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은 추억이 될 수 있는가

어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특정되었다고 뉴스가 나오더군요. 조금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흥미로웠습니다. 미스테리가 드디어 벗겨져나갔으니까요. 그는 누구인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런 짓을 저지르고 지금까지 비밀스레 갇혀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감정적 공소시효가 지난 탓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오래된 사건이니까요.

<살인의 추억>의 그 놈이 붙잡혔다고? 이 사건을 바라보는 제 의식의 첫번째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현실을 본질로 두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본질로 두고 현실은 영화의 전편과 속편처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Sns에서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들 인식하더군요.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은 현실에서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되어 또 다른 픽션으로 소비되고 있었습니다.

전에 어떤 블로그 이웃이 그러더군요. 모든 서사는 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한다고. 현실이 "이야기"로서 기승전결이 되는 순간, 그것은 소비자의 재미를 위해 복무합니다. 그런 점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이야기로 만든 <살인의 추억>의 위력을 다시 실감하게 됩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여성의 현실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살인의 추억>은 남자들의 영화에 훨씬 더 가깝다고 느꼈으니까요. 남자들끼리 쫓고 쫓기는 가운데 여자들은 핏빛 병풍으로 세워져 있어요. 이 영화의 여자들은 오로지 희생자로서의 공포를 담은 자루로 꿈틀거립니다. 영화를 이끌고 가는 건 남자들의 탐구심과 무식함과 폭력과 마지막에야 간신히 나오는 분노입니다. 사실 그 분노도 희생자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거짓말쟁이 약자에 대한 분노에 더 가깝죠. (용의자들을 두들겨 패던 송강호의 캐릭터가 김상경에게 서서히 전이되어가던걸 생각해보면요)

이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폭력으로 굴곡진 한국사를 작품에 녹여냈다는 게 이 영화의 성취일텐데, 그 지점에서 여성살해는 또 다른 주제를 위한 은유의 재료로 쓰입니다. 국가의 무관심 혹은 직접적 폭력에 희생당한 민중들... 여성의 시체, 여성의 살해 사실은 이 국가적 폭력을 직시하기 위한 프리즘이 될 수 있을까요. "저 여자들의 죽음은 국가에 의해 죽은 민중들이다"라는 공식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되묻게 됩니다. 여성의 죽음은 한 개인의 말살이면서,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집단의 주된 피해일텐데 왜 이렇게 주가 되는 무엇을 위한 부로 쓰이고 마는 것일까요. 여성의 존재는 너무 쉽게 다른 주제에 종속됩니다. 감히 비교하거나 동일시될 수 없을만큼 마땅히 독립적인, 개별적 사건이자 한 계층의 역사적 학살로 분류되어야 하는데도요. 여성이 남성에게 계속 죽는 이 흐름은, 과연 비유의 재료만큼 가벼운 것일까요 혹은 탈부착이 가능한 것일까요.

솔직하게 묻게 됩니다.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여자들의 얼굴이,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경각심을 가져다줬는지. 죽어서 개미가 기어다니던 그 얼굴과, 살아서 떨리는 목소리로 녹음을 하던 그 얼굴은 과연 우리 시대의 희생자를 온전히 비추고 있는지. 저는 그 표현의 진실성이 아니라, 기능의 진실성에 대해 묻고 싶은 것입니다. 스릴러의 "스릴"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어떤 결론으로 남았던가요. 우리가 기억하는 이 영화의 결론은 두 남자의 얼굴입니다. 하나는 억울하고 두렵다는 듯 눈꼬리를 끝까지 치켜뜬 의심스러운 남자의 얼굴입니다. 또 하나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너무 유명한, 경멸과 무력감을 담은 얼굴입니다. 여자의 얼굴로 시작했던 영화는, 여자의 얼굴이 사라져버린 그 굴다리 아래를 비추고 다시 한번 남자의 얼굴을 비춥니다. 또 한번 비춰지는 남자의 얼굴에 담긴 그 허망함은 과연 여성희생자들을 향한 것인지 좀 궁금해집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남자를 잡지 못한 남자의 회한"이라고 기억할 것 같거든요.

살인은 추억이 될 수 없음에도, 봉준호는 아주 멋지게 추억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마저도 우리는 추억의 끄트머리에 붙여서 즐거워하거나 혀를 차며 금새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소거하고, 지극히 현실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30년전에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강간하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이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 사건의 전부이지 않을까요. 남자가 여자를 죽였다. 또. 그리고 잡혔다. 더 단순하게는, 이렇게요.
    • 공감이에요. 최근에 본 넷플릭스 믿을수없는 이야기가 성폭행이 어떤건지 더 생생하던데요. 살인의 추억류는 강간 살인을 소재로 하면서도 여성의 고통에는 관심없어보여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범죄를 재료로 이용하고 여체를 전시할 뿐
      • 전에 여성영화제에서 봤던 <시체가 된 여자들>이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 동의합니다. 영화 개봉때 봤었지만 재미는 있어도 찝찝한 기분이었고, 다시 보고 싶은 생각도 전혀 안들었고... 저에겐 (안좋은 의미로) 기분 나쁜 영화었어요.
    • 살인의 추억 영화가 현실과 맞먹을 혹은 뛰어넘는 정도의 인상을 남긴 건 이 영화가 끝내주게 잘만든 영화고 많이 사람들이 봤기 때문 아닐까요?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다룬 영화는 제목도 생각이 안나네요. 제목에 대해서도 말이 좀 많은데 왜 자꾸 살인 = 좋은 추억 이란 공식으로 단정짓고 문제를 삼는건지 모르겠어요. 영화가 남자 주인공들이 득실대는 영화고 피해자들은 다 여자였죠. 그 ‘실화’를 다룬 영화니까요. 봉준호는 픽션을 다룬 영화에서 많은 멋진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죠. 윤주, 현서, 미자..
    • 봉준호 어리둥절.




