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대화...(사상, 사물, 올더머니)
#.올더머니를 보고 스탭롤이 올라갈 때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에 대해 말했어요. 정확히는, 말하려고 했죠.
'휴, 내가 저 할아버지의 대사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은 말야...'까지 말하자 데자와가 말을 가로채며 '알아요. '여윳돈이 없어.'부분이겠죠?'라고 먼저 맞춰 버렸거든요. 내가 사람들 앞에서 '한 푼도 없어. 쓸 수 있는 돈이 한 푼도 없다고.'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했었던가...잠깐 고민했어요. 그게 입버릇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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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래요...여윳돈 같은 건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 2억원짜리 스포츠카를 살 계획이 있다고 쳐요. 그야 스포츠카를 사는 건 2억원으로 할 수 있는 멋진 일들 중 하나예요. 하지만 최고로 멋진 일은 아니거든요. 2억원을 써서 할 수 있는 최고로 멋진 일은, 2억원을 2억원보다 많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이건 얼마이든 마찬가지예요. 5백만원으로 할 수 있는 최고로 멋진 일은 그걸 5백만원보다 많게 만드는 일이고, 100억원으로 할 수 있는 최고로 멋진 일은 그걸 100억원보다 많게 만드는 거죠. 액수가 얼마이든간에 늘 똑같아요.
그러니까 여윳돈따윈 있을 수도 있을 리도 없는 거예요. 언제까지나 말이죠.
2.위의 스포츠카는 친구의 얘기예요. 스포츠카를 사려던 친구가 직전에 멈추고 말했거든요.
'자네도 알겠지. 힘이 있으면 그 힘은 더 불어나야만 해. 그걸 줄이는 건 바보같은 짓이죠.'
맞는 말이예요. 돈은 발판이어야 하거든요. 더 많은 돈으로 가기 위한 발판 말이죠. 정신나간 스포츠카를 사거나 정신나간 시계를 사거나 정신나간 가방을 사는 건 더 많은 돈으로 가기 위한 발판을 줄이는 일일 뿐이예요.
3.올더머니의 할아버지...게티는 이렇게 말하죠. '인간은 믿을 수 없다. 나는 사물을 믿는다. 기대와 실제의 가치가 같은 건 사물뿐이다.'라고요.
이 대사는 게티의 대사들 중 공감할 수 없었던 몇 안 되는 대사예요. 생각해 보세요. 돈을 사물로 바꾸는 건 매우 쉽지만 사물을 다시 원래의 돈으로 복원하는 건 힘들어요. 그리고 사물의 가치도 그렇거든요. 조니워커 블루 KV의 가격은 조니워커 플래티넘의 15배지만 조니워커 블루 kv의 맛이 조니워커 플래티넘의 15배인 건 아니죠. 자라에서 파는 플프 남방과 마르니의 플프 남방의 가격차이는 35배지만 마르니 남방이 자라 남방보다 35배 멋진 것도 아니고요. 그냥 뭔가...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돈을 사물과 바꿀 때는 냉정해져야 해요. 인간들은 그렇거든요. 그들은 매우 친절한 태도로 사물을 돈과 바꿔주지만, 사물을 다시 돈으로 바꾸려 하면 친절했었던 그 사람은 없어져 있어요. 사물을 돈과 바꾸는 게 매우 힘든 일이라는 걸 아는 나는 돈을 사물과 함부로 바꾸지 않죠. 10억원의 자산과 10억원의 돈 사이에는 하늘과 땅 차이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까요.
4.휴.
5.내가 이렇게 돈을 아끼는 이유는 잘 알기 때문이예요. 돈을 버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요. 참아내는 게 힘들거든요. 일 자체도 힘들지만 누군가의 까닭 없는 멸시...원래라면 절대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과의 부침...뭐 이런 거요. 순수한 노동과 순수한 돈을 교환하라면 나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돈을 주는 일자리라는 건 늘 그래요. 순수한 노동만이 아닌, 기분나쁜 불순물들이 끼어들죠. 나같이 약한 사람은 그런 불순물까지는 견딜 수 없다는 걸 잘 알거든요. 이 세상엔 돈을 주는 입장이 되면, 돈만이 아니라 돈과 모욕을 함께 주려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요.
