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아이언스가 왜?

점심식사 후 있었던 동료들과의 블라블라 타임에서 '어디로갈까'에게 어울리는 파트너로 제레미 아이언스가 선정되었습니다. -_-
제 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많고 요즘 핫한 배우도 아닌데 여덟 명 중 여섯 명이나 그에게 표를 던져서 놀랐어요. 더 충격이었던 건 '파멸에 이르는 운명적 사랑'을 나누는 커플이 될 거라는 선정 이유였습니다. 

제레미 아이언스. 스크린에서 그를 대하면 저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평온한 질서 속에 사장된 인간의 자기파괴 충동을 내적 체험하게 된달까요.
더할나위 없이 세련된 매너의 영국 신사. 그는 늘 성공한 남자로 단정한 차림을 하고 등장하죠.  우아한 발성, 잘 단련된 몸매, 포커 페이스화된 지적인 표정. 하지만 완벽해서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는 외관 아래에는 언제든 자신의 삶을 전복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위험한 충동이 엿보입니다.
그의 인상과 그가 맡는 역할은 정확하게 일치해요.  영화 속의 그의 캐릭터는 성공을 구가하며 삶의 안락을 즐길만 할 때, 난데없는 격정에 휘말여 몰락해버리는 역할이 대부분입니다.

<데미지>에서 그는 아들의 여자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 결국 가족의 파멸을 불러오죠. ('상처입은 사람은 위험하다'는 말은 안나에게 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잘 어울려요.)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서는 다의적 인물인 기혼녀(메릴 스트립)와의 밀회와 결별로 황량한 시간을 가로지르며 깊이 상처입었죠. < M 버터플라이>에선 더 무너져서, 중국의 신비에 매료되어 여장 남자에게 빠져들었고요.  <데드 링거>에선 쌍둥이 형제, 즉 또 다른 자신과의 사랑에 미쳐서 결국 몽환적인 파멸에 이르렀습니다. <로리타>에서의 나레이션은 그의 내밀한 욕망을 기록한 일기장의 고백으로 들려오는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였죠.

그의 어떤 점이 내적 파열을 일으키는 인물에 그를 캐스팅하도록 만드는 것일까요?  무표정하고 엄격한 마스크, 영국식의 절제된 발성.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에게는 표정이나 목소리보다 주목해야할 미묘한 파장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다가와도 정직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거느리는 서늘한 긴장감이 그것이에요. 그의 마스크와 목소리, 마른 몸매와 몸짓은 살짝 흔들어보고 싶은 매력적인 틀처럼 느껴져요.

그러나 다른 배우와 변별되는 그의 카리스마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금기를 범하고 몰락하는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우리에게 그대로 느끼게 해줍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건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죠. 삶 전체를 뒤흔드는 영향력을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금기라는 위험한 충동에 자신을 선선히 내맡기는 것. 

인간은 그렇게 충동에 굴복할 때에야 비로소 진실의 실체를 고뇌와 더불어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바타이유가 설명한 바 있죠. 물론 평범한 사람들은 이 세계의 질서로 무사 편입하려 들기 때문에 바타이유의 설명대로 행동하며 살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레미 아이언스가 출연하는 영화가 주는 매력의 이유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레미 아이언스. 절정의 한 순간과 영원한 고통을 맞바꾸며 삶을 번지점프하는 캐릭터. 사랑과 성적 열병에 휩싸여 있을 때에도 내적 체험으로 충만한 수도자의 차가움이 느껴지는 남자. 관계를 파괴하고 비난에 몰려 은둔자로 고립되는데도, 그것이 영광의 조건으로 여겨지게 하는 이미지.  불행의 표상이면서 당대의 행복추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배우라는 건 얼마나 짜릿한 유쾌함일까요. 

덧: 유튜브에서 찾아본 그의 최근 근황이  'BAFTA Award for Best Film'에서의 이 모습이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8AMUYaCUS4g


    • 아직도 제레미 아이언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랍네요. 회사분들이 나이대가 좀 있으신가보네요. 제레미 아이언스 영화를 샅샅이 찾아보던 때가 있었는데요. 데드 링거가 저는 제일 좋았어요.