      도대체 왜 '여성이 줄줄이 피해자로 나올 수밖에 없는 실화'를 영화의 소재로 삼았느냐는, 원죄를 묻는게 아니라면


      봉준호는 (무려 16년 전 영화인데도 이미) 본문에서 지적하신 많은 함정들을 솜씨 좋게  비껴갔다고 생각합니다.


      스릴러라는 장르에 충실하면서도요.




      '악마를 보았다' 정도라면 모를까...

    • 살인의 추억을 극장에서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말 얹기가 조심스러운 점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 여성을 대상화 하거나 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문제는 역시나 백델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지요. 애초에 남성인 가해자를 쫓는 남성인 형사 사이에서 여성은 오독될 여지조차 없는, 그냥 피해자가 있었다 정도 음. 그러니 여성을 신체로써 전시하는 다른 범죄 영화보다 낫냐고 물어본다면 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윗분 말씀대로 16년 전 영화라는 구차하지만 유용한 변명도 써먹을 수 있을 거고요. 그렇다고 해서 시대가 달라졌는데 그것에 대해 비판하는 게 무의미한가요? 그건 또 다른 이야기 아닐까요? 이제 유력 용의자가 확인되었으니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을 위해서 더 이상 이 사건이 소비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많은 사람들한테 충격적인 사건인 만큼 말이 나오는 것 자체는 불가피한 일이라 한다면, 차라리 16년 전 영화일 망정 꺼내놓고 그때는 그랬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는 계몽주의적 결론이라도 내리는 게 한결 건강한 거 아닐까 싶습니다. 

    • 한국 남성 감독들 영화를 보면 리버럴 남성임을 보여주는 숏들이 있어요. 느끼긴 하지만 말로 풀어낼 재간은 없... ㅠ 대안 제시를 다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게시판에서 이 정도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가 영화의 명대사로 회자되었었죠. 이 말이 참, 정말. 뭐랄까,딱 가부장의 대사인데.. 장르적 재미와 완성도는 차치하고라도 이 영화에서 사람들을 가게 한 감성포인트는 무엇이었나 이 대사를 떠올리며 더듬어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별로인 사람도 있는 거죠. 액션 환타지를 찍으며 마초 허세를 내뿜는 실베스터 스탤론 등등을 보며 오구오구 귀여워 할 수는 있어도 송강호에게는 그게 잘 안되더군요. 

    • 이 영화의 제목은 살인자와 그 과정을 지켜본 대중이 추억이 아니라, 살인 자체가 자기역사를 추억한다는 의미로 붙인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억은 하고/ 못하고의 팩트 문제인데 반해 추억에는 감정이 개입되는 건데, 살인이라는 행위를 주체로 내세우고 거기에 감정을 실은 '추억'이란 단어를 사용한 게 신선했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에 범인 윤곽이 드러나면서 봉 감독이 개봉 당시 했던 인터뷰가 재조명되고 있더군요. 
      봉/ 영화 찍느라 많은 자료를 검토했는데, 범인은 1971년 이전 생이고 B형입니다. (농담이라도 왜 이런 추리를 들이미셨을까요. ㅋ 이번에 드러난 범인은 0형. -_-) 
      • 봉준호 감독이 B형이라고 한 이유는 경찰이 그걸 확신하고 그걸로 범인 대상을 좁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드러난 범인이 대전교도소에서 자신의 화성에서의 살인행각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도 혈액형이 O형이라 넘어갔다는 기사가 나왔어요. 어쩌면 공소시효 전에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의 'B형남자' 집착이 화성살인 키웠다"


        https://news.v.daum.net/v/20190920090304016

    • AOA 논란과 다른 측면이지만 맥락이 같네요. 저도 듀나와 같은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들을 당위와 메시지 없이는 좋아할 수 없는 거 같아요. 이건 정말 신기하고.'

      • 어떤 말씀이실까요. 이 작품에 나온 여자들을 시체로서 좋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거 같아서 여쭤봅니다. 전달이 잘 안된 것 같아서 다시 풀자면, 서사가 현실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영화와 현실의 관계로 써본 거구요. 아이돌 논란의 맥락과는 별로 같지 않습니다...
        • 글쎄요. 서사가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에 대한 글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살인의 추억의 PC하지 못함에 대한 완곡한 비난같았는데... 
          봉준호는 <기생충>에 대해서도 비슷한 비난을 받았죠.
          그리고 서사는 현실의 부스터이기도 하지만 조각모음의 역할도 합니다. 모든 신화와 전설이 그런 식이죠. 음..여러가지 측면에서 현실의 네러티브화는 재밌게 토론할만한 꺼리이지만,
          본문글이 그렇게 드라이한 글처럼은 보이지 않았네요. 오해한거라면 사과드릴께요. 

