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이야기, 8할의 금주, 기생충 단상(약간의 스포주의), 제로에 가까운 식욕(탐)

1.요즘 들어 노인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 건, 멀지 않은 미래에 닥칠 제 모습이라서겠죠.

그중 최근에 일정한 주기를 갖고 연달아 일어난 노인 3명에 대한 에피소드가 인상이 깊게 남았기에 써봅니다


2달 전, 직장의 유관기관으로 외근을 나간 중에 버스를 환승하려고 정류장에 서 있었어요. 출퇴근처럼 복잡한 시간대는 아니었기에 잠깐 멍 때리며

곧 도착할 버스를 대기하고 있는 중에앞 버스에서 내린 듯한 할아버지가 몇 걸음 걸어오다가 아스팔트길에 그대로 몸이 정면충돌 되는 것을 봤어

. 노인이 쓰러지기 직전, 이제 출발하려고 막 시동을 걸었던 뒷 버스가 급정거를 하지 않았더라면 번화가 한복판 백주 대낮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

상상만 해도 끔찍한 순간이었죠. 그런데, 이상한 것이 사람이 쓰러지거나 넘어지려고 하면 균형을 잃고 허둥거리는 어떤 전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분은 너무 반듯하게 걸어오다가 정면 그대로 쓰러진 거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아스팔트에 얼굴을 정면으로 부딪혔으니 이마나 머리가 찢어졌는지 그 와중에 정신을 차려보겠다고 얼굴을 감싸 쥔 손가락 사이로 선홍색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데, 그 광경에 다들 질려서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 상황. 가장 근거리에 있던 저조차 다가가서 부축할 엄두를 못내고 괜찮으

시냐고 묻기만 할 뿐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 지 몹시 당황스러운 중에, 119신고를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살면서 119

전화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게, 신고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주변에서도 119에 신고를 좀 해달라고 저에게 종용을 하니 버튼을

누르고, 저는 외근 중이고 바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라 길게 체류하지 못하는데 다행히 금방 연결이 곧 출동한다고 10분내로 도착 한다고 위치

확인을 정확히 해달라 해서 연결해 주는데, 때마침 가야할 노선의 버스가 와서 주변 분들께 이양을 하고 올라탔어요. 그렇게 내 갈 길 가는데 손가

락 새로 흐르던 피와 하얗게 질린 노인의 얼굴이 생각나서 마음치 않더군요.


두 번째는 바쁜 아침 출근길 회사근처 도착역에 내렸는데 어떤 할머니가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고 뭐라고 호소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고 지나치는

상황. 저도 처음엔 정신이 온전치 않은 분싶어 지나가려다,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시냐 여쭤보니 전철에서 내려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지 못해 당신을 부축하거나 바퀴 달린 짐가방을 좀 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 해당 구간은 엘리베이터 연결이 제대로 안 되어 다른 구간으

로 안내를 하기엔 나도 출근을 해야 해서, 부피가 좀 있어 보이는 짐가방을 들어주고 뒤따라 오시라 했는데, 제가 나서니 저보다 좀 더 연배 있으신

아주머니께서 같이 따라서 도와주시더군요


그런데 앞서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봤더니, 두 팔과 손으로 계단바닥을 사지로 엉금엉금 짚으며 기어 올라오는 모습에, 뭐라 표현하기 힘든 참담함이 

느껴졌습니다. 보다 못해 내려가서 같이 부축을 해드렸는데 세상에나 몸이 진짜 얼마나 작고 말랐는지 이 할머니는 도대체 이런 몸으로이런 혼잡한 

시간부터 어디를 가시는지. 이 짐가방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서 감당을 못하는지, 혹시나 이 연세와 몸상태에도 생계 때문에 매일 나와야 한다면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다는 말인가 하는 등 별별 생각과 약간의 짜증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한 구간이 끝나 에스컬레이터가 보이는 지점까지 모시고 

왔을 때 몇 번 출구인지는 몰라도 또 2개의 계단구간이 남아있기에 회사에 전화하고 아예 지상으로 모셔다 드려야겠다 싶었는데, 그 와중에 얼마나 

체면을 차리시는 지 한사코 손사레를 치시며 괜찮다고 하셔서 그냥 왔지만 아침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죠.


