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개조)
#.휴...나는 운 없게도 과학이 과학일 때 태어나버렸어요. 과학이 곧 마법인 시기일, 좀더 미래에 태어났더라면 바이오공학의 정수로 만들어진 새 몸을 샀겠죠. 모든 질환에 면역이 되어있고 일주일동안 안 자도 되며 알콜분해능력이 30배 정도로 디자인된 몸, 파티에 최적화된 몸 말이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 생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개조해서 써야 해요. 운동에 대한 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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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식이든 놀이공원이든 어떤 것을 그것 자체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다른 현상과 비교하거나 치환해서 이해하는 걸 좋아해요. 언젠가 썼듯이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맞닿아 있어서 모두가 모두의 비슷한 면, 비슷한 색을 띄니까요.
이런저런 운동을 배우다 보니 인간의 몸을 자동차에 비유하게 됐어요. 차체의 강도와 무게, 엔진의 출력, 서스펜션의 강함, 연비, 배터리나 타이어, 차의 연식 같은 온갖 조건이나 부품의 성능이 차의 종합적인 퍼포먼스를 좌우하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아무리 자동차를 개조해도 어떤 자동차가 아예 다른 자동차가 되는 건 불가능해요. 볼보를 아무리 개조해봤자 좋은 볼보가 될 뿐, 람보르기니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요.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좀더 나은 나자신이 될뿐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순 없죠.
2.위에 썼듯이 이번 생에서는 내 몸을 개조해서 써먹어야 하는데 이건 꽤나 귀찮고 힘든 일이죠. 어쨌든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재미있는 것만 했어요. 한데 하고 싶은 운동만 하는 건 RPG게임에서 스탯 하나만 계속 찍는 것과 같아요. 스피드나 스태미너, 기술 같은 스탯도 찍어야 캐릭터가 강해지는데 HP만 계속 찍으면 적에게 공격을 명중시키거나 적의 속도를 따라잡거나 하는 게 힘들어지니까 실제로는 약해지죠.
물론 현실에선 레벨이 팍팍 오르는 게 아니니 바로 체감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몇 년간 하고 싶은 운동만 하다 보니 확실히 단련이 안 된 부위가 단련된 부위를 따라오지 못하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보통 웨이트는 뭘 하든 어느 정도 비슷한 무게와 횟수로 수렴되는데 광배근이나 기립근 등 몇몇 부분을 쓰는 운동이 다른 부분을 쓰는 운동과 수십킬로씩 차이나게 되어서 말이죠. 이 운동은 80kg도 더 들 수 있는데 저 운동은 25kg 들기도 힘들게 된 걸 보고 가능한 고르게 운동을 하게 됐어요. 너무 머신에 의존하는 습관도 버리게 됐고요.
그리고 느낀 건 운동을 하면 움직임이 편해지는 대신 다칠 수 있는 곳이 많아진다는 거예요. 운동을 하면 몸이 가벼워져서 좋을 거라고 여겼는데 의외로 더 불편해졌어요. 운동을 하고 느끼게 된 건 뭐랄까...지방은 내 몸의 일부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붙어만 있을' 뿐이지 뭔가 작용을 하는 것도 아니고 손상되는 구조가 아니니까요. 뭔가에 베이거나 피를 흘릴 만한 충격이 아니라면 아플 일이 없어요.
하지만 근육은 여러 겹의 실로 이루어진 구동계라서 그런지 무리했다간 기능이 손상되거나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아요. 자동차도 그렇듯이 기능을 추가할 때마다 고장날 곳도 늘어나는 거죠.
3.그리고 어쨌든 스텝업을 하려면 유연성과 체력 스탯도 좀 찍어야 한다는 게 몸으로 느껴지고 있어요. 그런 운동들이 재미는 없지만 너무 뒤떨어지는 스탯을 보완하지 않으면 모처럼 찍어놓은 괜찮은 스탯들의 발목을 잡아 깎아먹는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게임에서는 힘이면 힘, 마법이면 마법 등 한 가지의 스탯만 찍어서 강캐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아니예요. 모든 능력치를 평균적으로 맞춰 놔야 강해진 기분이 들죠.
4.휴.
5.그동안, 몇 년간 하고 싶은 운동만 하는 걸 트레이너에게 지적받긴 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말로 경고받는 걸로는 문제를 자각할 수가 없죠. 주식으로 치면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아무리 주위에서 떠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전재산을 몰빵했죠.
'시끄러운 것들. 나는 스페셜한 인생을 살아야 해서 말이지. 너희들이 50살쯤 도착할 곳에 30살까진 가야 해서 급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난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아야겠어. 가장 단단하고 안전한 바구니에 말이야. 너흰 내가 인생의 엑셀을 꽉 밟는 걸 구경이나 하라고.'
라고요. 그러다가 뭐...굴러떨어지는 거죠. 그리고 다음에 길을 떠날 땐 봇짐에 교훈이라는 걸 넣어서 출발하는 거예요.
6.어쨌든 몇년 동안 비슷한 운동들만 해버려서 이걸 계속 해봤자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상태를 느껴버렸을 때에야 다른 운동들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리고 다른 운동을 해서 다른 부분들을 약간 발전시켜 보니 원래 하던 운동들을 잠깐 쉬었는데도, 오랜만에 시도했을 땐 꽤나 수월해졌어요. 원래 약간 힘들던 벤치프레스의 무게였는데 약간 과장을 보태서 깃털처럼 느껴졌어요.
물론 이건 매일 하던 상체 운동을 한동안 쉬어서 피로가 회복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요.
7.그런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던 걸까 했는데...되짚어 보니 이렇게 된 건 상체 운동에 자신이 붙었을 무렵에 남을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어요.
피트니스를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는데, 내가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운동을 웬 다른 녀석이 더 무겁게 하고 있는 걸 보면 이상하게 화가 나는 거예요. 다른 운동은 상관없지만 딱 하나...그 운동만큼은 남이 나보다 더 무거운 걸로 운동하는 걸 보면 화가 나는 거죠.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
당연한 얘기지만, 무거운 걸로 하는 게 곧 그 운동을 '잘 하는' 건 절대 아니거든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면요. 하지만 그래도 화가 난 건 난 거니까요. 누군가가 나보다 무거운 걸로 운동을 하면 그자가 떠난 뒤에 나도 그 무게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 무거운 걸 시도하곤 했어요. 그런 식으로 경쟁심을 가진 운동만 경쟁적으로 하다 보니 자동차의 한 부분만 좋은 파츠가 되어버린 거죠.
8.누군가는 '그런데 운동을 하는 목적은 결국 뭐인 거지?'라고 묻곤 해요. 그러면 할 말은 없어요. 뭐 비비안 웨스트우드 신상에 몸을 맞추기 위해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이성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운동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야 비호감을 사는 외모는 좋지 않지만 어차피 나의 외모의 한계를 찍어봐야 화폐수단을 대체할 정도의 자본이 되어주진 않을 거니까요. 그래서 맛있는 것들을 줄이면서까지 열심히 하는 정도는 아니예요. 위에 썼듯이 볼보는 좋은 볼보가 될 수는 있지만 어차피 람보르기니가 될 수는 없죠.
그냥 지금까지 한 게 아까우니까 계속하는 거 같긴 해요.
사람은 하던 것과 곳만 잘하게 되어있어요.
단련으론 될수 없는 각자의 능력치가 있지만
한가지만 오래 하면 남보다 기적적으로 잘해요.
뭐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