          • 스토리가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는지 그 왜곡되는 부분을 짚어봤는데 그게 피시함에 대한 비판과도 겹치긴 하니까요... 오히려 이 영화를 피시함으로 파고들면 굉장히 모범적인 영화일 겁니다.


            그리고 저는 현실과 스토리의 관계를 드라이하게 써야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세월호 사건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가장 격렬하게 반발하는 측의 근거는 바로 이 둘의 상호작용과 왜곡이었으니까요...
            • 현실과 서사의 차이를 어떻게 소화시키느냐는 감상자에게 대부분 몫이 있습니다. 봉준호의 포커스가 피해자에게 있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만 그렇다고 그게 왜곡은 아닙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공감해요. 드라이하게 써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 아뇨. 이 부분은 단호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이야기도 현실 없이는 가공되거나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제가 본문에서 말씀드린 대로, 서사는 반드시 현실을 왜곡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창작자가 더 주의하고 서사와 현실의 간극을 조절해야 합니다.


                세월호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가정해보시면 이해가 좀 쉬울 것 같습니다.
              • 변형. 재해석같은 중립적인 단어를 두고 굳이 부정적 함의가 담긴 왜곡이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정말 의미 그대로만 사용하신거라면 제 오해가 맞습니다.

                현실을 서사화하면서 생기는 변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 그러면 세월호의 영화화 자체가 부정적이신건지요? 입장을 정확하게 정리해야 토론이 더 재밌어질 것 같습니다.
              • 예를 들어 타이타닉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되게 믿기 힘든 소리네요. 세월호를 영화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참고로 지금 나온 영화들은 거진 다 유족들에 관한 이야기지 세월호 사건 자체에 관한 영화들이 아닙니다. 세월호 사고 자체를 <살인의 추억>이 그랬듯이 사건을 아예 재현할 수 있다고 하시는 거죠?
                • 세월호가 왜 영화화되면 안된다는 것인지 부연설명 부탁드립니다. 
                  제 입장은 어떤 현실이든 창작자는 반영할 수 있는 권리 또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에 관한 다큐는 많이 나왔습니다. Sonny님은 다큐멘터리에는 서사가 없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영화매체를 사회학적으로 보는지, 미학적으로 보는지, 아님 윤리적으로 보는지의 차이는 각자 있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까지 근엄한 기준은 저도 처음 듣네요. 

              • 어떤 현실의 고통은 스크린 위에 재현해서는 안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건 너무 기초적인 윤리라서 제가 굳이 설명을 드려야 하나 싶네요. 사람의 죽음을 스크린에서 표현한다는 건 그 죽음을 반복하는 거고 작품 안에서 창작자가 해당 존재를 죽이는 겁니다... 영화는 포르노가 아니라는 걸 모르시진 않을텐데요
              • 이번 <엑시트>에서 사람들이 감명받았던 부분 중 하나는 학원에 갇힌 청소년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고, 원거리에서 잡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감독이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현실의 사고를 연상시키는 장면에서 희생자와 동일한 계층의 캐릭터들을 인질로 삼아 감정을 착취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어떻게 보는지 질문하셨는데 미학과 윤리와 사회학이 딱 부러지듯이 구분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학에 기반해 윤리가 작동하고, 그 윤리를 어기면 미적으로 추해지는 거고, 그런 거죠.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살인의 추억>의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전제를 이렇게 질문하셔서 솔직히 당황스럽네요.
    • 살인의 추억은 범인을 잡는 남자들의 추적을 그린 영화라기보다 당시의 부조리와 경찰의 무능함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이 희생당하는 걸 그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걸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한 남자들의 회한'같은 거라던가 DC를 위시한 남초 커뮤니티에서 말하기도 싫은 '향숙이' 드립으로 소비했던 걸 생각하면 완전히 결백하다고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점에서 본문에 동의합니다. 사실 제목부터가 좀 그렇죠. '추억'이 뭔가요.

      • 제목이 '살인의 추억'인건, 붙을 수 없는 두 단어를 붙였을 때 발생하는 부조리를 위해서가 아닌가요; 설마 진짜로 봉준호가 살인을 추억할 수 있다고 믿고 제목을 저렇게 붙였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 안 어울리는 두 단어를 붙임으로서 나오는 '도발성' 외에 얻어지는 게 뭔가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고 실제 희생자들을 생각한다면 예의없는 제목이 아닌가요?

          • 위에서도 적어놨지만 '부조리'가 느껴지죠. 그리고 그게 단순히 희생자를 모욕하고, 자극적인 도발을 위해 쓰인 제목이 아니라는 것은 영화가 입증했고요. 
            • MELM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살인의 추억]이란 네이밍은 클린하지 않아요. 영화상에서 보더라도 살인자가 문제의 하수구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옛 살인을 '추억'했다고 하는 시퀀스가 있습니다. '부조리를 말하기 위함이다'라고 주장하기엔 제목 안에 다층적 의미(살인자의 살인의 추억, 살인자를 추적했던 형사들의 추억 뭐 기타 등등등)가 섞여있어요. 그리고 누가 텍스트를 제시한대로만 받아들이나요. 제목의 의미 중 일부는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 좋은 네이밍입니다.

