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질시하는 이유

청빈이 가난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 것인지 잘 모릅니다. 아마 가난이 청빈함이 되기 위해서는 자발적일 것, 비굴하지 않을 것, 허둥대지 않을 것, 탐욕이 없을 것 등의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겠죠. 많아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의미로 꿰이는 덕목들입니다.

선배 J는 청빈한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어요. 어떤 계기로 그런 청빈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고, 그리하여 그는 사회운동가로서 뜻하지 않았던 명예를 얻게 됐습니다.
가끔 그의 SNS에 들어가는데, 대중은 그의 청빈함을 여전히 흐뭇하게 여기지만, 댓글들을 보니 그의 명예에 대해서는 선망하거나(극소수) 질시하거나로(대다수) 갈리는군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가 청빈하고 고통받기를 원했는데 그는 청빈하고 명예로운 셈인 걸까요.

물질적 소유가 개인의 존재가치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청빈은 신화이거나 어리석음이겠죠. 그가 청빈하게 보였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끈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거고요. 이제 그는 신화처럼 보이되 또한 어리석어 보이나 봐요.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맑다淸니!  비굴하지 않고, 주눅들지 않고, 결핍에 아우성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살아가며 맑은 얼굴로 미소 지을 수 있다니!'
그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었는지 살펴볼 마음도 없이, 그가 얻은 것 - 명예 - 마저  탐내고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놀라곤 합니다. 그런 기갈과 심술은 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번쩍이는 것을 포기하고 맑은 것을 선택한 사람을 시기하다니.

그는 부처도 무엇도 아니고 그저 한결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회운동가일 뿐입니다. 그가 이 미친 장터 같은 사회에서 아무런 갈등이나 모욕도 느끼지 않은 채 담담한 삶을 살고 있으리라고, 그저 맑고 평정하기만 하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도 우리처럼 '해내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자기 모순을 줄이고 가벼워져, 마침내는 온전히 자유롭기 위해서.

덧: 한 인간의 고유성을 이해하는 건 다른 언어를 나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작업처럼 지난한 일이긴 하죠.
아무리 성실한 번역이라 한들 '번역을 거치면 작품의 흠은 늘어나고 아름다움은 훼손되기 마련이다.'(볼테르)
아무리 섬세한 번역이라 한들, '번역이란 양탄자를 거꾸로 뒤집어 놓는 일에 불과해서, 모든 무늬는 다 드러나지만 본래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없기 마련이다.'(세르반테스)

    •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어떤 사람의 이상적 면이 두드러질 때 그걸 반드시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도 꼭 비루한 욕망을 넣어서 자기와 비슷한 정도로 속된 인간이기를 강요하듯이요. 글 속의 그 운동가분이 그럼에도 자신의 고결함을 지켜나가셨으면 좋겠네요
      •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낼 수 있는 건 신과 짐승뿐이라죠. 그래서 인간은 서로 생각/마음을 모으고 나누어야 한다며 고대 그리스 아테네인들은 광장에 모였던 거였고요. 
        인터넷이 '아고라' 역할을 해줄 것 같았는데, 몇년 사이 흐름이 바뀐 듯싶어요.  SNS을 서핑해보니 다같이 유리벽이나 안개벽을 치고 있는 듯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더군요. 거창한 공적 담론이 아닌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에도 악플이 난무하는 걸 볼 때면 이런 의문까지 들죠. '모두 나만 모르는 수수께기 놀이 중인가?'
    • 누군지 모르지만 존경할만 하죠.


      번역도 고치는건데 고치면 고칠수록 것잡을 수 없게 됩니다.

      • 번역은 다른 언어의 비의를 푸는 것뿐 아니라 자기 세계관이 개입돼 관점이동을 낳기 마련인 작업이니 어렵긴 합니다. 돌아보면 저도 실수를 많이 저질렀어요.  텍스트에게나 사람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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