    • 처음 봤을 때 이미 중년이었을 텐데 소년 느낌이 나더군요. 삐친 남자애 같았어요.

      표정인지 눈빛인지가 되게 춥고 불안해 보이는 사람입니다.


      줄리엣 루이스, 에단 호크, 제니퍼 제이슨 리, 위노나 라이더가 저한테 이런 인상을 풍기는데 몇 명은 나이들면서 평범해졌죠. 아...줄리엣 비노쉬가 빠졌었네요. 다들 벌판에서 찬바람 맞고 서있는 사람 같아요.

      동양인 중에서 생각나는 사람은 양조위? 그런데 양조위는 의무는 다 하고 살 것 같은 인상이라서 조금 다르네요.

      • 불안한 눈빛에 동의!


        삐진 남자애라기 보다 자기 세계를 눈깜짝 않고 전복시킬 담대한 위험성의 분위기를 느꼈...  

    • 헉~ 제레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니요~ 산호초님 그의  팬들에게 사과하세욧!!! (이은재 모드~)


      (심호흡 하며...) 저 포함 제 동료들 나이가 이십대 포함 서른 중반입니다. 


      그가 호명된 건 이번 프로젝트의 모델로 '무려' 그의 이름이 물망에 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 프로젝트 모델이라니 대단하군요^^ 오~~~~~

    • 저스티스 리그에서 지금까지 나온 배트맨 영화 통틀어 가장 섹시한 알프레드로 나오죠.
      • 마이클 고프나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알프레드와는 확실히 달랐죠. 정신적 멘토로서의 집사 이미지를 제대로 구현했다는 느낌.


        .


      • 오호, 저스티스 리그를 봐야할 강력한 이유가 생겼어요.

        전 이 양반이 미국 아카데미에서 상받을 때 모습이 아주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요.

        진실되고 순수해 보여서 아주 인상적이었죠.
    • 저는 블록버스터 위주로 보다보니 <라이온킹>과 <다이하드3>에서 연달아 치였었죠. (그리고 <던전 &드래곤>에서...아니 진짜 왜 이런 영화에 귀하신 몸을...ㅠㅠ)

      악역 위주로 보게 되서인지 제 기억 속의 이 배우는 주로 (매우 섹시하게)으르렁거리는 모습이에요.
      • 그러고보니 섹시하게 으르렁댄 모습들이었네요. 삶의 관점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 자의 으르렁이랄까.... (뭔 말인지 ㅎ)

      • 던전 & 드래곤은 평생 로망이었던 중세 성 구입해서 살기 프로젝트 실현을 앞두고 돈 모으려 시나리오 안 읽고 출연했다는 풍문이 있더군요;; 결국 흑역사 하나 적립하신 대신 소원 성취. 아일랜드에 있는 15세기 지어진 성을 복원하여 거주 중입니다. 




        991AF33A5C66323127C233

    • 재밌는 거 하고 사시네요. 저는 오늘도 옹기종기 모여서 남 욕만 하고 살았는데
      • 남 욕은 스트레이트하기라도 하죠. 우리 동료들은 그것보다 더한 것도 하며 놀아요. (뭔지는 안 갈쳐드림. ㅋ)

    • 오스카를 탄 [행운의 반전]에서도 무척 좋았지요.... 






      • 아! 이 영화를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중딩 2 때 가입했던 천리안 동호회에서 필력 자랑하던 리뷰어들이 극찬해서 찾아본 영화였어요. ㅎ


        제레미의 분위기가 오싹해서 시선을 잡았으나 영화 자체는 지루하게 봤었어요. 하지만 십년 쯤 뒤 다시 한번 보면서 제레미의 연기는 물론이고 변호사 역의 론 실버에게 푹 빠졌더랬습니다. 각색이 훌륭하다는 것도 그때 느꼈고......  "도덕은 당신의 몫이다."던 앨런의 대사가 불현듯 떠오르네요. 

    • 수상소감 마지막에서 [데드 링거]의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에게 감사하는 제레미 아이언스 






    • 제레미 아이언스,, 불안해 보이는 눈빛과 서늘한 눈빛을 둘 다 가진 남자죠. 섹시하기도 하고.


      데미지에서도, 다이하드에서도 너무 섹시해서 울 뻔 했어요.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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