              •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애초에 영화가 만들어지면 안 되었죠. 피해자가 상처를 '입었다'면 몰라도 피해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재단하기 시작하면 어떤 예술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 '살인자의 추억' 시퀀스가 영화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봐야지, 그 시퀀스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문제삼는건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 문제를 호도하시는 데 그 시퀀스의 존재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계속 얘기하고 있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타이틀의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 시퀀스를 얘기한 거예요. '살인의 추억'이라는 제목이 결국 영화 내에서 '살인자의 살인의 추억'으로 쓰이지 않았냐는 거죠. 그런 쪽으로 느끼다니 생각도 못해봤다고 하시니까 작품 내에서도 다층적 의미로 쓰였고 안 좋은 네이밍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해 안되세요?




                  그리고 살인과 추억이 같이 놓인 부조리한 제목으로 얻는 게 뭐냐고 여쭤봤더니 그걸 또 부조리함이라고 하시는 건 뭔가요. 순환논리도 아니고.

            • 살아있는, 죽은 사람들의 리얼리티를 기어이 훼손하면서 만들어야 할 예술 같은 건 없습니다. 당장 <암수살인>만 해도 유가족들의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으로 논란이 됐었구요.
    • 모든 영화를 이렇게 여성과 남성의 대립적인 관점에서 보는거 좀 피곤하지 않으세요?




      영화도 재밌게 못볼거 같은데

    • 봉준호가 아이러니로 택한 장치들을 죄다 봉준호의 PC하지 못함으로 해석하는게 당혹스럽기 그지 없네요.


      영화를 어떻게 보신건진 몰라도 이 글이 진지해서 더 소름입니다.
    • 이 영화에서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나오는 것은 여성 뿐만이 아니에요. 백광호를 위시한 용의자들도 희생자며, 심지어 그 용의자들을 폭행하던 발을 파상풍으로 잃게되는 형사까지 국가폭력의 담지자인 동시에 피해자죠. 현실은 'A=희생자, B=가해자' 공식으로 단순 환원되지 않고, 봉준호가 탁월한 것은 그 공식을 적용하면서도, 동시에 그 적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삑사리를 그려냄으로써 현실의 복잡성을 복구해낸다는 것에 있고요. 

      • 에... 제 글을 다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좀 핀트가 나간 반문이라서...
        • 충분히 읽어보고 단 리플입니다. 봉준호의 영화가 "저 여자들의 죽음은 국가에 의해 죽은 민중들이다"라는 공식 위에 성립되어있다고 하셨지만, 봉준호의 탁월함은 오히려 그런 공식을 유지하면서도, 그 공식과 불일치하는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삑사리를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그 분노도 희생자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거짓말쟁이 약자에 대한 분노에 더 가깝죠." 이 부분도 동의하기가 좀 어렵네요.  김상경의 캐릭터가 무너지는 원인은 희생자가 될 여중생과의 반창고 씬에 있으니까요. 봉준호가 이 씬을 괜히 넣은건 아니죠. 




          나아가 우리가 현실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의미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특정 이야기가 현실을 얼마나 왜곡했느냐는 물론 평가받아야 할 문제입니다만.




          • 이래서 제가 제 글을 다시 읽어보셔야 할 것 같다고 한 겁니다..


            .1. 그 공식 자체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 그 공식이 탁월하다고 평가하고 계시니까요. 그리고 봉준호 영화의 삑사리는 영화의 리듬에 관한 거지 여기서는 나올 계제가 아닙니다.


            2. 제가 괄호로 써넣은 부분도 읽어봐주시길 바라며... 여기서 두가지 질문이 가능합니다. 왜 김상경은 그 때서야 분노하는가? 그렇다면 이 전까지의 침착함은 무엇인가?그리고 송강호는 이 전에 분노했거나 이후 분노했는가?


            3. 무의미한 반론입니다. 이야기를 통하지 않고 재구성되는 현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현실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선에서 재구성할 수 있느냐 그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효과"를 "목적"과 혼동하는 것이야말로 주객전도일 것입니다. 이 영화는 화성연쇄살인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 만든 그런 숭고한 영화가 아닙니다.
            • 1. 아무리봐도 제가 정확하게 읽은 것 같은데요? 전 그 공식이 탁월하다고 보지 않아요. 봉준호의 영화의 장점은 그 공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 공식이 어긋나는 지점들, 그 삑사리들이 봉준호 영화를 입체적이게 한다는거죠. 그게 바로 아이러니의 순간들이고요. 다시말해 Sonny님은 봉준호의 영호는 특정한 공식에 기반해 있다는 것이고, 전 그 봉준호의 영화의 탁월함은 그 공식이 적용되는 것 같다가도 어긋나는 순간들에 있다는 거고요. 그래서 굳이 처음에 국가폭력의 희생자=여성 이 아니라,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용의자들 심지어 가해자였던 경찰까지 등장하다고 적어논 것이죠. 




              2. 단지 거짓말쟁이 약자에 대한 분노였다면, 그 학생과의 씬이 왜 필요한지 설명이 불가능하죠. 김상경 캐릭터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여중생의 죽음을 확인한 직후에요. 




              3. 영화를 숭고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목적/의도가 아니라 영화의 성취죠. 그리고 이 영화가 훼손/왜곡시켰다는 현실이란게 뭔지, 그리고 그 현실이란건 어떻게 알 수 있는 건지 궁금해지네요.  

