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거나 슬프거나

1. 포도에서 포도향기가 나듯, 그러면서 쉽게 짓무르고 상해버리 듯, 개인은 그토록 당연하게 생기있고 우울합니다.
나는 무엇인가? 세상에서의 하나의 기능, 하나의 역할들의 조합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인가? 이 자문의 답을 모르는 사실에 대한 반응이 바로 우울입니다. 그러니까 우울은 개인의 징표이기도 합니다. 

민족과 국가, 계급과 신분, 지배자와 시민 같은 이름들로 호출이 이루어질 때, 끝내 대답하지 못하고,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대기실 의자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개인의 우울. 그것은 얼마나 기이하며 또한 당연한 걸까요. 얼마나 비천하며 또한 고귀한 걸까요?
경미한 우울은 앉아서 성찰하게 하지만 심각한 우울은 창문에서 뛰어내리게 합니다. 개인은 의자와 창문 사이에 존재합니다.

2. 슬픔과 우울은 흡사합니다. 차이점이라면 우울에는 슬픔과는 달리 자기비하의 감정이 섞여 있죠. 슬퍼하는 자에겐 세계가 비어 있고 우울해 하는 자에겐 자아가 비어 있습니다.
슬픔과 우울은 대상 상실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이죠. 슬픔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를 인식합니다. 그러므로 슬픔은 대상과의 이별을 가능하게 해요. 우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사로잡혀 있는 태도죠. 즉 현재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슬픔은 진실하며 가면을 쓰지 않습니다. 슬픔 뒤에는 언제나 슬픔이 있어요. 우울은 상실된 자아의 모범에 따라 진실을 부분적으로 변화/왜곡시킵니다. 우울 뒤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있어요. 슬픔이 쏟아져 내리는 눈이라면, 우울은 눈에 파묻혀 형체를 잃은/잊은 벌판입니다.
슬픔과 우울의 실질적인 요점은, 그것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 슬픔과 우울의 자세가 그 다음의 문제로 남을 뿐입니다.

0. 1980 '서울의 봄'에 합수부에 구속됐던 분들 중 고문받다가 몇 분이 쓴 진술서를 어쩌다가 읽어보게 됐어요.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소수의 개인들이 자기 삶의 존엄을 해치거나 죽음으로 맞서는게 과연 훌륭한 결단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는 시민 각자가 괴롭더라도 자기 몫의 책임을 살피고 살면 그런 비극까지는 없을 건데...라는 턱도 없는, 하나마나한 생각만 들죠. - - 아아, 개인!
    • 오래 마음의 상처로 살면 뇌에 우울의 방이 생겨 쉽게 허물어지지 않죠 각자 그들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우울의 고지를 공격하며 살거란 생각이네요 뇌의 화학적 변화에 전투력이 강한 사람이 있듯 고난에 성큼 다가서는 사람들 역시 고정된 뇌의 방을 가진 사람들의 싸움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 아직 저는 개인행동/사고패턴이 기질, 성격, 인격 중 무엇 때문인지 구별하지 못해요. 
        • 셋다죠 셋이 만약 셋다 조화로운 사람이라도 세상의 파편을 주어담을 수 있는 능력이 좀 낫다는 차이일 뿐 관계는 정리가 될수 없죠
    • 0. 너무 나이브한 생각 아닐까요? 


         각자가 가진 권력의 힘이 다른데, 과연 아무 권력이 없는 시민들이 자기 몫의 책임을 살피고 산다 한들, 권력자가 저지르는 만행을 되돌리거나 복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시민 각자가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고 사는 것도 저런 분들로부터 영감을 받게 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 제가 읽은 그 진술서를 쓴 이들이 20대 초반 대학생들이었어요. 아무 힘도 없었으나 각성했기 때문에 나서서 총알을 받은 분들이었습니다. 자기 미래를 설계하며 도서관에 박혀 공부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을 텐데 말이죠. 그들이 주목한 '지금 여기'와 그로부터 길어낸 용기를 생각해본 거에요. 
        자신이 고문당하는 것보다 옆방에서 동지가 고문받으며 내는 비명소리가 더 지옥이어서 허위 진술서를 썼더군요. 제가 그 시대의 젊은이었으면 그들처럼  한걸음 앞서 나설 수 있었을까? 나는 유관순, 박종철, 이한열 같은 사람인가 아닌가? 라는 자문이 준 우울을 적어본 글입니다. 
        칸트의 '정언명령'-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충고도 새삼 새겨봤고요. (강조: '자신을 포함하여')

        내 권리와 의무를 깨닫고, 내 현실의 이유를 알고, 그 문제해결 방식에 대한 의견을 듣고,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연대해서  사회적 과제해결을 구현하는 사람이 되는 게 어려운가? 이런 의문/질문이 무슨 날만 되면 제 내부에서 솟구치네요.  아버지 서재에 온갖 한국현대사 기록 자료가 다 있는데,  궁금한 게 있으면 내면의 힘이 약한 상태에서도 굳이 찾아 읽고 마는 게 문제라면 문제예요. 그것참.

    • 개인으로서는 “훌륭한 결단”이라 쉽게 말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살아 남은자들의 슬픔”은 그 결단의 폐허위에서 시작되고 부채를 갖게 되는거 같아요. 그 “슬픔”이 거북한 자들이 그 “결단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것에 그러지 말라 하는것이 ‘인간의 조건’이 아닐까요? 그래서 무지 혹은 무관심은 집단적 우울을 만들어 내는 병인이 아닐까요.
      • 오랜만에 접하네요. '살아있는 자의 슬픔'이란 관용구. 
        중딩 때 브레히트의 시 'Ich, der Uberlebende 나, 살아 있는자'에 '슬픔'을 끼워넣은 번역자가 누군가 알아봤더랬어요. 김광규 시인이더군요. 감성팔이한 것 같아 삐죽한 마음이었는데 그의 이 해명글을 접하고 이해했습니다. "사회 정서가 광주 사태 이후 많은 지식인이 살아남았다는 걸 부끄럽게 여겼던 시절에 한 번역이라 '슬픔'이란 단어를 넣었다."

        지금은 덜하지만 한시절 저는 '부채의식'이란 말/마음을 대할 때면 골똘해지곤 했어요. 현실에서 견고한 자기자리를 확보한 자들이, 역사 속에서 불길을 지피고 산화한 이들을 추억하고 반추하고 기념하는 것뿐인 감정 아닐까 싶어서요. -_-
        한국현대사를 다큐멘터리 식의 자료들로 하나씩 알아가면서 현재 제게 남은 키워드는 '사람'(셀프 오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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