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본 모아나 후기

개봉을 애매한 때 했더군요. 시원한 바다가 나오는 영화인데 왜 한겨울에 개봉을 했던 건지. 그래서 흥행을 못했나 싶기도 해요.

최초로 러브스토리가 전혀 없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인공 모아나는 아주 당차고 용감하네요. 그런데 정말로 전형적으로 씩씩하고 용감한 주인공이라서 뭔가 개성이 없어요. 오히려 조력자(처음엔 방해자)인 마우이가 입체적인 캐릭터네요.
바다와 섬들의 모습은 참 아름답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네요. 영화 보고 나니 바다로 달려가고 싶어져요.

카누 하나를 타고 해류를 거슬러 망망대해로 떠나서 차례로 태평양의 섬을 발견한 역사를 재해석한 영화입니다. 왜인지 1~2천년 동안 모험을 중단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랬다가 다시 모험을 시작한 시점이 영화에서 다루는 시기입니다.
총,균,쇠 생각도 납니다. 영화 보고 나서 폴리네시아 문화에 대해 찾아보니 더 재미있네요. 마우이는 폴리네시아 전체를 공유되는 영웅인데, 원래 잘생긴 남자인 마우이를 영화에서는 좀 코믹하게 그려 놔서 다소 문제제기가 있기도 했나봐요. 우리나라로 치면, 원래 미남인 도깨비를 일본식 오니로 그려놓은 셈? 마우이 성우인 드웨인 존슨이 그렇듯 폴리네시아 남자들은 건장한 근육질도 많은데 서구인들이 상상하는 뚱뚱한 폴리네시아인을 그린 거 아니냐. 
그리고 훌라춤은 그냥 춤이 아니라 정교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수화라는군요!

9년 동안이나 준비했다는데 약간 설정이 유기적이지 않고 붕 떠 보이는 것도 있어요.

처음에 나오는 귀여운 돼지는 분명 모아나의 여정을 같이 하는 동물 친구 역으로 점찍은 것 같은데, 그냥 역할 없이 안 나와서 읭?스러워요. 동물 친구 역은 바보 수탉이 합니다. 그런데 바보 수탉은 정말 바보라서 하는 일이 넘 없네요. 동물 친구에 지능을 주는 설정으로는 도저히 이야기가 꼬여서 할 수 없이 지능을 낮추었다고 합니다.

코코넛 해적들이나 집게 괴물을 만나는 모험은 전체 줄거리상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그냥 1부 미션 완료 2부 미션 완료 같이 게임 미션 하나씩 처리하는 것처럼 순차적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바다가 모아나를 선택했다면 그냥 처음부터 모아나를 데리고 초고속 해류에 태워서 테 피티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면 되잖아요. 왜 마우이를 만나서 -> 마우이를 설득해서 -> 마우이 갈고리를 찾아서 -> 마우이를 데리고 항해술을 배워서 -> 테 피티로 가는 거죠?

아니면 바다가 그냥 심장을 운반해서 테 피티에게 갖다 줘도 되었을 거 같은데.


    • 전 이 애니메이션을 무성영화로 봤습니다.


      영화를 소리없이 보면 또 그런데로 재밌어요.


      끝까지 둘이 애인이 된건 아니었어요.

      • 상영시간의 절반이 노래인데 무성영화로 보시다니요;; 자막은 있었겠죠?

        • 자막도 안봐요 내용 모르고 봐요.

    • 저도 아이들이랑 재미있게 봤어요. 픽사 단편인 라바랑도 뭔가 연결되는 내용같기도 하고 그랬네요. 하와이.. 혹은 폴리네시안쪽의 신화 혹은 설화를 가공한 애니같아요. 그동네 다녀와서 그런지.. 뭔가 익숙하고 정겨운 부분이 있었어요. 마우이는.. 하와이 원주민들이랑 참 비슷하기도 한데.. 쫌만 잘생겼으면 싶기도 하고. ㅎㅎ 마지막의 예측 가능한 반전까지.. 착한 애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ㅎㅎ 예측 가능한 반전인데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예측도 못했지요. 크으... 


        폴리네시아의 역사와 신화를 둘 다 반영해서 만들었대요! 실제로 1~2천년간 섬 개척을 하지 않고 머물러 있다가 갑자기 다시 시작했다고... 집게 괴물과 코코넛 괴물도 다 신화에 나온대요. 

    • 전 8살 딸아이와 함께 열번도 넘게 보고 있는데 봐도 봐도 재미있네요.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DVD를 사줬는데 이미 뽕 뽑았습니다. 


      몇가지 한계가 있긴 하지만 - 오로지 자신이 극을 이끌어 가는, 모험을 하고, 나라를 구하는 온전한 여성 주인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라요.


      모아나를 바다로 이끄는 이는 (마을의 정신나간 여자 역할의) 할머니, 이를 가로막는 이는 아버지, 능력있는 조력자를 갖되 주체는 여성, 악의 중심이자 자연의 신도 여성. 용감하고 거침없는 모아나. 리더의 역할을 부여받았고 부족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힘들 땐 울기도 하는 모아나. 


      솔직히 프로즌, 인사이드아웃, 주토피아, 모아나 같은 만화영화들을 보고 자라는 딸아이가 부러워요. 


      여기까지 오기까지 여성을 주변으로, 도구로, 꽃으로, 트로피로, 가르침의 대상으로, 성적 대상으로 삼는 영상물에 대한 정말 많은 여성운동가들의 문제제기와 노력이 보이기도 하고요.  


      제 세대에 온전한 여자 주인공 만화라고는 빨강머리 앤, 미미의 컴퓨터 여행(?) 정도 밖에 떠오르질 않으니.. 


      심지어 얼마나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빈곤이 심했으면, 케빈은 열두살에서 몇 장면 나오지도 않는 케빈 누나가 상당히 자기 주장이 강해서 멋있었다는 기억까지 날까요 ㅎ 암튼 모아나 사랑합니다. 더더욱 애니메이션계의 발전을 응원합니다.    

      • 저도 이 추세라면 몇 주 안에 10번 넘게 볼 것 같습니다..;; 저는 아들내미인데, 애가 넘나 좋아하네요.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목숨 걸고 만든 듯한 고퀄 OST는 한 곡 한 곡 전부 대단해요. 




        암튼 성평등 지수 높아진다고 해서 재미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이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왜 계속 차별적인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이 나오는 걸까요. 성차별적이면 여성이나 성소수자들 보기 불쾌하고 재미없어지니, 성평등 지수 높이면 제작자나 관객이나 윈윈일 텐데 말이죠.  




        그리고 혹시 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스머프-비밀의 숲도 강추입니다! 따님 꼭 보여주세요! (제가 이 게시판에도 후기 썼어요.)


        과거에도 주체적인 캐릭터로는 삐삐,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등도 있었죠. ^^




        한편... 모아나의 모험과 섬 개척에 가슴이 벅차오르다가도 섬마다 이루어진 멸종과 파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 슬프네요. 여기에 대해서는 시간 나면 따로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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