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영화들 잡담...

[필립 모리스]

극장에서 이 웃기는 영화를 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짐 캐리는 사랑스러운 천방지축 사기꾼에 적역이고 유안 맥그리거는 그의 순진한 연인으로써 귀엽습니다(제가 이런 말을 하게 될줄이야...). 듀나님께서 이 영화가 실화를 짐 캐리 식 코미디에 맞추었다고 평하셨는데, 감독/각본가들인 글렌 피카라와 존 레쿠아가 그 성질 더럽고 배꼽 빠지게 웃기는 코미디 영화 [나쁜 산타]의 각본가들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애초부터 그럴 작정이었나 봅니다. 영화는 딱 [나쁜 산타] 수준으로 짓궂습니다(그 영화 올 크리스마스에 또 한 번 봐야겠어요, 히히히....). 속에 찡한 게 있으면서도 틈만 나면 못되게 굴기 일쑤인데, 예를 들어 감방 안에서의 훈훈한 로맨스 장면 옆에서 일어나는 소동만 봐도 그렇지요. (***)

 

 

 

[불청객]

상당히 저예산라고 들어서 별 기대안했는데, 의외로 꽤 많이 킬킬거리게 하더군요. 마침 얼마 전에 본 존 카펜터의 초저예산 SF 영화 [다크 스타]가 슬며시 떠오를 정도로 허접함 속에서 영화는 이야기를 재기 넘치게 꾸밉니다. 역시 악당이 좋아야 이야기가 사는 법입니다. (***)

 

 

 

[투어리스트]

듣던 대로 베니스와 안젤리나 졸리는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흥미를 끈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너무 밋밋해요. 이야기가 말도 안 된다는 건 봐줄 만하지만 스릴러의 기본 공식들 두 개만 알고 있어도 일이 어떻게 돌아갈 지 금세 훤히 보인다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리고 조니 뎁의 참 드물게 무개성한 연기를 이리저리 끌고만 다닌 건 또 어떻고요? (**1/2)

 

 

[엉클 분미]

좋은 말들 참 많이 들어서 꼭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영화 구해다가 봤습니다. 이야기나 캐릭터보다는 분위기와 공간에 더 중점을 두는 아트하우스 영화로써 [엉클 분미]는 아름답고 훌륭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엔 거리감과 난해함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상영 시간 내내 죽 집중한 가운데 흥미롭게 지켜보았고 잊지 못할 순간들이 있지만, 저는 본 작품에게 그리 열렬하게 반응하지 않았고 미디엄 샷과 롱 샷의 나른함 속에서 전 슈베르트 피아노 삼중주 2번 제2악장을 흥얼거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꼭 한 번 보셔야 될 영화인 점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

 

 

 

[Restrepo]

많은 리뷰들이 [허트 로커]와 비교한 다큐멘터리 [Restrepo]에서 감독 팀 헤더링튼과 [퍼펙트 스톰]의 넌픽션 원작을 쓴 세바스찬 융거는 아프가니스탄의 코렌갈 계곡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공격을 멈추지 않는 그리고 거의 보이지 않는 적들과 대적하면서 1년 넘게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미군 소대 병사들의 일상에 밀착합니다. 매일 어디서 다가올지도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것도 힘들지만 진심임에도 불구 현지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는 일도 힘듭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동료들을 잃기도 하고 나중에 한 인터뷰 장면들에서 그들은 그 순간들을 아프게 기억합니다(영화 제목은 파견된 지 얼마 안 되어 전사한 의무병의 이름으로 소대원들은 나중에 새로 만든 전초지에 그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긴장을 풀 때도 있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고 다시 생존과 임무 수행이 주목적인 피곤하고 힘든 일상이 반복됩니다. 헤더링튼과 융거는 약 90분 동안 이 모든 걸 생생하게 담아내었고, 병사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동안 동시에 그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1/2)

    • 앗, 저도 배드산타 매년 성탄절마다 봅니다. 반갑네요. ㅎㅎ
    • 저는 [레스트레포]가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논픽션으로의 전장에 투입된 카메라맨의 전쟁 다큐멘터리 (어쩔 수 없이 픽션을 안고 가야하는 다큐 특성상 그것이
      실재와 어떻게 함께 구상'되'려는가의 기본적인 고민도 '있으려니' 생각하고)로 알고 어느 정도 신선한 기대를 예감하며 봤는데
      창작면에서 한 것이 거의 없이 '그냥' 찍어놓은 병사들의 일상의 소스를 갖고 감성에 기댄 음악과 편집을 얄팍하게 활용해 연출을 한
      걸 보고는 기가 찼죠.

      창작면에서 한 일이 없다는 말이 그저 다큐멘터리에서의 단점을 가리킨다든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따위의 불만을 괜히 갖는 게
      아니라 (저는 평소에 제 영화관이나 기준보다는 -그건 취향이라는 구멍으로 도망갈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에 - 영화를 만든 연출자의 태도부터 인지하고 영화를 따라가는 편입니다.) 이 영화는 나름 창작을 하려는 의지가 다분히 보이기에 '그럼 창작을 제대로 해봐!' 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그 연출이란 게 그냥 일반인이 자신의 예쁜 아기의 성장을 찍으려고 구입한 보급형 HD 카메라로 자식을 찍어서 동영상 편집하는 수준이라 더 어이가 없던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묵묵하게 바라보는 식의 연출을 하던가요.
      이건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서 마치 영화 속 병사들의 천박한 말투라는 요소를 마치 메타 영화로 끄집어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천박한 다큐멘터리었어요.

      조성용님의 짤막한 리뷰에서 추측해 볼 수 있는 영화 속 풍경은 글 만큼 그렇지도 않아요.
      그냥 영화의 표면을 말(혹은 글)로만 하면 저렇게 요약하는 게 무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다루는 표면은 저거니까요.
      근데 그 말이란 것은 영화 앞에서 관념일 뿐이죠. 영화는 그 관념만큼 한 게 거의 없다고 보입니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떠올리는 말보다 빈약한 영화는 대부분 형편없죠.

      이 영화를 보던 날은 상영 후 종군기자로 활동한 사람이 게스트로 초청 받아 영화에 관한 얘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근데 그 분이 하는 얘기는 전장에서 기자로 지낸다는 것에 대한 공포과 고충에 관한 자화자찬적인 이야기만을 하는 겁니다.
      오히려 영화는 그 이야기를 보충해주는 역할로 전락해버리고요. 그런 거야 뭐 상관없죠. 그냥 종군기자 생활을 한 사람의 경험을
      듣는 재미도 있을 테니까. 근데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 영화가 왜 그렇게 화제가 됐고 칭찬을 받았는 지 알 것 같더군요.
      영화와는 별개인, 그 참혹한 현장에 갈 수 있었던 용기에 관한 칭찬이었던 겁니다. 네, 그건 인정하고 말 것도 없이 용기있는
      (근데 그 용기의 무게만큼 카메라맨의 담력이 영화에서 보여지진 않습니다. 무슨 '본격 전장 체험' 류의 다큐를 기대하시는 건
      올바른 선택은 아니에요. 영화는 '못'한 건지 안한 건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런 스펙터클을 주된 목적으로 촬영하진 않았거든요.)
      행동이었겠지요. 근데 그 용기로 작품이 칭찬 받는 건 그냥 감상주의의 빌미입니다.

      ===================

      근데 이 영화 국내 몇몇 밀리터리 영화광들에게도 조용하게 화제던데 상영할 계획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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