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파스칼!

서양사람들은 편지 첫머리를 'I'로시작하는 걸 꺼리는 편입니다. 관계에서 '나'를 앞세우는 자세로 간주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당신의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라고 말할 것도 '당신의 편지를 나는 잘 받았습니다, 라고 쓰는 게 낫다고 여기죠. 의례화된 편지 예절인 셈입니다.

편집기를 열고 이 글을 '나의 내면을 건드리지 못하는 말들만 쌓는 날들이다.'라고 시작하려는 순간, 문득 저 편지 예절이 생각났어요. 그러니까 '나의 내면...'이라는 식으로 쓰는 건 매우 편집증적인 자아함몰 증세인 거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 거죠. 
아무려나,  듀게에다 나 자신의 내면을 건드리지 못하는 말들을 주절대다 보니, 마음 어딘가에서 진액 같은 부끄러움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이 글은 어떨까요? 이 글이라고 실낙원처럼 덩굴진 장미의 정원에 가닿지는 못할 게 뻔하죠. - -

몇 시간 전, 시 쓰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너무도 진부한 어구지만 꼭 쓰고 싶다면서 '청춘의 가느다란 손가락' 이란 표현이 어떠냐고 물어왔어요. 그래서 오히려 되물어 봤습니다. 우리 나이면, 이제 진부한 표현을 스스로에게 허용하고 감당할 만큼의 내공이 생기는 때가 아닌 것이냐고.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것, 가장 인상적인 것들만을 발음하겠다는 결벽은 시에 이롭지 않다고 저는 생각해요. 적어도 그런 시가 제겐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그도 그건 알 거예요. 다만 그는 그런 억제의 감각으로 그의 작업을 간신히 미지의 어스름 속에 감싸둘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짐작할 뿐입니다.
           
세상의 소식을 듣노라면 (특히 몸을 못 움직이는 이런 휴일에)  세상을 잊고 사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더 이상 내 시선을 요구할 만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 남았는가 싶고,  내 인생은 이미 수십 번이나 완성되었지! 그런 느낌입니다.  
둔주곡의 반복으로 제가 소리없이 발음할 모든 말들은 가닿았든 아니든 이미 명백하게 드러났거든요.  여기에 제가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죠. 반복, 반복.

(잠시, 베란다에 있는 이름 모를 들풀을 바라봤어요. 아파트 통장님이 키워보라며 보름 전에 주신 건데 매일 보라색 꽃을 얼마나 열심히 피어대는지 몰라요. 참 예쁩니다. )                                             

저런 자연의 모습을 대할 때면, 사소한 일상의 일들이라도 그것의 가치에 합당한 모습으로 정리해 두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곤 합니다. 마치 마지막 사물을 대하듯 다가가서, 마음에 새기며 다듬어 안고 싶어져요. 그러다가도 지금 날들 속에 일어나고 있는 이 많은 일들이 과연 뭘까, 하는 불투명한 의문에 금방 시무룩해지기도 합니다. 저와 일상이 거리가 먼 두 개의 사물인 것만 같아요. 불투명성이 제게는 가장 피로인 걸까요.

유럽의 신비주의는 <눈 먼 현자>들을 가리키곤 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일을 보편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므로, 오히려 영혼의 진리를 직시하는 유형의 사람들이에요. 제가 <눈 먼 현자>가 아님은 분명하기에,  어쩌면 불투명한 시계는 세상을 사는 저의 얕은 지혜와 짝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해, 명료하게 보는 일은 지금껏 살아왔던 제 삶이 '무엇'과 만나 변화하거나 또는 '무엇'과의 무서운 이별을 거치며 변화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생각. 그런데 그걸 제가 원하는지 실은 그걸 잘 모르겠으니 난감하죠.

'눈  멀어 비로소 보게 되었네'는 다른 세상으로 이월해본 적이 있는 사람의 말이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오고 가는 세상의 거리들일 것이다. 물론 제게는 현재  먼지낀 소음의 길들만 보입니다. 그런 점이 제 근시안의 장점이고, 기슭에 머무는 자의 안전입니다. (음?)

예사로운 일상의 일들이라도 단 한 번 내 마음과 같아지도록 정성을 기울여 보고 싶어요. 그러나, 그럼에도, 마음 어느 한 구석은 압니다. 모든 사물들, 모든 상황에는 내 마음이 가닿을 수 없는 무섭고 어두운, 격렬한 소음이 들려오는 그런 깊이가 있다는 것을.
이런 인식은 평면적이던 삶이 불현듯 깨어지며 요철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의미하는데요,  저는 그런 순간을 인식하되, 체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밤하늘의 침묵에 대한 절망>과 닮아있는 감정일까요?  아니면 절망이기 보다는 그저 놀람일 뿐일까요, 파스칼?
 

    • 나도 완성했습니다 더 완성될게 없어서 내일 다시 살펴보기로 하죠.


      마음의 글 잘 읽었어요.