마지막 인상은, 회사 후배들과 점심을 먹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 층계참에서 마침 할아버지가 서 있길래 옆으로 살짝 피해서 먼저 내려왔는데 좀 있다

 !” 하는 소리가 들려 놀라서 달려보니 노인이 계단에서 굴러 바닥으로 나뒹군 것이었습다. 일행이 있어서 다같이 달려가 괜찮으신 지 여쭙고

부축을 해서 겨우 일으켜 세워드렸지만, 예전에 목도한 기억으로 혹시 어디를 다치신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머리나 얼굴을 살펴도 다행히 혈흔은 없

더군요.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하시는데 몸의 중심은 잘 못 잡으시고, 그래서 제가 자제분들이나 보호자에게 연락을 드려야 하지 않느냐 여쭸더니 보

청기를 낀 귀로 잘 못 들으시는지, 아니면 연락할 곳이 없으신 지 별다른 대답이 없으셔서 그냥 오긴 했습니다만….


이것도 무슨 선행이라고 늘어놓는 얘기는 아니지만, 2달 사이에 일정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노인들의 모습은 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
저에게 적잖은 경각심과 두려움을 주었습니.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은 가급적 하지 않겠지만, 스스로 원하는 나이 이후 더 오래 살고 싶은 욕망
아무 미련없는 1인으로서, 노년이 멀지 않은 지금 내 연령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새삼 암담해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2. 지난 3월, 봄부터 금주를 시작했어요, 퇴근 후 집에서 마시는 약간의 와인은 제외하니 8할의 금주인가요. 위의 노인들 에피로 받은 경각이나 특별한
기가 었던 아니에요. 다만 살면서 그동안 너무 많은 술을 마셨고, 지나치게 사랑했고, 그리고 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대부분의 술끝은 씁쓸하거
무거웠고 늘 그렇듯 직접 듣지 못한 후일담은 흉흉했겠죠. 이젠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일부러 괴로운 일을 만들 필요는 없는 나이가 되기도 했고요 
기호나 주량에 상관없는 술잔을 다 받지 않아도 될 직급도 됐지요. 무엇보다 내 소중한 시간을 나누며같이 술잔을 기울일 만큼 깊고 따뜻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도 흘러갔기 때문이겠죠. 이건 누구의 잘잘못이 아닌 그냥 자의적 선택에 따른 결과죠.

여전히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고 출장도 가고 운동도 발레도 하고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삶의 한 켠에 사람이든 감정이든 뭔가를 끼워 넣는 것은, 설사
습자지 만한 두께라도 지독하게 인색해졌고, 벽돌공장처럼 찍어내는 일상이 1이라도 틀어지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졌어요. 예전엔 퇴근하고 다들 누구와 
노는지, 나는 왜 같이 놀 누구가 없는지 비애를 느끼는 글을 썼던 세월을 거슬러 보기가 무색하게, 나와 상관없는 누구라도 할 말이 없어서 단지 어색함을 
깨기 위해 던지는 쓸데없는 말 한마디라도 나한테 걸지 않기를 바라며 살고 있어요 

 

3. 영화 기생충을 봤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화가 그냥 별로였어요. 영화는 물론 재미가 있고, 유기적 구성과 완벽히 계산된 연출과는 사뭇 다른 결말로 

내내 흥진진하지만 내가 그동안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서 좋아했던 포인트가 이 영화에서는 제로였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에요. 특히, 송강호의 

연기가 너무 상하고 빤해서 실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제게 이 영화는 이렇게 느껴졌어요. 요즘 시류에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는 몰라도, 그 자체로 넘 예쁘고 반짝이던 소녀가 연예기획자의 눈에 띄어 특훈을 

거치고 오디션에 뽑혀 1등을 하고(이게 칸을 의미하는 건 아님) 스타가 되어 그 세련됨과 아름다움이 더 배가 됐지만, 어쩐지 본연의 아름다움이 사라져

뭔가 시들해느낌이죠. 그리고 저는 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도 그렇고 이번 영화도, 계급의식을 건드리는 주제에 감흥이 없어요. 이미 감독 그 자신

일정한 수준 이상의 계급을 누리고 있으면서(그가 영화적인 성공가도를 달려 받는 온당한 혜택을 비꼬는게 아닙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

었죠.

