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대하는 나의 자세

어제 미팅 후, 처음 만난 분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말(지적질)을 들었습니다. "음식과 진지하게 대화하며 드시네요?" 
인정합니다. 식사 전에 식탁의 음식들을 곰곰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어요. 뭐랄까, 제 앞에 와 있는 생명체에게 인사하는 예의이기도 하지만,  그에 더해 그 음식을 먹는 것이 '나의 생명되기'에 해당되는 거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이 되는 거라는, 먹다=되다라는 인식이 또렷한 편이에요. - - 

영화 <곡성>에서 환각 독버섯으로 사육한 돼지를 도축한 고기를 먹은 마을사람들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꿈/ 현실의 시간 속에서 파멸하고 맙니다. 그렇다고 그 영화가 먹기의 주술에서 해방된 이성주의와 합리주의를 표방하고 있느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죠.  

(샛길: 어린시절 단군신화를 처음 읽었을 때, 왜 호랑이와 곰에게 쑥과 마늘 한 줌씩만 먹으며 동굴 속에서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을까를 궁금해 했더랬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전 이 동굴이 국내성 근처의 국동대혈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렇게 생각해봤어요. 호랑이는 호랑이-신, 곰은 곰-신으로서 새롭게 유입된 북방 이민족의 하늘-신과 새로운 자연의 이법적 계약을 맺기 위해 그 호랑이-신의 신성성,  그 곰-신의 신성성을 버리고 진정한 이류지교[異類之交]를 성취하려는 선택이었다고요. 국동대혈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오는 고려/고구려의 동맹이라는 축제가 벌어지던 '수혈'이라는 동굴이죠.  이 동굴 속에서 호랑이와 곰은 쑥과 마늘만 먹는 고행에 나선 거고요.)

사람도 무엇인가를 먹어야 하는 '동물'입니다.  고기를 먹는다면 그 육의 주인공인  동물의 영혼과도 터치하게 된다는 느낌을 저는 갖고 있는 것이죠.  현재 육류산업의 잔혹함에서 현대 문명의 많은 죄업들이 저질러지고 있는 것을 이젠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아무튼  제 입장에서는 다른 이들의 식사 속도가 빠른 것이고 너무 많이 먹는 것처럼 느껴져 흠칫 놀랄 때가 많다는 걸 밝혀둡니다. 
(근데 저도 저 같은 사람은 함께 식사하고 싶지 않은 부류에요. 저보다 더한 후배가 있어서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식사 자리가 있으면 제 몫의 음식은 주문 않고 죽어라 알콜만 섭취한다능~ - -;)

다시 아무튼, 낯선 이에게 그런 지적을 받으니 아찔함과는 다른 느낌인데, 어떤 생생한 흐름과 조우하면서 의식이 미세하게 떨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덧붙여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 유튜브에 먹방이 대세이지만 당신의 먹는 모습도 콘텐츠로 괜찮을 것 같다...."
저의 먹는 모습과 유튜브 콘텐츠를 일시에 해치우는 그 단순명확함이란!

저의 식사습관도 유튜브 먹방러들도 그렇게 해치워질 수 있거나 해치워져야 마땅한 것들이 아닙니다.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게 조직해 바라보시다니. -_-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태도가  아니에요. 그보다는 그분의 쏜살같은 해석과 태도에 대한 용의用意입니다. 그것이 저를 두렵고 놀라게 했어요.

하나의 정의나 표현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태도에는 그 기원이 있어요. 사람들이 전제와 기원으로 내려가는 것은 현상의 날카로움과 표현의 방만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일까요.  아니면 어떤 분기점이 나오기 이전, 그러니까 동행의 시간대로 회귀하기 위해서일까요?
회귀는 종종 도착으로 착각되곤 합니다. 그러나 회귀 역시 어떤 시간의 층위에서는 전진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수영은 도덕적인 반성의 형식으로 '나는 얼마나 작으냐'고 탄식했지만, 이 시대의 매체가 허용하는 수많은 표현형들에 압도되었다 하더라도 똑같이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거죠. '나는 얼마나 작으냐.'
모두가 모두와 다르기 때문이고, 그 다름들이 하나같이 똑같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는 얼마나 작으냐.' 보이지 않을 만큼,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전전하며 삶을 마감할 만큼. 

    • 명상을 배울 때 식사 명상이라고, 먹는 음식의 질감과 재료와 모든 순간순간을 음미하면서 다른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음식에만 집중해보라고 하더군요. 어디로갈까님의 식사가 바로 음식 명상이네요.

