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비정규직 강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그대에게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344784#cb

"사회학자 오찬호는 2013년에 출간된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통해 체제의 피해자인 동시에 자신을 억압하는 체제를 고스란히 재생산하는 가해자인 청년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대입경쟁을 거치면서 경쟁과 위계를 내면화 한 청년들은 대학 서열뿐만 아니라 학과별로, 입학 전형별로 그들 안에서 더 촘촘한 계단을 만들어 위아래를 구분 짓는다. 수능 점수가 한 개인의 능력을 나타내는 유일한 지표라고 믿는 이들에게 대학의 서열로 사람을 평가하고 구분 짓는 일은 불합리한 편견이 아닌 '객관적 판단'이다.

절대다수의 청년들이 발 디딛고 서있기 힘들만큼 세분화된 위계에 짓눌리고 편견에 근거한 저평가로 차별 받는 입장이지만, 내 아래에는 나보다 더 열악한 이들이 있기에 '절대 저렇게 되지는 않겠다'고 마음을 다지며 애써 나와 그다지 다를 것 없는 타인의 고통과 선을 긋는다.

저자는 이러한 경향의 기반에는 자기계발담론이 있다고 분석한다. 사회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들의 하중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힘들어도 한 계단이라도 더 올라가려면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한다는 것이 그 내용의 핵심이다. 10명 중 1명만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왜 한 명만 정규직이 되어야하냐고 질문하기 보단 그 한명이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라는 것이다.

철저하게 파편화된 개인으로 경쟁을 치루는 과정이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그 괴로움의 강도는 더 노력해야하는 증거이자 연료로 작용해 끊임없는 시간관리와 스펙 쌓기에 몰두하게 한다. 자기계발담론의 문제점은 그 노력에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을 계속해서 스스로 더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미로에 갇히게 한다는데 있다.

수능을 잘 보지 못해서, 명문대 학생이 아니어서, 정규직이 아니어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열등감에 시달리지만, 그 열등감은 나보다 더 밑에 있는 이를 멸시하는 것을 통해 상쇄된다. 이 담론 속에서 비정규직은 무능력과 노력 부족의 결과가 되기 때문에 연대해야할 사회적 약자가 아닌, 멸시하고 더 올라오지 못하도록 짓밟아야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도 비정규직일 수 있다는 불안을 드러내면 자신을 끊임없이 노력하게 했던 '정규직의 미래'를 스스로 의심하게 되기 때문에 청년들은 취업난으로 인한 불안에 신음하면서도 자신들의 미래일 수 있는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는 말을 당당하게 내뱉는다. 그 당당함의 근거는 다시 자기계발담론으로 돌아와 '내가 지금까지 정규직이 되기 위해 했던 노력'이며, 비정규직은 나만큼 노력하지 않은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확신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자신들을 실업자로 만들고 있는 이 체제와 위계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은 지워진다."

...

"그럼에도 이제는 성인이 된 청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을 분노케 한 그 절박함은 어떤 절박함이냐고. 힘든 입시 경쟁을 뚫고 교대, 사대에 들어와 4년 동안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해왔는데 교실 문턱은커녕 교문에조차 들어서지 못한 불안과 박탈감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나 또한 그랬고, 현재 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수많은 강사들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왜 당신들의 그 절박함과 분노는 교원 양성과정을 거친 당신들을 선생으로 일하지 못하게 하는 정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 있는 비정규직 강사를 향해서만 작동하는가? 교육 예산을 늘릴 계획도, 학급당 인원수를 줄일 계획도 없이 교대, 사대를 방치하고 비정규직 교원을 양성한 정부에게 속은 당신들은 왜 사기를 친 정부가 아닌, 같이 사기를 당한 피해자를 비난하고 있는가?

