을 더하는 것도 아니죠. 극단적으로, 다수결이란 힘에 의한 지배를 제도화한 것에 불과하다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통계적 관점에서, 투표율이 그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야 하고, 저는 실제로 그럴 것이라 추론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양자 사이에 유의성이 있다 주장하기도 합니다.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정당에, 높으면 진보정당에 유리하다는, 근거가 희박한 속설이 대표적이죠.
이같은 주장은 대개 계급과 정치 성향에 따라 유권자의 투표행태가 상이하게 나타난다는 전제를 포함하는데, 이는 직관에 반하는 것이라 해야겠죠. 진보적인 유권자일수록 더 투표하지 않는 이 이상한 모델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크게 두 계열로 나눌 수 있을겁니다.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행위자로 설명하거나 투표가 유의미한 정치행위일 수 없는 환경으로 설명하는 것이 되겠죠.
전자의 대표격이 계급배반 투표, 후자는 투표의 역설 정도가 될텐데.. 어느 쪽도 투표를 독려하거나 강요할 당위를 제공하지 못하죠. 당연히 [무임승차]라 비판할 근거도 될 수도 없습니다.

투표의 포기나 거부가 세대 성별 계급 등에 무관하게 고르게 나타난다면? 투표율은 아무래도 상관 없을테고 남이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죠.

1. 공약이행률이 낮고 그게 선거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은 한국의 정치풍토에서는 선거의 결과로 나타날 양상들을 예측한다는게 쉽지 않죠. 그 수준이야 다양하겠으나, [명백하다]할 수는 없을 듯.
이 예측의 수준을 높이려면 당연히 정책과 이를 공약(이제 한국어의 '공약'이란 뭔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듯 하여 부연하자면, public promise의 의미에서)한 후보들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주요한 수단은 토론/논쟁이 될텐데.. 음.. 무슨 얘기 나올지 아시죠?
시민의 정치 참여는 다양한 수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죠. [자신의 시간과 기회비용을 들여] 참여하는 다양한 방식들 중에서, 투표는 가장 쉬우면서 효율이 좋은 일들 중 하나일 겁니다. 만일 누가 비용효율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 수단을 거부하면서 더 귀찮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이 선택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죠. 쉽게 [무임승차]라 폄훼할 일은 아닐 듯 하고, 어쩌면 이같은 태도를 투표만능주의라 비판해야할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투표행위로 인한 사회적 이익을 가정하여 무임승차라 비판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타인의 투표행위로 인한 사회적 손실에 대해 투표한 유권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도 가능할 겁니다. 투표에 불참한 유권자는 '무고한 피해자'라 해야 할텐데,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2. 유권자가 선출된 위정자의 정치를 통해 투표에 책임을 진다고 할 때, '유권자'는 집합적 개념이지 개별 유권자를 의미하지 않죠. 개별 유권자는 투표의 결과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투표를 했건 말았건, 어느 당에 투표했건, 애초에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제도화 되어있죠. 투표를 집합적 행위로, 그에 따른 책임을 집합적인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투표에 의한 의사결정과 권력의 위임이 성립하는 거니까요.
투표의 결과로 비롯된 손익을 산출하는게 가능한지도 의심스럽지만, 설령 산출하는게 가능하다 해도 이는 개별 유권자의 투표와 무관합니다. 국가가 정책 시행하며 그 수혜자/피해자에게 '투표하셨느냐, 어느 당 찍으셨느냐' 묻진 않죠.

3. 집권을 위해 대중이 선호하는 정책을 채택하는 걸 보통 대중추수주의라 하죠. 이같은 경향이 정치에 만연하면 가장 긍정적인 경우라도, 다원성의 약화와 중도보수로의 초집중으로 귀결됩니다. 그 정책의 실현은 또 다른 문제고 이는 1.에서 언급했으니 생략.
어떤 결과라도 결국 역사의 진보에 기여한다..라는 변증법적 메데타시메데타시해필리에버애프터류 인식에 기반한다면 투표 여부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 판타지스러운 인식 안에서 이상적 정당들은 투표율 하락에 대해 '유권자들의 효능감이 낮고 대의에 만족하지 못하는구나'라 반성할테고, 이를 제도와 정치에 반영하게 될테니까요. 그렇다면 투표 거부도 충분히 [공적 이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기여하는 행위]가 될 수 있겠죠.

