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바낭] 영화 '버드맨'을 봤습니다

 - 스포일러는 없어요.



 - 꽤 오랫동안 볼 것을 확실하게 정해놓고 넷플릭스를 켜는 생활을 하다가 어제 모처럼 메뉴 서핑을 했네요. 그러다 정하기 어려워서 아마존 프라임도 몇 달만에 켜봤는데... 업데이트된 신규 컨텐츠가 별로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아무리 소수 정예 컨셉이라지만 이래서야 넷플릭스랑 경쟁이 되겠나 싶을 정도. 곧 디즈니+까지 런칭을 하면 이 싸움이 어떻게될지 궁금하네요.



 - 마이클 키튼이 '90년대에 조류 코스튬을 입은 히어로물로 시대를 풍미했던 퇴물 배우' 역으로 나옵니다. 마이클 키튼이 퇴물 배우인 건 아니지만 뭔가 절묘한 캐스팅이죠. ㅋㅋ 암튼 이 양반은 그 때의 성공에 취해 인생을 대충 막 살다가 경력도 망가지고 가정도 파탄을 냈습니다. 아내와는 이미 갈라섰고 소원한 사이인 딸래미(엠마 스톤입니다)는 약물 중독 재활 시설에 들어갔다가 최근에 나와서 아빠 일을 돕고 있구요.

 이 양반이 인생 역전의 발판으로 기획한 건 브로드웨이 연극입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개작해서 본인이 직접 주연을 맡고 야심차게 준비중인데 돈도 없고 환경도 나름 열악해서 고군분투중이죠. 그리고 이 영화는 이 무대 첫 공연의 이틀(인가 삼일인가;) 전에 시작해서 천신만고 끝에 첫 공연을 어떻게든(?) 마치기까지를 그립니다.



 - 원 컷으로 찍은 척하는 영홥니다. 대략 한 시간쯤 지나면 그게 트릭이라는 걸 일부러 드러내주지만 드러내는 와중에도 형식적으로 원 컷은 유지가 돼요. 거의 마지막 장면 직전에 툭. 하고 끊어지는데 그 이후의 분량은 고작 5분 남짓이라. 형식이 그렇다 보니 당연히 현란한 카메라워크가 동원되어 기교를 뽐내지만... 다행히도 그게 그냥 기교 자랑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소재가 연극 만들기이고 배경이 연극 전용 극장이잖아요. 이렇게 끊김 없이 진행되는 형식 덕에 생중계 느낌이 들어서 영화가 연극적인 느낌을 띄게 되는데, 그게 이야기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두 배로 뛰어나 보이게 되고 정적인 이야기에 생동감과 현장감을 부여하는 효과도 덤으로 따라오구요.



 - 배우들의 연기도 참 좋습니다. 마이클 키튼은 '왜 이 사람이 오스카를 못 받은 거야?'라며 그 해의 오스카 수상자를 확인하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역시 주인공의 사연과 겹치는 면 때문에 재밌습니다. 배트맨으로 지구를 정복했던 배우에게 이런 역이라니 너무 적절해서 캐스팅이 먼저였는지 '버드맨' 설정이 먼저였는지 궁금하더라구요. 그리고 이 영화 3년 뒤에 마블로 소속을 옮겨서 또 조류 인간 역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 웃기구요.


 원 컷 형식은 트릭이라지만 어쨌거나 기본적으로 롱테이크로 거의 전부가 이루어지는 영화라 배우들 역량이 중요한데 뭐 그냥 다들 잘 합니다.

 나오미 와츠, 에드워드 노튼, 엠마 스톤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에드워드 노튼이 참 반가웠어요. 이 분의 연기를 최근에 본 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영화는 배우의 개성이 확 드러나는 영화는 아니니까요. 특히 엠마 스톤과 대화 나누는 장면에서 '내가 니 나이로 돌아간다면...' 같은 대사를 치는 장면이 있는데 뭔가 실제 배우 에드워드 노튼이 배우 엠마 스톤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서 좋더라구요. 제가 '프라이멀 피어'로 이 분을 처음 본 게 벌써 20여년전.



 - 사실 이야기 자체는 뻔한 구석이 많습니다. 왕년에 잘 나갔던 퇴물이 작품 하나 맡으면서 어떻게든 멀쩡하게 완성해보려고 애쓰는 이야기는 거의 장르물 취급을 해도 될 정도로 역사가 깊잖아요. 속 썩이는 스타 배우 나오고, 잡아 먹을 듯이 달려드는 유명 평론가 나오고, 배우들 중 누군가와는 애정 관계로 얽혔으며 주인공의 개인사는 파탄 중이고, 마지막 무대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이 영화에도 이런 요소들은 여지 없이 다 튀어 나오구요. 기본 설정은 그렇게 뻔하지만 감독의 기교와 스타일이 충분히 개성을 부여해주기도 하고 또 이야기의 디테일이 좋으며 연기도 좋으니 그냥 재밌습니다. 지루할 틈 없이 잘 봤어요.



 - 결론을 따로 낼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 뭐, 아직 이 영화를 안 보신 넷플릭스 유저시라면 한 번 보세요.

 위에서 언급은 안 했지만 전개 중에 환상적인 요소가 살짝살짝 끼어드는데 그 또한 아주 볼만합니다. 특히 클라이막스의 어떤 장면은 정말 쌩뚱맞게 아름답고 멋져요.