저자가 책의 말미에 권한 바와 같이 청년들이 자기계발 신화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섣부른 긍정과 희망을 갖기 전에 현실의 공정성에 대해 돌이켜봐야 한다. 현재와 같은 경쟁 상황 속에서 임용고시는 기회의 균등도, 과정의 공정성도 보장하지 못한다. 다수의 예비교사들이 임용고시를 통과하지 않는 이상 비정규직으로 살아야하는 현실은 결과의 평등도 보장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무한한 경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 훌륭한 교사임을 증명해주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회적 약자를 멸시하고 그들의 처우개선 요구를 조롱할 권리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취준생들의 반대여론에 기대 주춤하는 사이, 청년들이 정규직이 될 확률도 함께 줄어든다. 효율적인 예산 활용을 빌미로 무책임하게 비정규직 강사를 도입한 정부가 이에 따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을 때, 교대, 사대생들이 또 다시 정부의 기만적인 비정규직 양산 정책에 휘말릴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더 잔인한 현실은 과거와 같이 오늘도, 또 미래에도 다수의 교대, 사대생들은 개개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임용고시에 탈락했다는 이유로 교사가 될 수 없고,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고용안정과 복지혜택을 누릴 수 없을 거란 현실이다. 그리고 그 암울한 풍경을 만드는데 그들 스스로가 일조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와 분리돼 혼자만의 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개인은 없다. '절박함'을 이유로 모두가 시야를 좁힌 것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우리는 오늘날의 청년세대가 겪는 현실을 통해 치르고 있다. 다시금 청년세대를 괴물로 만드는 그 '절박함'이 과연 청년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인지 질문해봐야 할 때이다. 나의 절박함을 이유로 타인을 '잘라내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야된다'고 말하는 그 모습이 과연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고자하는 교육과 닮아있는지는 차치한다하더라도 말이다."


공감되는 글이라서 공유합니다. 현장에 있는 분이 쓰셔서 그런지 더욱 와닿네요.
    • 이 게시판에도 추천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좋은 글 공유해주셔서 고마워요~

      • 감사합니다. 기사 원문에 추천 기능이 있더군요. 청년들만 비판하기 어려운 게 옳은 길보다는 쉬운 길이 더 용이하겠죠.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옳은 길을 가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네요.
    •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 글이네요.
      • 시간이 좀 된 글인데 학교 비정규직 파업 관련해서 접하게 됐네요. 파업에 쏟아질 막말을 생각하면 막막하네요.
    • 구구절절 동감하는 글입니다. 추천 백만개 드립니다. 한국교육과 자기계발서와 사회분위기는 서로 쇠사슬 자랑하는 훌륭한 노예들을 만드는데 성공했어요.
      • 오찬호 선생님이 꽤 의미있는 분석을 하셨네요. 잃을 게 쇠사슬 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기 전에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 쇠사슬이 금이냐 은이냐 황금이냐 도금이냐…상상해 보니 ㅎㅎ
    • 왜 '힘없는' 강사들에게 비난 여론이 생기냐면, 그 안에도 기회주의자들이 존재하고 바로 그들이 이슈를 주도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죠. 약자=선한자가 아니거든요(그들이 정말로 약자인지는 우선 논외로 하고).


      첨예한 갈등이 있는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가며 현실적ᆞ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거지, 난데없이 정권 바뀌었다고 이상적인 담론을 들먹여가며 시혜적인 방식으로(갑자기 무슨 기준도 없이 다 정규직을 시켜주겠다는 등) 해결하려 하는건 갈등만 부추길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는건 당연한 전제이기 때문에, 사실 왈가왈부 더 얘기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예요. 누가 모릅니까? 정규직 많이 만들어 아름다운 사회 만드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남는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철저히 '방법론'의 문제인거죠. 쉽게 말해 강사가 정규직 되는게 배아파서 강사들을 비난하고 약자끼리 서로 싸우고 하는게 아니라, 이런 방식이 과연 타당히고 맞는 것이냐를 묻는겁니다. 당장 강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고, 교육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그 자체를 반대하는게 아닙니다.