4. 이 글을 쓰게된 동기인데.. 우선 권력에 의해 강제된 투표 행위를 유권자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죠. 또 '국가의 존립'을 위해 그 주권자인 국민에게 정치행위를 강요할 수 있다는 발상은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닌가 싶고, 존립이 위태로운 수준의 투표율이라면 그 국가는 마땅히 해체돼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좀 미친 사람 아닐까 싶어 해당 논문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원문은 좀 낫군요.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070653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국가를 경영하는데 필요한 세금이 걷혀야 하고 국가를 방위할 인력이 필요하며 국가의 법과 질서가 잘 지켜져야 한다. 국민들은 이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에 서로 비용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무임승차하는 국민이 많아지면 국가가 지탱될 수 없기 때문에 국가는 자신의 존립을 위하여 권력을 바탕으로 국민의 의무로 부과할 수 있다. ~이하 생략. p9]

lisa hill의 요약이겠죠. 사회계약 관점에서 널리 용인되는 시민의 의무(납세, 병역, 준법)를 예시하고 / 투표 역시 이 의무에 편입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임승차]는 전건에 대한 기술이고, 쟁점은 후건 명제의 타당성이라 할텐데.. 이를 논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군요.
hill의 논문에 사서 읽어볼 가치가 있을지는 의심스럽고.. (혹시나 관심이 있으시다면, 'On the Reasonableness of Compelling Citizens to ‘Vote’: The Australian Case', https://journals.sagepub.com/doi/abs/10.1111/1467-9248.00360 ) 이준한 역시 이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어떤 견해도 부연하지 않고 있으므로, 적절한 독해는 '이런 의견도 있다' 정도가 되겠죠.
애초에 이준한의 논문이.. 뒤에서 의무투표제의 효과를 언급하며 내놓는게 고작 권력의 정통성(...)과 대표성(...) 강화 정도인지라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의무투표제를 고려할 만한 상황이란 것도 있을겁니다. 예를 들어 제도적으로 보통선거를 채택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를 제한하는 풍토가 지배적인 사회라든가, 어떤 정치적 의사라도 충실히 반영되도록 설계된 고도의 선거제도를 갖춘 사회라면 의무투표가 자발적 투표보다 적합하다거나 효용이 높다 할 수도 있겠죠.
호주가 그에 해당할지는 모르겠고 관심도 없으나, 한국에 간단히 이식할 수 있다/해야 한다는 발상은 비판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아무튼, 저 인용은 오독의 결과이거나, 맥락을 벗어난 인용이라 해야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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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다수주의'와 '민주주의'를 혼동하죠. 투표는 '다수'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장치일 뿐, 그 결과로 나타날 위정자와 정치의 '공정'이나 '정의', 심지어 '최선'조차도 담보하지 않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투표 외에도 뭔가 다른 것들이 필요하고, 대개는 이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고 갖추기 어려운 법이죠.
    • 제 닉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서, 적절한 반론을 드릴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네요. 다만 거명까지 하시면서 의견을 달아주시니 부족하나마 제가 어제 내놓은 주장의 맥락을 나름대로 밝히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먼저 제가 유일한 학술적 근거로 사용한 것이 이준한의 논문이었기 때문에, 해당 논문이 후반부에 '의무투표제의 효과를 언급하며 정통성과 대표성을 내놓는 정도'라고 언급하신 점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준한은 다음과 같은 실질 효과도 언급합니다 :

