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영화 '소공녀' 잡담.
- 늘 그렇듯 구체적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이솜이라는 배우 이름을 들을 때마다 제가 우연히 봐 버렸(?)던 이 분의 데뷔작이 떠오릅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요.
이수혁 김우빈 홍종현 김영광 성준에다가 이솜. 무슨 배우지망 모델들의 단체 데뷔작 같은 작품이었는데 정말 일부러 그러기도 힘들 것 같은 발연기의 향연이었고 이솜도 예외가 아니었죠. 심지어 거기에선 예쁘지도 않게 나왔어요. ㅋㅋ
암튼 그런 꼴(...)이 첫인상이었던지라 이 분이 지금처럼 그럴싸한 배우로 성장할 거란 기대는 아예 없었어요. 그래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좋은 방향으로의 의외성이란 게 참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영화도 참 좋았지만 정말 이솜으로 시작해서 이솜으로 끝나는 영화였어요. 한국 영화에서 역대급으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인데 그게 배우랑 거의 맞춤복 수준으로 잘 맞으니 그냥 주인공 캐릭터만 보고 있어도 흐뭇하고 배가 부른 거죠. 아직 앞날이 창창한 배우이지만 그래도 이만한 역할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만큼 좋은 캐릭터였고, 잘 살려냈어요.
영화 내용은 뭐 다들 아시다시피, 곧 죽어도 담배랑 하루 한 잔의 위스키는 포기할 수 없었던 가사도우미 젊은이가 자신의 우선 순위를 지키기 위해 주거를 포기하고 보다 '정상적이고 철 든'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지인들 집을 떠도는 이야기죠.
영화는 이 간단 요약에서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와 주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젊은이들 삶의 고단함을 소재와 배경으로 삼는 광화문 씨네마 영화들의 컨셉을 그대로 이어가는데... 다만 이전 영화들에 비해 상당히 궁서체로 진지해요. 유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작(?)들보다 훨씬 더 무겁습니다. 결말의 분위기도 사뭇 다르구요. 아무래도 주인공 미소가 떠돌며 만나는 예전 밴드 멤버들의 사연들 때문인 것 같아요. 꿈도 희망도 날려버리고 현실에 짓눌려 살아가는 대한민국 30대들의 모습을 몇 가지로 유형화해서 보여주는 식인데 아무리 유머를 바탕에 깔아 보여준다해도 그 디테일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보다 한숨이 먼저 나오니까요.
그래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이런 모습들을 나름 감싸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역시 이것도 광화문 씨네마 영화 맞구나... 하면서 안도했습니다. 전 이 회사 영화들의 이런 성향이 너무 좋거든요. 굳이 좌절과 혐오만 보여주며 "이게 현실이다 거지깽깽이들아!!" 라고 설교하는 영화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아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도 이미 충분히 잘 아니까요.
아예 환타지 속에서 해피해피하든가, 아님 현실을 다큐식으로 보여주며 절망하든가. 대부분의 영화들이 현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이 양극단 중의 하나를 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 광화문 씨네마의 이런 태도가 너무 좋습니다. 이런 영화들이 더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끝.
- 사족 하나 추가합니다.
광화문 씨네마의 전통인 다음 영화 예고편이 제가 본 iptv vod에선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거든요.
근데 방금 예전에 네이버에서 이 영화를 다운받아 놓았던 게 생각나서 재생 해 보니 여기엔 나옵니다.
암튼 한국 iptv 사업자놈들은... 이런 식으로 장사하면서 맨날 넷플릭스 견제해달라고 난리만. orz
전 극장에서 볼 수가 없었어요. 광화문 씨네마 영화들을 뒤늦게 발견해서 이것부터는 꼭 극장에서 보겠다고 다짐했으나 제가 사는 동네의 상영관 배분 꼬라지가... orz 얼마전에 네이버에서 1080p 버전을 무료 다운로드로 풀긴 했었지만 디스크를 소장하는 기쁨은 없으니 블루레이도 나오면 좋겠네요.
이솜도 훌륭하지만 남자친구터 시작해서 조연들도 아주 잘 어우러지는 그럴듯한 앙상블을 이뤘다고 봅니다. 광화문 시네마 앞으로 눈여겨 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