      • 댓글 1을 보는 순간 가.영님이구나 짐작했는데 역시나... 무플방지위원회에 후원금이라도 내야할 것 같... ㅋ


        • 벌써 위원장의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발등 별거 없으니 얼른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니 아니 이게


          tomorrow is another day를 멋있게 번역한거라죠 일없는 사람은 좀 시큰둥한 말이지만 스칼렛의 다짐은 다르죠.


          전 이책을 단 서너장으로 다이제스트한 걸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 평소 잠들 시간인데 배가 너무 고파서인지 잠이 안와요. 사흘 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발등 화상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 어딘가가 병든 것 같기도 합니다.
      몇 시간 전엔 몸이 너무 괴로워서 응급실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이틀 째 씻지를 않았다는 게 약점이라 차마... - -
      독한 마음으로 맥주 한 캔을 땄더니 뭐 이렇게 버텨지네요.
    • 그냥 주절주절~

      처음으로 읽었던 漢詩가 종일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창 밖엔 비내리고 마음은 만리 밖을 헤매는데,
      등잔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흔들리지 않는다" 로 시작되는 시였습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2월이었고 십 년만에 한국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죠.
      어렸는데도, 읽는 순간 동요되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한 사람의 침착함과 단정함이 고스란히 이해됐어요.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는데, 그 글이 환한 슬픔 같기도 했고 어둑한 기쁨 같기도 했습니다.

      스무살이 넘어서야 그때의 모호한 정조를 해석해볼 수 있게 됐죠.
      먼 곳을 헤매는 마음에게 등잔 하나가 과연 지표가 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환한 슬픔이었다는 것.
      그 자세가 어둔 벌판 끝의 불빛처럼 따라 걸어보고 싶은 매혹이었기에 어둑한 기쁨을 느꼈다는 것.

      요즘 동경과 욕망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곤 합니다.
      욕망이 집착하는 힘이라면 동경은 실존의 형식일까요?
      어디엔가 도달하기를 원하는 게 욕망이고 그 어디에도 머물 수 없음을 아는 마음이 동경일까요?
      구분지을 수는 있겠지만, 누구나의 마음에도 해와 달처럼 그 둘이 번갈아 뜨는 게 아닐런지.

      창 밖에 비내리고 마음이 만리 밖을 헤매도, 등잔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흔들리지 말아라, 어디로갈까.
      산 위에서야 수없이 많은 갈림길이 내려다 보이지만, 너는 오직 하나의 길로만 산에 오를 수 있는 거잖아.
      옳지 않은 길은 없다죠. 잘못 걷고 있는 사람이 있을 뿐.
      • 난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 곳에 도달하고 싶군요.


        옳은 길밖에 없는데 잘못 걸을 것도 없지 않나요? 걷기만 하면 되지.


        얼른 식사하세요~ 


                                     "너희는 나를 통해 우주를 본다."   -듀나회원- not 파스칼


        • 길 잃어본 적이 없으시구나... 저는 새길/다른 길 찾아다니다가 위험에 빠진 적이 많아요. 
          얼마전 런던 도심에서도 행인들 적은 길 골라 걷다가 텅 빈 건물에 갇혀서 오싹 떨었던 경험이. 
          무작정 걷기만 하면 앙대요~ ㅎ
    • 글과 댓글들을 읽다보니 맥락없이 이윤기 선생님의 단편들이 떠올랐어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항심(恒心)에 대해서 다양한 소재로 풀어내셨는데 갈매기라는 작품에 이런 고사가 등장합니다. "마음에는 늘 중심을 오로지 하여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으니 이를 항심(恒心)이라고 하거니와, 기회를 엿보아 사특하게 움직이는 교사한 마음이 있으니 이를 기심(機心)이라고 한다. 네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그것은 갈매기에게 물을 일이다." 열자의 황제편에 등장하는 해옹호구라는 고사인데 평소 친하게 어울리던 갈매기들도 막상 잡아서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니 피하더라는 내용이죠. 




      세상은 그 자체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관찰자의 개입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무엇이기도 하다는게 양자 물리학의 이론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문과라.. 더 깊이는.. 몰라용..) 내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내 시선이 바라보고 생각하는대로 세상도 모습을 바꾸어 간다. 그래서 중요한 게 항심이다. 이윤기 선생은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쓰신 글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문득 맥락없이 항심과 기심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댓글 남겨둡니다. 뭔 뜬금없고 관계없는 댓글이여?? 라고 놀라실까봐 주저리 주저리 변명이 기네요. 좋은 한주 되세요. 


      • 복창합니다.


        "마음에는 늘 중심을 오로지 하여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으니 이를 항심이라 하거니와, 기회를 엿보아 사특하게 움직이는 교사한 마음이 있으니 이를 기심이라고 한다. 네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그건 갈매기에게 물을 일이다. 갈매기는 항심과 기심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윤기. 오랜만에 대하는 반가운 이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들,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그의 번역으로 읽었어요. 오역을 지적당할 때마다 인정하고 곧 바로잡던 자세가 인상 깊었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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