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범죄, 기억 두 가지

아동성추행 피해자가 그로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0년이 넘었지만 저는 아직도 그날의 공기냄새까지 기억해요.

철이 든 후 그 일로 가장 힘들었던건 제가 그자가 저를 추행하고 강간을 시도하는 그 순간에도 그자에게 잘보이려고 했다는 거에요. 소리도 못낼만큼 두려웠고 그래서 잘보이고 싶었어요.

나중에 우울증이 잦아들어 죽고싶다는 생각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을때 그제서야 살해당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어린 나는 그때 죽고싶지 않아서 그자에게 그 순간에도 예쁨받으려고 했던 거구나...라고 깨달았고 자신에 대한 혐오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어요.

수행비서를 몇년간 했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설령 맞더라도 자기할말을 하는, 연장자들이 넌 반골기질이 강하다고 하는 말을 듣는, 그로인한 불이익은 그닥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건 그 불이익이 별게 아니어서 그랬던거죠. 취업해서 비서직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딱 그 생활이었어요. 매일매일 그자의 기분을 잘 맞춰주어야 하루가 편하게 무사히 넘어갔어요. 온 신경을 거기에 몰두하면서 저는 인정받는 사랑받는 비서가 되었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어요.

내가 비겁하고 능력없고 용기없어서 그만두지 못하고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게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른 일을 하게 되고 그때의 상사가 제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서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던 것에 대한 비참함도 사라졌습니다.

어제 안희정 범죄사실을 접하기 전까지는요.

어릴때의 기억과 비서일을 할때의 기억이 믹스되어 분노와 혐오가 사그러들지 않네요.

위의 일들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남편이나 친구에게 이 기분에 대해 이야기하면 마음이 좀 풀릴까 생각하다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아서 여기에 씁니다.

피해자가 잘 극복하고 살아남길, 훗날 살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30년 전의 어린 미나님도, 힘들었던 청년 미나님도 이런 추악한 뉴스에도 마음 다치지 않고 금방 날려버릴만큼 많이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상담을 받다가, 지난 일을 꽤 담담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던 저에게 상담 선생님이 "그 때 ㅇㅇ씨(제 이름) 기분은 어땠는데요..?" 물으셨는데 한 번도 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멍- 해졌었어요.

      부디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지금까지 잘 극복해오신 미나님이 행복해지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매갈들의 그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발언들은 기저에 이런 성추행과 같은 일상적인 성폭력 경험이 깔려있다고 봅니다. 이런 분노로 상시 좌절감과 고통을 겪지 않는 이상 그런 욕설들이 어떻게 넷에 쏟아졌을까 싶어요.

    •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30년전의 미나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Me, too. With you.
    • 글을 읽는데 너무너무 마음이 안좋네요. 어떤 말로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부디 그 고통의 기억속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탈출하시길 바랍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4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38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5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0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1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6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8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4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29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3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6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6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2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5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