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사회)
1.언젠가 어떤 전공자와 잠깐 얘기를 하다가 현대 사회가 겪는 문제의 근원은 젠더문제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기에 현대 사회의 문제의 쐐기는 아무래도 빈부격차에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어요. 그러자 그는 역시 자신에게 첫손가락으로 꼽아보라면 젠더문제를 첫손가락에 꼽을 거라고 했어요.
뭐 이건 정답이 없어요. 우리는 남의 인생까지 살아주고 남의 인생의 문제가 뭔지까지 결정해 줄 수 없으니까요. 언젠가 듀게의 어떤 분이 저에 대해 게시판에 썼던 덕담이 마음에 들어요. '여은성님은 자신의 문제를 세상의 문제로 치환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미워하는 대신 그냥 그것을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라는 말이었어요.
그야, 이런 태도가 꼭 좋은 것도 아니겠죠. 모든 게 상호작용하는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떨어지는 불똥만 털어내고 세상의 구조를 문제삼지 않고 있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자신의 힘으로 불똥을 털어낼 수 없는 사람들은 산 채로 불타버릴거고요.
2.하지만 내가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사례 중 평균적인 비참함을 말해보라면 그것은 돈 없는 보통 남자예요. 위에 썼듯이 나는 현대 사회의 문제는 빈부격차라고 여기니까요. 유동성도 자산도 없는 남자라면 비참하죠. 특히 대한민국은 징병제를 겪기까지 해야 하니까요.
'돈이 없다고 비참하다고 이게 뭔 소리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뜻이 아니예요. 내가 말했던 빈부격차가 꼭 돈은 아니예요. 그야 돈은 좋죠. 모든 것을 돈과 바꿀 수 있는 세상이니 돈은 최고의 유동성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돈이 있다'와 '돈이 없다'의 차이는 회색지대가 없어요. 그냥 백과 흑의 문제죠.
하지만 유동성을 만들어내는 게 꼭 동산이나 부동산은 아니죠. 매력이 있다면 자기자신이 유동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거니까요. 꼭 자본금을 물려받아야만 금수저인 건 아니거든요. 비주얼과 분위기를 물려받아도 한평생 괜찮게 먹고 살 수 있는 수저를 받은거예요. 하지만 돈을 만들어낼 만한 규모의 돈이나 돈을 만들어낼 만한 수준의 용모를 물려받는 건 존나 힘들죠. 여기서 말하는 힘들다는 건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단 한 번의 주사위를 굴릴 기회란 뜻이고요. 어떤 일화를 말해보죠.
3.몇 년 전의 일이지만 학교 시절 동창들을 만났어요. 나 말곤 전부 어떤 시험을 준비중이어서 만날 기회는 별로 없었어요. 1년에 많아봐야 두세번 정도 모이는 거였지만 어린 시절에 애착을 형성해서인지 만나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친하게 굴었어요. 30살이 넘은 어른이지만 어린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이 모이면 예전 시절로 돌아간 듯한 트랜스 상태에 걸리는 것 같았어요. 내가 관찰하기론요.
나는 남자들을 만날 때마다 한가지를 생각하곤 했어요. 그들이 군대를 견뎌냈다는 거요. 이건 나보다 10살 어리고 아직 까불거리는 소년기가 남아있는 남자를 만나도 마찬가지였어요. 당시 군대의 시급은 140원인가? 그 이하였을 거예요. 140원! 젠장! 140원!!!
아직 당신이 군대를 가지 않았다면 상상해 보세요. 140원의 시급을 받으며 2년동안 감금되어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 말이예요. 140원을 받으면서 2년. 그것도 30대의 2년도 아니고 40대의 2년도 아니고 50대의 2년도 아니예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의 2년. 가장 인생을 즐기거나 가장 성장해야할 시기의 2년을 시급 140원에 줘버려야 하는 것을 리얼하게 상상할 수 있다면 당신은 돌아버릴 걸요. 그것을 상상해버린 내가 잠깐 돌아버렸었던 것처럼요.
그리고 자신의 가장 좋은 시기의 2년을 시급 140원에 주는 숭고한 일을 하고 있는데 전혀 존경받지도 못한다면? 대통령이 매달마다 와서
'미안해 얘들아. 국가예산이 모자라. 여러분의 제일 좋고 빛나는 시기의 2년을 이런 식으로 빼앗아가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정말 고마워. 내가 매주 오지는 못하지만 매달 한번씩은 와서 사과하고 고마워할께.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정말로 미안하고 고마워.'
라고 해도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을 텐데 웬 이상한 녀석들에게 욕먹고 갈굼당한다면...? 모르겠어요. 국가 단위로 저질러지는 인신매매. 나는 그것을 상상했고 그래서 몇 년 동안 돌아버리고 말았어요.
4.휴.