 

더욱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계급간의 체급도 너무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고요. 실제적인 상류층에서는 저렇듯 순진하거나 어리숙하게 대응하지 않았

것이라는 현길감이 바로 느껴지는 건, 이미 재벌들의 일상은 TV 드라마에 산재해 있으니(실상은 알 수 없지만) 영화적 흥미와 효과를 위해 젊은 신흥부자

치환한 계급 같지만 어쩐지 제게는 실패한 설정처럼 느껴졌거든요. 어쨌든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약하고 선량하다 또는 부자들은 하나같이 사악하고 

악랄하니 당해도 싸다는 통념을 전복시키는데 영화의 목적이 있었다면 그 부분은 성공한 셈으로 치죠.

        

그런데 종종 찾아가는 네일샵의 디자이너가 이 영화 얘기를 했어요.  최근 자기 고객중 2명이 연달아 이 영화 봤내고 물었는데, 한 명은 시궁창봤어? 나머지 

또 한명은 곰팡이봤어? 라고 했다고요.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는데 영화제목의 착각에서부터 이 영화가 주는 연상작용의 파급은 지금껏 이 영화

두고 무수히 많이 듣고 보고 읽었던 어떤 리뷰보다 가장 와 닿았어요. 더욱이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디자이너가 제목을 착각한 자신의 고객들의 연

와 사는 수준을 얼핏 귀뜸해 줬을 때,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이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를 증거한다는 느낌적 느낌을 받았거든요. 급 마무리로, 원래 

사람 아닌가 싶을 만큼, 이선균의 재발견 정도로 해두죠.             ,


4. 예전보다 요즘 더 자주 느끼는 것인데,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낯섦을 종종 느껴요. 유난히 더 맛있었거나 

했던 풍미의 기억이 나라고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내게 음식이란 생존을 위해 살 만큼만 먹는 개념이라, 정도 이상의 메뉴도 섭취도 불필요한 것이거

든요.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온오프라인 곳곳에 범람하는 맛집 정보에 음식 정보에, 머릿속에 방대한 맛집 지도와 메뉴 리스트를 정해 놓고 도장깨기하듯 

섭취를 수행하는 것은 요즘 특히 더 활성화 된 시류인가 싶어요.


유명하다는 음식점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을 보면서, 어쩌면 끼니 이상의 음식은 사치라 여기는 나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을 굳이 누리지 않고 

사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요. 어차피 주어진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끌고 가는 동력은 어쩌면 본능에 충실한 것이고 식욕은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

욕구 중 하나일 텐데, 그렇게 비용과 시간을 들여 섭취한 에너지로 수행할 만한 삶의 내용이 나에겐 애초부터 공백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식욕은 아니

었을 테지만, 내 묙망은 무엇이었고 그것은 어떻게 표출되다가 사라졌는지, 물기 마른 뒤 소금처럼 형체를 알 수 없네요.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성과를 내고 인정도 받으며, 간혹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내 자신는 살아있다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구나라고 종종 느껴요.

그런데 이것은 자조도 비관도 아닌 이제는 익숙해진 제 삶의 옹이 같은 거에요             

    •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품을 가지면 그런 일을 남보다 자주 보게되는거 같은데 당연하겠죠 남은 안보는걸 보니까요.


      전 그렇치 못해서인지 그런 힘든 노인네와 부딪힌 기억이 안나네요 오래전이어서 그럴까 아니 그냥 갔었으니까.


      노인네들은 지금은 정정해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죠 기계도 오래되면 잘 돌아가다 갑자기 안돌아가잖아요.


      언젠가 일본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왜 더 안살고 죽어버렸을까 생각을 해봤네요.


      혼자가 원래 편한거에요 누구 간섭을 받지 않잖아요 그렇게 계속 혼자다 이제 어쩔래 그래도 혼자를 택하게 되죠.


      쇼생크 탈출에서 평생을 살다 나온 늙은 영감이 다시 교도소로 가고 싶어하다 죽는거 같이.


      맛있는게 많은 것도 좋은 일인데 그렇치 않다면 돈도 안들고 좋죠.

