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소고

(어제 접한 전 정치인의 작고 소식에 깜짝 놀란 저 자신이 놀라워서 횡설수설. )

1.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건 사기꾼으로 분류되는 부류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비축해 놓은 진실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진실의 자산이 없기에 죽음 앞에서의 그의 떨림은 진실에 대한 갈망이 가장 컸을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자신이 진실하지 못했음을 몹시 아쉬워하는 이의 얼굴을 본 적이 있어요. 그가 고백했죠. "나와 거짓의 관계는 굶주림과 음식의 관계와 같은 거였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도움도 필요치 않은 진정한 사기꾼이구나 하는 확실한 판단을 했더랬습니다.

2. 공깃돌은 다섯 개로 구성됩니다. 조약돌이 수 백개 널려있는 시냇가에서 하는 공기놀이라 할지라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공깃돌을 던져 손등으로 받을 때, 한 개 또는 다섯 개를 얹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하나도 얹지 못할 때도 있죠. 그것이 공기놀입니다. 
우리의 삶도 비슷한 것 같아요. 살고 싶은 방식대로 살다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갖는 건 좀 염치없지 않나요?  바닥이 발에 닿지 않는 건, 자신이 점점 바다 깊은 쪽으로 헤엄쳐 갔기 때문인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3. 햇살 아래에서 얇은 먹지에 불을 붙이는' 것.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의 인간에게 허용되는 정열의 형태는 이와 같지 않을까요.
적막한 뜨거움이 순식간에 재로 변하겠죠. 죽음을 서서히 경험하는 동안 두려움과 자아의 거리는 점점 좁아져서, 마지막 죽음의 얼굴에 손을 대는 순간,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빛의 일생을 보고 말 것 같습니다.

4. 자유, 의지, 순명, 태도.... 이 새벽에 떠올리는 어휘들입니다. 이 네 가지를 합친 것이 자기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잘 생각나지 않는데, 에즈라 파운드의 시론서 첫 페이지에 명랑함에 관한 언급이 있었어요. 생명과 진리는 엄숙하지 않고 명랑한 것이라는 것. 제 생각을 덧붙이면 그게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것이 자연스러운 정황에서의 무거움은, '명랑함'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것, 돌연한 것, 경계가 사라지는 일을 무거움이 아닌 명랑함으로 받아들일 것. '다름'이 바로 삶이며, 체험으로서의 성숙이기도 하니까요.

5. 사춘기 시절, 죽음에 관한 단시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죽음은 그 너머, 삶의 순환에 관해서도 무엇인가 말해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우주는 순환이라는 현상 덕분에 수레바퀴에 비유될 수 있다는 걸 좀 일찍 간파했다고나 할까요. - -
근데 지금 기억나는 건 이 둘뿐이네요.

"나는 난다, 나의 먼지는 현재의 내가 되리라." (허페즈)
"그들은 어둠을 통해 외로운 밤 아래로 어둡게 걸었다." (베르길리우스)

6. 세상 이치라는 건 절대로 알 수가 없어요.
다시 한번, 세상 일이라는 건 - 죽음의 이치라는 것도 -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 이 좁은 한국사회에서는. 

    • 가만 생각해보니 진실에 멀어 가까이 하려 했었는지 내게서 먼걸 몰랐는지 아직 두렵네요 도움을 안받는 사기꾼 영화 주인공 같군요 햐 멋있어요 나의 먼지는 현재의 내가 되리라 근데 진짜는 죽어 그러니 안멋있다
    • 누구의 삶이던 쉽지 않지만, 그 사람의 삶은 그리 만만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소시민의 삶이 아니었으니 그만큼의 고민이 많았던건가요.

    • 그 양반 소식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뒤늦게 이런 저런 얘기들 찾아보고 있는데, 뭐랄까요…사람을 쓰고 버린다…혹은 줄 잘못 서서 인생을 날렸다든가…이런 씁쓸한 문구만 제 머릿속에서 어른거리고 있네요. 참 딱한 일입니다.
    • 최근의 여배우 분도 그렇고, 다른 날들처럼 일상을 살다가 문득 생각난 어딘가를 가듯이, 그렇게 떠나버렸군요.

      이세계에서 몸과 마음이 자유하기를 빕니다..

    • - 평소 별 관심 없었고 비호감이었던 정 전의원의  죽음이 아끼고 응원했던 노회찬의 죽음 보다 더 충격적인  저 자신이 아직도 이해 안 돼요. 노 의원의 경우는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그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 (김수영 싯구)가 이해됐는데, 그의 죽음은 선택의 사유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인지 뭔지. 




      - 난데없이,  자살한 사람이 벗어 놓은 신발에 관심이 컸던 시인이 불현듯 떠오르네요. 황동규.


      이백, 최치원, 굴원, 호머가 죽으며 벗어 놓은 신발에 대한 시였는데... 

    • 십 년 전에 만들어 일기 대신 열심히 썼던 블로그에 들어가봤어요. 아무래도 '자살'에 관한 글을 써놓은 게 있을 것 같아서.


      근데 검색 창에서 '자살'을 입력하자마자 이런 안내문이 뜨네요.


      "생명은 소중합니다. 지금, '희망'을 클릭하세요." 


      그 아래론 자살예비 상담 전화번호들이 주루룩 소개돼 있어요.  


      모르는 사이에 우리나라 구제 프로그램도 차근차근 발전 중인 듯. 



    • (친절한 어디로갈까가 검색했습니다.)

      - 시인은 어렵게 살아야 2 / 황동규

      이백(李白)은 꿈속에서 고향땅 밟다가 
      채석강가에 신발을 벗어놓고 
      달빛 되어 물 속으로 사라지고 
      백여 년 뒤 최치원(崔致遠)은 세상 온갖 구석 떠돌다 
      가야산 홍류동, 타오르는 단풍 속으로 증발했다. 
      바위 위에 신발 한 켤레.

      호머도 굴원도 떠돌이 시인, 
      신발 성한 날 어디 있었으랴? 
      그들이 귀찮은 신발 벗어놓은 곳. 
      삶의 맨발에 뛰는 
      환한 실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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