      "의무투표제는 정치적 평등성을 향상시킬 것이다(Hill 2002a 84). 일반적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는 여성보다는 남성,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자, 저학력자보다는 고학력자, 나이가 적은 사람보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 유색인종보다는 백인일 가능성이 크다. 즉 사회경제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 투표에 더 자주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후보자나 당의 입장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투표에 자주 참여하는 유권자의 성향에 맞는 공약과 정책을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이러한 유권자가 선호하는 후보가 당선되고 정당이 집권하며 다시 이러한 유권자에게 이로운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기 마련이다(Perea 2002, 650). 최근 투표율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것은 대개 투표를 더 자주 하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인구보다 평소에도 투표를 안 하는 유권자가 투표에 더 자주 기권하는 결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투표율 저하는 정치적 불평등성의 심화로 이어진다(Quaile and Leighley 1992; Pacek and Radcliff 1995). 의무 투표제가 도입된다면 투표 연령에 해당하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표를 던지게 되어 표의 중요성이 같아지고 사회 구성원의 선호가 최대로 반영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의무투표제는 정치체계에 대한 공정성(fairness)을 고양시킬 수 있다(Hirczy 2000, 46; Lijphart 1997, 1)"

      이준한이 인용한 논문들에서 이런 주장들이 어떻게 정당화되고 있는지를 검토하기 위해 몇 개의 논문을 찾아봤지만, 문외한인 제게는 사용되는 통계나 진술들이 눈이 핑핑 돌더라고요. 그런 탓에, 전문가로 보이는 이준한의 해석에 의존했으므로, 원문에 대한 이준한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에 대해서는 제가 더 의견을 개진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이준한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통성'과 '대표성'을 언급하는 정도에서 의무투표제의 효과에 관한 진술을 매듭짓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고, 특히 일반적 상황에서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특정 계층의 투표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당 입장에서는 이들의 성향에 맞는 공약과 정책을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언급, 투표율 저하가 정치적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진다는 논문의 진술에 의해서, 저는 투표행위는 사회적 불평등 심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고, 아래와 같은 언급을 했던 것입니다. :

      "정치적 의사결정을 통한 사회공정과 정의의 개선에 투표로 기여하지 않으면서 그 정치적 의사결정의 이익을 누리는 행위를 무임승차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유권자들의 서로 다른 선호가 존재하고 이 선호가 투표에 반영되는 한에서만, 후보와 정당들은 유권자가 선호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당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죠."

      그러니까 어떠한 경우라도 투표는 역사에 기여한다는 메타메타~@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여러 차례 (당시에 제 논의자였던 stardust님께) 질문의 형식으로 주장을 내놓았던 건 이 문제에 대한 확신이 저도 없어서, 상대의 의견이 어떤지도 확인하고 싶었던 거고요. 이렇게 다른 분께 확인을 받았지만 말입니다. 

      다만 기왕 의견을 주신 만큼, 이준한이나 그가 인용한 연구자들의 견해에 반대증거라고 할만한 연구, 논문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타락씨'님이 제시하신 의견을 지지할만한 연구(한국사회 또는 다른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체계를 갖춘 국가에서 투표가 공익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연구 등)가 있으면, 소개해 주시면 참고하고 다시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 링크 주신 Lisa Hill의 논문은 의무투표를 지지하며 이런 기존 연구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네요. 다만 저는 의무투표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투표하지 않는 행위가 정당화 가능한지를 stardust님께 물었고, 지금도 이 논점 관련해서만 의무투표 관련 연구들을 참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투표하지 않을 권리는 지지될 수도 있지만, 투표 불참 행위를 정당화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자유한국당을 지지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그 정당화는 다른 문제인 것처럼요.


      "What good does voting do? That is, can the apparent paternalism of the state in compelling me to vote be justified in terms of any prevented harms or collective or individual goods? Rational choicers are often heard to exclaim that voting has no real or material utility therefore even bothering to vote is irrational. (Lomasky,  1992, pp. 30–2) This claim is problematic given what we do know about non-voters in voluntary systems. We know, for example, that the American state tends to be more attentive to the demands of voting groups such as senior citizens and the middle classes at the great expense of those who abstain. Recent research has indicated that far from having no effect, political apathy on the part of citizens leads to inaction on the part of governments. Verba and Nie had already concluded by the early seventies that voting ‘helps those who are already better off (Verba and  Nie, 1972, p. 338.)’ while Walter Dean Burnham concluded a decade later: ‘if you don’t vote, you don’t count’ (Burnham, 1987, p. 99).8 Quaile and Leighley report that class bias in US state electorates ‘is systematically related to the degree of redistribution’; in other words government policy consistently reflects the degree of low income, low efficacy group non-participation. It is further suggested that class bias in public policy will become even more skewed over time due to the more rapid decline in turnout among the poor (Quaile and Leighley, 1992, p. 363;  Pacek and Radcliff, 1995). As Martin Wattenberg puts it: ‘Politicians are not fools;  they know who their customers are’ (Wattenberg, 1998, p. 6). In effect, therefore, non-participation appears to disenfranchise the poor (see, for example, Hicks and  Swank 1992: Leighley 1995; Mebane 1994)"















