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살아 있는 사람들

1. 다른 마음과 부족한 말들은 서로 만나지 못합니다. 다르고 부족한 채로 마지막까지 서로 만나지 못하고 끝나는 사이가 많겠죠. 그러나 대립점에 서 있더라도 각자 성의하게 정진한다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적일 수 없는 영역에서 상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느 한 쪽이 더 심해서 만나지지 않는 상태라 하더라도, 만나기 위한 노력의 자세나마 보여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이 세상에 균형 잡힌 인생이란 없다.'
사춘기 시절부터 제 머리 속 전광판에서 명멸하고 있는 문장이에요. 아마 날카로워지는 스스로를 고무시키기 위해서 뇌리에 전시한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균형 잡히지 않은 인생들끼리 할 수 있는 일은 '만남'이라기 보다는 '만남의 자세'를 향한 안간힘뿐일 것 아닐까요? 물론 그 노력은 즐겁지 않죠. 하지만 견디지 못 할 고통인 것도 아니에요.

'세상에서 가장 값이 없는 게 진실과 감수성이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악마의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진실과 감수성이 있죠. 저마다 그걸 소중한 근거인 듯, 최후의 보루인 듯, 가슴 깊은 곳에 놓아 둔 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현실은 진실과 감수성은 값을 쳐주지 않습니다. 손 안에 있을 때는 단단한 보석인 줄 알지만, 펼쳐 보이면 부스스한 모래처럼 바람에 날리는 어떤 희박함에 불과한 것이라고, 악마는 그런 얘기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마가 그런 말을 한 건, 그게 사람들에게 가장 슬픈 삶의 해석으로 들릴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 아닐런지.

진실과 감수성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적수공권의 맨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기엔 세상은 생각보다 무서운 곳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무서운 곳이라는 긴장/경계심 만으로 살 수 없고, 그렇게 살게 되지도 않습니다. 진실과 감수성을 꺼내 보이지 않아도 되는 여유,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서운 질서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참 가난한 질문입니다.

2.  과 커플인 언니 부부는 9년 째 런던 거주 중입니다. 하여 부부의 동기/선배들 대소사를 제가 다 챙겨왔어요.  오전에 언니네 동기가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했으니 빈소에 가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도 아는 분이에요. 그의 결혼식에도 제가 갔었고, 언니가 엄마보다 따순 밥을 더 많이 먹여준 존재라며 첫수입 수백만원을 절 통해 런던으로 송금해서 제 마음까지 울렸던 분이죠. 아내 분과 세살바기 아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습니다. 의자에서 몸이 안 떨어집니다. 

삶의 죽음이나 (증오로 인한) 죽음의 삶이나 지켜보기 쉽지 않군요. 끝도 없는 절벽을 따라 걷는 이 기분.
    • 나름 두말을 생각해봅니다 멀찍이 마음이 같이 아파요 명복을 빕니다
    • 이 와중에 "긴장/경계심 만으로 살 수 없고"를 "간장/게장 만으로 살 수 없고"로 봤습니다. 피식 웃다가 그 밑의 2번 글을 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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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아내를 병으로 먼저 보내고 산사람은 살아야지 하며 어린 아들을 끌어안고 울다가 웃던 선배 생각이 났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 긴장과 경계심을 거두고 진심과 감수성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대게는 옳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인생이라는 것은 평화롭게 살다가 어느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180도로 바뀔 수 있는 유리병 처럼 약한 것이더군요.  생의 본능은 그러한 사고를 피하는 쪽으로 작동되게 마련이구요.  그래서 악마와 천사는 동전의 양면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작가들도 있었죠. 


      결국 삶의 지혜란 진실과 감수성으로 대할만한 사람과 긴장과 경계심을 거두지 말아야할 사람을 구분하는 것에 있는게 아닐까 싶어요.

    • 하지만 결국 아무리 날고 기어도 다 알고 다 파악하며 살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이를 먹을 수록 절감을 합니다. 


      운이네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운이고 그런 사람을 알아 보는 것도 자기 운이고 그 좋은 사람이 나를 좋게 보는 것도 운이고 


      그 운이 내 앞에 왔을때 못 보고 지나치지 않도록 붙잡을 수 있도록 정신 차리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살아가는것만 남은

    • '값을 쳐주지 않는' 과 '값을 매길 수 없는' 도 어쩌면 동전의 양면같은 얘기일지도 모르겠네요.