      • 님, 가영님 아니시죠? 이렇게 진지한 댓글 달아주시니 놀랬잖아요. ㅎㅎ


        비슷한 일이 연달아 일어나니 그것도 상서롭지 않은 일로 자꾸 생각이 되어, 그렇다고 저보다 더 힘없는 분들이 어려운 상황을 목도하니 없던 착한척이 뿜어져 나오는거죠. 네, 저는 먹는데 돈 쓰는게 제일 아까운데 참 잘 됐어요. ㅎㅎ 

    • 1. 타임지에 의하면 2015년생 아이의 기대수명은 142세라고 해요. 
      언뜻 진짜 그럴까 싶지만, 1982년생이 태어났을 즈음 '이 아이는 100세까지 삽니다'라는 발표를 사람들이 별로 안믿었었다는걸 생각해보면, 충분히 현실적인 전망인 것 같아요.  
      현재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남성 80세, 여성 84세인데, 평균이 그런거고 실제 사망 빈도수가 가장 많은 나이는 90세라고 하네요.    
      100세 넘은 인구도 대략 수천명은 된다고 하니, 82년생이 40세도 되지 않은 이 시점에 이미 100세 시대는 열려버린거지요. 
      근데 예전에 읽었던 기사에 의하면 건강 수명은 대략 65세 정도이고, 그 이후는 얼마를 더 살든 병원 다니면서 앓다가 죽는다고(현 시점 기준이겠죠).
      바야흐로 원치않는 장수의 길로 들어설 위험 속에서,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노인 세대가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시대를 예측하지 못한채 노년을 맞았듯이, 우리의 노년 시대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당최 알 수가 없는 기분이에요. 
      품위있는 죽음을 위한 제도가 어서 마련되었음 싶지만, 노인 세대가 짐으로 인식되거나 개인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는, 안락사 같은 제도가 악용될 소지도 많으니 매우 조심스러운 문제 같습니다.

      3. 기생충에 대해서 저도 많은 부분 동의가 되네요. 외국 평단의 시각에서 그렇게 탁월해 보인 포인트가 대체 뭘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4. 그저 생존을 위해 먹는 1인으로서 공감됩니다.ㅋㅋ 
      식욕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노화의 한 종류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세상 모든 일에 점차 심드렁해지듯이, 다채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 흥미도 점점 줄어든달까.
      • 오전에 원글 수정하다 날려 먹었는데 도저히 같은 글이 안 나오네요. 뭐든 한 번 흘러가버린 건 그렇겠지요.


        제가 원하는 건 장수도 단명도 아니고(요절하기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음ㅜ), 최소한의 품위 유지를 할 수 있는 연령인데


        그게 제 맘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니 불안하네요. 많은 부분 공감해 주셔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 1. 늙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육체적 사고들을 접하노라면 마음이 어둑해지기는 해요.
      시간으로 부터 받았던 힘을 시간에게 다시 빼앗기는 것. 그것이 노년일까요. 
      돌아가시던 해에 할아버지가 "눈 내리는 겨울의 사철나무처럼 어깨 위에 수북히 눈이 쌓여 있는 느낌이다."고 하셨던 말씀이 가슴에 콕 박혀 있습니다.

      3. - 봉 감독이 <곰팡이>이라는 착각 제목을 접한다면 아차! 무릎을 칠 듯. ㅋ
      기생충은 동물체의 양분만 빨아 먹고 살지만, 곰팡이는 동식물에 전체에 기생할 뿐만 아니라 생명체가 아닌 물체에도 균사로 번식하니까요. 

      4. 어머니 자궁에서부터 잘 안 먹는 존재로 악명 높았고, 여전히 그걸로 지청구 들으며 사는 제가 (그냥 배가 잘 안 고픔.) 좋아하는 시 한 부분.
      - 밥에 대하여 /이성복

      (전략)
      2. 밥으로 떡을 만든다 
      밥으로 술을 만든다 
      밥으로 과자를 만든다 
      밥으로 사랑을 만든다 애인은 못 만든다 
      밥으로 힘을 쓴다 힘 쓰고 나면 피로하다 
      밥으로 피로를 만들고 비관주의와 아카데미즘을 만든다 
      밥으로 빈대와 파렴치와 방범대원과 창녀를 만든다 
      밥으로 천국과 유곽과 꿈과 화장실을 만든다 피로하다 
      피로하다 심히 피로하다 
      밥으로 고통을 만든다 밥으로 시를 만든다 밥으로 철새의 날개를 만든다 밥으로 오르가즘에 오른다 밥으로 양심가책에 젖는다 밥으로 푸념과 하품을 만든다 세상은 나쁜 꿈 나쁜 꿈 나쁜 밥은 나를 먹고 몹쓸 시대를 만들었다 밥은 나를 먹고 동정과 눈물과 능변을 만들었다, 그러나 밥은 희망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밥이 법이기 때문이다 밥은 국법이다 오 밥이여, 어머님 젊으실 적 얼굴이여 