 - 사족으로. 영화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헐리웃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수많은 배우들이 실명으로 강제 출연 당합니다. 키튼이 본인의 배트맨 후배 조지 클루니 얘기하는 것도 조금은 조크 같은 느낌이었고. 자꾸만 마블 영화 얘길 하면서 투덜거리는데 정작 본인도 스파이더맨 출연하셨고(...)



 - 마블 영화에 대해서 되게 험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영화이기도 해요. 마틴 스콜세지는 쌈 싸먹을 정도로 꾸준히 까는데 그래도 이건 자연인의 발언이 아니라 그런지 별 화제는 안 되었던 듯요. ㅋㅋ 그냥 농담인지 진지하게 까는 건지 지금도 헷갈리는데 막판에 스파이더맨이 슬쩍 비춰지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진심인 것 같기도 하고.



 - 넷플릭스 오리지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교회 다니는 형사님이 정말 하찮은 역으로 얼굴을 두어번 비춰주십니다.

 주인공이랑 연애하는 배우로 나오신 분은 제가 저도 모르게 자주 봤던 분이더군요. 니콜라스 케이지의 괴이한 호러 영화 '맨디'에도 나오셨고 블랙 미러의 '악어' 에피소드 주인공도 하셨던.



 - 제가 '보잭 홀스맨'을 한 시즌 끝내고 나서 이 영활 봤는데, '왕년에 잘 나가다 한 물 간 성격 파탄 퇴물 배우가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이야기라 좀 웃겼습니다. 두 작품에 모두 출연한 배우도 있구요. 나오미 와츠요. 방금 전에 성인용 막장 애니메이션에서 막 나가는 캐릭터였는데 이젠 또 궁서체로 진지한 배우 캐릭터라 재밌더라구요.

    • 나오미 와츠나 노튼은 오스카상 하나 받아야하는데. 꾸준히 좋은 연기.프라이멀 피어 때 받았는지 못받았는지 가물가물 하네요.
      • [프라이멀 피어]로 남우조연상 후보에는 올랐는데 받지는 못했어요. [제리 맥과이어]의 쿠바 구딩 주니어가 가져갔네요.

      • 둘 다 커리어가 생각 외로(?) 그렇게 막강하지는 않은 배우이기도 하죠. 늘 꾸준히 잘 하는데 또 한 방은 없달까요.
    • 나오미 와츠는 tv,드라마, 주연/조연 안 가리고 열심히 나오는 것 같아요. <데몰리션>에서도 참 인간적인 연기였죠.

      • 맞아요. 퍼니 게임 같은 데도 나오고 트윈픽스 시즌3에도 나오고 뭔가 좀 출연작들 맥락이 버라이어티한 편이죠.

        그래도 성실해서 좋아요!
        • 트윈픽스는 데이빗 린치와의 인연때문이겠죠. <인랜드 엠파이어>는 토끼가죽인가 써서 얼굴도 안 나오고 목소리만 나오는데도 출연했더군요.




          naomi watts inland empir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이 영화가 아마 3테이크로 제작되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중간에 세트 안의  어두운 부분에서 한번 이어붙이고, 마지막 병동장면에서 한번 끊고.  

        • 촬영 감독이 칠드런 오브 맨을 했던 사람이라는 얘길 들으니 고개가 끄덕끄덕해지더군요. 칠드런 오브 맨의 롱테이크도 대단했죠.
        •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어떤 리뷰어가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빼곤 중간에 한번 이어준거 말곤 없다고 했는데.. 에잉.   

      • 원컷 트릭은 왠지 봐도 봐도 재밌어요. 늘 '어디에서 끊은 거지?' 라는 태도로 열심히 화면에 집중합니다. ㅋㅋ
    • 재미있게 본 영화에요. 


      연기도 연출도 좋았지만 OST도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와 함께 진행되는 드럼소리가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 맞아요. 저도 드럼 연주가 너무 멋져서 검색해봤더니 팻 매스니 밴드에서 드럼 치던 분이었더군요.
    • 개봉했을때 극장가서 본 영화였는데, 연극 내용이 카버 작품 개작한 거였군요. 국내 번역된거로 알고 있는데 소설 읽고 다시 봐야겠어요. 그나저나 딸 역할을 크리스틴 스튜어트로 다른 영화와 혼합해내어 기억하고 있었네요.
      • 단편집의 커버 작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 어그로? 끌려는 건 아닌데, 여기서 엠마 스톤이 어느 가게 주인을 비방하면서 하던 대사였나? "김치냄새"를 언급하는데, 잠시 논란이 되다가 말았어요. 저도 보자마자 기분 나빠질 건 없더라구요. 순식간에 지나가는 대사이기도 하고. 공인으로서가 아니라 캐릭터의 대사로 보면.
      • 그렇죠. 그 캐릭터의 초반 상태를 생각하면 뭐 화낼 것도 없는 일이었는데, 아마 그 논란이 개봉 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대부분 영화는 못 보고 기사만 보고 화내고 있었던 듯 하죠.
        • 저도 그래서 그 '김치 냄새' 장면 보고 피식 웃었죠. 뭐여, 저런 성질 사나운 약쟁이라면 뻔히 할 법한 소리구먼. 뭐 저런 걸 갖고 그 난리난리…;; 영화는 재밌었어요. 마이클 키튼이 왕년의 배트맨 역이었다는 걸 생각하니 더 웃음이 나더군요. 물론 재밌어서 웃은 겁니다. 키튼 선생 본인 얘기로는 톱스타 자리에서는 오래있지 못했지만 꾸준히 크고작은 이런 저런 역할 맡으면서 나름 성실하게 배우 생활을 했었더랍니다. 그래서 사실 극 중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았다구요. 정말 공감이 가는 얘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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