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봤어요 (스포 없음)

 아침에 시간을 좀 때워야 할 일이 생겨서 볼 영화를 찾다가 별 기대없이 골랐는데 140분동안 꼼짝 못 하고 봤네요.

 초반의 스산한 분위기와 한 명 한 명 소개되는 인물들이 다 수상쩍어보이는 게 꼭 '이끼'같은 느낌이었고, 도무지 확실히 밝혀주지 않는 건 '곡성'의 데자뷰가.. 뭐 그게 이런 미스테리 추리물의 방식이겠지만요. 일본 영화+살인 의 연상작용으로 '고백'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제가 추리물, 미스터리, 스릴러, 살인, 이런 영화를 기피하는 편이라서, 장르적인 성취는 잘 모르겠고요.. 개인적인 느낌만 몇 자 적어봅니다. 


 '합리적 의심'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초반에 사건을 던져놓자마자 바로 여러 사람들이 소개되어서, 대체 이야기를 얼마나 벌리는 건가 싶었어요. 그러면서 그 사건은 잠시 제쳐놓는 것 같아서, 앞서 나왔던 사건과 지금의 인물들은 다른 시간대(미래라든지 과거라든지)의 일들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어요.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나오네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스즈, 행복한 사전의 주인집 손녀, 조제와 호랑이와...그 두 사람, 좋아했던 영화의 배우들의 완전 다른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다시 합리적 의심으로 돌아와서, 합리적 의심을 안 하는 바람에 사기를 당하고 돌이키지 못할 피해를 입곤 하잖아요. 그 때 ~만 했었어도.. 이런 후회를 남기며. 이 영화는 반대로 합리적 의심이 과연 합리적일까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범인은 한 명이고 사람은 셋이니, 적어도 저들 중 둘은 무고할텐데. (제 3의 인물이 나타나거나 지목될 경우엔 셋 다! 무고한 게 되지요.) 첫 인상부터 음침하며 위험 인물의 포스를 풍기고, 거짓말같은 대답들과 비사회적인 모습들에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죠. 각각의 그들과 가까워지는 인물들에게 야야 조심하라고 일러주고 싶어지고요. 

 사실 이렇게 얘기해놓으면 그거 추리물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싶은데, 영화의 편집방식이 이 주제와 맞닿아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전개해가는 걸 한 장(챕터)이라고 한다면, 영화는 그들을 교차해가며 보여주는데 그 넘어가는 순간들을 독특하게 겹쳐놓았어요. 예컨대 한 장이 1,3,5,7,9..까지 하면 관객이 마음 속으로 11!을 외치는 순간 영화는 ..9, 10, 11, 12, 13, 14, 15.. 이런 식으로 흘러간달까요^^;
다음 씬의 사운드를 미리 땡겨오는 방식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지만, 이 영화의 경우엔 그런 편집이 '합리적 의심과 그에 대한 배반'이라는, 내용에도 걸맞는 형식이었단 생각이 들어요. 영화 속의 인물들처럼 관객들고 관습적으로 뭔가를 믿었다가, 아 내가 오해를 했구나 미안, 그래도 미심쩍은데...의 과정을 겪게 된다는 점이요.

 사카모토 류이치가 영화 음악을 했네요. 
 사운드가 영화의 분위기를 많이 만들고 있고요. 그런데 어떤 장면들은 음악이 좀 지나치게 열일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후반부는 영화 내내 고생한 인물들을(관객들도) 위로하려는 건지 장면도 좀 길고 클로즈업도 엄청 많고 음악도 너무 뜨겁긴 했어요. 그런 탓에 초중반까지의 종횡무진의 긴장감에 비해 좀 아쉽기도 하지만... 짤막하게 끝내버리고 The End! 했으면 관객 입장에선 바로 현실로 입갤하기 좀 힘들었을지도..모르죠 뭐;

 왜 그런 의심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 그 사람이 수상해보여서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판단)때문이 아니냐, 라는 대화도 인상적이었고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대사가 반복되지만 그냥 흘러가는 건가 싶었는데,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 쳐했던 건 그 말을 했던 그녀들뿐은 아니었었구나 싶네요.


 강간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정도의 필요로 그 정도의 수위를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강간을 묘사하는 자세나, 특히 그 특유의 움직임들이 영화에서 나올 때, 과연 저런 식이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썩 편하지 않아요.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분들에겐 영화에서 필요한 정도라고 보일 것이고, 어떤 분들에겐 필요를 떠나서 그만큼도 자극적이라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장면 묘사에 관한 걸 떠나서라도, 꼭 그 일이었어야 했을까요?..현실을 반영한 거라고 봐야할까요 쩝..) 


 다 쓰고 보니, 영화 초반엔 '당연히 나중에 나오겠지' 싶었던, 대체 왜 죽인 거지? 라는 살인의 이유를 밝히는 게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었던 것 같네요. 특별한 이유'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와 함께 살아가는 현대 사회니까요.. 이제 이런 소재의 이야기들도 그 틀을 다르게 만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 영화에서 이런 인간소외(?) 시대의 모습들을 종종 미리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쩌다보니 개봉 첫 날 아침에 보게 되어서, 앞으로의 반응들이 궁금하네요. 

    • 방금 보고 왔어요. 영화로서는 나쁘지 않았는데, 실제로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 느낌의 영화였어요.


      말씀하신 합리적 의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좋은 말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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