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들 6

1. 며칠 째 화제가 되고 있는 항공회사 모녀의 영상들을 이제야 봤습니다.
조씨의 남편이 공개한 영상을 보니, 젤리 먹고 혼나는 아이는 삶의 기초를 배우고 인성의 근본이 길러질 나이대더군요.
아이는 부모를 '베끼며' 성장하기 마련인데, 그 정서적 학대 현장을 보노라니 마음이 참담했습니다.
시 한편이 띠링 떠올랐어요. 

- 같은 과 친구들 / 김승일

(전략)
아빠가 창밖으로 나를 던졌지. 2층에서 떨어졌는데 한 군데도 부러지지 않았어. 격양된 삼총사는 어떻게, 얼마나 맞고 컸는지 신나게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니가 2층에서 떨어졌다고? 나는 3층에서 던져졌단다. 다행이 땅바닥이 잔디밭이라 찰과상만 조금 입었지. 어째서 우리를 던진 것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4층에서. 아빠가 4층에서 나를 던졌어.

그게 말이 되는 소리니? 어떻게 4층에서 던져졌는데도 그렇게 멀쩡하게 살아남았어? 게다가 어떻게 그런 부모랑 아직도 한집에서 살 수가 있니? 너한테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은 너를 이해한단다. 내가 더 학대받았으니까. 나는 골프채로 두들겨 맞고 알몸으로 집에서 쫓겨났거든. 우리는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그랬구나. 너도 알몸으로 쫓겨났구나. 여름에 쫓겨났니, 겨울에 쫓겨났니? 나는 겨울에 쫓겨났었어.
(후략)

2.  어제 오후, 회사 근처에서 살인미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빌딩의 주차관리원이 V.I.P 고객과 주차 시비 후, 몇 차례 사과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부녀를 칼로 찌르고 자수했다더군요.
현대 사회에선 그다지 기묘할 것도, 충격적일 것도 없는 사건일 수 있지만, 그러나 생각해보게 돼요. 
잘못을 사과하는 마음과 상대를 살해하고 싶은 마음. 한 사람의 시야에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그 두 갈래 길이 동시에 펼쳐져 있었다는 것. 

마음이란 게 그렇잖아요.  이 길 아니면 저 길이란 게 180도 마음을 돌려야만 갈 수 있는 게 아니죠.
하나의 길 바로 옆에 그토록 다른 길이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다는 것.  어쩌면 두 길이 광속으로 360도 회전하며 항상 겹쳐져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사랑과 증오, 웃음과 눈물, 죄와 은혜..... 의 양극에 걸쳐진 긴장과 기묘한 진동. 그것이 삶인 듯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면, 주차관리원의 선택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마음의 추락이었을 뿐이에요. 
어쩐지 저는 그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것만 같습니다. 연민에 앞선 슬픔이 있어요.
찔렸던 부녀 중 V.I.P 고객인 그 아버지는 이제 굴욕이나 어려운 사과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을런지.

3. 사실 마음이 요동치고 있는 사람에게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말은 덧없죠. 그건 한 발로 걸어보라는 말과 같은 거에요. 누구도 한 발로 걸을 수는 없어요. 잠시 뛸 수 있을 뿐. 

감정을 배제하라는 건, 자신의 감정을 밖에서 바라볼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죠. 그러니까 단순화를 통해 자신을 객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건데요, '나'는 지구 안의 77억 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각 개인의 고독과 슬픔의 내면은 얼마든지 복잡할 수 있지만, 그것은 ‘77억의 삶 중 하나로서의 고독과 슬픔이에요.
인생의 기막힘이 그 사소함에 있는 거죠.  바보가 되면 좀 어떤가, 싶어요. 얼굴의 근육이 얼마나 풍부한데 서로 따뜻한 표정 하나 지어주지 못하는 건지...... 

4. 오늘은 씻지 않고 출근할 겁니다. 마음이 부르터 있을 때 안 씻고 나가면  왠지 속이 좀 빨리 가라앉더라고요.
1년에 한두 번 그러는 거니까 눈흘기거나 혀차지 마시길.




    • 1. 자처해서 이른 파탄의 지경이라고 해도 아주아주아주 가끔은 그녀의 인생도 진짜 불쌍하고 불행하다고 생각될 때 있어요.(누가 누굴 동정;;;)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갔으니 지금 회자되는 가정적인 문제들은 그녀가 돈과 권력이 아무리 많아도 해결할 수 없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은데, 정말 어떻게 해야 인간답게 잘 사는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되네요.


      2. 그러나 주차요원의 살인미수는 바로 1과 같은 부류의 인간들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흉기를 휘두른 주차요원을 


      마냥 두둔할 마음은 없습니다만...


      4. 전날 화장도 못지우고 쓰러져 잤다가 그 위에 선크림을 바르고 출근한 전력이 있는 관계로 눈 흘기지는 않을 겁니다만,


      저는 극심한 피로와 게으름, 어디로님은 심연이었군요. ㅎ  

      • 일하면서 재계의 여성들을 공식석상에서 만나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그들 중 인상 깊었던(나쁜 의미로) 두 사람이 조현아와 전 한진해운 회장 최은영이었습니다.
        '성인이 되는 깨우침의 과정을 못 겪은 사람'이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죠.

        안 씻고 출근하면 동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데, "그래도 양치는 했다"는 부분에서 다들 ㅋㅋ거려요. 그게 그렇게 떳떳할 행위냐며. 

    • 그에게 '잘못'이 있었는지, 또 '사과할 마음'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죠.
      그저 '사과해야 하는 입장'만이 그의 몫이었던게 아닐까..

      부조리한 상황이 던져졌을 때, 일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대개 묵묵히 제 몫을 씹어삼키는 것 정도겠죠.
      일개인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보다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조리란 늪과도 같은 것, 역병처럼 전염되는 것이라.

      ---
      세계가 부조리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했을까? 묻고도 싶지만..
      내 마음이 아직 늙어 죽지 않았다!는 선언 외에 거기 달리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여 서럽고.
      • 돈/권력이 많은 계층과 소시민에게 적용되는 정의의 개념이 다르다는 걸 한국에선 흔히 겪게 되죠.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사적인 불행으로 개인에게 책임지우기 때문에, 그 결과 카프카의 소설들에 나오는 무력한 개인들이 넘친다고 느낍니다.
        'xx충'이라는 유행어는 비도덕적인 '벌레'로 변한 개인들이 처한 운명을 반영하는 걸 테지요.
    • 승객은 밑도 끝도 없는 욕설과 저주를 퍼붓다 끝에 수천원의 택시요금을 길 바닥에 던지고 택시기사는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져 결국 사망한 사건도 있었어요. 


      칼로 찌른건 ‘복수’였을까요? 아니면 ‘방어’였을까요?  


      칼은 커녕 끝까지 반말이나 욕설도 맞서 하지 못한채 심장이 멎어 버린 분의 죽음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봅니다.   그 브이아이피인 뭔지 하는 사람들 꼭 정신 차리지 말고 더 나대다가 아마추어 말고 프로에게 걸려 더 이상 진상질이나 욕설은 커녕 숨도 못 쉬게 되길 바래요.

      • 알고보니, 그 주차관리인은 이번 겨울, 방한 텐트(공중전화 박스 크기의 비닐 텐트)에서 업무 보실 때 제가 서너 번 커피를 나눠드린 분이었습니다. 한번도 흐트러진 자세를 본 적이 없어요. 
        복수인지 방어인지는 구별 못 하겠고, 그 분이 '나는 왜 나인가?'를 괴로워하셨을 거라는 건 짐작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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