      • 뭐 저도 아는 건 없으니까요.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지지하지만 투표 불참은 정당화되지 않는 상황이 어떻게 가능하죠? 이게 가능하려면 '투표하지 않을 권리'는 보편적 권리가 아니어야 하고, 만일 '정당한 투표 거부만이 정당한 권리로 지지받을 수 있다'면 동어반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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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책이 나왔더군요. 강명세의 '불평등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http://www.hani.co.kr/arti/923907.html

        비슷한 책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 기사가 눈에 들어온 이유는 기사 중간에 등장한 표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소득에 따른 투표율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투표율 격차는 채 1% 포인트도 되지 않고, 투표율이 가장 낮은 계층은 중위소득 인구로 나타나죠.
        이 표를 더 들여다보면 투표율과 민주주의의 발달 수준이라든가, 불평등도의 관계를 일양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걸 발견할 수 있죠. 미국처럼 투표율 갭과 불평등도가 비례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스위스나 필리핀처럼 무관하게 나타나는 나라들도 있거든요.

        기사 중에는 더 재미있는 내용도 등장하죠. [흥미로운 대목은, 조사 대상 23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만이 고소득자의 재분배 선호율(80.6%)이 저소득자의 재분배 선호율(73.6%)보다 높은 점이다. 한국 고소득자들의 리버럴 성향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응답 편향의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지만,) 이같은 사실들로부터 유권자의 투표 행태는 각 나라에 고유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죠.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hill의 논문도 the australian case 겠죠.
        이준한의 논문이 갖는 중대한 취약점도 여기서 비롯되죠. 그가 인용하고 있는 이론은 보편적으로 어느 사회에나 적용 가능한게 아니고, 이는 이준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준한은 인용하신 부분울 hill의 의무투표제 지지 논거로 소개하고 있을 뿐, 그 효과로 언급하고 있지 않아요. 또 그게 실증된 바가 아닌 추론이라는 점을 문장에 여실히 드러내고 있기도 하죠. ~할 것이다, ~할 가능성이 크다, ~하는 경향이 있다, ~하게 마련이다..
        이를 [실질 효과]라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의무투표제를 실시하는 나라의 투표율은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높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겠지만, 브라질의 사례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고.. 문제는 투표율의 제고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느냐죠. 언급된 [정치적 평등의 향상]에 대해서는 회의할 수 밖에 없어요.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요인으로 인해 보통선거가 실현되지 않는 경우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나 유효한 얘기고, 투표율에서 성별이나 계급에 따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 한국 정치와는 무관하다 할 수 있을 겁니다.

        논문 찾기는 귀찮고.. 쉬운 반례 하나를 들자면, 노무현이 당선된 16대 대선의 투표율은 70.8%, 박근혜가 당선된 18대 대선의 투표율은 75.8%였죠. 박근혜 정부가 더 정통성을 갖거나 대표성을 띈다거나(이준한), 이때 투표한 유권자들이 공익에 기여했다(김실밥)고 보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보신대도 말릴 생각은 없지만 말이죠.

        마지막 인용과 강명세가 언급한 한국 고소득 유권자들의 분배선호 성향을 고려하여 한국 정치를 해석하면, 한국의 고소득 유권자들은 위선자들이고, 한국의 리버럴 정당은 표면적으로 저 위선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실질에 있어 저들의 이익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저소득 유권자들을 기만하고 있다 해야 할 것 같군요.
        어, 말해놓고 보니 그럴 듯 한데?;;;;;
    • 두분말씀 잘 읽었습니다. 공부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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