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에 관한 赴古

http://www.segye.com/newsView/20181004000208


간만에 찾아간 식당에서 너무 맛없는 점심식사를 하며 반이나 남기고 돌아오는 길, 속도 모르고 쾌청한 날씨에 천천히 

돌아와 자리에 앉았더니, 허수경 시인이 향년 54세로 독일에서 별세하셨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왔군요.

제게 이제는 다만 때 아닌, 때 늦은 사랑도 애증도 아닌 문학판이고 한창 문청 때도 언감생심 꿈을 못꾸던 시 세계에서

제 나름 독보적인 마음의 순위를 매겼던 시인인데... 시인의 새로운 시도 산문도 모습도 더는 볼 수 없다니 슬프고 안타깝네요.


작년 이맘때 유럽 어딘가를 여행하다가 귀국하던 중 파리 드골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 게이트로 환승하기 위해

맥없이 걸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여자가 날카롭게 절규하더니 이내 통곡하며 울부짖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 복잡하고 드넓은 드골 공항에서 일시에 모든 게 멈춘 듯 모든 시선이 그 여자에게 쏠렸고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가 뭔가를 설명하면서 위로하면서 달래고 있었지만 그녀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어요.


순간 제가 든 생각은, 그녀가 가족이든 친구든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가는 중에 공항에서 부음을 들은 게 아닌가 싶은...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에게 저런 울음소리가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혼자만의 망상이기를 바라면서도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과 불안함이 혼재했던 저에게 그 장면은 너무나 강렬한 컷으로 남았어요.


오늘 문득 그 날이 생각나는군요.

허수경 시인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 저에게는 아주 특별한 시인이자 소설가 였는데... 명복을 빕니다.
    • 제가 참 힘들었던 시절에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들로 위로해준 허수경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청년과 함께 이 저녁


       


                              허수경


       


       


      가지에 깃드는 이 저녁


      고요한 색시 같은 잎새는 바람이 몸이 됩니다


      살금살금, 바람이 짚어내는 저 잎맥도


      시간을 견뎌내느라 한 잎새에 여러 그늘을 만드는데


      그러나 여러 그늘이 다시 한 잎새 되어


      저녁의 그물 위로 순하게 몸을 주네요


      나무 아래 멈춰서서 바라보면 어느새 제 속의 그대는


      청년이 되어 늙은 마음의 애달픈 물음 속으로


      들어와 황혼의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데요


      한 사람이 한 사랑을 스칠 때


      한 사랑이 또, 한 사람을 흔들고 갈 때


      터진 곳 꿰맨 자리가 아무리 순해도 속으로


      상처는 해마다 겉잎과 속잎을 번갈아내며


      울울한 나무 그늘이 될 만큼


      깊이 아팠는데요


       


      그러나 그럴 연해서 서로에게 기대면서 견뎌내면서 둘 사이의 고요로만 수수로울 수는 없는 것을, 


      한 떨림으로 한세월 버티어내고 버티어낸 한세월이 무장무장 큰 떨림으로 저녁을 부려놓고 갈 때 


      멀리 집 잃은 개의 짖는 소리조차 마음의 집 뒤란에 머위잎을 자라게 하거늘 나 또한


       


      애처러운 저 개를 데리고 한때의 저녁 속으로 당신을 남겨두고 그대, 내 늙음 속으로 슬픈 악수를 청하던 


      그때를 남겨두고 사라지려 합니다, 청년과 함께 이 저녁 슬금슬금 산책이 오래 아프게 할 이 저녁





    • 고단한 삶을 알알이 엮어 옆에 두었던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 저는 처음뵙는 시인이신데...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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