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 즐기기

일단 게시판에 불을 몇번 지른 장본인으로서 좀 송구하기도 하고 왜 그렇게 불을 질렀는지 좀 설명할 책임을 느낍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신 부분은 그냥 무시하라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멍청한 글들에 일일히 지적질을 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아무리 키배라 해도 그것이 대화와 교류의 양상을 띄는 이상 수준 이하의 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소모적인 일입니다. 쓰는 사람에게나 읽는 사람에게나.

이런 규칙이 절대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만 무시보다는 대응의 우선순위를 제가 더 높이 둘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몇개 있습니다.

1. 말은 무시해도 되지만 글은 쉽사리 무시가 안됩니다.

말은 음성으로 뱉은 즉시 휘발되고 청자의 반응이 없을 시 더 무시가 쉽습니다. 그러나 글은, 이런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특히 가시적인 형태로 오랫동안 존재합니다.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은 경우에는 반대하는 반응이라도 보이는 게 그 글을 가만 놔둬서 중립적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좋을 것입니다.

2. 듀게는 리젠율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무시를 하자! 사실 이것이 최상의 대응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무시가 될 만큼 양질의 글들이 계속 생산과 순환을 거듭하는 거죠. 누가 여성혐오에 쩔은 뻘글을 썼다고 칩시다. 그 사이로 조횟수도 높고 댓글도 많이 달리고 첨예한 토론이나 이어가는 댓글들이 많이 달리는 양질의 글들이 여서일곱개씩 상하로 올라와있다 칩시다. 이런 경우에는 그 글을 무시하며 소외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듀게는 그런 환경이 아니라서 방치가 곧 전시가 되고 용인이 됩니다. 베스트셀러가 많아야 안팔리는 책이 알아서 묻히는데, 진열할 책도 없으니 신간 책이 가장 앞에 전시되어 베스트셀러 효과를 받게 되는 거죠. 이럴 때는 황교익을 박살낼 때처럼 전력으로 그런 글을 부정하고 반박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3. 무시한다는 건 그 자체로 방임과 같은 효과를 지닙니다.

이를테면 성희롱 피해자에게 하는 가장 얼토당토 않은 위로가 그런 것이죠. 그냥 미친 놈 만난 셈 치고 너가 잊어버려. 분명히 언어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당한 사람이 본인의 감정까지 다 수습해야 합니다. 아주 부조리한 일이죠.

끊임없이 본인의 편견과 차별을 사견이랍시고 공개게시판에 퍼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고와 감정노동은 누구의 몫이어야 할까요. 듀게 회원 많은 수가 그 글들이 취향의 영역에서 넘어갈수만은 없다는 점에 동의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반복되는 섹시즘에 다수 이용자가 애써 무시를 해야합니다. 무시는 쉬운 행위가 아닙니다. 발끈하는 감정을 억누르는 또 다른 감정노동이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다 정확한 정보와 가치관을 가지고서도 화를 억누를 때, 누군가는 해오던 그대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개똥철학으로 차별을 전파합니다. 딱히 남을 설득하지 않아도 공개적으로 전시되기에는 한참 수준 미달의 글이 무비판적으로 전시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글을 암묵적으로 지지한다는 의견이 되고 마니까요.

이런 저런 이유로 불을 좀 질렀고 불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좀 예상외라 느낀 것은, 생각보다 댓글이 많이 달려서 놀랬다는 것입니다. 딱히 저 정도 화재나 사후 듀게 이용의 방향 토론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제 입장을 좀 표명하고 그게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사실 싸우지 좀 말자, 무시하고 넘어가자 이런 글들은 생산적인 양질의 글들이 있을 때 더 효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싸우지 말자는 명문보다 오늘 본 영화는 어쨌네 하는 글이 악화를 구축하는 양화로서 더 높은 기능을 발휘할지도 모르죠. 저 또한 당연히 그런 글들을 많이 쓰려고 합니다.

소요만큼 생산을! 듀게 다른 분들도 차별과 편견에 저마다 저항하면서 즐겨주시리라 믿습니다...
    • 저도 대개 혐오 글들 무시했는데, 가끔씩 저 자신을 의심하게 되더라구요. 내가 예민한거 아닐까? 혹은 다른 사람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니 그게 일반적인 것 아닐까 하는 의심과 흔들림..