              • 1. 아뇨... 저는 본문을 동어반복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걸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래서 슬슬 설명하는데 힘이 드네요.


                지금 너무 추상적으로 공식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저는 봉준호 영화가 공식이나 틀에 박혀있다고 비판한 적이 없어요. 그걸 무리하게 반박하려다보니까 오히려 멜님은 제가 지적한 이 영화의 단점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본문에 쓴 걸 복붙합니다.


                "폭력으로 굴곡진 한국사를 작품에 녹여냈다는 게 이 영화의 성취일텐데, 그 지점에서 여성살해는 또 다른 주제를 위한 은유의 재료로 쓰입니다. 국가의 무관심 혹은 직접적 폭력에 희생당한 민중들... 여성의 시체, 여성의 살해 사실은 이 국가적 폭력을 직시하기 위한 프리즘이 될 수 있을까요. "


                멜님은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그려냈다면서 그 점을 반박하는데 남자도 희생자로 그려지든 말든 여자의 시체가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은유한다는 건 변하지 않고, 여기에 대한 반론을 주셔야 하는 겁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부분들은 삑사리도 뭣도 아니에요. 오히려 지극히 순리적인 업보의 흐름이죠. 가해자가 피해자로 위치역전되는 걸 왜 삑사리라고 칭하는지 모르겠네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봉준호 영화에서의 삑사리는 리듬의 문제지 내러티브를 일컫는 게 아닙니다.


                2. 이것도 제 질문에 대해서는 하나도 답을 안하고 계시네요... 저는 단지 라면서 어떤 감정을 백프로로 단정지은 적이 없구요. 그 감정의 본질과 그 발산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겁니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와 김상경이 서로 닮아가며 뒤집힌다는 건 너무 뻔한 공식이에요.


                3. 멜님의 댓글 복붙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현실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의미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특정 이야기가 현실을 얼마나 왜곡했느냐는 물론 평가받아야 할 문제입니다만


                "현실을 기억하기 위해서" 라며 이야기의 목적을 제시하셔서 한 말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영화의 효과와 성취를 구분하는 게 좋습니다. 지금 당장 멜님께서도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을 국가폭력에 대한 사유라면서 변호하시잖아요. 그렇게 국가폭력을 주제로 이해하는 순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은 멜님께서 감탄하는 그 주제, 국가폭력을 위한 하나의 재료로 소모된다는 겁니다.


                이 영화가 왜곡한 현실이요? 당장 기안84랍시고 필명을 쓰는 만화가부터 이 때다 싶어 실제범죄와 연관된 영화를 케이블 채널이 바로 편성표에 싣고 있지 않습니까. 현실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걸 저는 본문 말미에 써놓았구요.
                • 1. 허허. "저 여자들의 죽음은 국가에 의해 죽은 민중들이다"라는 공식은 Sonny님이 부여하신 공식이죠. 봉준호가 이 공식에 기반해서 영화를 구성해 나가고 있다고요. 즉 피해자=민중=여성 / 가해자=국가 라는 공식이 영화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보시고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 틀에서 계속 영화를 비판하셔놓고 이제와서 영화가 틀에 박혀있지 않다고 하시는 건 좀 어이가 없네요. 그렇지만 제 주장은 영화가 그런 단순 공식에 기반해 있지 않다는 거에요. 이 영화에서 피해자의 위치는 여성만이 차지하는게 아닙니다. 그 피해자의 위치에는 다른 용의자들과 형사들도 포함되요. 이건 무척 중요한 겁니다. 저들의 존재로 인해 이분법적 구도가 무너지니까요. 그리고 삑사리는 단순 리듬의 문제가 아니에요. 봉준호 영화에서 삑사리가 발생하는 지점들은 아이러니의 순간들입니다. 




                  2. "희생자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거짓말쟁이 약자에 대한 분노에 더 가깝죠. (용의자들을 두들겨 패던 송강호의 캐릭터가 김상경에게 서서히 전이되어가던걸 생각해보면요)" 이렇게 주장을 하셨고, 전 이게 틀리다고 생각해 영화에 존재하는 씬을 가져왔어요. 제 주장에 반박을 하시고 싶으시면, 영화에 존재하는 것을 가져오시면 됩니다. 그 감정의 본질과 발산방식이 영화의 어떤 숏에서 어떻게 들어났는지를요. 




                  3. 도대체 어디에서 제가 " 영화의 훌륭한 점을 국가폭력에 대한 사유"라고 주장했나요?" 전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이 그런 메시지=이 영화는 국가폭력에 대한 사유다, 같은 것들이 무너지는 지점, 그 아이러니의 순간들에 있다는 거에요. 영화는 정치적 의견의 표출수단인 것만이 아니에요. 봉준호의 탁월함은 그런 단순 메시지들을 불가능하게 하는 아이러니에 있다는 거에요. 계속 Sonny님은 이 영화를 하나의 메시지, 공식으로 환원하고 있어요. Sonny님이 영화를 특정한 '주의'적 입장에서 보시는 것은 자유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그런 특정한 '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시면 안돼죠.

    • 1.