5.어쨌든 만난 옛 친구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어요. 이 네 명의 남자들이 2년 동안 그런 나쁜 일을 겪고도 지금 웃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요. 마치 그런 나쁜 일이 자신의 인생에 없었다는 듯이요. 너무 감상적일지도 모르겠지만 약간 눈물이 났어요. 어쨌든 뭐 밥을 좀 먹고...술을 사기로 했어요. 마침 근처에 단골 술집이 있었어요. 하긴 어딜 가든 근처엔 단골 술집이 있겠지만요.
술집에 들어가서 잠깐 사람들을 물리고 메뉴를 고르는데 그중 한 명이 물었어요. 복도를 걸어오면서 마음에 든 직원을 점찍어 놨는데 '데리고 나갈 수'있냐고요. 그래서 그런 건 여기에 없다고 했어요. 그러자 그는 여기(룸 안)에서 '어디까지 진행할 수'있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터치는 안 되고 그냥 얘기만이라고 했어요.
그러자 그들은 그들끼리 짧은 토론 시간을 가졌고...말했어요.
'니가 쏜다고 한 거 그냥 안마방으로 쏴줘.'
라고요. 어차피 이 가게에서 술을 쏘든 안마방을 쏘든 같은 금액이니 상관없지 않냐고요.
6.상관이 없다니...? 당연히 상관이 있죠. 내가 이런 상황에 몰려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말이예요. 잠깐 고민하다가 뭐...나는 그들과 잠깐 헤어졌다가 다시 모였어요. 그들과 헤어져 있는 동안 지하경제 규모가 조금 늘었을 거고요.
7.사실 원래 쓰고 싶은 건 따로 있었는데...너무 길어져서 줄이고 줄이다 보니까 얘기가 좀 이상하게 흘러갔네요.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그들이 안마방에 간 어떤 하루를 씹어대겠죠.
그러나 어떤 하루가 아닌 어떤 364일을 생각해 본다면? 위에 말한 어떤 시험은 공무원시험이예요. 빌어먹을 서울대생이나 빌어먹을 연고대생들도 뛰어들어와 있는 그 공무원 시험이요. 그런 시험에 붙기 위해 364일동안 일찍 일어나고, 가능한 식비를 줄이기 위해 사둔 식권을 꺼내고, 강의를 듣고 자습을 하다가 잠깐 쉬러 나와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시는 10분...그 10분이 마음놓고 쉬는 대신 공무원시험에 붙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데 쓰여야 하는 것에 대해서요.
그리고 그런 매일을 여자친구도 없고, 친구여자도 없고, 여자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서요.
누군가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겠죠. 하지만 어쩌라고가 아니라 이게 그들 탓이 아니란 거죠. 군대 2년을 칼같이 갔다오는 사람은 그리 없어요. 군대가기 전의 몇 개월, 군대 갔아온 후의 몇 개월을 날려먹는 사람이 더 많죠. 그렇게 시간을 날려먹거나 학기가 꼬여서 늦게 구직을 시작하게 된 것도, 기업에서 사람을 적게 뽑게 된 것도, 결국 공무원시험을 목표로 하게 된 것도, 공무원시험장에서 서울대생이나 연고대생들과 경쟁해야 하게 된 것도, 도시락을 싸다주고 응원해주는 여자친구가 없는 것도 다 그들 탓이 아니란 말이죠.
8.우리 인간이 무엇을 겪든, 무엇을 누리든 사실 그것은 거의 주어진거지 자신만의 힘으로 손에 넣은 건 없어요. 자신만의 잘못으로 겪어야 하는 것도 거의 없고요. 만약 자신의 힘으로 다 해냈다고 외치는 녀석들이 있으면 녀석들은 발밑을 봐야할 걸요. 자신이 밟아온 발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힘 어쩌구 하는 헛소리따윈 쏙 들어갈 거예요.
원래 이 글은 뭘 문제삼고 싶어도 한껏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라거나 뭘 조롱하고 싶더라도 한껏 조롱할 필요는 없다라는 글을 쓰고 싶었던 거였는데 쓰다 보니 기운이 없어졌어요. 너무 길어져서 나눌까 하다가 웬만하면 글을 나누고 싶진 않아서 그냥 그만뒀어요.
도시락을 싸주며 응원해주는 여자도 없는 보통남자의 비참함에 마음이 아프셨군요.
그런데 빈부격차를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시선이 왜 안마방이나 토킹바에서 일하는 여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을까요.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여자는 무슨 잘못을 더 저질렀길래 소유하지 못하면 억울한 게 되었을까요.
날선 댓글 죄송합니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말하고 싶은 글이네요.
↑님에겐 여자가 소유의 대상인가 보군요. ㄷㄷ.
님이 그렇게 쓰셨잖아요. 남자가 비참한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매일을 여자친구도 없고, 친구여자도 없고, 여자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서요."
제가 본 가난한 여자 공시생들은 님처럼 안마방을 쏘는 친구도 없이 더 비참하게 살아갑니다.