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들 3

1. 친구 J가 파일로 보내주어서 잠못드는 밤, 요즘 젊은작가들의 소설을 여러 편 읽어보았습니다. 제각기 나름으로 세련된 작품들이었지만
닫혀 있는 절망 같은 것을 느꼈달까, 그 냉소에 좀 상처받는 기분이 됐어요. 자기 주변의 미시적 세계만을 맴돌고 있는 모습들이 채 눈뜨지 못한 애벌레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눈을 들어 더 큰 세계를 보고, 더 큰 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달까요. 미디어에 의해 각광받는 작가들의 경우가 특히 그랬습니다.

'절망, 분노, 냉소... 이런 것들이 다 젊음의 특성일까?' 애매하고 두루뭉술하게 자문해보지만 글쎄요, 고개가 저어질 뿐이네요. 
갈수록 인생파가 되어가고 있는 저로서는, 삶에서 '글'이 행동에 대한 의지, 용기, 지혜... 같은 것들을 위한 준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조건 인고하고, 거짓된 화해의 제스처로 안달하는 - 결론을 정해놓은 글을 써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지면을 통해 발표되는 글이라면 독자와 모종의 윤리적인 대화를 원하는 토대 위에서 쓰여져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항상 제 분수를 앞서가는 생각에서이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2. 새벽에 운동 가는 대신 아파트 근처 놀이터에 나가 빙빙 돌다가 들어왔습니다.
날이 풀렸다고는 해도 추위가 포진해 있는 겨울새벽인데, 십대 소년 두 명이 벤치에 앉아 집중해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놀이터 다른 쪽 끝에 앉은 중년 남성 한 분은 1월의 새벽 오렌지빛 가로등 아래에서 샌드위치를 열심히,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을 하릴없는 배경삽화처럼 이렇게 적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삶의 밀도를 제가 어떻게 짐작하겠습니까?)
그런 광경을 멍하니 일별하노라니, 왜인지 '모욕받는 삶'이란 표현이 뇌리를 스쳐갔어요.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해서, 제가  그 느낌을 신뢰하거나 절대화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감각이 제겐 있어요. 
(그런데 대체 왜 안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불쑥 드네요. 아마도 왜 안 되는지도 모를 만큼 둔해져버렸기에 지금으로선 그 느낌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일지도...)

3. 아무튼 바라본 그들의 모습이 잔영에 남아 제 삶도 '모욕받는 삶'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겨울이 깊을대로 깊어져서 공기도 알싸하게 차가운데, 바람이 조금만 훅 불어도 추위에 시름시름 앓아 누울 것만 같습니다. 무언가의 끝자락에서 하염없이 펄럭이는 기분이기도 하고요. 좀 지겨운 느낌입니다.
저는 매너리즘에 대한 혐오가 강한 사람일까요? 매너리즘이란 반응이 자동화되었음을 뜻하죠. 삶과 겉도는 포즈로 삶의 문제를 가리거나 비껴가려는 불순함, 혹은 우매함에 젖어 있는 게 매너리즘이잖아요.
요컨대 문제는 겁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꾸준할 것. 새로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4. 사실 이 글을 쓰게된 건 좀전의 통화 때문이에요.
며칠 전 쓴 잡글에서 밝혔듯,  난방배관에 의한 아랫집 누수문제로 마음이 조마조마 불편한 중인데요,  지인에게 추천받은 업체에게 면담과 나흘 전부터 견적 요청을 계속해왔습니다.
근데 아침 통화에선 시간 약속을  잡고서도 저녁이 되면 그냥 잠수탄 채 감감 무소식 식의 행보를 반복해왔어요
좀전에 업체 대표에게 전화해서 왜 그러시냐 항의했더니,  밀린 스케줄이 너무 많아 상담도 불가능하다는 변명을 이.제.서.야 하시네요. (먼산)

(혹시 난방배관 공사 해보신 분이나 그 업체 잘 아는 분 계시면 추천 좀 해주세요. 목동 소형 아파트 거실 바닥 공사입니다. 굽슨~)

5.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소진해버린 뒤, 어떤 '마지막 '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10분도 안 걸릴 것 같아요.
    • 여러 생각들 같이 작가들도 그걸 쓰죠 그랬다 안그랬다 하면서, 그런 시간들의 모음이 사는거란 생각입니다 소중하죠 물샌다는 집이 듀게 다른집이었는데 그집이었나요
      • 그 작가들도 (저와 같은 실눈을 뜨며) 그랬다, 안그랬다 하면서 쓰는 거군요. ㅎㅎ


        나흘 전에 '운수 좋은 날'이란 잡글에 누수문제 고민을 토로했었고, 가영님이 첫댓글 다셨어요.


        저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유저분이 또 계셨나 보군요.



    • 아래 안유미님 글이 둘 연달아 있는줄 착각했어요
    • 다른 주제지만 최근에 젊은 작가 단편 모음집을 읽었다가 조로한 느낌의 작품들이 모여있어서 놀란 적이 있어요. 작가가 늙은 건 아니고 '한국 문학'이라는 지극히 로컬한 장르가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한국문단에서 젊은 작가들의 진출 및 선별에 작용되는 힘은 상업성과 문학권력, 아마 이 두 가지일 거에요.
        항상 제가 궁금해 했던 건, 3세대의 독자가 접하는 2세대의 시인, 작가들이 1 세대의 추천을 받은 연후의 작가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뭐랄까 참으로 한심하고 아둔한 유통구조라는 생각.  -_-
    • 공사 견적은 귀찮으시더라도 항상 복수로 받으세요. 아는 사람 추천보다 그게 더 편하실거에요. 기성의 것에 대한 절망 분노 냉소는 젊은것들의 종특이 맞는것같아요. 지금의 늙은 것들도 젊은 것들일 때 당시의 늙은 것들로부터 같은 소릴 들었다지요. 제보기엔 '요즘 젊은...'이란 생각이 드는 순간 '아 나도 늙었구나.'하는 반증이 아닐까 합니다.
      • 아파트 주변에 일인 보수업체들이 몇 있는데, 프로페셔널하지가 않아요. 한평생 이런저런 보수작업을 해오면서 독학한 분들이라는 게 한눈에 읽히거든요. 나름 전문가를 자처하는 큰업체들은 비싼 작업만도 차고 넘치는지 제집 같은 경우는 별 관심을 안 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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