      "여성살해는 또 다른 주제를 위한 은유의 재료로 쓰입니다...(중략)...이 흐름은, 과연 비유의 재료만큼 가벼운 것일까요 혹은 탈부착이 가능한 것일까요"


      --> 여성살해가 폭력에 희생당한 민중에 대한 은유라는 것이 공식적인 감독의 의도인가요? 저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고 이런 해석은 처음 보는데..


      그렇게 해석하셔놓고 그렇게 은유하는 게 온당한 것이냐... 하시면 제가 느끼기엔 좀 어리둥절하네요..




      2.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여자들의 얼굴이,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경각심을 가져다줬는지..."


      --> 영화가, 고발물도 아닌 실화에 바탕을 둔 픽션이 어떤 방향성을 가진 '경각심'을 주는 것이 당위적인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런 부분에 주안점을 둔 영화도 있겠고,


      이 영화는 느끼신 것처럼 좀 다른 쪽에 포커스가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연쇄살인사건을 다루는 영화가 빠지기 쉬운 함정들(범죄장면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묘사한다든지 희생자를 인격이 아닌 대상으로만 그려낸다든지) 면에서는 탓할만한 구석이 별로 없었.....던 것 아닌가요..




      3.


      영화를 떠나서, 끔찍한 여성혐오 살인이었다는 자체를 되새겨볼만 한 것은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여성혐오 살인들처럼, 이 뛰어난 영화가 아니었다면 사람들 기억 속에는 잊혀졌을지도 모르겠죠.


      물론 하시고 싶은 말씀은 너무 해당 사건을 영화의 표현대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이시겠지만


      전체적인 글을 보면 영화의 주제나 표현방식에 대한 비난으로 읽히는 것도 사실이긴 해서..

    • 권위주의와 발전의 그늘에서 소외된 연쇄살인이라는 서사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우리 기억에서 벌써 사라졌겠죠.

    • 이게 다 영화를 너무 잘 만든 봉준호 잘못입니다. 오히려 성별 구도에 함몰되어 시야가 좁아진 면이 있지 않나 해요. 용의자에게 복숭아 조각 몇 개를 집어넣었는지는 기억나냐고 물을 때 그리고 여중생 허리의 반창고가 떼어질 때 극으로 치달았던 형사의 분노가,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단지 남자 형사가 남자 범인 못잡아서 터져나온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 이렇게 복잡하게 이야기할 거리나 된다는게 신기하고, 앞으로 페미니즘이라는 거창한(!) 명제가 나아갈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 한탄스럽네요. 14년 전이건, 봉피셜이 어쨌건 그 영화가 여성을 소비하고 묘사하는 방식이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남녀대결구도까지 가야 하는 이야기인가요. 최근에 벌새라는 좋은 영화를 보며 내내 마음 졸였습니다. 은희가 매순간 강간 당할까봐요. 언니 남자친구에게, 병원의 노의사에게, 심지어 외삼촌이 나중에 찾아오는건 아닌지 서사의 흐름에 벗어나는 걱정을 하면서요. 누군가는 너무 익숙해진 여성에 대한 묘사가 학습되어져 상흔으로 남는답니다.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거대담론이 있다? 궁극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던건 그 당시 폭력적이었던 사회였다? 날 선 글 안 쓰고 싶은데 해일이 오는데 다들 조개 줍는 소리나 하시네요.
      • '해일이 오는데 조개 줍는 소리나 한다'는 주장하시는 바의 정반대의 비유인 걸로 압니다만..

        • 역으로 차용한 비유인데 설명이 필요 한걸 보니 실패했나보군요. 예전엔 거대담론 어쩌고가 해일이었는지 몰라도 이제는 조개 줍는 소리라는 말이고 그 동안 조개줍는 일로 일축된 문제제기들에 대한 조롱을 그대로 돌려준 거랍니다. 여성들이 정말 설명이 필요할만큼 중요한 일을 모를거라 생각하시나요? 해일이 뭔지는 내가 정합니다.
          • 본인이 정한 자의적인 비유이니 설명을 달아야 하는 실패한 비유가 될 수밖에요. 조개라는 명사의 은유를 생각해보면 해일과 조개는 맘대로 바꿔 사용하긴 참 어려운데 말이죠. 궁극적으로는 그냥 안갖다 쓰는게 가장 좋았을 문장이고요. 
            그리고 '여성들이 정말 설명이 필요할만큼 중요한 일을 모를거라 생각하시나요?'의 주어는 '여성들이'가 아닌 '내가'로 고치셔야 할 듯요. 본인 개인 생각과 여성 집단을 동일시 하시는데, 본문과 이 댓글에 동의 안되는 여성 입장에서는 집단주의적인 강요 같아서 기분 나쁩니다. 남자는~ 남자가~ 같은 후진 화법과 정확하게 일치하고요. 왜 동의 안되는가는 위의 많은 댓글 속에 답이 있으므로 굳이 안적어도 될 듯합니다. 다른 의미에서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정말 갈 길이 먼 것 같군요.

