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한말씀을 듣고

어제 보스의 특별 초대로 저녁식사를 함께했습니다.  대화 중에  "그게 당신이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는 '세상이지~" 라는 말을 들었어요.  뭐랄까, 저의 한계를 돌아보게 한 말씀이라 잠을 자면서도 밤새 골똘했습니다. 

- 正
한 개인이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는 세상은 그게 어떤 세상이든, 어떤 관점에 의존한 것이죠. 어떤 관점이란 모든 관점이 아니기 때문에, 개개인이 생각하는 '세상'은 부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속한 세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저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외골수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속한 세상에 만족하고 있는사람은 논외로 하고, 자신이 속한 세상에 익사해 위험한 지경에 이른 사람에 대해서만 '그사람은 힘든 혹은 나쁜 세상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그녀는 다른 세상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의문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요.

- 反
중력은 뛰려고 하면 더욱 잘 의식됩니다. 걷거나 뛰는 행위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세상'이라는 것에도 중력은 작용되죠.  그리고 중력은 사람보다 먼저 있었 듯,  '세상'보다도 먼저 있기에, 아니 어쩌면 중력이 인간과 함께 세상을 만든 것이기에, 우리는 세상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으로 태어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눈을 뜨고, 간신히 몸을 가누는 법을 배우고, 한 시절을 잘 걷고 달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자신의 세상이 몸과 마음에 들러붙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을 선택한다' 는 것은, 펼쳐져 있는 세상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세상을 선택한다고 믿는 동안에도 우리는 자신이 속한 세상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을 뿐인 것입니다. 세상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한 부품으로서의 하루, 이틀을 살아낼 뿐인 거죠. 

- 合 (?)
두 대의 기차가 나란히 나아갑니다.
폭우가 쏟아져도 우산으로 견디며 길바닥에 부딪는 빗물의 미세한 무늬까지 다 세며  걷는 제가 있고, 말없이 긴 언덕을 하염없이 내려가는 - 삶의 흔적없음을 개관하는 - 제가 있습니다.
작은 인정이나 호의로도 삶의 조명이 한결 밝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긴 해요.  그러나 무게중심을 맞추기라도 하듯, '인생사에서 맹목 아닌 것, 허무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느냐~'는 생각이 뒤를 이어 검은 진리인 양 빛을 냅니다. 
이런 양 극단에 대한 무의식적 왕복은 저로서는 맹목에 대한 경계이며 삶에 대한 경계이기도 한데, 공감을 얻기 어려운 부분이라......  (로 급 마무리.)

덧 :  https://www.youtube.com/watch?v=C4f6cYT5y9Y
포스팅하는 동안 이 음악을 들었어요. 팔레스트리나의 <사슴이 물을 찾듯 Sicut cervus> 
르네상스 시대 음악을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격정이 싫을 때 저는 이런 음악을 들어요. 
종교음악은 의외로 자율적이면서 쾌락적이기까지 합니다. -_-

    • 결과적으로 "선택"이 됐는지 몰라도 자기가 선택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안쓰러운 것이죠. 긍정적인 관점이 용기있는 선택인지 부정적인 관점이 용기인지는 모르겠어요.(무지를 선택해 긍정적으로 사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부정적인 환경임에도 긍정적으로 살기를 택한 자가 대단하다 뭐 그정도인데, 인간은 너무나도 환경의 지배를 받기에, 배운대로 살다가 죽을 뿐이지, 자업자득이라는 말은 차갑게 느껴지네요.정반합을 다 얘기하셨지만.저 하고 싶은 말만 주절거린 것 같은데 암튼 잘 읽었습니다. 이런 갬성 반갑다는.
      • 본문보다 나은 댓글을 대할 때면 흐뭇~ 뿌듯~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이것이냐/저것이냐'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이것도/저것도'의 꽉 막힌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그걸 감안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나'로 인식하고 살아가죠. 그런 기대에서 바람을 좀 빼야 실제의 자신일 텐데 그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듯합니다. - -

    • 이런 음악 저의 취향저격이라죠(하루종일 들으라면 못 참겠지만)♥ 혹시 뒷부분이 "쾌락적"인가 했는데 그딴 거 없군요 ㅋㅋ 그냥 막 좋아요. 딴 세상으로 도망쳐서 안전한 기분.
      • 취향이시라니 으음.  이런 음악의 단점은  폴리포니가 지나쳐서 가사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교황님이 직접 나서서 음악에서 가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도 개선이 안 됐다고.  - -
        '쾌락적'인 게 안 느껴지시면 그림들을 떠올려 보세요. 성서에 나오는 여성들의 모티브를 벌거벗은 젊은 여인들의 아름답고 육감적인 몸에 대한 눈의 즐거움으로 변신시켜 놓은 그림들 말이에요. 사진이 없던 시절에 육체의 질감과 과일들의 먹음직스러움을 그런  그림에서 살려낸 거라던데, 종교음악이 그와 비슷합니다. 
         
    • 지구의 중력에 다소곳한 사람이 무난한 사람이죠 난 신경질을 부립니다 빨래가 왜 넝쿨같이 엉켜 안풀어지냐 어찌 그때까지 무난하나마 사는 것도 중력의 도움인데
      • 중력에 다소곳하지 않고 신경질을 내서 우짤건데요? ㅋㅋ 


        에...  그래서 뉴턴이 'F= G mi m2/ r2 '라는 공식으로 간단하게 우리를 납득시킨 바 있습니다.

        • 어쩌긴 지구를 들어 내동댕이 치고 싶지
    • 오우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어색어색하고 간질간질한 이 기분을 설명할 길이 없... ㅎㅎ

    • 고상한 글이구료.


      저 같은 경우엔 한치의 오차 없이 만들어진 지구의 중력에 감사할 뿐이죠, 우주에 붕 떠있는 삶보다는.


      인간은 누구나 자기세상의 왕이죠.


      자아에 완고하게 갇힌.


      3대종교 창시자들은 그 심각성을 알고 고민하다 깨쳐서 나름대로의 종교를 창시한 듯 합니다.


      석가는 자기를 완전히 비우고 초월하라 하고

      공자는 자기를 잘 닦아서 중간에 서라 하고

      예수는 자기를 부정하고 죽이라고 하죠.


      결과를 대충 보면

      불은 부모처자식은 나몰라라 자기만 열반에 도달하려고 하고

      유는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방관자문화를 낳았고,

      예수의 삶은 완벽한 성인이지만 예수쟁이들은 과연 진실로 자아를 죽인 자가 있을까요.
      • 음.  세 분의 공통점이라면, 자신의 관념으로 남을 독해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읽어내는 시간을 사셨다는 점이군요.


        몰락과 성공의 굴레를 벗어나 스스로를 축복한 삶을 사셨다는 것. 




        아, 오랜만에 접한 단어라 사전에서 '고상하다'를 찾아봤습니다. 에이~ 제 글이요? ㅋ



      • 보고싶어 죽은 자식을 꺼내 잘먹는 과자를 먹였다 그러죠 세속의 정 중에 으뜸이라 나몰라라 그러기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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