      • 시인 할아버님을 두셨던가요? 어디로님의 고아함은 유전이었군요. 진짜, 제가 생각해도 네일샵 원장님의 영화 관련 발언은 통찰력과 예리함에서 단연 으뜸이었어요. 물론 손님들 입에서 나온 말이겠지만요. 어디로님도 태생적으로 많이 안드시는군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식욕을 삶의 욕구로 호환되는 부분에서, 가끔 지독한 열등감을 느낄 떄가 있어요. 욕망의 주체도 되지 못하고 내용도 없다는 점에서요.  

    • 어떤 삶을 가치있는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노년의 삶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 삶을 혹은 내 몸을 내가 완벽히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노인으로 사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죠. 늙어간다는 것은 몸이 약해지고 내 몸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을 필연적으로 동반할 테니까요. 


      하지만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고, 나이가 들면서 내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지 알고 싶다면 


      노년의 삶이 반드시 고통스러운 것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두려운 것들이 많이 도사리고 있겠지만  


      노년의 삶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테고 그것들로 인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요. 



      • 구체적으로 말쓴드리자면 제가 원하는 수명의 임계치는, 제 손으로 최소한의 끼니를 해결하고 제 똥과 오줌을 받아낼 수 있을 때까지 입니다.


        그리고 그 기본적이고 소박한 행위가 사실은 내 존엄을 증거한다는 체면이 살아있을 때까지요.


        살아갈 날들에 대해, 다가올 미래에 대해 낙관하지 않은지는 오래 되었고 노화와 노년에 대한 두려움 또한 벅차지만, 그렇다고 필연적으로 동반될


        육체의 한계를 거부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겠지요. 그런데 인생을 두고두고 경험하며 아직도 기대할 만한 무엇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근거도,


        결국은 돈과 건강에 귀결된 문제일 것이고 더 나아가 촘촘하게 애정어린 관계망이 뒷받침 되어야 할 텐데(이를테면 가족 같은 거?), 


        담보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노년의 삶을 마냥 긍정할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 노년의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 미래에 대한 낙관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설사 내 몸과 마음이 고통스러워진다해도 그 고통을 통해 


          나는 무엇인가를 더 알아갈 수 있을 것이고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그런 기대가 있다면 삶에서 부딪치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노년에 대한 기대는 타인에 대한 기대, 혹은 나 자신의 객관적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고통을 겪어내면서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을 미래의 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고 할 수 있겠죠. 

          • 네네, 미래의 나 자신에 대한 기대도 결국은 큰 밑그림으로 그린 생의 낙관과 긍정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저는 현실적으로 나이도 많은데 몸이 아프고 밥까지 굶는 상황이라면 나 자신에 대한 기대는 커녕 생에 대한 희망이나 애착을 갖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잘 알겠고, 저는 자신에 대한 지향점이나 기대가 크지 않으므로 두려운 미래를 최소화 할 현실적인 방안을 더 찾아야겠지요. 언더님 건승하세요.    

    • 반갑습니다. 쿠델카님 글의 숨어있는 오랜 팬이예요. 


      저는 요즘 쿠델카님 일상과는 정반대의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사람 대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매일매일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저녁엔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죠. 


      처음 보는 사람들,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 내가 챙기고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어요. 


      살아 갈수록 관계는 다양해지고 내가 지켜나가야 하는 관계들은 복잡해져요. 


      혼자 있는 시간이라곤 오로지 강아지들과 아침저녁 산책하는 시간뿐, 그것마저도 동네 할아방들 만나면 훼방 받기 일쑤.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싶은데 저녁엔 늘 모임과 약속이 있으니 느는건 뱃살 뿐이고 고요히 혼자 운동하는 시간이 절실합니다. 


      내 손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같이 일하는 식구들 먹이고 같이 식사하는 시간이 전 즐거워요.   


      요즘엔 김치 담기에 재미가 들려서 열무김치, 알타리 물김치 맛있게 담아서 식구들 싹싹 긁어먹는 거 보는 재미로 음식해요. 


      풀도 써야 하고 육수도 내야 하는데 아무도 시키지 않은 짓을 연구해가며 개인 시간 없다고 툴툴대는게 제 취미죠. 