      경험상 몇개월이나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던 죽음과 어느날 갑자기 접한 죽음은 충격의 강도와 질이 완전히 다르더군요.

      천지불인.. 대지가 그에게 솜털처럼 덮이기를пусть земля ему будет пухом
    • 아내 분은 거의 탈진한 채 구석에 앉아 있었고, 저도 얼굴을 아는 동기 두 분이 상주 역할을 맡고 계셨습니다. 무릎에 앉은 어린 아들이 영문 모른 채 기운 없는 엄마가 걱정돼 고사리 같은 손바닥을 계속 엄마 뺨에 대고 있더군요. 방문록 쓸 때부터 눈물 안 보이려고 어금니 물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결국 눈시울 붉히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머리 감다가 본격적으로 왈칵!

    • 저는 우울하면 청소하는 버릇이 있는데, 자고 일어나 좀전에 뜬금없이 냉장고 청소를 하다가 마늘에 곰팡이가 핀 걸 발견했어요. 다 꺼내서 가위로 잘라내니 둥근 마늘은 각진 마늘이 됐습니다. 항암 효과가 있다는 마늘이 냉장고 속에서 일주일 여만에 곰팡이가 핀다는 게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곰팡이는 생채기에서 주로 생겨나죠. 어느 생물이든 생채기가 나면 예외가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죠. 그러니 우리...


    • 진실은 일종의 퍼즐놀이와 같아요. 모양이 다 다른 팩트들인 퍼즐조각들을 하나 하나 맞춰나가다보면 우리는 거대한 하나의 진실을 보게됩니다. 그런데 인간사는 퍼즐놀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수많은 팩트들과 팩트 아닌 것들이 뒤엉켜 있어서 진실을 구성하는 팩트인 퍼즐조각하나의 모양을 파악하는데도 많은 이들이 어려워 합니다. 결국 저마다 다른 진실을 품고 사는 것으로 치는 사조가 생겨나기까지 했죠. 허나 어떤 사안에 대해 진실은 하나로 존재하지요. 단지 우리가 잘 모르고 살 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린 단정적으로 무언가를 규정할땐 충분히 의심하고 상대방을 비판할때도 마찬가지 열린 자세가 필요한거죠. 인류의 비극적 사건은 대부분 무식한 존재가 확신을 가질때 발생했어요. 제일 무서운거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진영논리에따라 단정짓는 행위들. 주위에서 너무 많이보죠. 여기는 규범이 아예 없는 아노미 상태의 게시판이라서 홍위병들이 놀기에 딱 좋은 조건인것 같아요. 듀나님이 혹시 모택동주의자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될 정도. 어쨋든 식사는 하고 다니시길.
      • 커뮤니티 경험은 중딩 때 통신 '천리안'에서 해본 게 가장 강렬했어요. 그시절 그 에너제틱했던 싸움판에 비하면 듀게는 뭐...
        다른 생각/감성을 접하고 탐구하는 재미로 하는 게 커뮤니티질일 것 같은데 파이터 본능이 강한 분들은 각자 나름의 공간 성격을 상정하고 그 과정에서 분투하시는 듯합니다. '듀게는 망했다'는 자조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제게 이곳은 아직 인터액션의 공간이에요. ㅋㅎ

        요리하길 좋아해서 냉장고엔 김치만 해도 4 종류, 찌개 3 종류에다 과일/채소(싱싱한 걸 보면 못 지나치고 꼭 사옴)도 8 종류가 있어요. 근데 정말 배가 고파 냉장고 문을 열고서도  '안녕~' 죽 눈맞춤 인사만 하고 닫고 맙니다. 이러고도 꾸역꾸역 사는 게 신기하고 자책도 하지만 개선이 앙대요~ 
        • 개선이 안되는 건 우리 인간은 자율을 지향하나 타율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자율이란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행위를 말하는데 인간은 지가 만든 규칙이고 약속임에도 못지키죠. 그래서 이 실행성을 담보하기위해 약간의 강제 즉 타율을 필요로 하는 것이죠. 그래서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워질때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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