      • 좀 헷갈리는데 비정규직 교사 정규직화에 동의하시는 건가요? 반대하시는 건가요? 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지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 직군을 막론하고 비정규직 문제는 가장 큰 사회 문제이고 그걸 해결해야 한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육 직군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는 당연히 해결돼야죠. 


          윗 댓글에서도 썼지만 방법의 문제를 얘기하는겁니다. 가령 기간제 교사의 정규(무기계약직 등) 전환 문제는 기간제 교사 집단 내부에서도 찬성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소수의 구성원들이 오히려 이슈화에 앞장서는 모양새인거죠. 당장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때를 잘만나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 같으면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없을까요? 예를 들어 작년에는 기간제 교사나 강사였는데 올해는 자리를 구하지 못해 백수인 사람은 정규직을 시켜 줄건가요, 말건가요? 티오 문제로 불안에 떨고 있는 노량진 고시생이나 교대생, 사대생들의 불안과 불만은 어떻게 할겁니까? 


          원론적인 문제를 장황하게 얘기하는건,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 동의하신다면 비정규직 교사들 중 일부가 기회주의적이라고 해서 정규직화 명분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겠죠. 방법론의 문제라면 지혜를 모아나가면 되는 것이구요. 교육예산 증대와 정원감축과 티오 확대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고 비정규직 철폐로 전체 사회의 고용불안정성을 줄인다면 소외되는 이들이 최소화될 것이구요. 인권은 언제나 시기상조였죠. 생존권의 문제와 결부되기에 이상주의라 비판받더라도 추구하지 않을 수 없구요.
    • 왜 요즘 인터넷 공론장에서 누가 한국의 여성 차별 문제를 지적하면 꼭 예전 메갈리아 게시판에서 퍼 온 핵뻘글 들이대며 '페미니즘은 이래서 안 돼'라고 반박 같지도 않은 반박을 하는 사람들 있잖습니까.


      딱 그런 전략의, 그리고 그런 수준의 글입니다. 아마도 교육 현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약은 좀 팔 수 있겠네요. 그게 애초의 의도일 수도 있겠구요.


      논의의 대상이 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니 이 쯤에서 댓글 마무리 하겠습니다.
      • 비정규직 교사 정규직화 문제에 세밀하게 접근하신 로이배티님의 지난번 관련글을 통해 저도 많이 배우고 생각할 고민도 얻게 돼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직에 계시다 보니 풍부한 통찰을 가지고 계셨겠죠. 사립학교의 기간제 교사 남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이뤘고 문재인 정부도 그 정도 수준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공정성을 명분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서 기간제 교사를 예외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핵뻘글"에 굴복하고 만 것이죠. 학교 비정규직이 파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논리가 먹히는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을 제공하는 글이어서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불안정한 삶의 가능성을 인질 삼아 의자놀이를 하고 있는 체제의 정당성에 함께 문제제기를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예비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대립구도가 허구적이라는 관련기사도 있네요.




      예비교사와 기간제 교사, 대립할 이유 없다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709021726001&code=940100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근처에서 공립학교 정교사 ㄴ씨(교총 소속)를 만났다. 그도 3년가량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하다가 임용고시에 합격한 뒤 2년째 정교사로 일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범대학을 졸업한 ㄴ씨는 “대학 후배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장 상황을 전해준다. 차근차근 설명해주면 후배들도 ‘예비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대립구도’가 허구라는 점을 이해하더라”고 말했다.



      ㄴ씨는 현장 교사 수가 이미 교원 정원을 넘어섰기 때문에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은 신규 채용과 큰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교육부가 발표한 2016년 교육기본통계에 의하면, 초등학교의 경우 현장 교사 수가 정원보다 2만1000명(13%)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교도 1만1000명(12%), 고등학교도 약 1만명(8%) 정도 정원보다 현장 교사 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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