      • 불가에서도 잡념과 일념으로 구분하여 먹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죠. 근데 일반인들 사이에선 저 같은 타입이 영 밥맛 떨어지게 하는 스타일이라.... ㅎ
    • 너는 왜 물도 음미하면서 먹는 거 같냐는 놀림 비슷한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제 딴에는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을 버느라 그러는 것 같아요. 사실 식욕이 별로 없는 타입이라 그냥 오래 씹을 때도 많구요
      • 동지, 반갑소! (와락~)

    • 저는 대부분의 식사를 엄청 빠르게 하고 있어요. 아침, 점심 식사는 어쩔 수 없다지만 왜 내가 저녁식사까지 이렇게


      거의 "마셔버리듯이"하는지 가끔은 의아할 때가 있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음미까지는 못해도 천천히라도 먹어야겠다 싶어요

      • 음. 서서히 시도해보시면 몸이 다르게 반응하는 게 느껴질 거에요.  암요~ 

    • <고독한 미식가> 작가가 먹는 장면을 찍는 것은 섹스신 찍는 것과 비슷하다 식으로 말한 적이 있어요. 굉장히 원초적인 행위를 찍는 거잖아요.


      저한테 음식은 그냥 연료공급 수준이라 먹고 빠르게 때워 버리는 거였는데 제가 장봐서 음식만들고 가끔 도시락을 싸 오기도 하면서 약간은 음미하는 쪽으로 바뀌기도 하더군요. 갈수록 한그릇 음식을 선호하게 되기는 합니다.

      • 저는 한식파라 최소 칠첩반상은 돼야 제대로 식사를 한 듯한 만족감이 들어요. 제가 부지런히 만들기는 하는데 먹는 양이 같잖다보니 버려지는 게 많아서 식탁에서 늘 울적합니다. 
    • 5배속 슬로우로 슬슬 먹으면 술먹는거와 같고 삶의 찬란함을 찾아 고마움을 표시하는 경배와 같아 좋아합니다 전엔 다 먹었냐 했는데 지금은 안해요 왜 마늘 쑥을 줬을까 찾아봐야지 맨아래 시도 찾아봐야지 수영애비의 자기 미워하기 참 좋아해요
    • 병원에서 근무하는데 의사들은 인턴 레지던트때의 습관 때문인지 정말 3분만에 식사를 마치더군요. 불쌍한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근데 좁은 식당이라 빨리 자리를 비켜주는게 매너이긴 해요.

      • 고교 동창이 레지던트할 당시 생존을 위해 아무거나 주어지는 대로 먹는다고 한 적이 있어요.
      • 그러게요. 직업 상 먹는 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있어요. 의학도인 제 동생도 그래서 오동통 살만 붙고 건강상태는 안 좋... - -

    • 응 갈비탕 먹고 욕하는 시인데 맨아래 부분은 아닌데 아주 좋아요
      • 중딩 때, 그의 시를 읽으면서 이런 다짐을 했더랬어요. '부족한 사람이지만 당신처럼 명료/명확하게 살아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 -

    • 졸업하고 직장생활 시작할적에 점심시간마다 너무 힘들었어요.  먹는 속도가 다들 저보다 두세 배는 빨라서요. 남들과 비슷하게 속도를 맞추자니 체할거 같고 그냥 제 속도로 먹으면 왠지 민폐 덩어리가 되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죠.  급?이 좀 올라간 뒤 부터는 부담 없는 후배 스태프들과 느긋하게 먹어서 괜찮았는데 외부 미팅이 있어서 나갔다가 외부인들과 함께 식사라도 해약하게 되면 또 다시 고난이 시작되고; 


      사실 충분히 씹지 않고 벼락같이 밥을 먹으면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문 관련해서 코멘트를 더하자면 혼밥을 하더라도 책이나 폰을 보지 말고 음식의 모양과 색 그리고 냄새를 인지하며 먹는게 소화와 흡수에 더 좋다는 주장도 있어요. 


      식자재들과의 영혼의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먹는건지는 생각하며 먹는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시구나... 울 아버지가 저보다 더 느린 식습관인데, 그래서 젊은날엔 아예 끼니를 거르곤 하셨대요. 그 모습이 너무 속터져서 울 어머니는 빨리빨리 먹는 식습관이 들어버렸다는 슬픈 전설이... - -


      조카도 느린 식습관인데,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엔 인덱스카드에다 날짜와 요리명을 써서 통에 보관해둔대요. 자기가 요리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참고하려고.ㅋ


      제가 초록 채소들을 좋아하는데 요즘 시금치가 예쁘고도 맛있어요. 어젯밤엔 먹으면서 실제로 소리내어 아, 예쁘다는 상찬을 바쳤답니다. 

      • 시금치 이쁘죠~ 그리고 물에 씻은 뒤에 데치기 전에 맡는 은은한 향도 참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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