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에게서 배우다

강단에 서는 선배가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는 게시판의 게시물들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아마도 선배는 에세이 하나를 수업 중에 학생들과 같이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제출하라는 과제를 냈던 것 같아요. 스무 편 가까운 짧은 감상문들이 올라와 있었는데, 그 중 몇 학생의 글이 흥미롭고/착잡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확연히 어둑해지는 쓸쓸함을 느꼈어요. 에세이의 화자인 <나>에 대한 학생들의 냉정한 통찰이 마치 '진지함'에 대한 가차없는 공박처럼 느껴졌거든요. 

추측해 보건대 에세이는 이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합니다. 현재 공무원인 <나>는 어느 날 장기체납자의 집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체납자의 이름이 과거의 한 여자를 떠올리게 만들어요.  <나>가 청년시절 야학에서 가르치다 알게 된 여학생과 같은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엄습한 그 과거에 대한 느낌이란  그리움과 죄책감이 뒤섞인 것이에요.  왜 죄스러운가 하면,  그녀가 <나>를 무척 좋아했고, <나>에게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관계 - 남녀의 관계- 를 호소했는데, 그걸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거절한 이유는 당시의 <나>가 젊었기 -보다 어렸기 -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가난한 삶을 감당할 자신이 <나>에겐 없었다는 것이죠.
특히 그때 그녀가 <나>에게 했던 질문, "선생님은 한번도 고생을 해보신 적이 없지요?" 라는 말이 그때나 20 년이 지난 오늘에나 <나>의 마음을 몹시 마음 아프게 합니다. 
 
감상문을 적은 학생들은 대부분 화자인 <나>의  위선, 우스꽝스러움, 내려다보는 자세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공박하고 있었어요. 몇 줄의 짧은 글들이었지만 '난자'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공격들이었습니다.
원문을 읽어보지 못했으나, 제게 수필의 화자는 '윤리의식이 민감한 사람'이라는 쪽으로 정리가 되었기에 그 반응들이 좀 뜻밖의 관점으로 다가왔어요.  '세대 차이'라면 너무 거창한 말이 되겠지만, 어쨌든 화자의 정체된 삶과 태도를 단박에 깨트려버리는 자유로운 입지가 저에게는 약간 생소하기도 신선하기도 하네요.
 
글로 전하는 생각의 엄숙함과 아름다움이  이런 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학공부를 오래 했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진실 혹은 통찰의 열쇠를 쥐고 나타나는 인물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동시에 저는 문학동네의 옛경고훈들을 기억해 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말들 말이에요.  
"문학은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또는 "문학은 화해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는 문학이 끌어당기고, 맺힌 것을 풀고, 이해의 조명탄을 띄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냉정함과 동등하게 의미를 지니는 것이 따뜻함 혹은 화해라고 생각합니다. )

절대적인 윤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필 속의 <나>는 하자가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글 전반에 나타나 있는 한 인간의 프로필은 '윤리적인 것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므로 "우습다, 그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A학생의 평가가 옳은 것이라 해도, 그처럼 모든 것이 단죄되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학생 B의 감상 : " 그녀는 희미한 옛사랑의 이미지라기 보다 지금의 <나>가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나>는 가난을 모른다. 그들의 삶 또한 알지 못한다.  그녀의 말이 가슴 아팠지만 그 후로도 <나>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 결국 그녀는 <나>의 타인이다. 가난을 모르는 '내' 삶만이 <나>의 것이다. <나>의 태도가 우습다. 하지만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는 않다."

학생 C의 감상:  "글 속의 주인공은 무척 무료한 공무원으로 보인다. 그는 그녀를 생각함으로써 옛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최대한 아닌 척 포장하고 있지만 내 생각엔 <나>는 그녀를 생각하면서 굳이 표현하자면 우쭐해하고 있는 것 같다."

하하. B 학생 글에 대해선 90 퍼센트쯤의, C 학생 글에는 50 퍼센트쯤의 동감을 보냅니다.  보내는 동시에 곧 모두 부정하다가,  다시 전적으로 긍정합니다. 말하자면 저는 그들의 의견에 갈팡질팡하며 안착하지 못하는 생각들의 둘레에 있습니다. 
제가 두 학생과는 다르게 감상문을 쓰는 입장이더라도 그들의 의견은 이미 제 나이쯤에는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학생과 같은 글을 쓰더라도 이미 저는 그 다음을 생각하는 중이어야 하는 나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음?)

저 에세이의 화자와 그에 대한 논박을 보노라니 '위선의 완성'이라는 은사님의 화두가 떠올랐어요. 이제 저는 '불편하고 힘들게 어떤 자세에 매달린다'는 그 의미와 그것에의 추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냉철한 통찰이 냉철함과 통찰이 되고 나서 또 어떤 삶을 이룰 수 있는 건지, 학생들보다 십 년 이상 나이가 많은 제가 아직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덧1: 에세이에 대한 감상 대신 이런 글을 남긴 학생이 있었어요. "우리 세대를 묶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돈이 필요하다는 강박관념밖에는 공통된 의식도 없어요."
그럴지도 모르는 이십대 초반의 '자각'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들에게 과정, 의미, 추구, 보람, 공동체, 주체성, 삶의 가치... 같은 말들이 가닿을 수는 없겠죠. 아직은...