            • 저야 전공자도 아니고 페미니즘 담론 안에서도 여러가지 분파로 나뉘어 각양각색의 노선이 있는 마당에, 가부장적 사회 시스템 아래 어떻게 여성이라는 집합 안에서 같은 목소리만 나올까요. 저 비유가 애초에 무슨 사건 때문에 나왔는지 알고 계실거라 생각 합니다. 우리(라고 적는것도 불쾌하시려나요. 하지만 전 분명 우리로 연대할 수 있는 여성그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는 해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조개줍기로 치부되어 왔던 수많은 지난 날이 있지 않았나요. 80년대 운동권의 거대담론에 밀려 여성이슈, 젠더이슈 모든게 부차적인 문제 취급 당했지만 이제는 알잖아요. 그리고 말할 수 있잖아요. 나에겐 이게 해일이라고.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던, 감독의 의도가 그게 아니던, 여성만을 피해자로 삼은게 아니던, 그리고 그런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어요!! 알고 있지만 나에게 불편한 지점이 있다고 이야기 하는데 마치 조개줍는 취급을 하시니 날 선 댓글을 달 수 밖에요. 여태까지 정말이지 그 잘난 거대담론을 이해하지 못해서 여성주의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해왔던걸까요. 당신들이 조개줍기라고 그건 곁가지일 뿐이고 진정한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고 가르치려 들려해도 이제 저는 나에게 해일은 어떤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는거죠.


              갈 길은 멀겠죠.  생물학적 여성이라 하더라도 자본과 계층, 심지어 비기혼 여부에 따라서도 각자 가지고 있는 입장이 다르고 기혼 여성 안에서도 가부장적 시스템과 얼마나 투쟁해야 할지를 두고도 끝이 없는 이야기를 나눠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연대하는 어떤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집단주의 적인 강요라고 하시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구요.

        • 벚꽃동산님이 유시민의 발언인걸 모른다고 쳐도 문장자체만으로도 의미있고, 유시민의 발언을 되돌려준거라면 더 의미있는 인용일텐데


          정반대 비유라는 지적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 이 문장 보자마자 유시민 생각나고 정말 해일이 뭔지 조개가 뭔지 몰랐던 그 발언이 비웃겨서 재밌었습니다.




          그러니 비유의 실패 운운에 대해서도 님이 유시민이 정한 '자의적' 비유로만 이해하는 탓은 아닐까요?

          • 본문에서나 댓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들은 간결하고 직선적인데 어째서 조개 줍는 이야기만 계속해야 하는지요. 니가 이해를 못해서 그렇지 이 영화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블라블라~ 우리는 해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말이예요. 그리고  몰이해라 할지라도 설명이 필요한 비유는 실패했다는 점에서 인정합니다.



            • 이해의 기준을 낮추지 말았으면 합니다. 설명이 필요할만한 비유 아니었어요.


              문장그대로 곧이곧대로 맥락속에서 이해해도 되는거였는데 굳이 유시민이 반대의미로 쓴거 알고있냐고 묻는건 이미 선해할 의도가 아니었다고 보여요.

      • 공감합니다. 본인들 생각이 어떻던 살인의 추억이 여성주의 관점에선 바라보면 후진 건 아주 극명한 사실인데 말이죠. 답답해 하지마세요. 뭐, 그냥 버리고 가는 수밖에- 별로 안중요해요~

    • 진상부리지말고 그냥 걸캅스나 보세요
      • 여기서 진상부리지말고 디씨로 가세요

        • 여기나 디시나 도찐개찐인데 뭐하러 가죠?
          • 님 때문에 도찐개찐 돼서요.

    •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질러도 사회적 맥락속에 있습니다.* 번개가 치더라도 번개의 가치판단에 따른 타겟이 있다는거죠. 비정신질환자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런면에서 여성대상 자연재해는 사실상 인재라고 봅니다.




      이춘재도 교도소에서는 모범수라잖아요. 드러난 범인은 결국 강약약강의 변태루저일뿐인데 이걸 하늘에서 내리는 자연재해로 다루는건 미화죠. 


      강간살인이라는 선정적인 사건을 소재로해서 형사와 용의자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 이게 여성대상 범죄를 줄이는데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의문입니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서천석 마음연구소장이 “정신병적 증상은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며...서 소장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조현병 환자들의 증상이 권위주의 독재시절엔 중앙정보부, 1980년대엔 미국 중앙정보국(CIA), 2000년대엔 삼성이 소재가 된 것을 언급하며 “정신병의 증상은 사회적 맥락속에 있다”고 적었다. 서 소장은 “그(피의자)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고, 그것은 ‘여성혐오’”라며 “이것이 그의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망상은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고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이 남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에 비해서 특별히 남자들에게 더 기분 나쁜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한겨레 2016.05.19)

      • 사람이 일으키는 일은 다 인재입니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살해를 그렇게 자연재해 취급하는 것이야말로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너희 여자들이 참고 견뎌라~ 하는 기득권층 특유의 무관심밖에는 되지 않아요.


        그걸 어떻게 인재와 자연재해로 구분할 수 있습니까? 안그래도 한국남자들 대부분이 결과론적으로, 여자를 죽이거나 강간한 놈들은 다 정신이상자고 그런 인간들은 예외적 요소들이다~ 하면서 여성의 인내와 긍정만을 강요하고 있는데요.