      건조하고, 벽돌로 찍어내는 일상이라 하셨지만 조금은 부럽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일상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지금은 없거든요. 


      물론 지금을 지금대로 즐기며 지내고 있긴 해요. 


      건강히 잘 지내시며 종종 글 써주세요. 반가웠어요.

      • 앗, 밪꽃님 너무 오랜만이네요. 스쿠버 다이빙 강사로 제주도에서 살고 계신듯한 소식 듣고 일상도 엿본것 같아요.


        너무 잘 지내시고 활력있게 사시는 모습이라, 저같이 고목같은 사람은 말 붙이기도 어려웠는데 아는 척 감사합니다.


        아마도 개인의 성격이겠지만, 저는 사람들 틈에서 부대끼고 같이 어울렁더울렁 편하게 지내는 재능은 타고나지 못해서


        늘상 사람들 그리워 하면서도 외로운 떠돌이신세를 자처한 것 같습니다.


        건조하게 무감하게 벽돌찍는 게 뭐가 좋나요 ㅜ 단조롭고 정갈한 생활이다 스스로 위로도 해보지만 사란은 결국 사람들 틈에


        있을때 생명력이 배가 되겠죠.




        이따금 여력이 되시면 음식사진 또 올려주세요. 식욕이 강하지 않아도 잘 만든 집밥이라면 한그릇 뚝딱이죠.


        건강히 잘 지내시고요! 

    • 늙음의 지혜보다 늙음의 무력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그런 날이 있는 것 같아요. 나이 든 내가 참 좋다 편하다, 과거의 나 자신보다 지금이 더 현명해진 것 같아서 안심이 되는 날이 있다가도. 어느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아 나이가 든단 건 다 잃는 거구나 힘이 없다는 거구나 스스로를 영위할 수 없는 거구나 하면서 허벅지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느낌이 드는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감정의 잔해가 한동안 정리되질 않는데 바로 엊그제 밤에 그랬어요. 퇴근을 하고 걸어가는 중이었는데, 바로 앞에서 대략 70대 초반의 할머니가 그 나이대 분들이 즐겨 입는 화려한 패턴의 쉬폰 소재 정장을 입고 굽이 낮은 구두를 질질 끌며 걷고 있었고 옆에서 또래의 할아버지가 부축을 하고 있었어요. 그 할머니가 울면서 말하더군요. “갈 데가 없어.... 갈 데가 없어..” 눈물로 얼룩진 화장과 입술선이 명확하지 않은 뭉개진 립스틱, 정수리가 휑한 파마머리. 갈 데가 없다는 할머니의 낮은 울음소리가 섞인 탄식을 들으며 발음이 약간 어눌하단 생각을 했고 걸음걸이도 왠지 불편해 보인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할머니를 부축하던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말하더군요. “아 그럼 어디 가서 약 먹고 죽어” 두 노인이 문 닫은 카페 앞의 인테리어용 벤치에 걸터앉는 걸 보면서 저도 다리에 힘이 풀리더라고요.


      삶이 너무 무거워요. 늘 짓눌리고 있죠.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연민이든 다 너무 무거워요. 그것들을 버릴 수도 없고.... 그저 빛나는 작은 순간들을 자주 찾으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마음의 창문도 가끔은 열리는 거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는 거겠죠... 성실하고 순수한 쿠델카님, 건강하세요.
      • 근 10년 된 집의 맥북도 늙음을 증명하듯 꼼짝없이 멈춰버린 지난 주말, 이래저래 늦은 답글을 달아보네요. 쓰신 글의 이야기는 섬찟한 도시현실 속 노인부부 같고요 예전에 제 지인중 누군가도 비슷한 상황을 목도했는데, 늙어서 기억력이 깜빡한 자기 늙은 마누라에게 '병신' 이라고 말하는 대목을 보고 결혼도 싫고 늙는 것도 끔찍하다고 썼던 글이 생각나요. 현상만 놓고 보면 노화와 약함은 배우자나 자녀 가족의 힘으로도 극복이 안 되고, 대신해 줄 수 없으니 오롯이 혼자서 감당할 문제라 아득하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요. 갈수록 무겁고 어두워진다고 느낍니다. 더 어렸을 적엔 언제 밝고 유쾌하고 즐거운 적이 있었나 싶지만, 대신 그땐 겁이 없었겠죠. 반짝이지는 않더라도 탁해지지는 않으려 안간힘 씁니다. 과분한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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