덧2:  문득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머리말이 떠올랐어요. '죽음'이란 단어를 '젊음'으로 바꾸면 지금의 제 느낌과 싱크로율 80% 정도 됩니다. - -
"사는 것은 그 정의상 배우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삶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아니고, 삶에 의해서 배우는 것도 아니다. 오직 타자로부터, 죽음에 의해서만 배운다."

 

    • 운명적 관점을 자유의지의 탄탄함으로 이기려는 생각들이 더 진실이 됐습니다 죄스런 자의식이야 누가 말릴까 누구나 원론적 책임을 질게 없다고 들리는ㅡ없으니 결과물도 없음ㅡ데리다의 말을 나름 생각하면 학생과 차이만큼 두배 더 차이나도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뿐
      • 폰으로 읽고 폰으로 댓글 다셨죠?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보는 코스모노트의 관점의 글이라 제가 이해 못했어요. ㅋ

        • 이번엔 왜 대충 알아듣겠다 하지 않치?
    • 위선의 완성,불편하고 힘들게 어떤 자세에 매달린다 이 부분을 잘 모르겠어서 설명해주시면 감사해요.

      잘 읽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전에 없이 살기 좋은 세상을 살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지금의 20대가 굉장히 삭막한 마음으로 현실을 버텨내는 중인건가?싶네요. 에세이를 즐기지 못하는 건 개인적인 일들이 너무 불만스러워 어른 세대나 소위 금수저 아님 중산층에 대한 증오심이 색안경을 끼게 하는 것 같구요. 꼰대 입장에서는 중2병말고 20대병도 걱정되네요. 주머니 사정 상관없이 소속감,연대의식을 키울 수 있는 소소한 제도,이벤트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멘탈케어 서비스 이런 것도(나도 고고씽)
      • 온라인 말고 오프라인 모임. 유툽영상에 대한 규정도 강화되면 좋겠어요. 거기서 유대감 키워서 특정인에 대한 혐오 키우는 속도는 정말 무섭
      • 위선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된 선'을 뜻하죠. 위선을 극단적으로 변호하자면 이데아에 대한 갈망 같은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조심스런 말이지만, 위선이란  사람들이 당대의 최대치 가치를 읽고, 그를 표방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이라 읽습니다. 보다 나은 사람으로 살아보고자 하는 안간힘/가면  같은 것이랄까요.-_-
         

        • 아. 답변 감사합니다
    • 근데....그 에세이를 읽으면 저도 그들처럼 반응할 가능성도 있긴 하네요ㅋㅋ아직 안 읽어봤으니 어디로갈까님의 감상이 제 것이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로 할게요
    • 뜬금없지만 20대 후반인 저로선 본문 중 <우리 세대를 묶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에 공감하며 그렇기 때문에 요즘이 좀 살만하다 싶어요. 제가 10대였을 적과 20대 초일 적에 느꼈던 유행을 따라야만 한단 강박적인 분위기, 다같이 비슷한 티비프로를 보고 잡담을 나눠야했던 분위기, 어떤 특정한 태도를 하고 비슷한 말들을 하고 특정 누구 하나를 맹목적으로 싫어하며 다함께 웃으며 까야한다는 분위기, 그런 것들이 너무 숨막혔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속 풍경처럼 좀 서로 달라도 각자 할 일 하면서 같이 있을 수는 없는 건가?란 생각을 수도 없이 했던 시절이에요. 제겐요.


      요즘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해선지 그런게 좀 덜하고 비교적 그 때 보단 개인성을 가질 수 있어서 좋고 비슷한 취향과 성격인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고 해서 숨통이 좀 트입니다...
      • 제 느낌엔 인터넷 식 인식, 인터넷 식 소통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부모님은 인터넷과 저너리즘은 사고의 수준을 낮추는데 기여하고 있다며 절레절레하시고 다시 오프라인/책으로 돌아가셨어요. ㅎ
        그나저나 온라인 세상이 열리면서 펜으로 글씨를 써볼 기회가 확 줄어서인지 요즘 젊은이들의 필체가 대개 다 악필이네요. 철자도 자주 틀리고요. (인턴들 사례임.)
        그거야 각자 개선할 수 있는 점인데, 온라인을 통해 사고의 틀도 획일화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곰곰 지켜보게 됩니다.

    • 어디로갈까님 글에 덧으로 나오는 추천서(?)들이 좋아요.ㅋㅋ


      학생 a님의 말처럼 소설 내에서 ‘나’는 변화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내가 가난해진다거나 하는 더 큰 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현실에선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불변을 단언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화자가 여자를 이해하는것보다 죽는것이 더 쉬울 것 같아요.

      학생 c님의 감상이 제일 공감가고, 학생b님의 경험하지 않는 한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곰곰히 생각하게 되네요.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마지막 장의 말처럼 우리는 결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도, 상상할 수도 없는 걸까요.
    • 제가 남부럽지 않게 명저를 많이 읽었답니다.  다 제 애인들이에요. ㅋㅎ
      고통이란  자기 안에 숨쉬는 괴물이 있는 걸 인지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요,  그걸 인지한 채 타인에게 얻어터지는 것, 그러면서 내색하지 않는 게 '어른'이라고 판단합니다.  (뭐래? - -) 
      수전 손택은  제게 '닥치고 읽기'라는 야만적이고도 유용한 방법을 가르쳐준 작가예요. -_- 
      • 내 안에 숨쉬는 괴물~ 저도 한 마리 있는데~타인에게 얻어터져도 내색하지 않는다 이 부분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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