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에 오른 내 사진

사진 찍히는 일을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자기 부정 혹은 자기 소멸의 감정이 지배적이었던 사춘기 시절부터의 염오인데, 대학 졸업앨범 사진도 찍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졸업여행 때의 단체 사진이 실려 있어서 아차! 시무룩했던 기억이...)
약간 나아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누군가에게 기습적으로 찍히는 경우 외에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드물어요. 여권 갱신할 때마다 사진 찍기 위해 한달은 한숨을 쉬며 미루죠.
거창하게 말하자면, 존재의 무근거성을 무모하게 앓는 성향이어서 사진에 의탁하여 존재의 형식을 세울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이런 저의 증상을 막내는 이렇게 분석한 바 있어요.
"그건 누나가 나르시스트라는 반증인 거야. 좋게 말해서 자기 자신에게 보이는 것으로 족한 부류인 거지.  스스로에게 담담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진을 찍고, 공공 장소에서도 거침없이 거울을 들여다 보는 법이야."

날카로운 간파지만, 반 정도만 동의해요. 어깨를 반듯하게 펴고 지평선 너머를 주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해도, 제가 자기 손바닥만 들여다 보고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착각 없이 어떻게 삶을 지속하겠어요~) 
그러나 아무도 없는 방에서, 밤중에 혼자 거울을 보는 종류의 사람이란 건 아마 사실일 거예요.

2. 좀전에 회사 단톡방에 들어갔더니 제 사진 몇 장이 떠있더군요. 누군지 알아보는데 삼,사 초 걸렸습니다.
어제 dpf의 생일파티 때 찍힌 사진이었어요. 와인 두 병을 비운 시점이었고, 옆자리의 누군가와 한참 논쟁 중인 참이었습니다. 
건너 편에 앉아 있던 그가 갑자기 이름을 불러서 고개를 돌렸더니 카메라로 절 잡고 있더군요.  몰두해 있던 대화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정신이 카메라를 향해 '어어... 지금 뭐하는 거야?' 묻고 있는 벙찐 표정이 적나라하게 잡혀 있었어요.

솔직히 제가 그렇게 맹한 눈 표정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껏 모르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의 눈싸움에서 한번도 져본 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꽤 형형한 눈빛이지 않을까,라고 마음대로 착각해왔어요.
한 동료는 '난로가에서도 추워서 꿈벅댈 것 같은 눈'이라고 짐짓 시적인 표현을 달아뒀던데, 한마디로 잘라 말하자면 '아무 생각없이' 세상을 사는 자의 눈이었어요.

어제 dpf는 로마 병정을 컨셉트로 한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파티장에 나타났습니다. 검은 물감으로 사악한 얼룩을 덕지덕지 만들어 넣자, 
예상 외로 그의 얼굴은 우리의 손이 닿지 못할 아름다운 무엇이 되었어요. 저너머의 (au de la) 어떤 것. 
(그래도 넌 나의 응징을 면할 수 없음!)
 

    • 동료들끼리 생일상에 와인을 두고 논쟁을 하며, 무려 분장을 하는 파티장이라니.. ㄷㄷㄷ

      갈비 먹고 싶다는 막둥이 달래서 주물럭으로 퉁친 못난 제가 미워지네요

      얘들아, 내가 더 잘 할게...
      • 아니 와인이나 분장 따위가 뭐라고 주물럭과 비교하시나요? ( 예상 외의 동생 사랑에 빙긋~)


        지금 아버지에게서 8개월 만의 바둑 대국을 제안받고 혈투 중입니다. 현재 삼판삼승 중! 



    • 저도 사진을 통해 보는 제 모습이 넘 어리버리하고 못생겨서 사진찍히는 거 질색팔색합니다...
    • 난 날 못믿는 의심쟁이가 되어버려 스스로에게 담담했을 때가 얼마나 좋은 시절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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