        설명 길게 하셨는데, 전혀 의미없는 이야기입니다. 권력은 무슨 직위나 자본으로만 성립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간단하게 타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입니다. 현재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권력차가 있어요. 세계가 충분히 문명화되지 않아서 육체적 힘이 권력 자체로 작용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택시를 생각해보세요. 자본주의적으로는 고객이 갑이고 판매자가 을이어야 하지만, 택시는 판매자인 남자기사가 갑이고 여자승객이 을이 됩니다. 폐쇄적 공간에서, 혹은 거주지나 생활공간이 노출될 경우 남성의 폭력이 따라올 수 있다는 리스크 때문에요. 화성연쇄살인사건도 똑같아요. 남자로서 가지고 있는 육체적 권력을 여자에게 행사한 겁니다. 저 권력관계를 어떻게든 수평화시키고 열세에 놓인 사람들이 같은 피해를 겪지 않도록 고민하는 게 당연히 먼저 나와야지, 무슨 자연 재해 타령하면서 여자들한테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그냥 또 다른 폭력의 생산이고 방관입니다. 너무 뻔뻔한 소리에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정신질환으로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겁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으로 모든 걸 축소하는 거구요. 여자를 한명 죽이면 정상남자의 범행이지만, 여섯명 죽이면 정신이상자의 범행인가요? 이런 식으로 누군 정상 누군 비정상 딱 나눌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지금 하는 말씀들은 정신질환 환자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구요...


        사이코패스요? 기사 한번 읽어보세요. 진범이 교도소에서는 얼마나 조용히 살았는지. 무려 모범수로 살았습니다. 이들은 통제불능의 이해불가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는 그냥 사람들인데 조금 더 비겁하고 음습하고 약자를 괴롭히는데에만 바빠질 수 있는 하찮은 인간들이죠.


        지금 하는 말들이 다 너무 추상적이에요.
      • 그리고... 영화만 제대로 봐도 자연재해 어쩌구 이야기를 절대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 영화는 막을 수 있었던 범죄를 인간의 무지와 나태와 사회적 파국으로 막지 못했던, 인간적 실패에 대한 영화에요. 그리고 현실이 그 영화의 교훈을 이어받은 것처럼 결국 진범을 잡은 거고. 그런데도 이런 현실을 보면서 여자들아, 저런 연쇄살인범 남자는 자연재해같은 거니까 어쩔 수 없는 셈 쳐라~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왜 여자가 당하는 폭력을 무슨 고정된 상수처럼 놓는 겁니까? 그건 생각하기 싫은 사람들의 변명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태풍이나 해일도 어떻게든 방지를 하려하고 사람을 보호하려하는데 무슨 남자 한명의 범죄에 그렇게 큰 절대적 힘을 부여하시나요.


        만일 제임스님의 의견을 곧이 곧대로 들으면 남성의 성별은 여성의 성별을 가진 인간을 해치는 근원적 실패작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기 때문에, 국가가 더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아요. 남자한테 전자 목줄을 채우든가 하는 식으로요
    • 대댓글이 써지지 않아서요.. 따로 댓글 올립니다. 기초적인 전제라고 하셔서 아마 서로의 주장이 오해되고 있는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세월호를 포로노그라피로 재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기억이 맞다면 시도가 있었을거에요. 재난 장르영화로 만들려했었죠. 아주 나쁘고 그보다 더하게 멍청한 감독이구나라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말씀드리는건 창작자가 현실을 재현할때 현실과 다르게 독자적으로 아우라를 갖게하기 위해서 (모든 창작자가 그런 야망이 있죠) 재해석의 과정을 거치는 것 (본문글처럼 왜곡이라 표현해도 무방합니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멍청하거나 나쁜 창작자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재해석의 과정에 어떤 기준점이 존재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질문드리는 겁니다. 굳이 세월호를 예를 들어서 말씀하셨지만 그 재현의 해석에 있어서 좋은 영화 나쁜 영화 각각의 감상은 있을 수 있지만 영화화되서도 안된다는 것은 너무 레디컬한 의견아닐까요?

      물론 현실과 서사는 무관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더더욱 이미지가 현실을 지배하기에 우려하시는 부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현실과 영화는 다른 겁니다. 그 구분은 감상자가 해야할 몫이지 봉준호에게 있지는 않아요. 영화와 현실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무관하다는 얘기로 들리지 않았으면 하네요.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세월호가 언제가는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나쁜 영화가 한두편 나올 수도 있고 어쩌다 겨우 좋은 영화가 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영화가 멈추지 않아야 현실이 진보한다고 생각합니다.
      • 현실의 재현 자체가 가능한지 저는 본문에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어떤 사건들은 사건 그 자체로 존재해야지 그게 이런 식의 내러티브로 재가공되는 것은 무조건 "재해석"이라는 왜곡을 거치게 되는 겁니다. 왜 그냥 해석이 아니고 재해석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그 재해석이 예술의 본질인데요. 현실의 모방이 르네상스 모던 포스트모던을 거쳐서 지금은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익스큐즈 되고 있습니다.


          의견을 더 나눠봐도 평행선일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의견을 나누게 되어 좋았네요. 감사합니다.
          • 영화의 힘은 생각보다 크지 않으며 이미지적인 영감을 주는 데에 대부분 그칩니다. 세월호 사건을 영화로 보고 싶다는 본인의 욕망이 포르노적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한번 해보세요. 정의를 외치는 어벤져스 시리즈가 왜 그렇게 일베하는 남자들의 마스크 따위로 많이들 활용되는지도 고찰해볼만항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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