      보드리야르말처럼 선한 의도가 참혹한 결과를 낳알 수도 있지만, 무대응 보다는 첨예한 대립(?)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자기 반성과 다른 사람들의 위치에서 보는 생각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님 말처럼 소요보다는 생산을!!
      • 넴... 가만 놔두면 놔두는 대로 악영향이 만성적으로 쌓이는 것 같기도 해요ㅠ


        소요만큼 생산을! 이라고 썼는데 소요보다 생산을! 이라고 쓰셨군요 ㅋㅋ 뭐가 됐든 좋아요 생산해요 같이~!
    • 개인의 처세 면에서는 참거나 혹은 무시하고 넘어가는 게 좋다고 봅니다. 건전한 토론보다는 최초 문제 제기자에 대한 비난만 남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악화는 바로 그거예요.

      가만히 있으라는 유언무언의 눈총들.
      • 저도 그게 싫습니다. 발화 자체를 틀어막는 분위기가 프로불편러라는 무식한 말까지 만들었잖아요. 다수의 조용한 폭력에 커뮤니티에서라도 대항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개개인이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너무 몰입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곳에서의 다수(의 폭력)는 언제부터인가 페미니스트라고 하시는 분들에 의해서 저질러지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분노와 몰입이 지나친것 같아서요.


      온라인이라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오프에서 할수 없는 말을 온라인에서 할수 있습니다만, 그 정도가 지나침이 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그러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의한 언어적 비방이나 공격은 아주 많은 경우 이를 부르는 상대방의 무지와 저열함이 원인으로 더 크게 작용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물론 쌍욕이나 조롱은 좀 자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도 들 때가 있지만 다른 분에게는 제 언어가 유난히 뾰족하게 들릴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쌍방의 언어만 두고 보는 것보다는 어떤 의견으로 어떤 가치관을 두고 다투는지 조금 더 주목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참고로 제 경우는 분노와 몰입이 굉장히 자제되는 편입니다... 세상사 남일에 어찌 그리 흥분하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듀게가 그런 제 가치관을 소소하게나마 실천하는 장이 되길 바래요. 너른 마음으로 저나 다른 사람들의 분노를 한번쯤은 상상해봐주시길.
      • 여혐종자들에게는 폭력이 답이니까요. 직접 쳐맞는 여혐종자와 함께 그 폭언을 듣는 잠재적 여혐종자들에게도 경고의 의미가 있는 거죠.
    • 사실 최근 게시판에 계속 이상한 글 써대는 저 유저를 어찌해야 할까 고민이 되긴 하더군요. 그러다가 체육관에서 여자 신음 소리가 어쩌구 하는 글 싸지른거 봤을 때는 진짜 뚜껑이 열리더군요.(그것도 어떻게 알게 됐냐면, 제 지인이 듀게 간만에 들렀다가 뭔 저런 미친놈이 다 있냐고 링크 걸어줘서 알게됐네요;;)


      이런 쓰레기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죠. 그렇다고 언제까지 방치할 수도 없구요. 쓰레기 냄새가 계속 진동할테니.
      • 너무 심합니다. 그걸 전혀 눈치도 못채고 있구요. 저런 글에 타인의 반응이 아예 상상도 안될 정도라면 어떤 관계나 사회 속에서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데 그걸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라고만 여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제가 저런 이슈에 대해 열을 올릴 때마다 빅캣님이나 소부님이 앞장서서 지지해주시는 게 감사하면서도 너무 앞서 나가셔서 괜히 욕받이를 하시는 게 아닌가 싶은 송구함도 좀 있어요 ㅎㅎ
        • 아닙니다. 저는 언제나 제 신념대로 말하고 행동할 뿐입니다.
    • 늘 제가 하고 싶은 말이지만 말빨과 에너지 부족으로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풀어내어 주시는 듯해요. 글 읽을 때 마다 그나마 해소되는 느낌이네요. 감사합니다.
    • 한편 공감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트롤에게 먹이주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토록 바라는 댓글을 주는 것보다는 강력한 조치로 '인실좆'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지켜보는 중입니다. 


      저는 저대로 글 리젠을 해보려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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