누구나 알겠지만 돈을 합법적으로 얻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죠. 버는 것과, 불리는 것이요. 그리고 나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언제나 '불려서 얻는'걸 택할 거예요. 애초에 내게 가능한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사항이 아니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돈을 돈을 버는 데 쓰지, 쓰는 데 쓰지는 않죠.
어떤 사람들은 내가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아니예요. 돈이라는 건 벌어서까지 얻어낼 가치는 없다...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여기고 있거든요. 돈을 벌어서 얻는 사람들은 존경하는 편이예요. 그들의 강함을 존경하죠.
6.쓰고 싶은 건 다 썼지만...약간 더 써 보죠. 여기서 끝내면 어떤 사람들은 이상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설명을 해보려고요. '이상한데. 이 녀석, 그렇게 돈을 아끼는 캐릭터가 아니었잖아?'라고요. 그야 사물을 사지 않는 이유는 귀찮아서이기도 해요.
전에 썼듯이 그렇거든요. 사람들은 사물을 사면 사물이 자신에게 귀속된다고 여기겠지만, 내가 보기엔 반대예요. 사물이 내게 귀속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물에 귀속되어버리는 측면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스포츠카를 사면? 놀러 갈 때마다 주차를 맡겨야 하고 놀고 돌아갈 때마다 대리 기사를 불러야 해요. 좋은 시계를 사면 잘 관리도 해주고 주기적으로 오버홀도 해줘야 하죠. 싸구려 물건들은 괜찮아요. 관리가 필요 없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당신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것' '당신을 당신 대신 설명해 주길 바라며 사는 어떤 좋은 것'을 구매한다는 건 그 물건에 당신을 귀속시켜버리는 일일 수도 있는 거죠.
7.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로 사는 건 사물이 아니라 사상(事象:관측할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이예요. 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위에 쓴 조니워커블루 kv겠죠. 누군가는 '조니워커블루 kv도 실존하는 사물 아니야?'라고 묻겠지만 아니예요. 조니워커블루 kv를 판매점에서 사서 집에서 혼자 마신다면 사물에 속하겠죠. 하지만 그걸 술집에서 뻥튀기된 가격에 사서 마실 땐, 그것은 '사물'에 속하는 게 아니라 '현상'에 속하게 되는 거거든요.
왜냐하면 내가 술집에서 조니워커블루 kv를 깐다면 그건 그 술이 맛있으니까가 아니니까요. 술집 호스티스들이 조니워커블루 kv에 열광하기 때문에 까는 거죠. 다만 그들또한 조니워커블루 kv의 맛에 열광하는 게 아니라 가격에-물론 뻥튀기된-열광하는 거지만요. 아니 뭐, 좀 사이즈가 작은 가게에선 kv까지 갈 것도 없어요. 조니워커 블루 정도만 까도 경건한 태도로 묻지도 않은 간증 고백을 하거든요.
'오빠도 이미 알겠지만 난 술을 정말 잘 버려. 하지만 이런 술을 버리면 정말 나쁜년 되는거지.'
뭐 이런 식으로요. 내가 가게에 가는 걸 '술을 마시러 간다.'가 아니라 '매상을 올려주러 간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바로 이거인거죠. 캬바쿠라에 가는 건 술을 마시러 가는 게 아니거든요.
'매상을 올려주러 간다'라는 사상을 사러 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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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스포를 안 썼는데...저 정도는 딱히 스포가 아니겠죠?
다시 생각해 보니...게티가 주로 사던 사물(예술품)들은 결국 가치가 올라갈 물건들이 대부분이었죠. 예술품이 갖고 싶었던 건지 투자 대상으로 여겼던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은성님은 아주 단단한 사람 같은, 부자가 괜히 부자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은 놔두더라돈 뒷꿈치도 못따라 가겠어요,
난 흐리멍텅 최상급이지만 하지만 이것도 급수에 들어요.
이렇게 한 명 속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